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022025 0 Responses

위기관리, 모르는 게 문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는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해야 당면한 위기를 관리할 수 있을 지 기업은 이미 알고 있지만, 실제로 관리 활동을 실행하지 ‘않아서(did not)’ 위기관리에 실패한다는 의미다. 일부에서는 위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는 있지만, ‘할 수 없었다(could not)’의 의미인 경우도 있다.

흔히 기업에서는 임직원이 위기관리를 공부해야 한다 알아야 한다. 위기관리를 알면 좀 더 위기를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관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위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기업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위기관리를 임직원이 모르고 있다는 선입견은 버리자.

기업내에서 임직원이 미처 모르는 것이 있다면, 왜 위기관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와 하지 못했는 지에 대한 이유다. 몰라서 못했다면 차라리 문제 해결은 단순하다. 그러나, 알면서도 그랬다면 해결은 불가능하거나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업 임직원은 왜 제대로 위기관리를 하지 못했거나, 할 수 없었을까? 알면서도 왜? 그 몇 가지 대표적 이유를 꼽아보자.

내 담당업무가 아니기 때문

나의 담당 업무는 마케팅이다. 나는 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생산기술쪽을 맡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업무를 소개하는 임직원에게 “그렇다면 위기관리는 누가 담당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으면 대부분은 서로를 쳐다본다. 딱히 정해진 부서가 없다는 이야기가 돌아온다. 그에 더해 다른 기업은 어떻게 담당부서가 정해져 있는지를 묻는다. 위기관리는 누가(who)에 대한 규정이 체계 구축의 가장 첫 단추다. 모두가 알고 있어도, 아무도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 담당업무가 아니 라서 라면 문제다. (사실 반대로 아무나 애사심으로 나서서 위기관리 업무를 하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다)

평소 위기관리 주제에 대한 업데이트 부실

어떻게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개념은 스스로 충분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 발생된 위기 유형은 생전 처음보는 기괴한 것이라 위기관리를 하지 못 했다 거나 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 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위기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개념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다른 기업의 전례나 유사사례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없었기 때문에, 자사에게 다가온 위기의 모습이 항상 새로워만 보인다면 그게 문제다.

그때 그때 다른 회사의 대응 기조

정해져 있는 대로 실행하는 것이 잘 된 체계의 특징이다. 회사 철학과 원칙이 이슈나 위기 시에도 일관성을 품고 공유된다면 그 보다 잘될 관리 활동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때 그때 위기에 따라 회사의 대응 기조와 방식이 다른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자발적으로 전량 리콜을 했는데, 이번에는 부분적으로 A/S를 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위기관리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도, 기준이 달라지니 대체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추어야 할지 임직원들이 주저한다. 이해관계자와 공중들은 더욱 더 이해를 어려워한다. 어리둥절 하면서 위기관리를 하지 못하는 이유다.

문제 소지가 있는 관행, 경쟁우위, 경쟁력의 비밀

미리 이슈나 위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회사를 지금까지 생존하게 했던 뿌리 깊은 관행과 경쟁우위, 경쟁력의 비밀 자체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라면 대부분은 위기관리에 실패한다. 그 문제성 관행 등의 뿌리를 사전에 뽑아 낸다면, 그것이 회사에게는 더욱 심각한 위기 상황이 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몇 년에 한번 위기를 넘기면서 생존하는 것이 사전적으로 무리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경영적 판단이 있기도 하다. 알면서도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다는 의미가 이런 것이다.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모두가 함께 하지는 않음

체계라는 것은 여러 사람이나 부서가 함께 만들어 합을 맞추며 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위기관리 체계를 들춰보면, 어느 한두 부서만 위기를 관리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 외 부서들이 명목상으로는 지원 또는 협업하게 되어 있지만, 그렇게 체계가 쉽게 가동되지는 않는다.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부서에게는 항상 의사결정 지연, 인력 부족, 예산 부족, 정보 부족, 시간 부족의 현상이 고질적으로 주어진다.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를 스스로 귀찮아 하고, 과잉 체계라고 생각하는 한은 알면서도 하지 않고, 못하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위기대응을 하기는 하는데, 한 것은 없음

이상한 현상이다. 무언가 위기관리라고 해서 열심히 여럿이 실행을 하기는 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따져보면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이어 가장 중요한 실행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위기관리 대응의 우선순위에 대한 정리와 그에 따른 효과적 실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위기관리의 비유 중 ‘목욕탕 욕조가 넘치려고 할 때, 가장 시급한 대응은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넘칠 물을 닦아낼 마대자루를 준비하거나, 물을 덜어 낼 바가지들을 구하러 다니는 실행이 일어난다. 대응의 우선순위와 컨트롤타워에 대한 의미이기도 하다.

