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 기고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 이슈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많은 클라이언트들의 문의 상담 연락을 받아왔다. 그들 대부분의 공통점은 일단 급하다는 것, 비밀을 준수해 달라고 하는 것, 혼란스럽다고 토로하는 것,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묻는 것 등이다. 그에 더해 이런 이슈나 위기를 관리해 줄 수 있겠는가 하는 실제적 물음이 따라온다.
다양한 케이스를 클라이언트와 함께 고민해 보고, 풀어보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 보면서, 위기관리나 커뮤니케이션 노력만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 특정 케이스들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영역에 있는 케이스로 연락해 오는 클라이언트에게는 일단 눈 높이(희망하는 결과)를 현실적으로 맞추기를 조언한다. 일부에서는 처음부터 이런 케이스는 관리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정의를 가지고 상담을 해 오기도 한다. 다른 일부에서는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없으니 무엇이라도 해 보자는 마음으로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
여러 케이스 중 다음과 같은 성격의 케이스는 이슈 및 위기관리나 커뮤니케이션 노력으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다. 참고해 보자.
첫째, 기업 범죄 케이스
이는 엄밀하게 따지면, 법적 영역이다. 초반부터 수사기관이 칼자루를 잡게 된다. 기업은 반대로 칼의 날을 잡는다. 당연히 어떤 노력을 해도 기업 쪽이 다치게 된다. 깊은 상처를 어느 정도 감내하고서도 칼날의 방향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바꿀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위기관리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도 그런 목적으로 운영된다. 즉, 정상적이거나 일반적인 전략과 실행으로만 위기관리가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이런 케이스에서는 수사기관의 판단과 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얼마나 해당 기업의 데미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부분의 노력을 집중하는 것 밖에는 다른 수가 없다. 또한 상당히 장기간 그런 노력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어야 겨우 본전을 찾는다. 기업 범죄의 경우는 법의 심판이 곧 위기관리다.
둘째, 중대 위법 케이스
공정거래, 세금, 위생, 약사, 금융, 환경, 재해, 노동, 보안, 안전 등 수많은 법과 규정을 어긴 성격의 케이스는 관리 예후가 그리 좋지 않다. 관련 기업은 대부분 침묵하거나, 최대한 로우 프로파일을 유지하면서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의 관심이 떠나가기를 기대한다. 기업 혼자만의 위법 사실이 드러나는 것 보다는 같은 업계 여럿이 한꺼번에 위법 사실로 알려지는 것이 그나마 나아 보인다. 혼자 맞는 매보다 같이 맞는 매가 덜하다. 이런 케이스는 위법의 이유나 배경, 전후사정과 관련하여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내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많은 기업들은 이슈 및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침묵을 택한다. 해결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라지게 하는 것뿐이다.
셋째, 경영진의 일탈이나 구설수 관련 케이스
이 케이스는 문제 발생 주체를 크게 두 성격으로 나눌 수 있다. 오너 또는 오너와 관련된 가족이 문제를 발생시킨 케이스와 그 외 전문경영인을 비롯한 임직원이 일으킨 문제 케이스로 나뉜다. 상대적으로 전문경영인 및 임직원이 연루된 일탈이나 구설수는 그렇게 큰 이슈나 위기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단기간 상당한 사회적 압력을 받게 되기는 하지만, 기업 차원에서 해당 인력에 대한 인사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관리는 상대적으로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그 문제 주체가 오너 또는 그 가족이라면 케이스의 성격은 완전히 바뀐다. 문제를 발생시킨 측이 이슈나 위기관리를 위한 최고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다면 더 문제는 심각 해진다. 말그대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커뮤니케이션 해야 할 것도 없는 기괴한 상황이 이어진다. 실제 케이스들을 돌아보면 공감하겠지만, 성공한 경우를 찾기 어려운 이유가 그 때문이다.
넷째, 의도적이며 상습적인 케이스
상습적이라는 것은 유사하거나 같은 사건이 반복해 일어난다는 의미다. 상습적으로 계속해서 사건이 발생된다면 그 사건에 연관된 기업은 특정한 의도나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사 제품의 원산지표기를 계속 허위로 작성해서 문제를 반복 발생시키는 기업이 있다고 치자. 이를 반복하는데 더해 허위인 원산지 정보를 해당 제품 광고에 빈번하게 사용하기까지 하는 기업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런 반복 행위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면, 해당 기업은 단순한 실수만을 반복하는 곳이 아니라는 결론에 가까워진다. 상습은 곧 의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케이스에서 위기관리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계속해서 어떤 거짓말이나 변명에 기반해야 할까? 효과가 있을까?
