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와 관련하여 우리가 가장 흔히 이야기하는 클리쉐이면서, 가장 위험(?)할 수 있는 명언을 하나 꼽으라면 ‘위기는 곧 기회이다’라는 이야기를 들겠다. 아무리 많은 실제 위기관리 케이스를 보아도 위기가 곧 기회였던 케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어떤 기업이 그렇게 큰 기회를 창출했다면, 그 케이스는 위기관리 케이스에는 들지 않았을 것이다.
위기를 위기 그대로 바라보는 담담함이 필요한 기업들에게 너무 나간 ‘기회’를 이야기하는 행태는 문제다. 절대 위기는 기회가 아니다. 위기는 말 그대로 위기이며, 여러 소중한 가치의 손실과 피해를 의미한다. 훼손된 평판을 의미하고, 떨어진 신뢰를 의미한다. 창피함과 곤란함과 어려움이 그 뒤를 수십년간 잇는다. 위기를 위기 그대로 볼 수 있을 때에만 위기관리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생겨나게 된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업에서는 가장 먼저 해당 상황을 분석하여 자사의 입장(position)을 정리한다. 해당 상황에서 제기된 문제의 책임에 대해 자사가 동의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모든 제기된 문제의 책임을 완전하게 인정하고 개선과 재발방지에 노력하겠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일부 문제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만, 그 외 문제에 대한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도 흔하다. 상황에 따라 기업의 입장을 대충 대별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케이스별로 아주 미세한 입장차들이 존재한다.
위기관리에 있어 입장의 확정은 위기관리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 주제다. 일부 케이스에서는 VIP의 개인적 감정에 기반해 입장 정리를 했는데, 그 입장이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곤란을 겪는다. 일부 케이스에서는 초기 여론을 두려워한 나머지 무리한 수용 입장을 피력해 불필요한 책임과 부담까지 떠 앉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입장 정리를 적시에 하지 못해 여론에 의해 한참을 끌려 다니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최초 입장을 계속 바꿔가며 여론에 맞서 오락가락, 우왕좌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오랜 경험상 어떤 기업의 입장이라도 위기 시100 퍼센트 공중에게 이해 받고, 공감 받는 포지션은 극히 드물다. 대다수 아니 절반 이상의 공중에게 이해나 공감 받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나마 성공적인 포지션의 구성요소는 무엇일까?
첫번째, 법적인 문제는 없어야 한다.
위기관리의 기본 토양은 준법이다. 준법하지 않고는 위기를 예방할 수도 없고, 위기를 관리할 수도 없다. 일부 기업에서는 ‘들키는 것이 가장 큰 죄’라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준법 대신 오래된 관행을 따르는 것이 기업문화가 고착되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준법 체계나 프로세스로 모든 것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핵심 주제나 논란에 대하여 법적 판단을 스스로 신속하게 결론 내릴 필요가 있다. 만약 법을 준수하지 않아 발생된 위기라면 기업의 입장을 정리할 때 절대 핑계나 불평이 기반 된 입장을 정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억울해해서도 안 된다. 준법이 평소와 위기 시 중요한 이유다.
둘째, 맥락적 문제도 없어야 한다
앞의 준법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다 보면, 일단 법만 지키면 아무 문제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사에서는 안전관련 법을 준수했기 때문에 안전 사고로 사망한 계약직원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입장과 같은 뉘앙스다. 법을 준수하면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이야기는 법정에서나 통하는 것이다. 여론의 법정에서는 법을 넘어선 맥락까지 중시한다.
‘관련 법을 철저하게 준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이런 입장이 종종 보이는 이유는 해당 기업이 사회적, 여론적 맥락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법을 준수하였고, 여러 맥락에서도 자유로운 상황이라면 사실 위기가 아니다. 하나의 해프닝이거나 단순 사건 사고일 뿐이다. 반대로 어떤 의미로든 사회적으로 여론이 좋지 않다면, 그건 준법을 넘어 맥락에 대한 기업의 관심과 케어가 더욱 필요한 상황을 의미한다.
셋째, 인간적이어야 한다
위기 시 기업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아주 의미 있는 말이다. 기업이 위기 시 계속 차갑고 큰 빌딩과 어마어마한 자이언트의 모습으로 공중과 이해관계자 앞에 서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떤 위기나 그로 인해 피해를 주장하고, 슬퍼하거나 아파하고, 억울해하고, 분노하는 여러 원점, 이해관계자, 공중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가는 기업의 입장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기업은 기업다워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기업이 너무 인간적으로 포용하고 수용하고 인정하고 연약하게 굴어서는 어떻게 기업을 경영하겠느냐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 시 자사가 비인간적 입장을 정해 대응하였을 때와 인간적 입장을 정해 대응하였을 때를 비교하여 어떤 경우에 상대적 이득이 있겠는지는 꼭 분별해 볼 필요가 있다. 경험상 대부분의 경우 기업이 인간적인 입장을 견지했을 때 이후 보다 나은 상황이 펼쳐졌다.
넷째, 원칙의 일관성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말처럼 실망스러운 것이 없다. 왜 그때는 그렇게 입장을 정했으면서 이번에는 이렇게 입장을 정했는가 하는 질문이 나온다면 해당 위기관리는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
일부 기업에서는 VIP의 하이 프로파일 위기 대응을 두고 사후 임직원들이 부담스러움을 토로한다. 이번에는 저렇게 대대적으로 피해를 보상하고 사과에 개선조치를 심하게 하셨는데, 또 다시 이번 같은 위기가 발생되면 대응을 더 크고 심하게 해야 한다 생각하니 막막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일관성에 대한 가치는 그러한 부담을 전제로 해야 계속해 커지는 것이다. 시쳇말로 원칙은 어기라고 존재한다며 농담을 하는데, 위기관리에서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원칙은 지켜질 때에만 그 가치를 발한다.
