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가 주축이 돼 국가적 위기상황을 33개 유형으로 분류해 부처 별 실무 매뉴얼과 현장 별 구체적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위기관리센터도 청와대가 종합적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출범 직후 전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과 위기관리 매뉴얼이 과잉이고
실효성도 없다며 관련 기구를 대폭 축소했다. [한국일보]
당시는 2004년이었다. 우리 모두는 매뉴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남들은 몇 번 가보지 못할 곳의 경내에 표찰을 달고 들락거렸다. 당시에는 무언가 큰일을 하고 있다는 자랑스러움이 있었다. 비록 그
일을 마무리 짓다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지만 아쉬움만큼 애정도 컸다.
만 5년이 지났다. 그 당시
그 매뉴얼들은 이미 사망했다. 사실 매뉴얼의 생존기간은 납품일 당일뿐이라는 이야기가 맞다. 원래 거의 모든 매뉴얼은 하루살이다. 한국일보 사설을 보니 정부에서
다시 위기관리 시스템을 수립하고 매뉴얼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한가지만 제안하면…
매뉴얼을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매뉴얼을 하향식으로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는 거다. 매뉴얼을 정 만들어야 한다면 먼저 실제 현장에서 현장 인력들이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그에 따라 초기 조치사항들을 정리해서 그 다음 상위그룹으로 넘기고 집대성하는 상향식으로 만드는 게 좋다.
진짜 살아있는 매뉴얼을 만들려면 그렇게 하는 게 좋다.
더욱이 그 매뉴얼을 야근할 때 베개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면, 그 매뉴얼을
기반으로 실제 대응 훈련을 수십에서 수백 번 실행하는 것이 좋다. 그 매뉴얼에게 지속적인 CPR을 하라는 거다. 이를 통해 매뉴얼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백년이 걸려도 좋다.
힘들게 지어 놓았던 모래성을 허물더니 또 다른 모래성을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모래성은 모래성일 뿐이다. 모래성을 바라보면서 저 모래성이 우리를
지켜줄 거라는 페티시즘에서 떠날 때도 됐다. 제발 그렇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