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의 의도를 살리자 | ||||||||||||||||||||||
[정용민의 미디어 트레이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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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는 각 병사마다 전쟁 발발 시 자신이 가장 먼저 맡아 해야 할 일을 카드로 만들어 평시에 외우도록 한다. 보통 그 조그마한 카드에는 ‘최초 군장을 챙겨 OO지점에 있는 탄약고로 이동하여 탄약 OOO발과 수류탄 OOO발을 수령, OOO 지점으로 신속히 이동하여 OOO한다’ 이런 식의 최초 행동 프로세스가 자세히 명기되어 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수 많은 병사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빨리 기억해서 전체적인 상호간 혼란을 줄이고, 효과적인 방어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런 개인임무카드에 대한 학습과 암기 훈련은 정기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는 분명 연습상황에서만 유효하다. 수많은 병사들이 각자 개인임무카드에 명시된 행동 프로세스들을 완전 암기해 숙지해 놓았다 하더라도 실제 전쟁이 발발하면 그 행동 프로세스를 100%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 자신은 탄약고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동하려는 순간 그 탄약고가 폭격을 받아 불기둥에 휩싸였다고 치자. 그러면 이 병사는 그 다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탄약이나 수류탄 수령 없이 그냥 정해진 장소로 이동 매복하고 있으면 될까? 아니면 탄약이 보충 되어 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마냥 기다려야 하나? 위기는 매뉴얼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에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다. 많은 기업들이 자사의 위기관리 매뉴얼에 자세하게 위기를 관리하는 절차와 프로세스들을 명기해 놓았다. 그러나 그 프로세스는 매뉴얼을 위한 것이지 실제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경험상 그렇지 않은 적이 더 많다. 일부 매뉴얼에서는 대응 시간대까지 정해서 신속한 행동 프로세스를 요구하고 있는데, ‘위기 발생이 감지된 후 3시간 내에 CEO가 주재하는 위기대책 회의를 소집해 회사의 공식적인 결정을 도출하고 즉각 발표한다’는 프로세스가 있다고 치자. 실제 위기가 터졌다. 사장님은 브라질로 출장을 가 있다. 그 다음 전권을 이양 받아야 할 기획 부사장은 어젯밤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있다. 지금은 새벽 2시라서 위기관리팀 구성원인 최고 경영진들 중 3분의 2가 연락이 안 된다. 이 때 실무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보통 날이 새기까지 기다린다. 브라질로 계속 전화를 해 사장님을 찾는다. 새벽 술에 취한 경영진들의 휴대폰에 수 십 개의 문자메시지를 넣어 놓는다. 이것이 위기관리에 있어서 매뉴얼과 프로세스 중심 사고의 병폐다. 실제 위기를 일선에서 관리하는 실무자들에게 영혼을 뺏고, 자기결정에 따른 적절한 최초 조치를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계획 되로만 전개되는 전쟁은 없다. 매뉴얼대로만 움직여주는 위기도 없다. 사람에게는 본능이라는 것이 있고, 조직인에게는 조직을 위한 본능이 존재한다. 이 본능을 십분 활용할 때 전쟁이나 위기관리는 성공한다. 조직의 ‘본능’을 십분 활용하라
위기관리에서는 이 개념을 ‘지휘관의 의도 (CI : Commander’s Intent)라고 부른다. 이 CI는 보통 간단한 한 문장 정도의 명령문 형식으로 존재하고 공유된다. 지역 전투시에 지휘관의 의도는 ‘교전 발발 이후 OO시간 동안 이 지역을 사수한다’가 되겠다. 기업의 특정 위기 시에는 ‘소비자의 안전이 최우선이다’가 될 수 있겠다. 불타는 남대문을 바라보는 소방수의 머릿속에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조기 진화하라’는 CI가 새겨 있어야 한다. 일선과 저 멀리 있는 의사결정자들간에는 항상 물리적 거리가 존재한다. 상당량의 시간차도 있다. 멀리서 지나간 상황을 보고받아 내리는 결정은 거의 효과를 상실한다. 일단 공유된 CI가 있다면 그냥 일선은 일관되게 그것에만 따르면 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위기관리 시스템이다. 사후에 CI에 충실했다고 벌하면 안 된다. CI에 근거한 모든 위기관리 활동들은 옳은 것이라는 믿음이 조직 내에 있어야 한다. 위기관리 교과서에서 성공한 위기관리로 회자되는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 케이스. 여기에는 존슨앤존슨이 전사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CI가 있었다. 신조(credo)라고 불리는 이 존슨앤존슨의 CI는 위기 시에 바로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 존슨앤존슨의 신조에는 분명히 ‘We believe our first responsibility is to the doctors, nurses and patients, to mothers and fathers and all others who use our products and services’ 라고 쓰여져 있고 수십년 동안 반복해서 공유되어 왔었던 것이다. 자사의 제품에 독극물이 투입되어 소비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 나자 존슨앤존슨은 그냥 이 CI에 충실했다. 소비자들을 위해 모든 제품을 다 수거해 말끔하게 다 없애버렸다. CI에 충실한 결정이었고, 이 결정에 대해 나중에 비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이 공유된 CI의 소중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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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5월 19일 13:39:02 / 수정 : 2008년 05월 19일 13:41:46 |