대형 회의실에만 걸려 있는 원칙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액자 속 원칙이 바깥으로 걸어 나와 실제로 적용이 되고, 적용이 되고, 적용이 되고 하는 일관성과 연속성이 장기간 생겨야 비로소 진짜 원칙이 되는 것이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입장문에는 항상 자사의 원칙을 언급하라는 조언을 한다. 일부는 적당한 관련 원칙이 없다는 하소연을 한다. 일부는 원칙은 있는데, 그게 안 지켜져서 지금 이 상황이 되었다며 곤란해 한다. 일부는 비슷한 원칙은 있는 것 같은데, 잘 기억 나지 않는다며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제대로 된 자사의 원칙이 있어야 하며, 그 원칙에 기반하여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입장은 성공적인 원칙에서만 잉태 가능하다.
다섯째, 타이밍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버스가 모두 지나가 막차까지 끊겨 벼렸을 때 커뮤니케이션 하게 되면 그 의미와 효과는 사라지게 된다. 그 자체로는 훌륭한 입장이라고 해도 시간이 너무 흘러 커뮤니케이션 되면,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이 그 동안 자신들의 눈치를 보다가 어쩔 수 없이 그런 입장을 내 놓은 것이라 오해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사의 입장은 훌륭할수록 신속하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선제적으로 훌륭한 입장을 커뮤니케이션 해야 불필요한 공중과 이해관계자로부터의 비판과 비난을 방지하고 감소시킬 수 있다. 최초에는 그들이 해당 위기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지만, 그 직후에는 자사가 내 놓은 훌륭한 입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주제 변화의 기간이 길면 길수록 위기관리 실패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입장을 밝힐 때 어떤 타이밍이 가장 적절한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정해져 있다.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이 회사의 입장에 대해 궁금해하기 ‘직전’이 자사의 입장을 커뮤니케이션 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여섯째, 화자의 적절성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기업 오너가 큰 문제를 일으켜 사회적 지탄을 받기 시작했을 때 그 기업 홍보실에서 입장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경우는 어떤가? 대기업의 생산시설에서 어마어마 한 안전사고로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와 관련된 입장을 해당 인력 파견회사가 커뮤니케이션 하면 어떨까? 어마어마한 은행 직원의 횡령이 발생했을 때 해당 지점 지점장이 입장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모든 커뮤니케이션에는 화자와 수신자의 설정이 기본 중 기본이다. 같은 메시지라도 누가 커뮤니케이션 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이 조성된다. 평소 좋은 뉴스일수록 가장 윗 분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맞고, 나쁜 뉴스 일수록 아래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는 관행이 있는 기업은 위기관리 이전에 문제가 많은 기업이다.
민감한 위기 일수록 해당 기업의 입장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화자의 중요성은 커진다. 성공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케이스들의 대부분은 가장 큰 리더가 앞에 나가 강력하게 커뮤니케이션 했던 케이스들이다. 뒤로 숨거나 전혀 엉뚱한 화자를 내세우기 보다는 훌륭한 입장일수록 리더가 직접 나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좀 더 전략적이라는 생각을 하자.
마지막, 위기관리 주체의 의지에 관련 한 문제는 없어야 한다.
개선을 발표하거나, 재발방지책을 발표하거나, 단호한 조치사항을 발표하거나, 강력한 보상방안을 발표하거나 입장의 기조에는 해당 기업의 진정성이라는 아주 중요한 가치가 내재되어 묻어 나오는 형태의 것이어야 한다. 단순하게 현재 상황을 모면해 보기 위한 창의성 차원의 레토릭으로 보여져서는 위기상황을 관리하기가 어렵다. 훌륭한 입장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주체의 의지를 어떠한 형태로든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VIP들은 위기 시에도 앞에 나가 깊숙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평시에는 즐겁고 행복한 표정으로 프레젠테이션 하던 리더도 위기 시에는 입장을 발표하며 울먹이거나 침통한 표정을 유지한다. 해당 위기로 얻은 교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리더도 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메시지가 진실되게 받아들여 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모든 표현과 장치들은 이내 실질적 개선과 재발장지 대책 등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공중과 이해관계자 대부분은 기업의 말보다 행동을 본다고 믿을 필요가 있다. 행동이 말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만큼 실망스러운 것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위기관리는 약속한 행동에 대한 실행을 의미한다. 흔히 위기관리를 약속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 자체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그런 시각은 매우 잘못되고 위험한 것이다. 위기관리 주체의 의지에 대한 신뢰는 함부로 저버리면 안 된다.
이상과 같이 위기 시 기업이 정해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입장(position)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모든 공중과 이해관계자 전원에게 이해 받고 공감 받고 싶어하는 욕심은 현실적이지 않다. 대신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 받거나, 공격받을 입장은 최대한 피하자 하는 생각을 했으면 한다.
현장에서 보면 위기가 발생했을 때 자사의 입장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의사결정자의 감정이다. 개인적 감정이다. 그 감정의 뿌리를 잘 들여다보고, 기업을 위한 더 큰 결정을 하는 그 과정에서 대부분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일부는 최초 의사결정자의 감정이 기업의 입장에 그대로 묻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 일수록 위에서 제시한 몇 가지 원칙들을 돌아보자. 훌륭한 입장을 정해 리더가 나가 진정성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하면 아무리 복잡하고 힘든 문제도 이내 풀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 보자.
이미 많은 선례를 통해 전략적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를 실제로 경험한 선배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더 나아가 평소 훌륭한 입장(position)을 정해 위기를 선제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위기관리라는 사실도 꼭 기억하자. 위기관리는 마음만 먹으면 하나도 어렵지 않다. 마음을 빨리 먹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