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가 발생된 기업의 의사결정그룹에 들어가 여러 논의를 하다 보면, 임원들이 종종 묻는 질문이 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시나요?” “언제까지 이런 언론의 비판이 이어질까요?” “지금 대응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아야 할까요?” “이런 유사 케이스를 다루어 보셨으니까 아실 것 같은데요. 이번 저희 케이스가 상대적으로 심각한 것인가요?”
이런 질문을 하는 임원들은 위기관리를 일종의 과학이라 생각하는 분들이다. 위기관리 이론과 원칙에 의해 많은 부분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고, 판별 가능하며, 심지어 통제까지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위기관리가 과학이라면 요즘 화두인 AI가 위기를 관리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관리는 과학이라기 보다는 예술(Art)에 가깝다는 것이 문제다. 하나의 상황을 두고 여러 전문적 의견이 엇갈리는 근본적 이유가 위기관리의 예술적 성격 때문이다. 위기상황과 관련하여 대부분의 주제들이 가변적인 혼동 그 자체다. 그런 여러 혼동을 관리하는 위기관리가 어떻게 과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위기상황을 두고 대응 결정을 할 때 종종 충돌하고, 의사결정자들을 갈등하게 만드는 대표적 주제들을 정리해 본다. 과학으로는 절대 풀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예술로도 문제를 푼 다기 보다는 문제를 다룬다(manage)고 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신속한 대응 vs. 타이밍을 기다리는 대응
위기관리 서적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신속성이다. 그러나, 모든 위기 상황에 있어 관련 기업이 신속한 대응을 하라는 의미의 조언은 없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위기 시 신속하게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고민에 빠진다. 빨리 빨리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에 사로 잡힌다.
그러나, 위기 상황은 그 유형과 변화 방향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일정 기간 지켜보며 타이밍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에 대한 판단은 여러 변수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간단하게 원칙 비슷한 것을 만들자면 “적시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조언이 될 것이다. 그 다음 문제는 “그렇다면 바로 그 ‘적시’는 언제인가?”다. 이에 대한 의사결정은 다시 예술이 돼 버린다.
VIP가 나서야 vs. 담당 책임 임원이 나서야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에 있어 VIP의 가시성을 강조하고 조언한다. 회사가 위기를 맞았을 때 뒤로 숨는 VIP는 위기관리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가능한 신속하게(여기에서도 예술성이 필요) VIP가 앞으로 나가 머리를 숙이고, 사과문을 읽고, 질의 응답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위기상황에 직접 관리책임이 있는 고위임원이 먼저 나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도 상황이 진정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비장의 카드로 VIP가 나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낫다는 조언을 한다. 양쪽 시각에는 각각의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예술적인 질문은 “임원이 나서야 하는 경우는 무엇/언제이고, VIP가 나서야 하는 경우는 무엇/언제인가?”다. 의사결정이 그래서 어렵다.
사과해야 한다 vs. 반박해야 한다
비교적 사과를 해야 하는가 반박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은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예술적으로 보면 어떤 경우 사과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반박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이 생겨난다. 어떤 부분까지는 사과해야 하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반박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따라온다.
위기상황에 대하여 회사에 심각한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사과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거나, 직접적 책임성이 일부 부족하거나 (여러 주체가 얽혀 있는 경우), VIP 판단이 사과할 수 없다는 것인 경우에는 사과를 하지 않기도 한다. 상당히 여러 예술적 요소들이 관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사적으로 위기관리 해야 한다 vs. 위기관리팀이 해야 한다
이 주제도 전형적인 예술적 주제다. 어떤 기업 대표께서는 전사적으로 위기관리 마인드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어떤 기업 대표께서는 위기관리라는 것이 우리의 핵심 사업이 아닌 관계로 전사적으로 모든 직원이 평시에 위기관리 역량을 키우고 준비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 하신다. 대신 부서의 특정 인력을 모아 위기관리팀을 구성하여 그들을 중심으로 위기를 관리하게 해야 한다고 하신다.
두 시각 모두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위기관리 체계와 관련되어 있는 이 누가(who)에 대한 주제는 아주 복잡한 예술성에 기반한 토론 주제다. 위기의 규모, 형태, 심각성, 부서 관련 양상, 전사적 데미지 유무 등이 다차원적으로 관여되기 때문이다. 위기 규모에 대해 모 기업에서는 위기관리 매뉴얼에 “예상되는 데미지가 매출의 OO% 이상 일 때, 이하일 때”를 나누어 대응 조직 범위와 수위를 정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기준도 사실 과학적이지는 않다.
언론에 위기관리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vs.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상당히 민감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위기관리 상황에서는 내부적으로 항상 중요한 의사결정 주제다. 저널리즘과 언론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의미를 강조하며 언론을 상대로 기사를 매수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 주장하는 임원도 있다. 그에 대해 회사가 입을 데미지를 예상하면 언론에게 위기관리 예산을 어느 정도 쓰는 것이 결과적으로 회사에 이득이 된다는 현실적 주장을 하는 임원도 있다.
