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슈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침묵은 일견 절대 경계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일부 미디어트레이닝 서적에서도 ‘노 코멘트는 코멘트다(No comment is a comment)’는 말을 쓰기도 한다. 사실 미디어트레이닝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노 코멘트라는 것은 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함부로 노 코멘트라는 표현이나 대응을 하지 말라는 조언을 줄인 것이다. 이번 글에서 다룰 전략적 침묵에 대한 것과는 조금 다른 분야라고 봐야 한다.
미디어트레이닝에서 노 코멘트라는 표현이나 대응을 하지 말라는 조언에 대해 좀더 설명하자면, 만약 화자가 기자의 질문에 답할 것이 없거나, 답해서는 안 되는 주제인 경우에는 자신이 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코멘트 할 수 없는 적절한 이유를 함께 설명하라는 조언이 뒤따른다. 주로 사용되는 노 코멘트성 메시지는 “현재 관계기관의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또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 사실관계에 대하여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정확하게 확인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는 류를 의미한다. 조금 자신감 넘치는 정치권 대변인은 기자 질문에 “답변(논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식으로 노코멘트 아닌 코멘트를 하기도 한다.
이번에 다룰 주제는 전략적 침묵에 대한 것이다. 전략적 침묵과 관련된 대표적 아포리즘을 정리해 보면서 어떤 것이 전략적인 이슈 및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인지를 다시 살펴보자.
침묵은 자신 없는 사람의 가장 안전한 방책
프랑스의 작가 라 로슈푸코가 한 말이다. 이슈 및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는 전략적 침묵과 비전략적 침묵간 서로 다른 기준을 의미한다. 이슈나 위기를 관리해야 할 기업이 일단 침묵한다는 것은 이해관계자들과 공중에게 의심을 받게 되는 단초가 된다. ‘당신네 회사가 떳떳하면 무언가 해명을 하거나 반박을 해야지 왜 가만히 있는가?’하는 비판이 이어진다. 이런 경우 해당 기업에서는 왜 자사가 전략적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략적 침묵을 깨야 할 시기(right timing)를 준비하는 것이다. 준비된 침묵이 일단 전략적 침묵의 기본 형태다.
말이 쓸모가 없을 때에는 순수하고 진지한 침묵이 흔히 사람을 설득시킨다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전략적 침묵을 의미한다. 회자되는 사회적 논란에 있어 자사의 책임이나 관여가 없을 때, 그 논란에 대하여 커뮤니케이션 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 경우다. 반대로 그런 상황에서 기업이 알러지를 일으켜 여러 해명이나 반박을 하게 되면 오히려 전시효과가 생겨 불리한 처지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 이슈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케이스에서는 적용되는 경우가 그리 흔치 않은 조언이다.
시의적절한 침묵은 말보다 설득력 있다
영국의 작가인 마틴 파쿠아 터퍼의 말이다. 이 조언에서 가장 핵심은 ‘시의적절함’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회사가 지금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상황인가? 일단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고 상황을 바라보아야 하는 상황인가? 이에 대한 분별은 이슈 및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첫 단추를 여는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 단계다. 여러 기업들의 실패 케이스를 보면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아야 할 시기에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시기에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거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시의적절한 침묵이란 적절하게 계산되어진 시기에 행해지는 전략적 침묵을 의미한다.
침묵하고 있기 보다 말하는 것이 좋다는 확신이 들 때에만 나는 말한다
고대 로마의 명연설가 카토 (小 카토)의 말이다. 아주 훌륭한 연설가였던 그는 언제나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기본값이라기 보다는 침묵을 기본값으로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침묵의 기본값을 깨기 위한 가장 중요한 판단은 자신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침묵하고 있을 때 보다 더 났다는 확신이 있을 때로만 전제했다. 이슈 및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최초 상황이 혼란스럽고,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우리가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침묵하는 것 보다 ‘훨씬’ 나은 선택인가에 대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확하게 전략적 침묵의 기본 전제에 대한 이야기다.
말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은 침묵해야 할 때도 안다.
고대 그리스의 학자인 아르키메데스의 말이다. 이슈 및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 해야 할 때와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아야 할 때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각 때를 알고 있는 자(기업)가 성공한다는 의미도 전달하고 있다. 실제 이슈 및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현장에서도 커뮤니케이션과 침묵의 때를 가리고, 각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에 의사결정그룹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한다. 경험 많고 노련한 의사결정자들과 정무적 감각이 발달된 조언자 그룹이 협업하여 그런 경지를 만들어 내곤 한다. 이 과정에서 때를 아는 것만큼 훌륭한 역량이 없다.
오직 침묵만이 침묵을 완벽하게 한다
미국 시인 A R 애먼즈의 말이다. 이 또한 이슈 및 위기관리 관점의 전략적 침묵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핵심을 설명하고 있다. 일단 상황적 판단에 의해 전략적 침묵을 의사결정 한 기업에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실행은 완전한 침묵의 유지다. 얼핏 보기에는 침묵이 단순하고 쉬운 대응 방식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 실행해 보면 이슈 및 위기 발생 상황에서 전략적 침묵을 일정 기간 유지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기업내 또는 기업과 관련한 구성원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완전한 침묵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기본값일 수도 있다. 특히 요즘 같은 개인 미디어와 다채널 시대에서는 완벽한 침묵은 과도하게 이상적이다. 어떤 이유에서 든 중간에 깨져버린 침묵은 전략적 침묵이라 하기도 어렵다. 모든 이후 대응의 기반이 함께 깨져버린 것이라 볼 수 밖에 없다.
