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25편] 위기관리 예산을 확보하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는 예산이 한다는 말이 있다. 예산이 있어야 위기도 방지할 수 있다. 동일한 위기가 재발 되었을 때 우리가 어떤 이유를 대는지 기억해 보자.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든다. 이렇게 황당한 위기가 왜 발생했느냐는 질문에는 또 어떤 대답을 하나? “예산이 없다 보니..” “또는 비용을 아끼려다 보니…” 이런 답변을 한다.
위기관리를 포함해 거의 모든 기업의 활동에는 상위 1%의 의지만가 있다면, 그곳엔 예산이 있기 마련이다. 위와 같이 문제 발생의 이유를 당연히 “예산 부족’으로 꼽는다는 것은 즉, 상위 1%의 위기관리 의지가 없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더 주목해야 한다.
상위 1%의 강한 의지가 존재했고, 그에 따른 합리적 예산이 설정되어 있었는데도 실무자들의 무관심으로 위기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개념은 실제 현장에서는 1%의 가능성도 없는 이야기다. 정말 그런 당황스러운 결과가 나왔다면, 그것 또한 경영진의 경영 품질이 낮았다는 의미가 된다. 어떻게 경영진의 강한 관심과 예산 투자 의지가 실무자들을 설득 독려하지 못할 수 있나?
재미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회사들이 위기 시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거나, 그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해당 위기로 자사가 부담해야 하는 손해와 손실에 대한 계산은 당연히 신속하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위기관리 예산에는 그리 큰 조예가 없어 보인다.
최근 위기로 인해 상당부분 훼손될 위기에 있는 자사의 기업 명성을 몇 천만 원의 예산을 아끼려는 노력과 맞바꾼다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는 그런 선택까지야 하겠냐 하는 생각도 할 것이다. 시급한 위기 대응을 앞두고 예측되는 예산을 비교하기 위해 경쟁 비딩을 진행하는 기업도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나? 여러 컨설팅사와 에이전시들을 불러 모아 자사의 위기에 대해 브리핑 하고, 예산 가이드라인을 다 써서 제출하라는 요구를 하는 위기관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기업 인하우스 인력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이런 대답을 한다. “저희 예산관리 규정이 그래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OOO만원 이상의 외주를 줄 때는 항상 경쟁 비딩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윗선에서 계속 비용절감을 강조하고 계셔서 위기관리라고 별다른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일선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들의 마음 속에 ‘지금 이렇게 정신 없는 위기 상황에서 이런 한가한 대응을 하는 건 좀 아닌데…’하는 생각만 있으면 된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다는 의미라서다.
위기관리를 기술이 아니라 ‘프로세스 관리’라 이야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런 시각에 비추어 보았을 때 평시의 예산 확보와 지출 프로세스를 위기관리 시에도 그대로 준수 적용하는 것이 얼핏 당연한 거 아닌가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프로세스 관리라면, 위기 상황의 전개 방식을 사전에 미리 예상해 보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평소와 달라지는 환경들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예산이 필요하게 될 것인지, 그 예산을 어떤 방식으로 긴급 확보해야 하는지, 그리고 지출하는 방식과 프로세스에는 어떤 다름이 있어야 하는지를 미리 살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위기 시 예산 확보와 지출의 전 과정을 위기관리 방식에 따라 별도 프로세스로 수립해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관리를 ‘프로세스 관리’라 부르는 의미는 이런 평시 살핌과 그에 근거한 더욱 효율적인 프로세스의 수립을 의미한다.
쉽게 비유 하자면, 전쟁이 발발했을 때 수 많은 병사들의 급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사실 프로세스 관리의 영역이다. 포탄이 빗발치고, 총탄이 교환되는 불바다 속에서 평시 정해진 중식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사전 고민이 있을 것이다. 전투를 양측이 동시에 멈추고 12시부터 1시까지 고요한 중식 시간과 휴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어야 당연하다.
병사들이 전투가 끝날 때까지 급식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급식 체계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형 급식 트럭이 전투 장소로 이동해 병사들을 줄 세우고 식판에 식사를 배분하는 급식 체계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고민하는 게 맞다. 그래서 병사들에게 개인별로 전투 식량을 사전 배포해서 전투 상황에 따라 급식을 자율 선택하게 하자 하는 개선안이 나왔을 것이다.
만약 평시 프로세스를 그대로 비상시에 강조만 하고, 이를 따르라 했다면 전투와 급식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자. 그 급식을 만들어 나르는 병사들이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도 먹지 못할 급식을 실은 트럭을 전투 지역까지 몰고만 가는 행동을 반복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 고쳐야 한다. 딱히 예산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위기관리 자체가 바로 그런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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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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