다섯째, 다양한 거짓말과 숨김에 기반한 케이스
공중이나 이해관계자들을 단순 시청자라고 생각하는 기업의 경우 이슈나 위기 발생 시 이런 문제를 발생시킨다. 기자나 관계기관이 알 수 없을 것이라 간주하고 다양한 거짓을 커뮤니케이션 한다. 심지어 내부적으로 자문하는 컨설턴트들이나 변호사에게도 사실을 숨기고 상황을 변명한다. 대부분 이런 케이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각종 언론이나 온라인 그리고 수사와 규제기관 등에 의해 실제 사실관계가 드러나게 된다. 숨겨진 것들이 튀어나오고, 꼬리에 꼬리를 문 비난으로 이어진다. 거짓말과 숨김에 기반한 이슈 및 위기관리나 커뮤니케이션은 말그대로 독수독과(毒樹毒果, 독이 든 나무에 열린 독과일)에 해당한다. 나중에 사과하는 것도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기본적으로 사과는 위기관리가 아니다.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과 사과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노력이 진짜 위기관리다.
여섯째, 첨예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낀 케이스
기업이 곤란한 상황에 처한 케이스를 의미한다. 자사의 정상적 사업 행위에 대해 중요한 이해관계자가 비판을 하거나 문제를 제기해 온다. 그에 더해 그에 반하는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정반대 비판이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경우다. 기업은 말그대로 사이에 끼인 형국이 된 케이스다. 예를 들면 글로벌 사업을 하는 기업에게 중국 고객들이 특정 사업과 관련해 민족감정 차원의 비판을 시작했다. 그에 대해 한국과 일본 기업들이 반대 민족감정을 내세워 해당 기업에게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여러 아시아 고객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여파로 여러 국가에서 자사 제품의 불매운동이 발생되기 까지 한다. 이런 경우 이슈 및 위기관리나 커뮤니케이션은 해당 기업이 일단 포지션부터 잡지 못하기 때문에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어떤 특정 국가 고객을 포기할 수도 없고, 어느 쪽의 편을 들 수도 없고, 외면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다고 점차 이슈가 사라져 버리지도 않는다. 민족감정, 정치, 종교, 젠더, 인종, 역사 등과 관련된 이슈에 관여되지 않기 위해 대부분 글로벌 기업들이 평소 조심하고 민감하게 대처하는 이유다. 일단 발생 후에는 사후 약방문이고, 백약이 무효다.
일곱째, 이미 오래된 상식과 인식을 바꾸려는 케이스
아카데믹하게는 아주 매력적인 주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상식을 이기는 이슈관리는 있을 수 없다. 상식에 기반할 수는 있어도, 상식을 뒤 엎는 커뮤니케이션이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슈나 위기관리를 창조적(크리에이티브)으로 시도해 보는 경우가 가끔 보이는데, 결과는 의도했던 바와 많이 달라 보인다. 예를 들어, 특정국가 제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려는 경우가 그런 케이스다. 이미 오래전부터 해당 국가 제품은 저렴하고, 저품질이며,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상식화 되었는데, 이를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해 보는 경우다. 담배가 사람 몸에 해롭다는 인식을 바꾸어 보자 하는 것도 그런 경우일 수 있다. 광우병이 별것 아니었지 않나 하며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경우도 비슷한 것이다. 불가능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하겠지만, 일단 우리 세대에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는 무의미한 것이다. 그런 장기간 동안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이슈관리에 투자하려는 기업도 찾기 어렵다.
여덟째, 사공이 많은 케이스
일반적으로 연예인이나 사회 셀럽의 케이스가 이런 성격을 띈다. 이슈관리 계약을 하고서는 해당 연예인이나 셀럽을 보고 이슈관리 전략을 짜게 된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다른 사공들이 나타난다. 지인들이 여기저기 개입을 하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과, 주변 조력자들이 나타난다. 합의된 이슈관리 전략과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 하나가 개인 매체 역할을 하고, 모두가 자신이 대변인을 자처한다. 해당 연예인과 기획사는 수많은 이야기에 치여 일관된 포지션을 정하지도 못한다. 자극적인 기술자들이 이렇게 저렇게 상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개입한다. 기업에서는 VIP의 비선라인들이 이와 같다. 흔히 이슈나 위기관리를 선박의 항해에 비유하곤 하는데, 일단 선장과 사공들이 수십 수백명인 배를 상상해 보자. 그것도 거친 파도와 강한 바람에 휩싸여 공중제비 넘는 선박위에 그런 아수라장이 펼쳐진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관리도 불가능 해 진다. 그냥 지속되는 혼란만 존재한다.
