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28편] 무엇보다 신속하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인간에겐 위험한 상황을 감각적으로 느끼는 본능이 발달해 있다고 한다. 진화 초기인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수풀 속에 위험한 야수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면, 그 쪽을 예의 주시하는 반응이 가능하다. 그러다가 시커먼 그림자가 수풀에서 튀어 나오면 인간은 그 반대쪽으로 부리나케 도망한다. 위험을 감지하고 이에 즉각 반응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 자극과 감지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은 불과 1초도 걸리지 않는 반사작용의 성격을 띤다. 신속함의 정점이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 본능은 세월과 환경이 차차 변화하면서 점차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기업의 위기관리에서 의사결정과 실행을 하는 사람들은 그 수가 많아 어떤 일개 개인이 일사불란한 본능을 여럿에게 강요하거나 그걸 기반으로 통제하기는 어렵게 돼버렸다. 또한, 누구나 인간적이고 원시적 본능에 의지하는 것은 현대적 경영 스타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논리성과 합리성을 더욱 강조하면서, 인간적 본능에 대한 폄하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예전처럼 일부 일선 직원들이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신속하게 위험을 회피하고자 해도. 경영층은 논리적이며 합리적 분석을 먼저 하게 되었다. 그 위험이 실제 존재하는 것인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악화 될 것인지 따지게 되었다. 감지에서 반응까지의 물리적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많은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위기가 발생하면 조직은 신속하게 대응하라는 조언을 한다. 문제는 현대의 조직은 그렇게 신속하게 움직이기가 이미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반응까지의 절차는 점점 길어지고, 고려할 사안들은 더욱 더 많아지고 있다. 불확실성이 수없이 존재하는 위기상황 속에서 무조건(?) 빨리 대응하라는 조언은 어찌 보면 무모하게 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부적인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하다. 위기가 발생하면 초기부터 끝까지 해당 위기에 개입하게 된 이해관계자의 수는 셀 수없이 다양화되고 늘어나고 있다. 언론과 온라인을 통한 여론의 반응과 그 움직임은 시간단위를 넘어 분단위로 변화한다. 단 한 시간이면 전세계가 특정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위험한 환경이 돼 버린 것이다.
단순히 정리하자면, 조직은 인간적 본능을 져버리면서 점차 느려지는 반면, 조직을 둘러싼 환경은 폭발적으로 빠르게 반응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반응 시간의 격차로 인해 기업들이 위기관리에 성공할 확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선진적 기업들은 예전과 같은 반사신경에 버금가는 반응의 신속성을 큰 가치로 돌아보게 되었다. 위기가 발생하면 최소한 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읽고 그를 제대로 따라가기 만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기본적으로 기업들은 위기나 이슈가 발생 했을 때 ‘빨리’ 대응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상당수 기업이 가지는 ‘빠름’의 기준이 다른 기업들이나 다른 외부 이해관계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문제다.
위기관리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위기 대응에 있어서 반응을 위한 적절한 시기가 언제인가 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그 중 “자사관련 위기나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와 관련 된 핵심 이해관계자가 자사에게 커뮤니케이션을 원하기 시작할 때가 그 때”라는 이야기가 중론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 이슈가 발생 했을 때 이슈의 원점인 불만 소비자가 회사로 연락을 취해 온 그 시점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적정 시점이라는 의미다. 그 후 관련해 규제기관, 소비자단체, 언론이 이를 눈치 채고 자사로 급하게 전화를 걸어 온 그 시점도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적정 시점이 되겠다.
이런 적정 시점이 왔을 때 해당 기업이 공식 대응 할 수 있는 메시지나 논리를 미처 마련하지 못했다면 문제다. 이슈가 너무 돌발적이어서 사실 관계파악을 위해 일정 시간을 양해 받아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개시 시점을 조정하는 경우는 일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기가 며칠을 넘겨 ‘과도하다’는 평을 받으면 일단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초기에 상당부분 효과를 잃는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위기 감지 체계를 극도로 민감하게 관리해 발생직후 감지와 내부 보고와 공유 프로세스를 첨단화 하고 있다. 위기관리팀 소집이나,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장애물을 평시에 제거 완화하고자 애쓴다. 일부는 일선에 현장지휘권을 주어 문제발생 여지를 상당부분 관리하려 한다.
그와 함께 지속적으로 위기대응(관리)팀을 훈련하고, 정기적 훈련을 통해 경험적 반사신경을 강화시키려 노력한다. 주변 환경을 지속 모니터링하면서, 만약 우리에게(What if?)라는 개념을 반복적으로 주입하려고도 한다. 현대적 위기관리는 아주 예전의 인간적 본능을 조직화 하면서 점차 고도화 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이는 선진적인 기업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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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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