비선의 크리에이티브로 인한 혼동

기업이 대형 위기를 경험하게 되면 어디에서 누군가가 나타난다. 직간접적으로 VIP와 관련되어 있는 비선라인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생긴다. 그들의 특징은 심각한 이슈나 위기 대응에 있어서 창조적인 접근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조언한다는 점이다. 경험 있는 실무진들이 우려할 만한 대응 제안을 하고, 그 중 일부는 VIP의 지시에 의해 실행에까지 옮겨 지게 된다. 실무진에게는 외부 이슈나 위기에 더해 역으로 내부 위기까지 발생해 버리는 상황이 추가되는 셈이다. 제대로 역할을 하는 실무진은 이런 경우 무리한 실행으로 인해 실질적 실행의 정지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것이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지루한 의사결정의 연장

실무진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 있다. 인력의 개인별 경험에 따라 전문성이나 역량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위기를 맞아 무엇을 할지 몰라 어리둥절 만 하는 실무진은 그리 많지 않다. 단, 의사결정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지시가 정해져 내려올 때까지 자의적으로 할 수 있는 실행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의사결정이 신속 정확하게 하달되어진다면, 실무진은 그에 따른 실행을 즉각 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반대로 의사결정이 길어지고, 자주 번복되며, 지연된다면 실무진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제한된다. 타이밍을 완전하게 놓친 대응은 대부분 사후에 무능이나 무력함으로 평가받는다.

의사결정 주체의 실종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것도 문제지만, 의사결정 주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제대로 내부에서 가시화되지 않는 경우에는 더 큰 문제를 만든다. 평시에는 자유롭게 의사결정 하던 VIP께서 위기시에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시는 경우도 있다. 의사결정 하시는 VIP께서 공개된 방식 보다는 매우 한정적인 대상을 통한 일방 하달에 익숙하신 경우도 있다. 실무진에서는 VIP의 의도나 의지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워 한다. 의중에 대한 해석도 분분 해 진다. 무언가를 하기는 하는데, 그것이 VIP가 보실 때 정확한 것인지 알기 어려워 대부분의 실행에 자신 없어 한다. 사후에도 내부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각자가 각자의 위기관리를 함

부서들이 함께 체계를 맞추는 것은 이상적이고 권장할 만한 것이지만, 체계라고 해서 여러 부서가 각자 자신이 할 수 있거나 심지어는 하고 싶은 위기관리를 중구난방으로 하는 것 또한 실패의 주된 원인이다. 일부 경우에는 부서의 역할까지 침범하며 중복된 실행을 각자가 하기도 한다. 흔히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런 심각한 문화 속에서는 컨트롤타워도 그 의미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누가 무언가를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그 내용을 스스로 모르는 현상이다.

대응 기조를 계속 변경함

이는 대부분 VIP의 의중이 자주 변화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초기에는 전격 사과를 했으나, 계속해서 논란이 커져가자, 법적 대응을 발표하는 경우가 전형적이다. 이후 언론과 여론에서 일관성 없는 대응 기조에 대해 비판을 하니, 자사 대응 기조를 다시 바꾸어 기자회견을 하거나 새로운 사과문을 올려 다른 실행을 더 한다. 그 이후에도 공격적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소송도 하고, 창의적 개선책을 발표하기도 하며 말그대로 누더기 관리를 실행한다. 내부 임직원은 어떻게 해야지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를 알고는 있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회사의 의사결정 때문에 침묵한다.

내부 정치적 현실 때문

위기관리에 있어 VIP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과 문제해결 의지 그리고 위기관리를 관통하는 그분의 의중을 정확하게 내부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경우 위기관리의 성공 가능성은 극대화된다. 반면, VIP의 그러한 위기관리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거나 부실한 경우에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생산된다. 아무리 효과적인 위기 대응 전략과 방식이 도출되더라도 VIP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면 그 실행이 될 가능성은 사라진다.  “그러시더라도 회사를 위해 꼭 하셔야 한다”고 다시 조언할 수 있는 내부 임직원은 없다. 알고는 있지만 할 수는 없었다는 의미가 이런 것이다.

의지 없음

평시의 위기관리도 그렇고, 위기 시 위기관리에 대해서도 사내에서 특별한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기업의 케이스들도 있다. 이를 선해하면 중장기적 관점에서 위기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위기임에도 위기를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운이 좋아서 해당 위기가 큰 논란이 되지 않고 사라져 버리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이런 경우의 문제는 위기관리를 운에만 의지한다는 것과, 아무런 대응 체계나 준비 없이 바라만 볼 때의 경우다. 전략적으로 로우 프로파일한 대응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의지가 없어서 외면하는 위기관리라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내부에서는 이런 경우에도 문제 가능성은 알지만 대부분 침묵한다.

위기 속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위기를 발생시키는 것도 사람이다. 위기를 더 큰 위기로 키우는 것도 사람이다. 이에 맞서서 위기를 관리하는 주체도 사람이다. 사람끼리의 일이라는 것만 보아도, 우리가 위기와 위기관리에 대해 전혀 모를 수는 없다. 공감이나 역지사지 같은 개념도 그렇게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문제가 풀릴지 조금만 함께 예측해 보면 답은 낼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논의를 하다 보면 위기는 관리되기 마련이다.

문제라면, 그렇게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위기관리를 하지 않게 하고, 하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이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기업의 기업문화, 철학, 원칙, 리더십, 투명성, 체계, 역량, 정무감각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가능한 평소에 위기관리를 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환경, 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 환경을 적극적으로 찾아내라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고 공론화해서 개선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위기관리는 불가능 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위기관리가 잘 되지 않을 이유를 빨리 빨리 찾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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