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8편] 조직을 민감하게 유지하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호들갑 떨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호들갑’이라는 의미가 경망스럽고 야단스럽기 만 한 것이라면 지양해야 하지만, 이슈나 위기를 감지하여 분주히 여럿이 움직이는 것까지 ‘호들갑’이라고 하면 안 된다. 이슈나 위기가 발생하기 전부터 기업은 항상 민감해져 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민감한 기업만큼 준비된 기업이 없다. 사소해 보이는 이슈에도 미리 관심을 가지는 기업이 민감한 기업이다. 다른 기업이 겪고 있는 이슈를 지속 분석해 보는 기업이 민감한 기업이다. 일선에서 올라오는 보고 중 문제로 비화될 건이 없는지 꼼꼼하게 추적해 보는 기업이 민감한 기업이다. 상위 의사결정자들이 자신의 경험만 믿고 괜찮다 문제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강요하지 않는 기업이 민감한 기업이다.
민감한 기업은 그래서 강하다. 어떤 이슈나 위기도 예상하지 못한 채 마주하지 않는다. 다른 기업이 경험한 이슈를 자신이 경험했던 것처럼 보다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다. 일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문제 될 것들을 미리 미리 제거해 놓는다. 문제가 될 것인지 아닌지를 상위 의사결정자들이 하위 실무담당자들과 지속 토론하고 진단을 반복한다.
일부에서는 기업이 너무 민감한 것도 좋지 않다 이야기한다. 피로감이 생긴다는 이유다. 이런 기업에서 일부 임원은 “별 것도 아닌 것인데, 그것에 대해 윗분들이 너무 민감하셔서 여러모로 피곤합니다. 일선에서는 항상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데 말이죠…”라 토로한다. “일선에서 발생한 해프닝들을 위에 매번 보고하고 그것에 대해 논의하고 하게 된다면, 아마 경영진들은 아무 일도 못하고 그것만 해야 할 겁니다. 그 만큼 일선 이슈들이 많고 다양하거든요. 저희가 알아서 필터링 하니 그나마 편하신 겁니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런 기업은 민감하지 못한 기업이다. 이슈나 위기에 강하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 일단 이런 이야기를 하는 기업은 일선에서 이슈나 위기의 전조를 감지하고 분석해 내는 ‘기준’이 모호하다. 그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면, 일선으로부터의 보고 수량이나 범위가 그렇게 막대할 수 없다. 또한 전조에 대해 경영진이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바라보니 보고의 수량이나 범위는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기업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전조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에서는 A를 문제의 전조라고 생각하는 반면, 경영진에서는 A를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이다. 이런 기준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선에서는 경영진들을 불필요하게 부담스럽게 할 필요 없다는 낙담을 경험하게 된다. 경영진은 반대로 정확한 보고나 공유가 올라오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가지게 된다. 기업 전반에서 민감성은 사라지고, 상호간 불만만 생겨난다.
이런 경험을 한 기업은 또 이야기한다. “그러면 일선에서 보다 정확하게 이슈나 위기 전조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어떻게 세우면 될까요?” “일선에서는 사실 그렇게 종합적으로 판단해 전조를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없습니다. 이런 현실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일견 그럴 듯 한 이야기다.
일상 업무를 일정 기간 진행 해 온 직원이라면 업무 과정에서 ‘부정적 문제가 될 이슈의 전조’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나 가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기준은 당연히 최고의사결정자로부터 제공되어야 한다. 그 기준은 오랫동안 일관되게 전조를 판단하는 지표가 되어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기준이 있어야 일선 스스로의 중구난방 판단은 최소화된다. 그런 ‘판단 기준’이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민감성이 자라나지 않는 것이다.
일선에서 올라온 문제 전조를 보면 경영진은 대부분 ‘확실하게 문제다’ 평가 내릴 수 있게 된다. 기준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일선에서도 “왜 이 전조가 심각한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일선간에도 “왜 이것이 꼭 보고 공유되어야 하는 전조인가?”에 대한 이견이 준다. 정확한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중이 그 기준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민감하지 않은 기업은 당연히 ‘기준’이 없다. 일선부터 최고의사결정자에 이르기 까지 이슈나 위기를 보는 시각이나 기준이 제 각각이다. 일선에서는 각자 판단에 따라 보고 하고, 경영진은 그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 해 평가한다. 점점 보고량과 범위는 줄어든다. 임원들은 자사에 이슈나 위기의 전조가 없다 안심한다. 그런 사내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점점 민감성은 저하된다.
그 후 이슈나 위기가 실제 발생하면 이런 기업은 일단 놀란다. 허둥댄다. 말 그래도 호들갑만 떨며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제 각각 발생한 문제가 어떤 것인지 판단하려 한다. 의사결정은 지체된다. 경영진끼리 상호간 책임 논란을 벌이며 손가락질을 시작한다. 최고의사결정자는 “왜 아무도 이런 문제를 몰랐으며 사전에 보고하지 않았는가?” 호통 친다. 민감하지 않은 기업은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을 자주 반복한다. 최고의사결정자의 관심이 없으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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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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