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이 특정 이슈나 위기와 연루되면 담당 기관으로부터 조사 또는 수사를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경우 검찰, 경찰, 공정위, 국세청, 식약처, 관세청, 지자체 등의 움직임에 따라 해당 기업과 관련된 다양한 부정 기사들이 쏟아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로 인해 상당수 기업은 조사 및 수사가 시작되면 전사적인 패닉에 빠진다. 사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던 경우라고 해도 실제 기관의 움직임이 개시되면 기업 내부에서는 두려움과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기업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인해 많은 경우 기업 스스로 상황 초기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하고, 불완전하고 문제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상황을 악화시키곤 한다. 그렇다면 혼란의 연속인 조사 및 수사 대응 상황에서 기업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할까? 그 전략과 방법론을 정리해 본다.
첫째, 침묵보다는 홀딩이 낮다
일부 전문가들은 조사나 수사를 앞둔 기업의 침묵은 곧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이런 관점도 상황에 따라 맞기도 틀리기도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사에 대한 조사나 수사를 앞두고 있는 현 상황에서 기업이 무엇을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만약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것이 있더라도 지금 커뮤니케이션 해서 상황을 전환시킬 수 있느냐를 따져볼 필요도 있다. 커뮤니케이션 해서 실질적으로 얻을 것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별로 얻을 것이 예상되지 않는다면 모든 커뮤니케이션 요구에는 홀딩(시간을 벌기)하는 것이 이롭다.
둘째, 시끄럽게 하소연 말라
일부 기업이나 셀럽의 경우 기관의 조사나 수사가 예상되면 오히려 활발하게 언론 접촉을 하고, 무리하게 많은 메시지를 전달해 노이즈를 일으킨다. 당사자는 그렇게 자가발전 한 노이즈가 여론을 형성하여 자신에게 이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조사나 수사 주체 기관의 담당자들의 존재다. 그들이 정해진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많은 노이즈가 일어나게 되면, 실무자의 특성상 무거운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한 조사 및 수사 실무자들의 부담감은 상황을 이롭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팩트를 나열하기보다 입장을 정리하라
기관의 조사나 수사에 대응한다고 하면서 기업이 언론이나 공개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당히 다양하고 구체적인 팩트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경우가 있다. 수많은 정보를 쏟아 부어가며 자사의 결백함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회사가 현재 그 팩트를 누구에게 전달하고 있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를 그 대상에게 전달함으로서 자사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대부분 유사 케이스에서 기업은 유효한 대상으로부터 가치 있는 이득을 취하지 못한다. 오히려 사회적 노이즈만 극대화 시키며, 그와 동시에 실제 조사 및 수사 과정에서 자사가 기존 주장했던 팩트가 반박 당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조사 및 수사를 앞두거나 그에 임한 기업은 자사의 입장만 간단하게 표명하는 것이 훨씬 나은 전략이다. 패를 먼저 공개 할 필요는 없다.
넷째, 부정기사에는 선별적으로 대응하라
시종일관 기업은 조사 및 수사에 대응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로우 프로파일(low profile) 하고 리액티브(reactive) 한 대응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쉽게 표현하면 가능한 말을 아끼고, 언론이 물어오는 사안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략을 유지하다 보면 기업 내부에서는 갑갑하다, 너무 안일하다, 보다 적극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이견이 나오게 된다. 그런 커뮤니케이션 기조는 기업 내 최고의사결정자의 일관된 태도로만 유지 가능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말은 아끼되 상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극히 부정적인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응을 해 교정 또는 이해를 도모하는 노력은 해야 마땅하다. 리액티브 대응이 숨어서 말도 못하는 벙어리 대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섯째, 일단 진다고 생각하고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짜라
우리나라 기관이 행하는 조사 및 수사에서 기관이 승리하는 경우는 압도적으로 높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업이 억울함과 과정의 문제를 토로하고는 하지만 결국 기관은 정해진 목표를 이루게 된다. 기업에서는 전략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때 이런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사 및 수사 대응 커뮤니케이션을 기관 vs. 자사의 권투시합 처럼 커뮤니케이션 하기 보다는, 자사가 기관의 조사 및 수사에 임해 퍼포먼스를 펼치는 피겨스케이팅 같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낫다. 기관 조사 및 수사에 임한 회사가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 가’에 중점을 두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짜라는 것이다. 일부 기업은 권투시합 처럼 커뮤니케이션 하다 시합에서 져서 나뒹구는 비참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반면, 일부 기업은 피겨스케이팅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결론적으로 신뢰를 유지하며 무게감 있게 일관성은 잘 보여주었다는 느낌을 전달 하는 경우도 있다.