혀는 정신의 맥박이다
스페인 작가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이다. 이는 전략적 침묵을 깨고 준비된 커뮤니케이션을 본격 실행할 때에 명심해야 할 조언이다. 여기에서 혀로 비유된 것은 이슈 및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준비된 메시지를 의미한다. 이슈와 위기 상황에서 이해관계자들과 공중은 기업의 메시지를 보고 들으며 해당 기업의 생각을 읽는다. 그 메시지가 제대로 된 메시지인지, 문제 있는 메시지인지를 평가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상황을 소멸시킬지 악화시킬지 결정한다. 이슈 및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메시지의 중요성은 전략적 침묵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화룡점정의 역할을 한다. 일정기간의 전략적 침묵을 깨고,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실행 프레임을 바꾸었을 때에는 더욱 더 잘 준비된 메시지를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 기업이 처한 환경에서 기업 정신의 맥박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바보는 말로 알고, 현명한 사람은 침묵으로 안다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말이다. 앞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제대로 준비된 메시지가 부재하거나 부족할 때 상황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과 공중은 화자인 기업을 결국 ‘바보’로 여길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관리가 실패했기 때문에 이슈관리나 위기관리 자체가 성공할 가능성도 줄어 든다. 차라리 적절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 침묵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기업의 케이스도 현장에는 많다. 준비된 커뮤니케이션이란 그래서 중요하다. 메시지를 보고 기업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메시지의 문제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오죽하면 침묵하는 것이 더 낫다는 평가를 받겠는가?
분노하는 사람에게만 정보제공은 필요하다
미국의 위기관리 전문가 에릭 데젠홀의 말이다. 기업이 이슈 및 위기 상황에서 전략적 침묵을 깨고 준비된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할 때 명심해 볼 조언이다. 에릭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분노하는 사람에게만 정보제공은 필요하다. 반면에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보 제공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가 없을 수 있다. (비난만 하는) 그들에게 정보를 주면 또 되받아 칠 것이고, 메시지를 전달하면 비꼼을 당할 것이 뻔하다’고 주장했다. 어지러운 상황에서 이해관계자들과 공중의 여론을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비난을 위한 비난에만 열중해 있는 사람들이 많다면, 차라리 침묵을 택하는 것이 전략적일 수 있을 것이다. 상황 자체에 단순 분노하는 사람들에게는 준비된 정보를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유효하지만, 그 외에는 그렇게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조언이다.
계획 없는 삶은 변덕스럽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의 명언이다. 이슈 및 위기관리 관점에서 볼 때 이 조언은 전략적 침묵의 일관성 있는 실행에 연결되어 있다. 전략적 침묵은 정해진 기간 동안 완벽하게 유지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중간에 깨져버린 침묵은 전략적 침묵이 될 수 없다고도 앞에서 이야기했다. 심지어 최초에는 침묵하다, 이내 침묵을 깨뜨리고, 이후 이해관계자들과 공중의 반응이 극단적으로 변하자, 다시 침묵하는 경우가 있다. 그 후에도 상황에 따라 침묵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다시 침묵을 반복하는 경우까지 있다.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변화되며 장기화된다. 그 와중에 해당 기업의 여러 생존 자산들은 파괴된다. 실적은 곤두박질 치고, 각종 소송과 조사가 이어진다. 경영진들이 소환되고, 소비자들은 돌아선다. 직원들이 곤궁 해 지며, 거래처들이 사라진다. 계획은 결심이다. 계획 없는 삶이 변덕스러운 것은 제대로 결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계획이 이슈와 위기를 관리한다.
이와 같이 전략적 침묵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개인적 그리고 조직적 조언들이 존재한다. 반복적으로 회자되는 전략적 침묵의 구성 요소들은 적절한 상황판단, 계획으로 굳어진 결심, 준비된 커뮤니케이션, (전략적 침묵 중 마련된) 전략적인 메시지, 일관성 있는 침묵 유지 실행, 그리고 건전한 기업 정신과 철학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략적 침묵이란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적극적 대응 커뮤니케이션 보다는 훨씬 힘들고 어렵다는 점이다. 절대 쉽게 생각해 의사결정해서는 안 되는 대응 방식이다. 전략적 침묵은 중간에 어떻게 든 깨질 수 있다는 전제를 기억하며 의사결정하고 유지 실행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한 전략적 침묵 기간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입을 봉하는 함구령의 기간이 아니다. 언제 어떻게 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으로 대응 프레임을 전환시켜야 하는지를 미리 계획하고 실행을 준비하는 기간이어야 그 의미가 있다. 전략적 침묵은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의 완성을 위한 전략적 지연 또는 이상적 시점 선택의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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