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에게 위기나 대형 이슈가 발생되었을 때, 그 기업은 자사 스스로 어느 정도는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도 상당기간 업력이 있는데, 위기가 발생했다고 자사가 전혀 체계 없이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 듯하다. 그러나 이내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구성원들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대응을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평시 그런 믿음이 실제가 아니라 막연한 상상이나 기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금은 단언적인 이야기 같지만, 준비 없는 기업은 위기관리에 무조건 실패한다. 평시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적절한 위기관리 조직을 교육하고 훈련하지 않았던 기업은 위기와 마주하면 항상 쓰러진다. 이는 아무 준비나 훈련 없던 일반인이 숙련된 복싱 챔피언과 싸우려 링에 올라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승패는 아주 확실하다.
상당히 많은 기업들은 위기가 발생된 직후부터 준비를 시작하려 한다. 이것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려 한다.’ 실제 위기관리를 위해 기업 내부에 들어가 보면, 이렇게 준비를 시작하려는 논의를 하다가 초기 대응 기회를 상당부분 놓쳐 버린다. 위기가 일단 발생되면 시간은 관련 기업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가서 깨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는 기업은 대부분 대응이 늦다. 내부에서 부랴부랴 시작한 준비와 의사결정이 실행으로 연결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늦게라도 실행을 하는 기업은 나은 편이다. 그보다 더한 기업은 영원히 초기 대응 기회를 놓치고, 별 대응을 하지 못한다. 외부에서는 해당 기업이 침묵(무시)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여론은 더욱 악화된다.
그러한 침묵이 혹시 전략적 침묵일수도 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전략적 침묵과 때를 놓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 간에는 아주 정확한 다름이 있다. 전략적 침묵을 하는 기업은 상황을 실시간 파악하고 있으며, 대응 준비를 해 놓는다. 커뮤니케이션 창구에 대한 관리도 확실하다. 잡음이나 이견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때를 놓쳐 그냥 입을 닫고 있는 기업은 상황 파악이나 대응준비가 의미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창구가 여기저기 뚫려 자사가 원하지 않는 정보와 의견이 술술 새 나간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비슷하지 않는 내부 상황이 전개된다.
안타깝게도 평시에 준비하지 않았고, 위기관리에 대한 관심이나 경험도 없었고, 위기관리 조직이라는 것은 당연히 처음 듣는 이야기인 기업의 경우는 위기 발생 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망연자실하게 최악의 상황을 기다리면서 전전긍긍하는 것이 전부일까? 이번 편에서는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기업을 위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응급조치 사항들을 정리해 본다. 이는 ‘응급조치’라는 점을 감안해서 이해했으면 한다.
첫째, 핵심 의사결정자들을 한자리에 모을 것
전화, 메신저, 이메일, 내부통신망, 화상미팅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다. 최대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오프라인 장소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 이 모임에는 필히 최고의사결정자가 위치해야 한다. 오프라인에서 한자리에 동시에 모여야 하는 이유는 정확하고 신속한 상황파악을 위해서이다. 상황파악 이후에야 대응 전략이 세워지고, 실행안이 정리된다. 위기 직후 대부분 한자리에 신속하게 모이지 못하거나, 최고의사결정자가 그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위기관리와 커뮤니케이션은 90프로 실패한다.
둘째, 외부 전문가들을 그 모임에 조인 시킬 것
이런 경우 회사와 전문가간 통화는 콜드콜(모르는 상대에게 연락해 문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최대한 신뢰할 수 있는 인맥을 통해 가용한 외부 전문가들을 모임에 참석시켜야 한다. 이 전문가들은 상황을 처음부터 파악하고 있는 경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외부 시각에서 현재 상황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절대로 처음 미팅에서 “우리 회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묻지 말자. 참석한 전문가들에게 상황과 관련해 내부에서 공유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전문가들을 관상가나 점술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셋째, 초기 커뮤니케이션은 일정기간 홀딩 할 것
준비되고,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탄탄하게 쌓아 놓은 기업은 보다 신속하게 초기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자사는 그런 준비와 투자가 없는 회사라는 것을 기억하자. 위기 직후 언론으로부터의 전화를 누가 받아야 하는지도 정해지지 않았고,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경험도 없다면 더욱 더 홀딩(시간을 버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상황을 파악 중이며,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회사 입장을 알려드리겠다.”면서 연락처와 기자 정보를 정리해 놓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에서 다시 강조할 것은 답변하지 말고, 질문을 접수해 내부 의사결정 그룹에 공유하는 것이 핵심이다.
