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 기고문]
CEO의 허심탄회 소망이 재앙이 되는 이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신임 대표가 취임하게 되면 대부분 회사에서는 신임대표와 직원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마련한다. 직원들은 새 대표의 얼굴을 직접 구경하며, 그가 가진 경영 방향성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 신임 대표 입장에서는 새로운 마음으로 직원들과 마주해 허심탄회하게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일종의 상견례의 기분으로 서로가 즐겁게 얼굴을 마주한다.
그러나, 그런 소망은 여기 까지다. 일단 간담회가 끝나면 상황은 이상한 쪽으로 흐르곤 한다. 직원들 각자가 신임 대표에 대한 첫인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한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새 대표에 대해 그리고 회사 분위기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블라인드에는 익명의 직원들이 신임 대표의 간담회 속 언급 내용들을 메모 형식으로 공유하며 평가를 시작한다. 그 포스팅 속 텍스트에 몰입된 사람들이 부문별한 개인적 평을 덧붙인다. 신임 대표의 일부 부적절 했던 메시지에는 융단폭격이 가해지고, 머지않아 그 내용이 언론에 기사화된다. 결국 소망이 재앙으로 변해 버렸다.
신임 대표의 순수하고 희망적인 소망이 대체 어떻게 몇시간 만에 재앙의 모습으로 변질될까? 무엇이 문제일까? 신임 대표의 순진함이 문제인가? 직원들의 몰지각함이 문제인가? 언론의 지나친 가십성 관심이 문제인가? 대체 왜 그런 재앙이 여러 회사에서 반복될까? 그 이유를 이해해 보자.
첫째, 소통은 고통이다
얼마전부터 기업이나 정부나 할 것 없이 소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소통은 지상명령이 되어 버렸다. 소통은 꼭 해야만 하고, 소통하지 않는 기업은 도태된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 리더들은 소통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소통을 잘하는 리더로서 스스로 포지셔닝 하기 위해 애쓴다.
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자주 하려 한다. 각종 회식이나 모임에 얼굴을 비춘다. 젊은 신입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한다. 언제든 대표에게 아이디어를 던지고 질문하라 한다. 대표이사의 사무실 문을 오픈 해 놓고 누구든 할말이 있으면 들어와 이야기 나누자고도 한다. 개인적으로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열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직원들에게 레터를 쓰고, 멘토링도 즐긴다.
여기에서 핵심은 그러한 소통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리더가 확실히 깨달어야 여러 소통의 노력들이 제대로 된 결실을 맺게 된다는 점이다. 소통이 마냥 즐겁게 느껴지거나, 소통에 가슴이 뛰거나, 소통은 편안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리더는 위험하다. 소통은 듣는 것이 주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리고 자신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직원들의 다양한 사견들을 듣는 것은 더 나아가 공포다. 이런 고통과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 리더의 소통 방식은 위험한 것이라는 반증이다.
둘째, 자녀와도 소통이 어려운 가장의 소망은 위험하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중년 가장은 자신이 20-30 년 동안 키운 아들 딸 과도 소통을 어려워한다. 세대차이는 물론이고,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적 가치관에 대한 적응이 좀처럼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자녀들이라 해도 자신이 아버지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다 느끼는 비율은 상당히 적다.
그런 흔한 중년 가장이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어디에 선가 소통의 자신감이 생겨난다. 20-30대 직원들에게 리더인 자신이 허심탄회 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그들이 웃으며 공감해 줄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성공담이 그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고, 리더로서 자신이 계획하는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정확하게 각인되리라 소망한다.
그런 믿음과 소망이 위험하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실패를 전제로 한다. 더구나 마주 앉은 상대 직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자녀들 보다 내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낯선자들이다. 그에 더해 대표와 직원이라는 정치적 조직적 분리가 기반 되어 있다. 그들이 신임 대표에 대해 오랜 익숙함과 친근함, 그리고 사랑을 품고 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결국 그 많은 기반들이 생략된 채 행해지는 낯선 소통의 시도는 폭력이 된다.
셋째, 하고 싶은 말 보다는 해야 할 말만 해야 하는 시대다
회사내에서 직원들과 ‘정’을 나누는 시대는 끝났다.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는 예전 그 시절에도 진짜로 직원들과 정을 나눈 리더들은 없었을 수도 있다. 일단 정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리더가 산다.
‘허심탄회’라는 말의 의미는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 놓는다는 의미다. 일단 기업 내에서 리더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제 마음을 터 놓는 것이 가능한가? 큰 일 날 소리다. 생각을 터 놓는 것은 또 어떤가? 언제 누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터 놓아 본적 있는지 한번 스스로 생각해 보자. 기본적으로 허심탄회와 같은 개념은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아무 의미나 가치가 없다고 보는게 안전하다.
그래서 글로벌 기업을 비롯한 유명기업들의 리더는 직원들과 철저하게 ‘정치적 정도 (Political Correctness)’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대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더라도 커뮤니케이션 주체를 가장 안전하게 방어해 주는 개념이 정치적 정도다. 누구와도 중립적인 개념의 메시지로만 커뮤니케이션 하기 때문이다.
