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여러 기업과 함께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이슈관리에 참여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해보면, 어떤 기업은 안정된 이슈관리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다른 어떤 기업은
그렇지 못한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거의 동일한 성격을 가진 이슈인데,
어떤 기업은 안정된 실행을 하고, 왜 어떤 기업은 불안정한 실행을 하게 될까? 심지어 불안정한 이슈관리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기업이 훨씬 더 규모가 큰 기업이고, 연륜도 긴 기업인데 그런 현상은 왜 반복되는 것일까?
몇 년 전에는 안정되게 이슈를 잘 관리하며 커뮤니케이션 하던 기업이었는데, 최근에는 비슷한 이슈를 아주 불안정하게 핸들링 하고 커뮤니케이션이 들쑥날쑥 하게 된 경우도 보게 된다. 왜 이 기업은 일관성이라던가, 쌓였던 역량이 사라져 버린 것일까?
상대가 있는 이슈관리에서 어떤 기업은 차분하게 합리적 이성적으로 대응 하는데
비해, 다른 어떤 기업은 왜 일희일비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일까? 만만한 상대를 만났을 때에는 압도적으로 상대를 관리해 버리던데, 조금
더 강한 상대를 만나니 왜 스스로 더욱 흔들리고 우와좌왕까지 하게 되는 걸까?
기업 내부에서 만약 이런 이상현상이 발생된다면,
몇 가지 질문을 통해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일종의 진단 킷인데, 이 질문에 대해 적확한 답을 스스로 할 수 없다면, 해당 이슈관리는
제대로 된 트랙에 올라 있다고 보기 어렵다. 만약 답을 가지고 있는데도, 이슈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면 그때 그 원인은 실무그룹의 역량문제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적확한 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의사결정그룹 아래 그런 실무그룹이
존재한다는 건 사실 현실적이지 않다. 그런 의사결정그룹이 평소 실무그룹을 그렇게 방치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슈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이상증상이 보여 질 때 점검해 보아야 할 질문들이다.
첫째, 왜(why)?
기자회견을 해야 한 단다. 그렇다면
그 기자회견은 왜(why)해야 하나? 기자회견 대신에 입장문을
발표하고, 홍보실이 적극 커뮤니케이션하면 왜(why) 안되나? 기자회견을 ‘꼭’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자회견을 정해진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 기자회견에 VIP가 참석하셔야 하는 이유는 무언가? 기자회견에서 VIP가 사과하고 대표에서 물러 나겠다고 커뮤니케이션
해야만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렇게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는다면 왜 향후 상황이 좋지 않게 전개될
것이라고 보나?
이슈관리 주체가 스스로 이런 왜(why), 원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할 수 있어야 이슈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성공한다. 아주 사소하고, 당연하고, 기본적인
주제라고 해도 왜(why)라는 질문에 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거대한
댐은 아주 작은 구멍 때문에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왜 해야 하는 거지? 이 질문과 그에 적절한 답을 찾아야 거대한 댐을 유지해 가며 지을 수 있다.
둘째, 목적이 무엇인가?
전반적으로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현재 당면한 이슈를 관리하여 우리가 다다르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정확하게 그려보아야 한다. 현재 당면한 이슈를 관리해서 궁극적으로 자사가 성취하고
싶은 것이 사업의 정상화인지? 대표이사의 보호인지? 상대측의
괘멸인지? 이탈고객의 최소화인지? 기업 명성의 재확보인지? 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현재 이 이슈관리 실행들을 모두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굳이 세네카의 말처럼 “정해진 항구가
없는 배에게는 어떤 바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이슈관리 주체들은 이슈관리 목적을 뚜렷하게 세워
내부 공유하지 못한다. 그냥 이심전심, 당연한 상식, 한마음 한 뜻 이런 개념으로 퉁 친다. 정해진 이슈관리 목적을 내부에서
적극 커뮤니케이션 하지 못하면서, 수많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는 어떻게 이슈관리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겠나?
셋째, 실익이 무엇인가?
그걸 실행하는 것은 좋다. 무언가를
해야 하고, 어떻게 던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에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 실행을 통해 자사가 얻을 수 있는 실익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과 예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상대를 마구 비판하는 기사를 만들어 공격한다? 그렇다면 그런 부정
기사들을 통한 공격으로 자사가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무엇인가? 새로운 비판 논리를 만들어 온라인 버즈를
극대화한다? 좋다. 그렇다면 그로 인해 자사가 성취할 수
있는 실익은 무엇인가?