아홉째,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케이스
벌어진 상황에 대하여 VIP께서 대응관련 의사결정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의사결정을 실행해야 하는 실무임원과 그룹에게 공유되지 않는 케이스도 있다. 실무그룹이 의사결정 내용과 배경을 이해하고 싶어해도, 누구도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단순하게 보면 의사결정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다. 마음만 급한 실무그룹은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각자 매달린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어떤 의사결정이 있어야 통합되고, 진전되는데, 아무도 의사결정 된 방향이나 지시사항을 알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되면,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진공상태로 넘어가게 된다. 이슈나 위기관리 그리고 그와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은 VIP의 실제 의중에 뿌리를 둔다. 이런 경우는 비유하자면, 뿌리 없이 물에 부유하는 물풀과 같은 형국이 돼 버리는 것이다. 의외로 상당수 기업과 조직이 이렇게 내부 커뮤니케이션 단절이나 분실의 기반위에서 이슈관리에 나서곤 한다. 당연히 잘 될 수 없다는 것을 내부적으로 알고 시작하는 것이다.
열째, 통합 개념이 없는 케이스
상식적으로 기업이 하나의 중대한 목적을 성취하려면, 자사 역량과 조직을 통합해 집중 운영 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대한 목적을 이루려는데, 단순하게 한 부서, 두개 부서에게 지시하고, 그나마 두개 부서가 서로 만나거나 정보를 공유하지도 않는 방목을 해서는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만약 그렇게 하는 기업이 있다면, 그 목적을 진정으로 성취하기 희망하지 않거나, 조직관리가 엉망이라는 시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보면, 이슈나 위기관리를 위해 통합조직을 VIP가 직접 운영하는 경우는 열에 한두 케이스 밖에 되지 않는다. 상당수 기업에서 이슈나 위기 대응 시 로펌과 커뮤니케이션 파트가 상호간 소통하지 않는다. 마케팅이나 영업 그리고 기획과 생산이 다 따로 움직인다.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황을 안정시켜야 하는 부서와 담당자들은 대체 상황과 대응전략이 어떻게 실행되어야 하는지 궁금해 한다. 신기한 건, 로펌으로부터 상황과 법적 대응 전략을 보고 공유 받은 VIP는 해당 사항을 커뮤니케이션과 대관 파트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상상하는 현상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커뮤니케이션과 대관 파트에서 실행한 내용을 로펌이 모르고 있다가, 매체를 보고 항의를 한다. VIP께서는 왜 서로 합을 맞추지 않느냐 하시지만, 합을 맞출 조직이나 기회를 만들어 주지는 않으신다. 이런 경우 이슈나 위기관리는 불가능하다. 특정 업무를 실행하는 파트차원의 바쁜 움직임은 있을 수 있지만, 전사적이고 통합적인 목적 달성은 요원하다. 통합 조직을 만들어 대응 고민을 함께 하지 않는 기업, 상당히 많고 흔하다.
이상은 일반적으로 이슈와 위기관리 현장에서 발견되는 현상으로, 관리활동과 이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무력화시키는 성격의 케이스 유형들이다. 생각보다 많은 케이스들이 이 각각에 해당하거나, 복수 이상의 상황에 해당한다. 또한 반복적으로 실패하면서도 똑 같은 이상 현상을 없애지 못한다.
일선에서 만나는 위기관리 실무자들은 그래서인지 어느정도 ‘패배감’에 익숙해 있기도 하다. 어차피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케이스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해야 할 것도 없다. 일단 막고 빼고 밀어내고 지우고 수정하고 하는 것이 우리 일이다. 이슈나 위기관리가 뭔 지는 상관없고, 일단 골치 아픈 일만 해결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할 일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이 저변이 깔려 있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된다.
모든 케이스를 이슈나 위기관리로 해결할 수는 없다. 커뮤니케이션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리 관리가 어려운 케이스에 대한 이해와 그런 이상상황을 극복해 보기 위한 협력적 노력에 대한 관심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에 하나씩이라도 새롭게 더 낫게 시도해 보는 마음가짐도 필요해 보인다. 일단 다 함께 무엇을 더 낫게 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첫 단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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