최근 리더들이 골치 아파하는 커뮤니케이션 주제인 젠더, 사회적 차별 및 불평등, 부적절한 규정, 공정성, 정치적 가치관, 환경, 사회적 가치 등과 관련해 어떤 것이 정치적 정도이며 그에 기반한 메시지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리더가 소통에 성공한다. 직원들과의 소통에 있어 정치적 정도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무조건 재앙이 된다. 하고 싶은 말 보다 꼭 해야 하는 말만 하자
넷째, 기자들을 모아 놓고 하지 못할 이야기는 직원에게도 하지 말자
내 주변 모든 사람이 미디어가 된 세상이다. 직원들도 이제는 모두 기자다. 직원의 휴대폰에는 언제든 기사를 출고할 수 있는 다양한 미디어 채널들이 반짝이고 있다. 기자들을 모아 놓고 하지 못할 말이면 직원들에게도 하면 안되는 환경이 되었다. 블라인드나 소셜미디어에서 보기 싫은 자신의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말자. 그러면 재앙은 미연에 방지된다.
일부 리더는 직원들에게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강조하고,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외부로 알리지 못하는 제한이 필요하다 이야기한다. 회사 모니터링 체계와 규정을 강화해서 온라인에서 일부 몰지각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직원들을 찾아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다. 그로 인해 받게 되는 회사의 피해에 대해 그대로 해당 직원에게 책임을 물리자고도 한다.
하지만, 다시 기억하자. 직원은 기자다. 기자는 질문하고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을 세상에 알린다. 직원에게 질문하지 말고,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와 블라인드에 올리지 말라 강제할 수는 없다. 직원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도 없다. 기자가 쓰는 부정기사를 전략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기자가 부정적인 것이라 판단할 기사 꺼리를 회사가 만들지 않는 것이다.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수밖에 없다.
다섯째, 노 선배와의 허심탄회를 한번 생각 해 보자
CEO 자신보다 대략 서른살 많은 직장 선배가 자신과 같은 또래들을 모아 놓고 그의 스타일 대로 소통한다고 상상해 보자. 80~90세 선배가 자신의 오래된 경험과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거다. 중년인 자신들에게 회사 생활하는 방법과 여러 최근 사내 이슈에 대해 선배 나름대로 생각을 피력한다. 그리고는 중년인 후배들에게 멘토링을 해 주겠으니 허심탄회 하기를 제안한다. 어떤 느낌이 드나?
바로 그 느낌이 현재 직원들이 느끼는 소통의 세대차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보자. 최근 젊은 직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꼰대’다. 일단 싫다는 거다. 말도 통하지 않고, 더 나아가 말하기도 싫은 대상이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은 금지어가 된 지 오래다. ‘라떼 이스 호스(Latte is horse)’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선배들의 라떼 사랑은 계속 이어진다. 일부 80년대 생들은 벌써 젊은 꼰대라고 까지 불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문제인가? 그들의 기본적인 가치관이 기업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글쎄다. 수십년 전에도 젊은 친구들은 윗 사람들을 꼰대라 불렀었다. 지금처럼 당시에도 꼰대는 존재했다. 그 때 그 선배들을 꼰대라고 부르며 뒷담화 했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그 꼰대의 자리에 오른 것뿐이다.
소통이 성공하려면 상대의 문제를 문제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상대의 문제는 어쩔 수 없는 상수라고 간주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리더는 자신이 꼰대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친근한 꼰대가 되는 것이 낫다. 직원들과의 소통에서도 불편하고 기분 나쁜 꼰대로 비추어 지지 않기 위한 준비된 노력만이 상책이다.
마지막, 준비하고 준비하고 준비하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소통의 시도다. 준비 없는 소통, 메시지전략과 핵심 메시지 없는 소통은 곧 위기로 발화된다는 생각을 하자. 이미 우린 수많은 소통으로 인한 재앙을 목격했다. 재앙으로 결론 난 소통의 시도들의 주된 공통점은 리더가 완벽하게 소통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통을 지원하는 실무팀에서도 리더를 위한 철저한 준비와 지원이 부족했을 것이다.
소통은 고통이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소통의 시도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자신이 시도하는 소통은 언제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고, 실패를 줄이기 위한 준비와 노력을 부단히 해야 맞다. 해야 하는 말로만 메시지 전략을 짜야 한다. 세부적인 핵심 메시지도 대부분 해야 할 말에 연결되어지는 구조를 지녀야 한다. 리더는 스스로를 부정하지 말고, 직원들이 바라보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좀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 그런 자연스러움은 또한 철저한 준비와 노력과 연습에서만 나온다.
만약 그런 복잡하고 어렵고 힘든 준비의 과정을 참지 못하는 리더라면, 지금과 같은 소통은 하지 않는 것이 더 자신에게 이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신도 실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신비함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존재 가능한 것이다. 만약 거룩한 신이 갑자기 나타나 우리와 면대면 소통을 하고, 같이 식사를 하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허심탄회 하자 한다면 이내 신비감은 사라질 것이다. 그 신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면 실망감은 더더욱 클 것이다.
완전히 준비된 전략을 가지고 직원들 앞에 나와 커뮤니케이션 하지 못할 것 같은 리더라면, 차라리 신비함을 유지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면대면을 피하고 전통적인 텍스트와 잘 편집된 영상으로도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하다. 소통의 횟수를 의미 있게 조정하고, 주제를 완전하게 관리해서,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 것도 의미는 있다. 일단 무엇보다도 안전한 소통의 방식이어서 더 가치가 있다. 트렌드를 쫓는 헛된 소망이 재앙으로 변질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란 준비된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준비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은 비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결과를 예상하거나 일부라도 통제할 수 없다. 결과와 반응을 그저 운에 맡기는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될 뿐이다. 이제부터 허심탄회라는 말은 쓰지 말자. 정이나 운을 기대하지도 말자. 헛된 소망을 버리고, 준비와 연습을 통한 전략을 믿자.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본질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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