여섯째, 적을 만들지 말라
일부 기업은 기관과 기관에서 조사 및 수사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을 적으로 만드는 자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기도 한다. 악의적 조사나 수사라고 한다. 편파적이라고 하고,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기도 한다. 조사 및 수사 실무자들의 개인정보나 배경을 공개하며 비판 하기도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일부 정치인들이 활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법인데, 이를 그대로 기업이 모방하니 문제가 된다. 이슈나 위기상황에서 기업이 명심해야 할 아주 중요한 원칙이 그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절대 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더구나 자사에게 칼을 들이댈 집도의(?)를 적으로 만든다면 그 수술의 결과는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일곱째, 법정에서 이야기하라
여론의 법정에서 이야기하라는 조언이 아니다. 실제 법정에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커뮤니케이션은 대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단, 공중과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기관의 조사 및 수사에 임하는 자사의 입장과 해명 노력에 대한 것이면 충분하다. 특히 이해관계자들이 궁금해하는 조사 및 수사 과정 및 이후의 변화, 영향 등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필요가 있다. 영역을 넓히면 대 이해관계자, 대 직원, 대 거래처 등의 범 내부 커뮤니케이션 노력은 훨씬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외 사안과 팩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법정에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좋다.
여덟째, 좌충우돌 말고, 좌고우면 말라
기관 조사 및 수사에 임하게 되면 기업 내부에는 정말 말그대로 혼란의 시장을 방불하게 하는 환경에 조성된다. 넘치도록 다양한 첩보나 검증되지 않는 설들이 난무하게 된다. 의사결정그룹의 감정을 자극하는 다양한 정보들이 공유된다. 문제를 풀어주겠다는 브로커들도 나타난다. 유효한 압력을 행사해 주겠다는 선수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실시간으로 부정적 보도들이 이어지고, 회사도 모르는 내용들이 신문과 방송을 타며 이어진다. 이런 혼란속에서 대부분 기업은 좌충우돌한다. 대응 전략이나 일관성이라는 개념은 잊혀진다. 아침 의사결정이 다르고, 오후가 다르다, 저녁에는 또 바뀐다. 많은 대응 지시가 내려오지만, 실제 실행 되는 경우다 적다. 의사결정이 계속 흔들리는 동시에 이 결정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일단 혼란의 환경에서는 아무 의사결정을 하지 않아 보는 것이 나은 경우가 많다. 의사결정을 잠시 미루며 침전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의사결정이 조금 흔들려도 공중 및 이해관계자들 눈에는 엄청난 진동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홉째, 할 수 있다면 백그라운드 브리핑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면’이다. 능력 있고 신뢰 받는 대변인이 있다는 전제다. 기관의 조사 및 수사 과정에서는 기관측 실무자도 언론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법적으로 일부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정보들이 이를 통해 언론에게 흘러 들어 가기도 한다. 이런 소스발 정보는 기자에게 아주 좋은 기사 재료가 된다. 이런 정보의 흐름은 조사 및 수사를 받는 기업에게는 불리하고 부정적인 환경을 만드는 위협이 된다. 이런 경우 기업에서도 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백그라운 브리핑을 한다. 기자들이 궁금 해 하는 기관발 정보에 대한 기업의 입장을 기업 대변인이 설명해 주는 방식이다. 기자들을 통해 여론에 영향을 주는 목적의 보도를 만드는 것과 기자들을 이해시키고 교육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후자의 경우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기업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 기업에게 정확하고 적절한 정보만 있다면 기관측 소스의 일부 무분별하고 부적절한 커뮤니케이션 시도를 제한하는 결과까지 생산할 수 있다. 여기에서 조사 및 수사에 대응하는 실무그룹인 로펌과 대변인과의 튼튼한 협업은 핵심이다.
마지막, 길게 보자
기관의 조사 및 수사로 회사의 운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자. 일정 기간이 흐르고 결과가 나오더라도 회사의 사업은 지속가능해야 한다. 조사 및 수사에 대한 승부에만 너무 몰두해서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단기간 몰입하다 보면 중장기적으로 회사가 유지해야 하는 가치가 희석될 수도 있다. 일부 기업이 기관의 대규모 조사 및 수사에 임해서 보다 의연하고 발전적인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도 그러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일환이다. 조사 및 수사는 일시적이고, 사업은 영원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길게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상과 같이 기관의 조사 및 수사에 대응하며 검토해 보아야 할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정리했다. 현장에서 조사 및 수사에 대응하는 실무자들과 의사결정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이 일관된 대응을 가장 어려워한다. 이는 마치 태풍으로 마구 흔들리는 바다에 뜬 배위에서 체스를 놓는 느낌과 같다. 계속해서 체스판이 흔들리니, 체스 말들이 쓰러지기를 반복한다. 일관된 게임이 진행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수록 기업 내부에서는 조사 및 수사 실무에 대응하는 로펌과 커뮤니케이션 그룹 그리고 전체적 의사결정그룹간 3각 협력이 중요하다. 그들만 튼튼하게 엮여 움직이게 되면 체스판이 흔들려도 게임은 진행 할 수 있다. 그들의 협력이 강하면 일희일비가 준다. 반면 일사불란함은 극대화된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안정감 있는 의사결정그룹의 심리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 누구나 불안하고 억울하고 화나고 힘 들지만,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의사결정자들의 담담함은 실제로 아주 큰 가치를 발한다. 모든 이슈 및 위기관리는 정신력이 기반이 된다. 조사 및 수사 대응 커뮤니케이션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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