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 기고문
정용민의 Crisis Talk
위기관리?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위기관리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상황관리와 커뮤니케이션 관리가 바로 그 두 축이다. 어느 한 축만 제대로 서지 못해도 위기관리라는 집은 무너져 버린다. 상황관리는 무슨 의미고, 커뮤니케이션 관리란 무슨 의미일까?
쉽게 남대문 화재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국보 1호인 남대문에 갑자기 불이 났다. 가장 먼저 달려와 불 붙은 남대문 처마에 물을 품어대는 소방수, 경찰들이 있다. 가능한 화재를 빨리 진화해 우리의 소중한 국보를 화마로부터 지켜내려고 사력을 다해 상황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바로 상황관리다.
남대문 화재와 맞서 싸우는 상황관리자들 주변도 한번 상상해 보자. 화재를 구경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다. 현장으로 뛰어 나와 살피는 관련 정부기관들이 있다. 카메라를 메고 출동한 TV와 현장을 취재하는 많은 기자들이 있다. 이러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누군가는 커뮤니케이션을 해 주어야 한다. 이를 도맡아 상황실을 차리고 언론들에게 브리핑 하고, 관련 정부기관들에게 협조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관리다.
불을 끄는 사람들과 화재 원인과 진압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상황관리와 커뮤니케이션관리라는 두 축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관리업무들이 일사불란 진행되면 해당 위기관리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혹 어느 한 축이라도 생략이나 모자람이나 실패가 있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일단 상황관리가 되지 않는 화재현장을 상상해 보자. 소방수는 물론 주변 아무도 불타는 남대문을 바라만 볼 뿐 불을 끄려 하지 않는 상황 말이다. 위기관리에 성공할 수가 없다. 이런 와중에 커뮤니케이션관리를 한다고 여러 지엽적인 이야기들로 언론과 정부기관과 시민들에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상황관리 없는 커뮤니케이션 관리는 곧 ‘허위고 사기며 나쁜 짓’이다.
반대로 화재를 진압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주변 어느 누구도 커뮤니케이션 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우리의 소중한 남대문에 왜 불이 붙었는지? 누가 방화를 한 것인지? 현재 관리주체들은 어떻게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지? 전소가 되거나 반소가 되면 남아 있는 남대문을 어떻게 할 것인지? 혹시 이 화재가 북한의 의도된 소행은 아닌지? 남대문 화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의문, 억측, 루머, 논란들을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해명 해 주지 않는다면 이 위기는 관리되었다고 볼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 관리 없는 상황관리는 ‘우둔하고 멍청한 짓’이다.
올해 들어 그룹사들을 비롯한 여러 기업의 생산시설에서 상당수준 이상의 안전관련 위기들이 줄줄이 발생하고 있다. 그 원인을 보자면, 전반적으로 생산시설들이 노후화 되어 안전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주장도 있고, 국민들의 안전관련 관심이 높아진 결과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 언론에서 거의 매일 생산시설 안전사고 관련 뉴스들을 속보형식으로 연이어 보도하는 트렌드에도 일정 부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사고를 겪은 기업들에게는 사후 위기관리에 있어 공통점들이 목격된다. 많은 기업들의 사례에서 빠지지 않는 논란이 ‘(유해물질 누출을) 적시에 보고하지 않았다’ ‘(사고에 대해) 은폐시도를 했다’ ‘(사고 관련 정보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 ‘(언론과 정부기관의 현장 방문을) 저지하고 시간을 끌었다’는 위기관리 활동들에 대한 비판이다.