실익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실행은 불필요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실익이 아니라, 다른
주변적 요소들만 떠 오른다면 그 실행은 문제다. 가장 대표적 실행이 이런 것이다. “현재 구도에서 왜 상대측을 비방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루머나
유언비어까지 퍼뜨리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VIP가
원하십니다.’ 또는 ‘우리의 속이라도 시원하고 싶어서요.’ 같은 답이 마음 속에 떠오른다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에이전시의
경우에는 사업적 목적으로 그런 심리나 감정을 대신 충족시켜 주곤 하지만, 근본적 이슈관리 관점에서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는 현상이다.
넷째, 어떤 최악을 예상하는가? 그 예상은 합리적인 것인가?
최악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예상하는 기업은 이슈관리 전반에 흔들림이 적다. 최악을 그냥 어렴풋하게 상상하는 기업은 그에 비해 흔들림이 크다. 최악의
상황을 바라보는 기업은 신중하다. 가능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방향을 주로 선호한다. 눈 앞의 닭을 잡기 위해 수 백 미터 벼랑에서 닭을 향해 점프하는 늑대가 되지 않으려 많은 것을 그때 그때
재며 달린다. 닭은 못 잡더라도, 내가 죽으면 절대 안 된다는
공감대를 가지기 때문이다.
최악을 예상하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렇지만 최악을 상상만 하고, 정해 놓지 않으면 바람에 따라 흔들리게 된다. 또한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을 경계하면서 게임을 진행하지 못하게 된다. 마구
여론전을 벌여 난타전을 장기화하다가, 자사와 경쟁사 모두 수사기관 조사를 받고, VIP들이 고초를 치르는 현상은 이런 이유 때문에 반복 발생한다. 최악을
정확히 예상하지 못하면, 중간에 돌아올 수 없게 된다. 관성
때문에 계속해서 끝까지 가야만 되는 상황을 겪게 된다.
다섯째, 원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나?
폭행당한 운전사에게 찾아가 깊이 사과하고 피해를 압도적으로 보상하는 것. 그 피해자인 운전사를 두고 생긴 비판여론 때문에 기자회견을 해서 기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와 합의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는 것. 이 둘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둘 다 실행한다면
어떤 것이 우선이어야 할까?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해야 할까? 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문제는 그 정해진 답을 싫어하는 의사결정그룹이 있다는 거다. 원점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불편 해 하고, 싫고, 화가 나서다. 더욱 문제는 그런 의사결정그룹의 순수한(?) 감정 때문에 회사의 상당한 실익이 사라지고, 지속가능성까지 훼손되는
경우다. 원점에 대한 적절한 관리 없이, 성공하는 이슈관리는
극히 드물다. 만약 원점 관리 없이 이슈가 관리되었다면, 그
이슈는 진짜 이슈가 아니었던 것이다. 해프닝이다. 많은 경험상
전략적 원점관리가 생략된 이슈관리 성공은 없었다.
여섯째, 역량을 집중해서 대응하고
있나?
VIP가 이슈관리 대응회의에 참가하고
있는가? 아니면 간접적으로 보고 받고, 지시를 내리고 있나? 이슈관리팀은 제대로 구성되어 있나? 아니면, 관련 부서와 사업부분이 각자도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나? 자문그룹은
통합적으로 꾸려져 지원받고 있나? 아니면, 누가 어떤 자문을
하고 있고, 누가 그 자문을 받아 실행에 연결하고 있는지 서로 모르고 있나? 실무자그룹은 존재하나? 아니면, 누가
대응 실무를 하는지 서로 모르고 있나?
위기관리 체계에 대한 매우 모멸적 표현 중 오합지졸(烏合之卒)이란 말이 있다. 까마귀가
모인 것처럼 질서(秩序) 없이 모인 병졸(兵卒)’이라는 뜻으로, 임시로
모여 규율(規律)이 없고 무질서(無秩序)한 병졸이 이슈를 관리하는 상황을 묘사한 말이다. 그보다 훨씬 더 모멸적이고 위험한 이슈관리 시스템은 ‘중구난방(衆口難防)’과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시끄럽기만 하여 결론이 없고,
짙은 안개속에서 서로 모르며 이슈관리를 하는 느낌이라면 문제라는 의미다.
일곱째, 현재 이슈관리를 통합적으로
누가 리드하고 있는가?
“다 같이 하고 있다”는 답은 오답이다. 위험한 답이다.
