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022025 0 Responses

통제할 수도 있는 것, 통제가능 한 것, 통제불가능 한 것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이나 조직의 이슈 및 위기관리에 있어 가장 근본적 전제는 스스로에 대한 ‘통제가능성’이다. 이슈 및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기업이나 조직에게는 그 구성원 전체가 같은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통제가능한 범위내에서 움직일 것이라는 확신이 기본이라는 의미다. 만약 그렇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면, 당면한 이슈나 위기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을 앞둔 군대를 예로 들어도 그 전제는 동일하다. 군대를 구성하는 군인 하나 하나를 지휘관이 통제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전쟁 수행 자체가 가능해지는 법이다. 만약 각 부대가 통제되지 않은 채, 개별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각자 전투를 치르며 이동한다면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기업이나 조직의 이러한 기존 전제나 확신이 환경이 변해감에 따라 점차 그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나 조직이 구성원을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지는 오래 되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슈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모순적인 이야기까지 나오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기업이나 조직은 왜 그렇게 통제가능 영역을 점차 잃어가고 있을까? 일부 통제되던 기존 영역들은 왜 그리 통제가 어려워진 것일까? 기업이나 조직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또 무슨 의미일까? 왜 통제라는 것이 잘 되지 않을까?

첫째, 의사결정 주체 자신도 통제를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그룹만이라도 통제 범위내에서 움직이자 하지만, 그게 무척 어렵다. 최고의사결정자는 여러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으면 의사결정에 있어 통제력을 발휘하기를 대부분 어려워한다. 그에 더해 의사결정 그룹을 구성하는 임원은 각자 생각과 판단에 따라 각기 다른 대응 전략과 방안을 주장한다. 그룹내 어느 누군가는 각자의 주장을 조정 통합해 확실한 방향성을 결정해야 하는 데, 그런 통제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결정 자체가 종종 좌우로 스윙 하는 현상이 발생된다. 결정 자체가 좌에서 우로 또는 우에서 좌로 급격하게 흔들리면, 그에 따라 실행을 해야 하는 실무자들의 대응은 더 많이 혼란스러워진다. 이슈나 위기 시 특정 기업이나 조직의 대응이 멈춰 얼어붙은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의사결정 그룹이 흔들리며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실행은 어디에 발을 맞추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해관계자나 공중이 볼 때에는 기업이나 조직 자체가 통제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상황 자체를 통제 가능할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중대한 착각은 오히려 기업 및 조직의 대응 방식을 통제 불가능하게 한다. 상황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대응을 시작하니, 그 결과는 항상 아쉽다. 이후 다른 대응을 실행하고, 다시 다른 대응을 시도해 보고하면서 어떻게 든 상황을 통제하려 하다 보면 결과는 중구난방이 된다.

이슈나 위기 상황은 평시와 달라 통제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대응에 있어 통제가능성이 늘어난다. 모든 것을 해보자, 뭐 라도 해 보자 하는 생각을 없애는 것이다. 대신 이것만은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통제가능한 대응방식에 대한 집중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슈 및 위기 대응에 있어서 모든 대응 방식은 하나 하나가 통제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셋째, 우리 임직원들은 통제 가능할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슈 및 위기 시 기업이나 조직이 스스로 통제 가능하다는 전제나 확신은 어찌 보면 희망이 전제된 것이다. 물론 그런 희망은 기업이나 조직이 지속적으로 위기대응팀 같은 조직을 훈련하고 훈련하며 생겨난 것이어야 한다. 위기 취약성 진단을 하고, 매뉴얼을 만들어 보고, 대응 훈련이나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서 많은 토론을 이어 나가는 과정에서 대응조직 구성원이 정렬되는 경우, 이 조직은 통제 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개념이 우리측 사람은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생각이 확실하게 효과에 연결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평시 그렇게 지속적으로 대응 조직 역량을 개발하고, 정기 훈련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토론을 하며 이슈 및 위기관리에 대한 체계를 정렬시키는 기업이 드문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일부 체계를 정렬하더라도 그 구성원들의 변경이 지속되며 구성원이 완전히 체계에 동화되지 못하기도 한다. 일관성이 부족한 교육 형식의 산발적 위기관리 학습만 이어지는 경우 대응 조직, 즉 사람들을 통제 가능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노력과 투자가 없으면 사람은 그냥 통제불가능 한 자산일 뿐이다.

넷째, 새로운 유형의 이슈나 위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전까지 이슈나 위기 유형은 어느 정도 정해짐이 있었다. 특정 기업을 위해 위기 취약성 진단을 해보면, 해당 기업에게만 나타나는 취약성과 전반적으로 유사 기업과 함께 도출되는 취약성의 형태가 정해져 있었다. 오랜 기간 해당 기업에 재직한 임원들의 경우에는 이전 사례와 업계 사례들로 인해 발생가능한 이슈나 위기의 유형에 대한 익숙함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통제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임원들이 익숙한 유형보다는 낯선 형태의 이슈나 위기를 접하게 되는 빈도가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상황이 발생되면, 그 상황의 맥락이나 발생 원인을 이해하기조차 어려워하는 의사결정자들이 많아졌다. 상황에 맞닥뜨려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것인가? 이 상황은 대체 어떤 의미인 것인가? 이에 대해 비판하는 공중은 왜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등과 같은 의사결정자의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이해하기 어렵게 되면 통제 가능하다는 생각과도 멀어지게 된다. 모르겠다는 체념이 내부적으로 공유되는 것이다.

