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 기고문]
통제가 곧 관리라는 개념이 사라져 간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들의 최근 위기관리 케이스를 보면 뚜렷하게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기업이 기업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위기 사례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기업이 내부 임직원을 통제하지 못한다. 내부 정보의 흐름 또한 통제하지 못한다. 내부 기록을 통제하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관행이나 습관도 통제하지 못한다. 거래처는 물론 여러 파트너사도 통제 대상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이에 더해 기업이 통제할 수 있는 외부 이해관계자나 미디어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언론을 어떻게든 관리해 보려던 노력은 이미 옛 무용담이 되었다. 경찰, 검찰, 국세청, 식약처, 관세청, 국회, 금융관련 기관 어느 하나도 예전 같은 통제나 관리가 여의치 않다.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라는 곳은 또 어떤가? 처음부터 통제라는 개념과는 멀었던 곳들이다. 인플루언서나 여러 빅마우스들은 통제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물론 ‘일부 가능하다’ 또는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기업도 아직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 시각에서 모두를 자사의 의지대로 일사불란하게 통제할 수 있는 기업이 존재할 수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대부분은 ‘최대한 가능한 대로 해보자’ 또는 ‘필요한 방법을 찾자’하는 수준에서 여러 통제불가능성을 관리하려 애 쓸 뿐이다.
그러나, 통제 불가능한 것들을 가지고 위기를 관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보인다. 위기관리라는 것이 관리 방식을 통해 최대한 부정적 변수를 제거해 나가는 일인데, 통제되지 않는 수 많은 변수들을 가지고 위기를 관리한다는 것은 참 웃긴 말이다.
통제를 전제해서 쓰여진 매뉴얼과 교과서
통제되지 않는 것은 절대 관리되지 않는다. 심지어 통제되는 것을 가지고도 제대로 된 관리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많은 위기관리 매뉴얼이나 교과서들은 통제가능성을 전제로 쓰여져 있다. 예를 들어 ‘위기관리를 위해 위기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구성원들은 훈련 시키라’는 조언을 보아도 그렇다. 이 조언에는 지명 받고 훈련 받은 위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이 통제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상당부분 반론이 나온다. ‘내가 왜 위기관리위원회에 소속 되어야 하지?’ ‘평소 일도 많아서 매일 야근 하는데 위기관리 업무까지 맡으라면 좀 곤란한데’ 이런 생각들이 있을 수 있다. 통제불가능성이다. 훈련을 받고도 ‘이 훈련을 받아서 어디에 쓰라는 건가?’ ‘이 한번 훈련으로 내가 제대로 위기관리를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하는 생각도 있을 수 있다. 이 또한 통제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대표이사도 통제불가능하긴 마찬가지일 수 있다. 위기관리 조언에 의하면 ‘필요 시 CEO가 나와서 문제를 해결 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라’ 한다. 그런 조언을 들은 대표이사가 마음 속으로 ‘나는 기자나 외부 사람들하고 진행하는 이런 부정적 커뮤니케이션으로 기록에 남기 싫은 데’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커리어에 큰 오점을 남기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완전한 통제불가능성이다. 대표이사가 외부로 나서기를 꺼려 하는데, 억지로 그를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부는 이미 통제불가능 그 자체
직원들이 쓰고 공유하는 블라인드 앱에 들어가 보자. 어디에 통제가능이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있을까? 아무리 감사팀과 법무팀이 내부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지 말라 해도 소용 없다. 정보유출을 적발한다고 하는 다양한 수사 내용까지도 외부로 유출된다. 유출자를 발본색원하겠다는 그 의지가 다시 비판 받게 된다.
