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자사에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최고의사결정권자인 CEO는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혼란이나 무리수 없이 순리에 따라 문제를 풀 기회를 빨리 잡을 수 있다. 정상기업으로 분류되는 일부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는 공히 CEO의 언론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이 있다. 반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같은 경우에는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언론을 제대로 된 이해하고 있는 CEO가 매우 드물다.
이는 특정 기업군과 CEO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진화 기간과 사회적 책임과 노출 규모 등 여러 사회적 환경에 의해 대기업군 CEO들은 보다 빠른 발전을 한 것뿐이다. 이미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여러 번에 걸쳐 사회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얻은 많은 교훈들로 각 회사 CEO들은 훈련되었다. 그런 반복적 경험과 교훈, 훈련이 쌓여 지금과 같은 CEO 언론관을 만들어 낸 것이다.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임원으로 일하다 중견이나 중소기업 대표로 자리를 옮긴 CEO들은 해당 기업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언론 이해보다 훨씬 더 높은 언론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대로 스타트업 등에서 일하다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경영진의 경우에는 기존 대기업의 일반적인 언론관을 낯설어 하기도 한다. 오히려 보수적이라 보거나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까지 받고는 한다. 상호간에 차이와 다름이 있다는 의미다.
이번 주제로는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CEO들이 보이는 공통 증상들을 알아본다. 한가지 논의전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언론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의미는 ‘CEO가 기자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들과 매우 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그냥 CEO가 기자들과 막역한 사이라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하소연하거나 일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지인 기자들을 활용할 수는 있다. 일부 친한 기자는 회사 편을 들어 우호적 기사를 내 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커넥션이 곧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CEO가 보이는 주요 증상들은 무엇일까? 회사에 부정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특히 그런 이해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경향이 있으므로 부정적 상황에서 보여지는 증상들을 꼽아 본다.
첫째, CEO께서 부정기사나 보도를 나가지 못하게 하라 하신다
기사를 빼라. 못 나가게 하라. 보도를 막아라. 방송 안되게 하라. 이런 지시를 하는 CEO는 언론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집중적으로 해명을 하고,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초기 취재를 완화시키거나 기사나 보도 톤앤매너를 조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못 나가게 하라는 지시는 그런 경우에도 불가능하다. 초대형 기업들은 기사나 보도를 쑥쑥 빼는 것 같던데 왜 우리 홍보실은 빼지 못하는가 하고 묻는 CEO도 사실 언론을 잘 모르는 분이다. 초대형 기업도 기사나 보도를 그렇게 쉽게 쑥쑥 빼지는 못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사는 그런 초대형 기업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언론을 이해하는 CEO는 현재 어떤 언론사 어떤 기자가 무슨 주제로 취재를 하고 있는지를 먼저 심도 있게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부정 기사나 보도 대응에 있어 목표를 세운다. 어느 주제나 어느 앵글은 가능한 피했으면 한다는 논의로 대응을 시작한다. 최선을 다하지만 해당 기사나 보도를 싹 빼겠다는 생각이나 지시를 하지는 않는다. 언론을 잘 이해하는 CEO는 홍보실과 함께 주로 데미지 컨트롤을 위한 접근을 지시한다.
둘째, CEO 자신이 언론사 VIP에게 연락해보겠다고 하신다
평소에 A매체 회장이 내 친구야. B방송 사장이 선배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CEO들이 주로 이슈나 위기 발생 시 언론사 윗분들에게 전화를 많이 한다. SOS 전화를 하는 셈이다. A매체 기자가 현재 자사에 대한 부정적 취재를 하고 있는데, CEO가 A매체 윗분들에게 전화를 한다고 해당 취재가 사라질 수 있을까? 전화를 받은 그 언론사 윗분들은 이후 취재하는 그 기자를 불러 취재를 중단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요즘 같은 언론사 분위기에서 그런 취재 중단 지시가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CEO라면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단순 하소연을 하고 어떤 도움이나 해명을 시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CEO의 그런 전화들이 많아질 수록 해당 기사나 보도 대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 기사나 보도가 나가기 전 여기저기 언론사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고, 압력도 아닌 압력을 행사하려 하면서 노이즈만 대대적으로 일으킨 기업들이 실제로도 많다. 그후 그들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을까? 글쎄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CEO라면 심사숙고해서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딜 주제를 가지고 핵심 인사를 선택적으로 접촉하려 노력한다. 지인이라고 해도 가능한 말을 아끼고 걸려온 전화에도 주로 들으려 한다. 여러 유력인사들의 조언을 듣고 겹치는 핵심 인맥을 찾으려 한다. 노이즈 보다는 조용하게 타겟에게 접근하려 한다는 점이 다르다.
셋째, CEO가 여기 저기에서 이야기를 듣고 언론대응을 지시하신다
일단 먼저 정확하게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가 있다. 특정 이슈나 위기가 발생하고 난 이후 기사나 보도를 보고 연락해 오는 지인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언론에서 다룬 피상적 내용들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심도 있는 대응이나 전략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그들이 원래부터 다양한 이슈나 위기관리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아닐 가능성도 높다. 정무적 감각이나 예전 일부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 할 수는 있지만, 그 조언의 수준이 CEO에게 새로운 경우는 드물다.
해당 이슈나 위기의 배경이나 세부 정보를 잘 알고 있지 않은 비전문가들이 CEO에게 전하는 조언은 최대한 CEO가 개인적으로 필터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하나 하나를 매번 위기대응팀에게 전달하고 이것도 시도해 보라 저것도 해 보라 하는 지시를 하면 상황을 관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CEO는 그것이 무엇이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겠지만, 이슈나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 우선순위를 따져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 저것이라는 개념이 들어서서는 안된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CEO라면 최초 정한 이슈나 위기관리 목적에 기반하여 조언을 분별할 것이다. 그것을 실행하면 현재의 위기관리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인가? 그것을 하지 않으면 반대로 위기관리 목적 달성으로부터 심각하게 멀어지게 될 것인가? 그것을 꼭 지금 실행해야 할 것인가? 아니라면 언제 실행해도 괜찮을 것인가? 등등에 대한 고민을 할 것이다.