전사적, 통합적, 협력적, 보완적 등과 같은 표현도 적절하지는 않다. 대체 누가 현재 이슈관리의
리더십을 쥐고 끌어가고 있는가? 그 딱 한 분이 누구인가? 만약
그 분이 VIP라면, 그
VIP를 중심으로 의사결정그룹과 실행그룹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직접 연결되어 있는가? 중간에 고리나 접합 관절이 있는가? 그에 따라 이슈관리의 모습은
달라진다.
거기에 더해 비선이 있는가? 계속해서 VIP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지시사항을 번복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가? 이슈관리를 리드하고 있다는 부사장은 실질적 권한을 가진 분인가? 아니면, 행정적인 지원 리더인가?
케이스는 아주 다양하지만, 내부 리더십 체계는 몇 가지 형태로 단순 유사하다. 당연히 이슈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리더십 체계가 어떤 형태인지는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덟째, 아무 대응도 하지 않으면
과연 어떻게 될까?
모든 이슈에 항상 상시 대응하고, 대응할
때 마다 강력하게 하이프로파일로 대응하고, 매번 끝까지 대응해서 마지막을 장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데에도 깊은 고민과 전략과 준비가 필요한 것처럼, 중간에
전쟁을 끝내는 것에도 신중한 고민은 필요하다. 아예 처음부터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을
수 있겠지만, 초기에 전략적으로 대응해 전쟁을 조기에 마감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 일단 시작한 전쟁이라도 상황을 보다 선제적으로 중단해 버리는 과감함도 의미는 있을 수 있다.
‘무조건’이나 ‘항상’같은 개념은
이슈관리나 위기관리에 적절한 개념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이해관계자의
입장과 의식에 따라, 조건에 따라, 원점의 움직임에 따라, 그 외 여러 순리에 따라 그 때 그 때 이슈관리 방향성을 재고한다는 개념이 보다 유익하다. 대응하지 않는 것도 이슈관리다. 아주 전략적인 고민만 기반이 된다면.
아홉째, 가용할 자산은 얼마나
되나?
사실 이 주제는 논의할 가치도 없는 주제다. 너무
당연해서다. 이슈관리나 위기관리는 돈으로 한다는 말이 있다. 잃을
게 많은 기업이 이슈나 위기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잃을 게 없는 (아주
가난하고 취약한) 기업에는 이슈나 위기가 없다. 그냥 재앙뿐이다. 어쩌다가 이슈나 위기가 지나가서 살아 남았다고 해도, 그 후유증으로
고사하는 기업이 태반이다.
잃을 것이 많은 기업이라면, 이슈나
위기관리에 항상 투자를 하려 한다. 그도 사업의 일종으로 보기 때문이다. 굳이 예산 같은 것만 자산은 아니다. 인력, 전문성, 자문그룹, 팀워크, 리더십, 명성 등이 중요한 자산이다. 가용 자산과 확보가능 자산에 대한 적절한 가늠과 관심이 있는 기업이 이슈관리에 성공할 가능성을 높인다. 아무 자산도 없는 기업은 그 만큼 힘든 것이 당연하다. 잔인한 이야기
같지만, 현실이다.
마지막, 같은 이슈관리를 반복할
것인가? 개선할 것인가?
맨 땅에 헤딩이라는 시쳇말이 있다. 맨
땅에 헤딩도 한두번이라는 자조 섞인 말도 있다. 기업의 어떤 분야도 한번 두 번 그리고 서너 번 경험했다면, 그로 인해 얻은 인사이트가 생기고, 개선이나 강화 방안이 도출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식적인 개선의 사이클에서 열외 되는
분야가 바로 이슈관리와 위기관리 분야인 것 같다. 그 때문에 수십년 된 기업도 별것 아닌 이슈로 고생을
한다. 몇 년 전 겪었던 부정 이슈를 올해 다시 만나곤 한다. 이해관계자들은
그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평소 수 십 수백억을 들여 기업 광고를 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기부금을 내고, 국가정책에
참여하고, 많은 유명인사들과 언론들을 통해 제3자인증을 받아
놓았음에도. 부정 이슈를 제대로 만나면 바로 그로기 상태에 빠지는 경우를 본다. 그간 쌓아 놓았던 명성 자산이 오히려 위선적인 이미지로 변질돼 버리기도 한다.
이 이유가 뭘까? 왜 개선이나 역량 쌓기가 어려웠던 것일까? 평시에 그 자산 점검과 관리 강화를 하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과연 이슈관리를 잘 하게 될까? 아니면 다시 똑같이 땅에 헤딩을 반복하게 될까? 상식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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