[이코노믹리뷰 기고문 40]
준비하지 않으니 빠를 턱이 없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 대응의 핵심은 신속성이다. 모든 위기는 시간이 해결 해 준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더 나중엔 재가 되더라도 무언가 되긴 된다. 그러나 기업이 원하는 결과는 이런 참담함이 아니다. 적시에 위기 대응에 나서기 위해서는 각각의 대응 기능 스스로 준비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준비가 없으면 항상 느리다. 예외는 없다.
우리 기업들의 위기관리 케이스들을 분석 해 보면 기업 대부분이 위기 상황 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공통적인 현상을 보인다. 물론 기업은 개인보다 느리다. 기업은 환경보다 느릴 수 밖에 없다. 상황 감지에 여럿이 관여 하다 보니 상황 파악도 느릴 수 밖에 없다. 의사결정그룹도 한 개인이 아니라면 의사결정이 빠를 수가 없다. 위기 대응에 나서는 사람들이 여러 준비에 시간을 소비하다 보면 이미 버스는 지나가버린 뒤일지도 모른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전방 군인들을 생각 해보자. 북한의 도발 징후를 감지하면 이에 대응하는 시간을 최소화 하기 위해 그들은 항상 노력한다. 심지어 일선에게 ‘상부에 보고하지 말고 적이 도발하면 반사적으로 먼저 응징하라’는 지시를 할 정도로 신속한 초기 대응을 주문한다. 우리 군이 즉각 반격에 나설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대비 또는 준비라고 불리는 체계가 필요하다.
준비(準備)라는 단어는 사전에 의하면 ‘미리 마련하여 갖추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고 마련해 하나 하나 미리 갖추어 나가는 것이 위기관리에서 ‘준비’의 의미가 되겠다. 개념적으로는 당연하고 간단한 주문 같아 보인다. 하면 되지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예측되는 위기에 있어서도 별반 세부적인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거의 매번 별반 실제적 준비 없이 위기를 맞으니 그에 대한 대응은 반복적으로 늦고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왜 그럴까?
서로 만나 마주 앉지 않기 때문이다. 웬만해서는 같이 일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부서간 사일로(silo)가 위기 때는 더욱 강해진다. 흡연실에 옹기종기 모여 대응을 논하는 일부 팀장들이 위기관리를 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체계적으로 모두 함께 이음새 없는 대응 계획을 세우기 힘든 이유가 이 때문이다. 법무, 기획, 대관, 홍보, 영업, 마케팅 각각이 예측되는 동일한 위기에 대해 각기 자기들만의 대응 계획을 세운다. 실제적으로 협업이 이루어지는 준비체계는 이런 모습이 아니다.
개념적으로만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위기대응을 위한 준비 중 가장 많이 소비되는 시간은 문서작업을 위한 업무라고 실무자들은 토로한다. 문서로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회사는 없다. 문제는 보고를 위한 문서에 시간을 과도하게 쏟아 부어 실제로 인적, 물적, 경험적, 네트워크적인 준비를 할 여유가 부족하게 된다.
일부는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들의 위기는 예전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전문성을 요한다. 평소 담당실무에만 집중하던 부서들이 생소하고 특수한 유형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정확하게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사내에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못한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조언을 요청하는 전화를 극비리에 돌리다가 때를 놓치고 위기를 맞는다.
위기관리 성공을 원하는 CEO는 하루 빨리 ‘정리된 준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위기관리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고민 이전에 위기 대응을 위한 ‘준비 프로세스 구축’을 먼저 할 필요가 있다. 평시 가능한 여러 위기 유형에 대한 대비 체계를 점검하고, 부족한 면이 있으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체계 보수를 진행해 보자. 세부 시뮬레이션을 통해 아주 사소한 준비들에 대한 니즈를 발견하고 이에 부서들의 실제적 고민을 요청해 보자. 이를 위해 CEO는 시나리오를 넘어 각본까지를 상상하면서 하나 하나 질문해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더욱 이상적인 것은 회사 내부에 이런 시나리오와 각본을 미리 고민하고 계속 질문하는 관제탑 기능을 설치 운용하는 체계가 되겠다. CEO는 이 관제탑 기능을 하는 임원이나 부서장과 함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준비 체계를 이해하면 된다. 위기관리란 ‘위기에 처한 기업이 꼭 해야 할 일을 제 때에 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여기서 기업이 ‘제 때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 곧 준비다. 준비 없이는 뭐든 제 때 하기가 힘들다. 위기관리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평소 미리 고민하던 CEO가 위기관리에 곧 잘 성공하는 이유가 바로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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