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란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위기관리 커뮤케이션이란 위기관리 주체가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위기관리 그 자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한 의미의 위기관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많은 사람들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위기관리에 성공하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보고 위기관리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판정하려 하기도 한다. 더 일부는 위기관리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같은 것으로 보거나, 자주 혼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자문하다 보면, 위와 같은 자잘한 개념적 오류와 혼동이 위기관리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상황을 종종 접하게 된다.
절대 변하지 않고, 바뀌어서도 안 되는 가장 확실한 개념은 하나다. 제대로 된 위기관리만이 제대로 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진리라는 사실. 반면 위기관리만 제대로 되었을 뿐,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라면, 전반적 위기관리는 실패한 것으로 판정된다. 위기관리 범위내의 노력들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위기관리는 실패했는데,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만 성공한 것 처럼 보여지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고도의 속임수일 가능성이 높다. 정확한 의미의 위기관리가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번 글에서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하는 다양한 실무적 원인에 대해서 돌아본다. 이전에도 여러 번 언급했던 내용들이지만, 종합해서 실패 원인을 곱씹어 가며 개선 또는 변화를 다시 시도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위기관리는 어느 정도 잘 했다고 보는데, 왜 우리 회사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잘 안되는 것일까?
첫째 이유, 상황파악이 어렵고 늦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고, 되더라도 너무 늦어 버리면 위기관리 자체도 적절하게 될 가능성은 사라진다. 심지어 언론이나 온라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상황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더 나아가 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시점에 기업 내부에서는 전혀 갈피도 못 잡고 있다면 백전백태가 뻔하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위기 시 기업에게 요구되는 신속한 상황파악과 입장 정리 압력은 더욱 가중되어 간다. 그렇다고 시간에 쫓긴 정확성 떨어지는 상황파악이나 입장정리는 더욱 위험 해 졌다. 돌발 상황에 처한 기업을 향한 입장 정리 압박과 정확성의 요구. 이 압력을 적절하게 적시에 핸들링해 내지 못하는 기업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한다.
둘째 이유, 정무감각의 부실 또는 부재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사회적 여론 추이 또는 방향성을 예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실패 가능성은 높아진다. 특히 의사결정을 하는 고위경영자 그룹내에서 해당 상황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떨어지면 결과는 더욱 암담 해 진다. “이 상황이 왜 문제인걸까?” “지금 온라인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왜 사람들이 이렇게 화를 내는 걸까” “이건 일반적 상황 같은데, 반응이 이상하네?”같은 소리가 나오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불가능 해 진다.
여기에 온라인 공중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보는 의사결정자의 시각에 존중이 없으면 더욱 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어려워진다. 평소 공중 및 이해관계자관을 정확하게 형성 해 일상적 사업에 반영하고 있어야 위기 시 커뮤니케이션이 최소한이라도 가능해 진다. 기업에게 정무감각이란 여론을 읽고 이해하며 그에 따르는 감각을 의미한다. 일부라도 위기 시 여론을 읽지 않고 무시하며 그에 맞서 싸우려고 까지 한다면 재앙이 된다.
셋째 이유, 비선의 개입
올바른 정무감각이 형성되어 있는 의사결정그룹이 존재하는 기업에게는 비선이나 요행, 기술, 편법은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러한 무리수가 절실한 기업은 제대로 된 정무감각을 보유하지 못한 곳이다. 여론이 이해되지 않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누군가 무언가 마술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분명한 주체가 존재한다. 해당 위기를 관리하고 있는 핵심 주체인 기업이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다. 이 중간에 누군가가 끼어들고, 무언가가 뿌려지고, 어떤 일들이 더해지면 상황은 통제불가능한 구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위기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이를 바라보는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은 더욱 더 혼동에 빠지게 된다.
넷째 이유, 과감성 및 진정한 태도의 결여
언젠가부터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매우 유효한 기술이나 기법으로 여기는 시각이 생겨났다. 사과를 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과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제대로 사과할 줄 아는 기업이나 사람은 사과할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기술이나 기법이 아니다.
위기관리를 위해 커뮤니케이션 하는 대응책, 개선책, 재발방지책, 보상책 등의 다양한 내용을 잘 분석해 보면, 그 중 상당수가 슬로건, 의지표명, 카피성, 근거미비 한 성격의 것들이다. 일단 현 상황을 잘 넘겨보자는 전술적 의도가 다분하다. 일반적으로 이런 태도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기업의 경우 얼마가지 않아 비슷한 위기상황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 이전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전부 거짓말이 되는 셈이다.
다섯째, 위기관리 리더십의 결여
일부 기업에서는 사과문이나 해명문에 자사 대표이사 이름을 넣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마케팅 차원의 위기였으니 마케팅 임원이 사과하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경우가 있다.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에 책임을 지는 대표이사가 위기관리 과정에서는 사라진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도 스스로 화자가 되거나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기업이 약속한 개선이나 재발방지책이 제대로 준수되어 결실을 이룰 가능성은 현격히 낮아진다. 공중이나 이해관계자들도 이를 알고 있다.