넷째, 홀딩 한 커뮤니케이션을 가장 먼저 의사결정해 대응할 것
기자들이 어떤 사안을 궁금 해 하는지 알았고, 이를 적절하게 홀딩 해 놓았다면, 그 다음은 그 질문에 대한 회사의 답을 마련하는 것이다. 초기 입장문을 길고 장황하고 구체적으로 쓰고 싶어하는 본능은 조금 미뤄 놓자. 일단 초기대응에서는 간단하게 핵심 메시지 몇 줄이면 충분하다. 이후에 바로 입장문이나 해명문 같은 조금 장문의 메시지를 공유하거나 게시할 수도 있으니 초기 메시지는 짧게 정리하자. 일단 기자들에게 전달해야 할 짧은 문장에 회사의 핵심 입장과 계획을 제대로 담아야 한다. 이에 대한 의사결정에도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소요된다. 빨리 정리해야 한다.
다섯째, 대변인을 한명으로 임명해 대응에만 투입할 것
내부에 홍보실이 없다면, 가장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고위임원이 회사의 대변인(커뮤니케이션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 일단 대변인 역할을 맡았다면,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아 언론 문의 대응에만 집중해 임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기자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함께 정리해 준다면 더 좋다. 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기자와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대변인의 임무다. 기자들이 새로운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해서는 일단 홀딩해서 다시 시간을 벌어 답을 정리하자. 많은 부분 겹치는 질문은 준비된 답변으로만 갈음하자.
여섯째, 상황이 변화해 간다고 전선을 넓히지 말 것
일단 아무 준비가 없고, 별 대응 자산이나 네트워크가 없으니, 커뮤니케이션 창구와 전선(frontline)은 한두개로 집중해야 한다. 이를 늘리면 꼭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효과가 배가되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아무 준비 없는 기업이 창구를 늘리면 그에 대한 효과는 반감한다. 선택해서 집중한다고 생각하자. 일반적으로 그와 같은 기업은 언론을 선택해 집중한다. 일부 스타트업이나 셀럽들은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채널을 활용하는데, 일반 기업은 언론이 보다 우선이다. 신뢰와 제3자인증이라는 여러 가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초기 대응 과정과 동시에 실행을 준비할 것
앞에서 이야기한 조치들이 한 줄 바톤 달리기 식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의사결정자들이 앞 단계를 바라보면서 하나씩 의사결정 해 나가는 것이 아니다. 마치 8명이 단체로 바톤 달리기를 하듯 언론 문의를 접수하는 팀은 팀대로, 상황분석에 참여하는 팀은 팀대로, 대변인과 대변인을 지원하는 팀은 그 팀대로, 동시에 상호지원하면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 앞의 프로세스들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특정팀은 실제 어떤 실행을 해야 할 것 인지 의사결정해 준비해야 한다. 앞의 프로세스는 그 진짜 실행의 준비를 지원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활동이라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서 진짜 실행이란, 위기상황과 관련된 기자회견이 될 수도 있다. 해명문이나 반박문, 사과문을 게시하거나 공유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법적으로 준비해 대응하는 것도 실행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일사불란 한 실행을 준비하는 것이 포함된다. 대응 주체는 CEO가 될 수도 있고, 홍보실이나 (홍보실 부재 시)관련 부서, 법무부서, 인사부서, 영업부서, 생산부서, 마케팅부서 등도 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핵심은 동시 실행이 함께 이루어져 실행 개시 까지의 시간 소모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덟째, 만약 어떤 실행이 효과적일지 의문이면, 전략적 침묵으로 갈 것
초기에 핵심 메시지를 정해 기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했다면 그것으로 초기대응을 마무리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상황이 상당히 복잡하고, 자주 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자사가 제대로 스탠스를 취하기 어렵다면 일단 정리 될 때까지 전략적 침묵을 선택하면서 시간을 벌어 보는 것이다. 이는 링 위에 올라간 선수가 상대측 역량을 떠 보고 난 뒤, 풋워크를 통해 계속 빠지면서 아웃 복싱을 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전략적 침묵 기간 동안에도 기본적 대응방안에 대한 정리와 실행준비들은 다양하게 완료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략적 침묵은 단순하게 입을 닫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대응을 위해 시간을 벌며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과정에서 창구 관리/통제는 필수다.