이 경우에도 어김없이 예술적인 질문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어떤 기사에는 예산을 써야 하고, 어떤 기사에는 쓰지 않아야 하는가?” “어느 매체에는 예산을 쓰고, 어떤 매체에는 쓰지 말아야 하는가”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는 어떻게 대응 예산을 써야 하는가?”하는 여러 고민 주제가 쏟아진다. 이런 경우 확실하게 이렇게 저렇게 하십시오 조언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한번은 의심해 보아야 한다. 누구도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모든 변수에 대한 입체적 검토와 분석 없이 정해진 조언을 해서는 안 된다.
우호 언론을 활용해야 한다 vs.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이 주제 또한 흔하게 논의되는 주제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상황이 우호 언론을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인가?” “우호 언론이라는 곳이 현재 상황에서 우리를 위해 나서 줄 것 인가? (나설 수 있는 상황인가?)와 같은 예술적 질문이 이어진다. 우호 언론을 활용한다면 과연 어떤 논리를 가지고 우리 회사를 감싸 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나오곤 한다.
어떤 노력을 기해서라도 특정 언론을 우호적으로 활용한다고 해서 현재 상황에 반전이 생길 것인가 하는 것도 검토 주제다. 자칫 우호 언론들이 나서서 불완전 한 논리로 상황에 개입하는 경우 이해관계자(주로 규제기관)를 자극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심지어 기관의 수사나 조사를 받고 있는 경우 우호언론의 섣부른 개입은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모든 변수들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계량할 수 있을까?
위기 지속 기간을 줄여야 한다 vs. 어느 정도 시간을 끌어야 한다
골치 아픈 주제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위기관리 목적에 있어서 위기의 지속기간을 최단기화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조언을 한다. 하루 이틀에 적극 관리해 끝낼 수 있는 위기를, 몇주간 끌지 말라는 것이다. 위기 지속 기간이 짧을수록 이해관계자나 공중의 기억은 적어지고, 부정적 인식의 수준도 줄어 든다는 이야기를 한다.
반면에 가능한 상황을 견뎌가며 장기적 대응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규제 및 수사 기관의 개입이 있는 경우 일반적으로 조사 및 수사 기간이 장기화 되기 때문에, 그 상황에 맞추어 최대한 관리 해 나가야 한다는 조언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 예술적인 질문은 “일단 초기 상황은 적극관리 해서 이해관계자들의 관심과 인식을 선제적으로 관리해 놓고, 장기적인 조사나 수사 대응을 하는 것은 어떤가?”하는 질문이다. 예스나 노 또는 A or B로 답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련되어 있는 변수들을 먼저 보고 고민해야 하는 질문이다.
위기상황이 이제 끝났다 vs. 아니다 아직 좀더 자중해야 한다
언제쯤 다시 광고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찬 난감하다. 현재의 상황이 아직도 불타고 있는데, 마케팅 부서에서는 광고의 재개 일정을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영업부서에서도 여러 미래 예측 질문을 해 온다. 최초 상황이 어느 정도 관리되었고, 언론기사가 줄고, 온라인에서의 관심도 상당수 사라진 것 상황이 되면 그런 질문들을 더욱 더 잦아진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여론 상황이 아직도 불안정하다는 지표와 수치들을 보여주며, 일정 기간 좀 더 자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예술적 질문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다음주부터는 어떤가? 다음 달 초부터는 어떤가?”같은 질문들이다. 일부에서는 전문가의 예상과 예언을 혼동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상과 같은 여러 예술적 위기관리 주제들은 거의 모든 위기관리 현장에서 반복되고 반복된다. 유사해 보이는 위기 상황에서도 기업에 따라, 때에 따라, VIP의 의중에 따라, 임원들의 내부정치적 입장에 따라, 규제나 수사기관의 움직임에 따라, 그 외 더 많은 자잘한 변수들에 따라 대응방식이나 방향까지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 때 그 때 마구 쏟아지는 예술적 고민 주제들을 다루어 가며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위기관리를 과학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예술적인 질문에 대해 적확한 답을 바로 내놓지 못하는 전문가들이 한심스러울 것이다. 전문성 자체에 대한 의심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속이 시원하기는 커녕 위기상황 보다도 더욱 답답할 수 있다.
그래서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모든 위기관리를 관통하는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대신 해답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또한 예술적인 이야기다. 지금도 위기관리에 관심을 두고 위기관리를 공부하려 하는 여러 실무자들에게는 위기관리를 과학이라 생각하지 않는 습관을 먼저 들이고, 이를 기반으로 위기관리를 바라보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때로는 답이 없을 수도 있다. 정답 보다 해답을 찾는 노력이 현실적일 수 있다.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지 완전한 방안을 찾으려 해서는 힘들기만 할 뿐이다.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당하더라도 실행해야 할 대응도 있을 수 있다. 윤리적이거나 도의적으로 일부 문제가 있는 대응 방식을 과감하게 선택해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우선 회사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극약 처방을 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가 입은 데미지가 생사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대응역량과 예산을 집중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결정 속에는 사람이 있고, 예술이 있다. AI는 과연 그런 현실을 사람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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