다섯째, 이해관계자를 통제해 보려 하기 때문이다

세계 역사적으로 정부의 경우 이해관계자들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던 시대가 있기는 했다. 통제와 검열 등을 통해 전체주의적 사고와 체계를 심었고, 이를 전쟁에 활용한 시대도 있었다.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사회 구성원을 통제하여 목적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 국가의 역사적 사실이었을 뿐 일반 기업이나 조직이 유사하게 시도할 수 있는 방향이나 규모는 아닌 통제 방식이다. 이제는 기업이 개인 블로거나 유투버 한 명도 통제하기 어려워한다. 단순 협상이나 사정을 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사 기사들을 모두 빼고, 더 이상 기사가 나오지 않게 하거나. 온라인상 부정적 게시물들을 물타기 해서 다 밀어버리거나. 소셜미디어 버즈를 하나도 남김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공상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원래부터 통제불가능 한 영역에 있던 대상을 우리가 혼동하며 착각했던 것뿐이다. 통제가능한 이해관계자는 하나도 없다. 오직 통제가능한 것은 이슈나 위기에 대응하는 자사의 말과 행동 뿐이다. 이를 통해 이해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전부다.

여섯째, 심지어 여론까지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여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미치광이이거나 사기꾼이라는 말이 있다.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언론이나 개인, 기관 등을 활용했던 경우는 있지만, 여론에 직접적 통제력을 발휘한 경우란 찾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여론은 통제되는 대상이 아니다. 이해관계자도 통제되지 않는데, 어떻게 여론이 통제될 수 있을까?

문제는 여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아직도 믿는 경우다. 더 나아가 여론을 통제해 보자 하며 여러 행동을 하는 경우다. 이는 여론을 아주 우습게 여기기 때문에 가능한 사고방식이다. 여론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에 대한 존중이 있다면 함부로 여론을 통제하겠다는 생각을 가지지는 어렵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슈나 위기 시 기업 및 조직은 이해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여론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를 하는 것뿐이다. 영향을 끼친다는 자세와 통제해 보겠다는 자세는 확실히 다르다.

마지막, 오히려 통제할 수도 있는 것에 집중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통제할 수도 있는 것(이것도 통제가능한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과 통제불가능 한 것을 확실하게 판별하는 것이 이슈 및 위기관리의 시작이다. 막연한 희망이나 기대 또는 함부로 생기는 의욕이 기반이 되면 모든 관리는 실패에 가까워질 뿐이다. 통제할 수도 있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자사의 말과 행동 뿐이다. 많은 경우 이것조차 통제에 실패해 상황을 악화시킨다.

적절하지 않은 말을 공식화하면서 이해관계자와 공중의 공분을 만드는 것이 그런 경우다.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며 상황을 관리하려 하다가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그렇다. 이는 기업 및 조직이 스스로 통제할 수도 있는 것에도 관심과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이나 조직은 내부에 들어가 보면 통제불가능 한 여러 대상에만 관심을 둔다. 통제불가능 한 대상에게 통제불가능 한 방식으로 대응하려고 한다. 당연히 그 결과는 통제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당연한 결과다.

이슈나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기업 및 조직에게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통제불가능 한 것이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그러면 이슈나 위기를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인가?’ 또는 ‘그렇다면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상황을 그냥 지켜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한다.

이에 대한 적절한 답변은 ‘그나마 통제할 수도 있는 것을 찾아, 그것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슈 및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통제할 수도 있는 것이 자사의 말과 행동이라면, 우선 그 말을 구성하고 전달하는 체계를 관리하여 통제가능한 범위내에 위치시켜야 한다. 의사결정 그룹의 정무감각이라는 것이 그래서 강조된다. 현 상황에서 여론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생각해 내는 능력을 키워보라는 것이다.

고안된 그 말을 정확하게 이해관계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창구를 정하고, 그 각각을 훈련해 놓는 것은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신중하게 고안된 말들을 훈련된 창구가 제대로 전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 따라 추가적이거나 선제적인 대응 실행을 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통제할 수도 있는 모든 자산을 적절히 활용하여 결과를 도출해 내려 노력하는 것이 이슈관리고 위기관리다. 통제불가능 한 것들에 매달려 집착하고 후회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에 더해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통제할 수도 있는 것을 부랴부랴 찾으려 하는 때늦은 습관도 이제는 버리자.

평소에 하는 것이 이슈관리고 위기관리다. 미리 살펴 준비해야 통제할 수도 있는 것이 그나마 보이고 그 수가 늘어난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게 되면 그 통제할 수도 있는 것들이 비로소 통제가능한 것이 된다. 통제불가능 한 것들 속에서 통제할 수도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발전시켜 통제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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