직원들이 가지는 퇴근 후 술자리는 통제가능 할까? 그들이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에서 하루 종일 떠들어 대는 내용들은 통제가능 한가?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통제해야 하며, 얼마나 그런 노력이 가능할까?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어떤 기업의 홍보팀장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었을 때 창구를 홍보실로 일원화 하라는 요청도 종종 무시됩니다. 그걸 함구령이나 내부에서 말을 맞춘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임직원이 많습니다. 심지어 홍보실이 직원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든다는 비판까지 나오곤 합니다.” 이게 현장의 이야기다. 통제되지 않는 것이다.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어떤 직원이 회사관련 한 내용을 자기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지인이 알려와서 해당 게시물을 내려달라 이야기했거든요. 그랬더니 자기를 회사에서 감시하는 거냐고 오히려 화를 내고 사표를 낸다는 둥 항의를 하더라고요.” 이런 케이스들이 늘고 있다는 하소연들이 많다.
내부 교육이나 훈련 내용도 이제는 외부로 흘러나가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함부로 직원이나 내부 구성원들을 통제하려 했다가는, 아니 통제하려는 시도나 의지만 가지고 있어도 문제가 된다. 위기관리에 참여해야 하는 임직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위기관리 업무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새롭다.
더욱 통제 불가능한 외부 환경
뭔가 통제 할 수 있어야 상황을 관리할 것 아닌가? 위기관리 현장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여기저기 나온다. 문제가 불거진 뒤 수천에서 수만 건씩 치솟는 트위터, 커뮤니티 게시물들은 아예 포기한지 오래다. 유투브 영상이나 각종 종편 방송 내용들이 확산 공유되는 것도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지 오래다.
소위 물타기나 밀어내기 같은 온라인 기술이 적용된 지 한참이지만, 항상 개운하지가 않다. 몰려드는 밀물을 양동이로 퍼내는 기분이다. “윗분들이 어떻게든 해보라 하시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작업입니다. 실제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하는 실무자들이 상당수다. 무언가 해서라도 작은 변화를 보여야 윗분들이 위기관리를 그나마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주 예전 가판에 떴던 기사를 밤늦게까지 네고 해서 가판에서 빼내던 추억과도 비슷한 현상이다. 일단 나왔던 기사를 빼 내었으니 홍보실이 할 일은 한 것이다라는 자위가 당시 실무자들의 위기관리 목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언론을 비롯한 모든 여론 기반의 미디어는 통제 불가능한 것이다. 일부 기사를 빼고 수정하고 하는 것이 진짜 위기관리였는지, 그를 통해 언론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 생각했는지 물으면 실무자들이 확신에 찬 답을 하지 못하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흥미로운 것은 수 십 년 전에도 미국을 비롯한 해외 위기관리 서적에는 ‘미디어는 통제할 수 없다. 통제해서도 안 된다’는 개념이 기반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그런 전제를 아마추어라고 손가락질 하던 실무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런 손가락질은 사라져간다. 진짜 통제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론을 감히 통제?
여론을 통제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매력적이고 강력한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권위주의 독재 정부에서는 매번 여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기업들도 그런 개념을 기반으로 일부 여론을 움직여 보거나, 제한 하려는 시도를 함께 하기도 했다. 아주 예전 이야기다. 지금은 어떤가?
여론이 사회적 공분 수준으로 치달아 큰 곤욕을 치른 기업이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이 답이 될 것이다. 오너나 대표이사가 물러나야 했던 케이스들도 많다. 대대적 배상과 개선책을 발표해 가며 머리를 조아리는 경우가 이제는 일반화 되었다. 비판 여론을 잠재워 보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럼에도 여론의 공분으로 위기관리에 실패한 일부 경영진들은 ‘초기 여론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곤욕을 치렀다. 초기에 제대로 여론만 관리했더라면 그렇게까지 최악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시각은 자사가 여론이라는 어마어마한 힘을 통제 가능한 대상이라 보는 것이다. 이런 시각이야 말로 현실을 억지로 외면한 것일 수 있다. 여론은 통제 불가능하다.
비판 여론을 관리하는 것과 여론을 통제한다는 개념은 전혀 다른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비판 여론을 관리하는 것 조차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여론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하는 기업들의 위기관리 시도가 여러 통제불가능성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늘어난다. 내외부 관계자의 뒷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추가적 내용이 고발되기도 한다. 여론을 향한 관리 시도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난타전으로 번지기도 한다. 여론을 대상으로 하는 위기관리란 단순하거나 쉬운 것이 아니다.