아홉째, 가능한 정보 라인을 확보해 관리할 것
기억하자. 자사는 평소 아무 준비를 하지 않았다. 담당기자들에 대한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CEO나 임원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기자들이 전부일 수도 있다. 갑자기 친한 기자를 만들 수도 없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도 의문일 것이다. 이렇다 해도, 가능한 상호 신뢰할 수 있는 기자를 몇 명이고 확보해 접촉하는 것이 좋다.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도 되고, 어떤 접근을 해서라도 유의미한 커뮤니케이션 라인을 확보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이 경우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신뢰다. 해당 라인을 통해 전달하는 정보는 절대 정확하고 거짓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그런 정보 선별과 정리가 어렵다면, 이런 접근 방식도 포기하는 것이 낫다.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정보의 전달은 더욱 더 회사를 그로기 상태로 몰 수 있다. 여기 저기 신뢰 할 수 없는 기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불완전한 한 정보를 흘리고 뿌리게 되면 아주 크게 실패한다.
열 번째, 한 숨을 돌렸다면 이때라도 조직을 완성시킬 것
대응 조직을 빨리 제대로 갖추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위기관리는 하루 이틀 싸움이 아니다. 길게는 수개월에서 한 해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초기에는 뭐든 빨리 빨리 하다가도 시간이 며칠 지나면 대부분 구성원의 긴장감은 풀어진다. 그럴수록 빨리 위기관리에 필요한 전문가들(로펌, 위기관리 회사, 커뮤니케이션 회사, 각종 자문사)을 사내 의사결정그룹과 한 팀으로 공식화해야 한다. 창구 대변인을 재훈련시키고, 내외부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를 함께 다듬어야 한다. 법적 대응과 커뮤니케이션 대응은 하나로 조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회사와 로펌 및 자문사들이 함께 모여 정보와 의견 그리고 실행 조율을 상의해 나가야 한다. 경험상 이런 대응팀의 안정화는 위기 발생 이후 최소 1-2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빨리 시작할수록 결과는 낫다.
앞의 열 가지 응급조치들은 아무 준비가 없었던 기업에게 적용되는 가이드라인이다. 대부분이 당연하고 간단한 것처럼 느껴 질 수 있겠지만, 도입부에서 언급한 대로 그 조차도 절대 쉽지는 않다.
현실에서는 위기가 발생되면 상황 파악을 못하며 시시각각 구성원의 감정만 오르락 내리락 반복한다.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어려워한다. 특히 최고의사결정자가 첫 미팅에 참석하지 않는 비율은 생각보다 높다. 가장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주원인이다.
외부전문가들을 콜드콜로 모아 한자리에 앉힌다는 것도 사실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처음 본 그들을 어떻게 믿고 이해할 것인가? 반대로 그 전문가들은 회사분들을 어떻게 보고, 적응할 것인가? 언론 창구도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초기 창구가 여기저기 뚫려서 정리되지 않은 메시지들이 흘러 나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때문에 공분을 더욱 자극해 버린 케이스도 수없이 많다. 창구단속이 쉽다면 왜 그 회사들이 고통받았을까?
그 와중에 훈련받지 못한 채 투입된 대변인은 어떨까? 노련한 기자들의 압박성 질문을 끝까지 견뎌내면서 준비된 커뮤니케이션만 해 낼 수 있을까? 그 외 상당수 의사결정과 실행준비는 팀별로 잘 배분되어 진행될까? 그에 대한 컨트롤타워 형식의 감독은 어떻게 하고?
앞의 열 가지 조치는 말 그대로 응급조치일 뿐이다. 초기 상처를 악화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관리하며 시간을 벌어 제대로 된 치료를 기대하기 위한 조치라는 의미다. 그 조차도 하나 하나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런 응급조치는 한번이면 족하다. 매번 위기마다 응급조치로만 대응하는 기업이 되지는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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