심지어 과감한 개선책과 재발방지대책을 발표하고 고개 숙였던 대표이사가 다음 인사에서 교체되기도 한다. 이전 대표이사가 약속한 내용을 끝까지 책임지고 달성하는 신임 대표이사는 드물다. 일각에서는 위기관리 비용보다 인사 비용이 더 저렴하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위기관리 리더십까지 이야기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수준의 경우들이 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잘 될 리가 없다.
여섯째, 전통적인 매체 개념의 고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정의할 때 일부 기업에서는 부정적 기사나 보도를 빼고 막아내는 것이라 정의하거나 상상하는 곳도 있다. 우리 회사에 부정적인 뉴스들을 막아내면(?) 진짜 위기는 오지 않거나 사라진다고 믿는 임원이 아직도 있다. 가능한 부정적인 것은 막아내고 빼 버려야 제대로 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인식이 여태 존재한다.
그런 임시처방에 주로 신경 쓰느냐 실제로 신속하게 결정해 발표해야 할 회사의 입장과 여러 대응책 마련은 계속 지연된다. 감정적으로 신경 쓰이는 부정적 기사만 계속 의사결정그룹내에 공유된다. 평소 읽지 않던 기사들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기자가 쓴 단어 하나나 표현 한 줄에 법적 대응을 이야기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빨리 자사의 입장을 마련해 후속 기사들이 우리 회사의 입장을 충분히 담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막고 빼고가 먼저가 아니다. 전부도 아니고.
일곱째, 일희일비의 만연
사과문을 수십번에 걸쳐 수정해 게시하는 기업도 있다. 사과를 했다가 이내 법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입장을 바꾸는 기업도 있다. 심지어 하나의 사과문에 깊은 사과와 반성 그리고 법적 대응을 함께 이야기하는 그로테스크한 기업도 있다. 기업 대표가 무릎 끓은 사진을 릴리즈 하며 커뮤니케이션 하기도 한다. 각종 소셜미디어에 회사 오너나 대표이사가 감정적 글을 써가며 여론에 맞서기도 한다.
의사결정그룹이 얼마나 일관성 있고 안정적인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품질은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런 무게감 있는 고품질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공중과 이해관계자로부터 신뢰를 이끌어 낸다. 아이디어나 재미가 기반이 아니라, 원칙과 철학이 기반이 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위기 시 일희일비하지 않는 경영진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된다.
여덟째, 일선 실무진의 전문성 부족
언론팀의 팀장이 기자들을 잘 모른다거나, 온라인 팀장을 맡은 지 얼마 안 되어 온라인 생태계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실행은 어려워진다. 평소 실무그룹이 얼마나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키워 놓았는지는 위기가 발생되면 여실하게 드러난다. 위기관리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대행사나 여러 협력사들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기업 내부 실무진의 이해관계자 이해도나 실무역량은 결과물의 품질을 크게 좌우하는 키 역할을 한다.
위기관리 명언 중에 “위기 시에는 플랜과 싸우지 말고 상황과 싸우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 플랜과 싸우는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는 기업 내부 실무 그룹의 역량이 부족한 경우다. 역량 있는 실무진은 상황과 싸운다. 상황을 예상하고 움직인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어떤 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 무엇을 해야 그 실행이 가능해지는지에 대한 경험적 이해와 통찰이 있어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도 성공한다.
아홉째, 위기관리 예산 개념의 혼동
위기관리를 위한 예산을 철저하게 비용으로만 보는 시각이 있다. 일부는 아주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비용으로 본다. 문제는 현재 부정이슈로 회사가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인데, 불을 끄는 데 필요한 비용을 쓰는 것이 아깝다는 셈이다. 실무자들은 더욱 더 위축된다. 어차피 결재가 나지 않을 비용이기 때문에, 대응에 비용을 투입하지 않으려 한다. 정확히는 비용을 투입하지 못한다.
위기대응을 위한 지시사항에는 상당한 비용이 동반되는 것이 대부분이라, 그 지시사항을 실행하지 못하고 주저하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추후 감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상황이 급하다고 대응 비용을 투입하자 하는 이야기도 하기 어려워한다. 위기관리만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도 예산은 들어간다. 예산 없이는 위기관리 없는 것처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도 그렇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공짜가 아니다. 다른 모든 것처럼.
마지막, 반면교사나 벤치마킹의 부재
다른 기업이 당했던 일을 똑같이 당하는 기업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다른 기업이 이미 잘 관리했던 위기 상황을 제대로 관리해 내지 못하는 기업은 어떻게 볼 수 있나? 공중과 이해관계자에게는 차리리 익숙한 위기 상황에 홀로 놀라고 당황스러워 하는 기업은 어떤 기업인가?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이 대부분 이해하고 있는 트렌드와 여론을 낯설어 하는 기업은 어떤가? 계속해서 바뀌는 사회 환경과 달리 아직도 수 십년 전 상황에 머물러 있는 기업에게 위기관리란 어떤 것인가?
“처음 당하는 상황이라 경황이 없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해서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흔치 않은 상황이라 모두가 당황했습니다.” 등과 같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피상적인 변명인지를 잘 알지 못하는 기업도 있다. 좋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다른 기업 그리고 자사의 예전 케이스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해 낸 기업만이 할 수 있는 귀중한 실행이자 결과물이다. 항상 살피고, 고민하고, 기억하는 기업의 습관은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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