위기 원점을 통제하라고요?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원점을 먼저 관리하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 말이 쉽다. 만나주지도 않고, 만나는 경우 더욱 더 격렬해지고, 만나서 하는 모든 이야기가 언론이나 온라인에 올라오는 경우 이런 원점을 어떻게 통제하거나 관리하라는 이야기인가?
자칫 아마추어 같은 생각을 하고 진정성만 가지고 원점을 만나 커뮤니케이션 하는 경우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더라. 사람이 제일 무섭더라. 성악설을 믿는다. 이런 이야기가 위기 시 원점을 관리하는 업무를 해 본 직원들의 하소연이다.
위기관리 명언 중에 ‘목욕 욕조에 물이 넘치기 시작하면 마른 걸레를 가지러 가기 전에 수도 꼭지를 잠그라”는 말이 있다. 이 명언의 비유에서 ‘수도꼭지’가 바로 원점이다.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채 아무리 마른 걸레를 쌓아 놓고 닦아 내도 넘치는 욕조를 감당 해 내기는 어렵다.
어떤 기업에서 생산시설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 계속 문제 제품이 나왔다. 소비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 위기관리 미팅이 열렸다. 앞 서와 같이 수도꼭지를 잠그자는 의견이 나온다. 문제의 생산시설을 일단 멈추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이다.
그러나, 최고경영진은 아직까지 소비자 불만 제기 수가 적고, 해당 문제가 법적으로나 안전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아니기 때문에 생산과 판매를 중단할 수준은 아니라는 의견을 낸다. 사실은 그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고, 성과를 맞추지 못하게 되면 자신의 인사가 불리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내부의 위기원점도 통제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다. 원점은 통제 불가능한 것이 당연해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어떻게 위기관리를 해냐 하나?
다시 아주 예전 해외 국가에서 쓰여진 교과서와 매뉴얼들을 좀더 꼼꼼하게 읽어 보자. 우리가 잊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투명하라. 거짓말 하지 말라. 더욱 더 커뮤니케이션 하라. 신속하게 하라. 이런 조언들을 기억해 보자.
이런 부분이야 말로 통제가능성을 전제로 한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미래의 위기관리라는 것이 어때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팁들이다. 투명하라는 조언은 문제 될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평시에 돌아보고 문제 될 부분을 스스로 개선하라는 의미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내부 문화를 만들라는 조언이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조언은 더 나아가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나 문제를 아예 만들지 말라는 의미다. 거짓말 해야 하는 상황이나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급한 통제와 관리가 필요해진다. 이 또한 평시 돌아봄의 주문이다.
더욱 더 커뮤니케이션 하라는 조언은 전략을 가진 창구들이 전략대로 움직이라는 의미다. 위기 시 커뮤니케이션 량이나 빈도는 주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 자체가 사람의 본능이다. 그런 일반성과 본능에 반해서 더 많고 자주 커뮤니케이션 하라는 조언은 전략을 가지라는 의미다. 전략에 기반해서 자사의 투명성과 진실을 더욱 더 커뮤니케이션 하라는 의미가 된다.
신속하게 위기관리하라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조직이 신속하게 움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신속하게 관리될 수 있는 위기만 만들라는 의미도 된다. 의도를 가지고 위기를 만들어 내지 말라는 것이다. 심각한 수준까지 위기를 숙성시키지 말라는 의미다. 뻔히 관리할 수 있는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아 폭발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통제. 그리고 그 통제를 기반으로 하는 관리. 위기 시 가장 필요한 두 가지 가치는 어떻게 보면 평시 돌아봄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나가는 노력과 대체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평시 기반이 조성된다면 위기 발생 시 누구도 어떻게도 통제할 이유가 없는 위기관리 환경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가 투명하고, 떳떳하게 철학과 원칙에 따라 움직일 수만 있다면, 왜 내부 인력을 통제해야 하나? 왜 언론이나 온라인을 통제해야 할까? 왜 규제기관을 통제해 보려 시도해야 하나? 왜 정보와 자료들을 통제해야 하나? 통제가 곧 관리라는 개념을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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