넷째, CEO가 앞장서 돌아다니신다
알고 있는 지인 기자들을 죄다 만나서 하소연을 하는 경우다. 심지어 현재 취재중인 기자나 PD를 직접 만나려 시도하기도 한다. 그 기자나 PD와 친한 지인을 찾아 마치 비즈니스 미팅 같이 알음알음 기자와 PD에게 접근한다. 심지어 그런 개인적 어프로치를 회사 홍보실이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다. 홍보실이 일부 알고 있어 위험성을 이야기해도 CEO가 귀기울여 듣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CEO들 상당수가 취재 중인 기자나 PD에게 ‘일용할 양식’을 준다. 기자의 질문에 길고 긴 답변을 해 완성도 높은 기사를 선물하고, PD의 질문에 답변하는 CEO의 모습이 방송을 그대로 탄다. CEO가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했으니, 기자나 PD도 비즈니스적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CEO는 절대 함부로 개인이 나서지 않는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홍보실이 존재하는 이유를 기억한다. 경험 많고 훈련된 홍보실을 내세워 언론과 공식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한다. 기자를 개인으로 보지 않고 언론사를 대표하는 공인으로 바라본다. 회사와 회사가 그러하듯 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나 하나 제대로 하려 노력한다.
다섯째, CEO가 예산을 활용하라 하신다
기자에게 돈을 주라 지시하는 CEO는 한 십년전까지는 일부 존재했던 것으로 안다. 취재를 막으려 예산을 동원하는 경우는 아직도 존재한다. 언론사 광고국을 통해 정보에 접근하려 하기도 한다. 언론사 데스크에게 광고로 딜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소규모 매체들의 경우에는 그런 옛적 관행이 존재하는 곳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모든 언론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CEO라면 그는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언론을 이해하고 있는 CEO라면 취재 과정에서 갑자기 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기자나 데스크에게나 돈으로 딜을 하자는 제안은 하지 않는다. 다른 라인을 통해서도 공개적으로 시도하지 않는다. 전문성을 가진 홍보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순리대로 문제를 풀려 노력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홍보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CEO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여섯째, CEO가 처음부터 로펌들을 불러 언론 대응을 지시하신다
대형 로펌은 사실 대형 언론사에 대한 법적 대응을 맡는 것을 매우 껄끄러워한다. 이미 해당 로펌에서는 대형 언론사 한두 곳을 대리하고 있기도 하다. 대대적으로 시끄러운 대언론 소송을 맡는 것이 로펌 차원에서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큰 수입이 되는 소송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잘 모르는CEO는 초기부터 로펌들을 불러 대대적인 언론사 상대 소송을 지시하고, 취재하는 데스크와 기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법적 조치를 강구하라 지시한다.
언론 대응은 홍보실의 역할이다. 아무리 뛰고 나는 로펌도 자사 홍보실만큼 언론 대응을 잘 하기는 어렵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CEO는 홍보실의 조언을 먼저 듣고, 홍보실의 전략적 대응과 발 맞추어 로펌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언론 대상 소송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소송을 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송이나 그로 인한 판결을 최종 목표로 두지 않는다. 언론을 잘 아는 CEO는 그런 법적 제스츄어를 통해 언론과 딜을 성사시키려 한다. 로펌을 단순 송무 대리인으로 활용하기 보다, 협상과 딜을 만들어내는 중간자로 활용하려 한다. 회사와 홍보실, 로펌 그리고 언론이 상호간 윈윈하는 지점을 함께 찾는 것이다.
일곱째, CEO가 자사 홍보실을 못 믿겠다 하신다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특히 그와 관련한 부정 기사나 보도의 취재가 진행 중일 때, 가장 힘들고 가장 대응에 심혈을 기울이는 부서가 바로 홍보실이다. 그런데 CEO는 왜 그들이 제대로 대응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생각할까? 왜 그들이 대응에 있어 무력하다고 판단할까? 언론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CEE들은 그럴 때 일수록 홍보실에게 회사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묻는데, 왜 언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CEO는 홍보실이 무력하다고만 생각할까? 그간에는 무엇이 다를까?
그런 다름 때문에 기업 CEO를 비롯 이슈나 위기 발생 시 의사결정을 내리는 그룹은 평소 언론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이전과 현재 언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계속 새롭게 업데이트 해 이해해 나가야 한다. 부정기사나 보도에 대응했던 기업들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서 어떤 것이 유효했고, 어떤 것이 무리수였는지를 판별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사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언론 대응에 성공할 수 있다.
CEO인 자신이 언론사 부장들을 모두 알고 있으니 언론을 나만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과 같이 기자들과 친한 것과 부정 이슈나 위기 발생 시 대응해야 할 언론을 잘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CEO와 기자가 친한 것을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본다면, 부정 이슈나 위기 시 취재 상황에서는 개인의 관계는 사라지고, 회사와 회사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자. 자꾸 그 속에 개인의 관점을 투영하거나 개인간 관계에 주로 의존하는 비정상적 어프로치를 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자.
무엇은 해야 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먼저 이해해 보자. 그렇게 하기 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평소에는 문제없던 것이 이런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조언에도 공감해야 한다. 회사에서 가장 공적 대응 경험이 많은 홍보실을 무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을 통해 제대로 언론을 이해하고 있는 CEO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회사가 성공적으로 이슈와 위기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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