흥미로운 것은 평소 생산안전관련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보면, 대부분의 훈련 받은 기업 안전관리 담당자들은 실제와는 다르게 대응했었다는 사실이다. 시뮬레이션 상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 담당자들은 법적 규정에 따라 관계기관에 ASAP 통보를 한다. 상황관리팀이 상황을 수습하고 피해를 최소화 하는 활동들을 진행한다. 상부 위기관리위원회에 상황보고와 정보 공유를 한다. 공장 내 커뮤니케이션 대응팀은 공장을 방문하는 정부관계자들과 언론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실시하고 상황실을 만들어 그들의 문의와 확인에 협조한다. 인터뷰가 필요할 시에는 회사에서 정한 현장 대변인이 기자들을 만나 전략적으로 상황을 브리핑한다. 평소 이렇게 시뮬레이션은 완벽하게 진행이 되곤 한다.
그렇게 완벽하게 훈련 받고 스스로 시뮬레이션까지 진행한 현장 생산안전관리 담당자들이 왜 실제 위기 시에는 그와 정반대로 움직이는 걸까? 왜 관계기관에 통보하는 것을 꺼리고 가능한 시간을 미루는 작업을 할까? 상황관리팀이 현장을 수습하는 동안 왜 내부정보공유와 보고가 일부는 지연되고, 일부는 누락되고, 일부는 왜곡되며, 일부는 허위로 진행될까? 왜 공장에 들이닥치는 정부관계자들과 기자들을 피해 도망 다니거나, 왜 그들을 몸으로 밀쳐내면서 물러서라 소리칠까? 왜 흥분한 상태에서 기자들에게 상황을 제멋대로 브리핑하고, 하지 않아야 할 설명들을 그리도 자세하게 할까? 왜 그럴까?
생산안전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현장 전문가들이 사고 시 위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대거나 전략적이지 못하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경험에 의한 판단이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알아서 안 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좀더 적절하다 생각한다. 이 세상에 자신이 맡은 분야의 업무를 잘하고 싶지 않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나? 누구나 완벽하지는 않아도 최선을 다해 위기관리를 하려고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적절하게 가이드가 주어진 위기관리 업무를 ‘하지 않는’ 이유는 필히 존재한다. 이는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과 실제 현장과의 가장 큰 괴리에 대한 부분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생산안전관련 사고는 ‘책임 소재’에 대한 논란이 가장 큰 핵심이다. 누가 보더라도 현장에서 생산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직원들이 곧 그 ‘논란의 소재’가 된다. 그런 논란의 중심에 있는 실무자들은 현재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상황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할 필요는 스스로 느낀다.
반면 적극적이거나 디테일 한 커뮤니케이션 관리는 사실 그들의 ‘생존 또는 사후평가’에 있어 상당히 위협적인 업무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이런 사고가 한 두 번이 아닌데 이번에도 그냥 상황관리 잘해 넘기면 될걸 무슨 좋은 일이라고 윗선 또는 관계기관에 통보까지 해 호들갑을 떨어야지?’하는 생각은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외부 커뮤니케이션 관리에 있어서도 그렇다. 상황을 잘 설명하고 원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할 수록 생산안전관련 담당자가 빠져 나갈 구멍은 줄어든다. 스스로 무덤을 팔 수 있는 대정부 및 대언론 커뮤니케이션을 적극적으로 할 이유가 그들에게 있다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해 보인다.
또 구체적 언론 브리핑을 하더라도 본사에서 “왜 그렇게 자세하고 친절하게 브리핑 해서 우리 회사의 입지를 좁혔나?”하는 사후 핀잔도 두려움의 대상이다. “누가 당신보고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 해주라고 했습니까?”하는 비판을 사내에서 받아 살아남을 직원은 없다. 평소 시뮬레이션과는 다른 정치적, 생존적, 개인적 노이즈들이 현장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많은 기업들이 최근 전문가들을 찾아 강의 요청을 하고 있다. 생산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달라고 한다. 생산안전관련 위기관리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현장 전문가들이 ‘알면서도 하지 않는 이유’,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유’를 각 사가 정확히 진단하고 찾아내 해결해 주는 활동이 더 절실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을 찾아 해결하지 않은 채 대형 강의장에서 진행하는 각성 강의만으로는 생산안전사고에 있어 성공적 위기관리의 실현은 절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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