타이레놀
지휘관의 의도를 살리자
군대에서는 각 병사마다 전쟁 발발 시 자신이 가장 먼저 맡아 해야 할 일을 카드로 만들어 평시에 외우도록 한다. 보통 그 조그마한 카드에는 ‘최초 군장을 챙겨 OO지점에 있는 탄약고로 이동하여 탄약 OOO발과 수류탄 OOO발을 수령, OOO 지점으로 신속히 이동하여 OOO한다’ 이런 식의 최초 행동 프로세스가 자세히 명기되어 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수 많은 병사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빨리 기억해서 전체적인 혼란을 줄이고, 효과적인 방어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런 개인임무카드에 대한 학습과 암기 훈련은 정기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는 분명 연습상황에서만 유효하다. 수많은 병사들이 각자의 개인임무카드에 명시된 행동 프로세스들을 완전 암기해 숙지해 놓았다 하더라도 실제 전쟁이 발발하면 그 행동 프로세스를 100%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 자신은 탄약고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동하려는 순간 그 탄약고가 폭격을 받아 불기둥에 휩싸였다고 치자. 그러면 이 병사는 그 다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탄약이나 수류탄 수령 없이 그냥 정해진 장소로 이동 매복하고 있으면 될까? 아니면 탄약이 보충 되어 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마냥 기다려야 하나?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많은 기업들이 자신의 위기관리 매뉴얼에 자세하게 위기를 관리하는 절차와 프로세스들을 명기해 놓았다. 그러나 그 프로세스는 매뉴얼을 위한 것이지 실제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경험상 그렇지 않은 적이 더 많다.
일부 매뉴얼에서는 대응 시간대까지 정해서 신속한 행동 프로세스를 요구하고 있는데, ‘위기 발생이 감지된 후 3시간 내에 CEO가 주재하는 위기대책 회의를 소집해 회사의 공식적인 결정을 도출하고 즉각 발표한다’는 프로세스가 있다고 치자. 사장님은 브라질로 출장을 가 있다. 그 다음 전권을 이양 받아야 할 기획 부사장은 어젯밤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있다. 지금은 새벽 2시라서 위기관리팀 구성원인 최고 경영진들 중 3분의 2가 출장 또는 연락이 안 된다. 이 때 실무자들은 어떡해야 하나?
보통 날이 새기까지 기다린다. 브라질로 계속 전화를 해 사장님을 찾아 나선다. 새벽 술에 취한 경영진들의 휴대폰에 수 십 개의 문자메시지를 넣어 놓는다. 이것이 위기관리에 있어서 매뉴얼과 프로세스 중심 사고의 병폐다. 실제 위기를 일선에서 관리하는 실무자들에게 영혼을 뺏고, 자기결정에 따른 적절한 최초 조치를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계획 되로만 전개되는 전쟁은 없다. 매뉴얼대로만 움직여주는 위기도 없다. 사람에게는 본능이라는 것이 있고, 조직인에게는 조직을 위한 본능이 존재한다. 이 본능을 십분 활용할 때 전쟁이나 위기관리는 성공한다.
좁다란 인도를 따라 길을 걸을 때,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미리 고민을 하고 상대방이 이렇게 피하면 나는 이렇게 피한다는 식의 수많은 시나리오들을 머릿속에 넣지 않아도 우리는 그냥 부딪치지 않고 잘 걸어간다. 마주 오는 상대방의 발걸음과 눈빛으로 0.5초도 되지 않아 자신의 포지션을 정하고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된다. 여기에서 보행자의 마음에는 ‘부딪히지 말자’는 간단한 개념만이 존재한다.
위기관리에서는 이 개념을 ‘지휘관의 의도 (CI : Commander’s Intent)라고 부른다. 이 CI는 보통 간단한 한 문장 정도의 명령문 형식으로 존재하고 공유된다. 지역 전투시에 지휘관의 의도는 ‘교전 발발 이후 OO시간 동안 이 지역을 사수한다’가 되겠다. 기업의 특정 위기 시에는 ‘소비자의 안전이 최 우선이다’가 될 수 있겠다. 불타는 남대문을 바라보는 소방수의 머릿속에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조기 진화하라’는 CI가 남아 있어야 한다.
일선과 저 멀리 있는 의사결정자들간에는 항상 물리적 거리가 존재한다. 상당량의 시간차도 있다. 멀리서 지나간 상황을 보고받아 내리는 결정은 거의 효과를 상실한다. 일단 공유된 CI가 있다면 그냥 일선은 일관되게 그것에만 따르면 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위기관리 시스템이다. 사후에 CI에 충실했다고 벌하면 안 된다. CI에 근거한 모든 위기관리 활동들은 옳은 것이라는 믿음이 조직 내에 있어야 한다.
위기관리 교과서에서 성공한 위기관리로 회자되는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 케이스. 여기에는 존슨앤존슨이 전사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CI가 있었다. 신조(credo)라고 불리는 이 존슨앤존슨의 CI는 위기 시에 바로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 존슨앤존슨의 신조에는 분명히 ‘We believe our first responsibility is to the doctors, nurses and patients, to mothers and fathers and all others who use our products and services’ 라고 쓰여져 있고 수 십년 동안 반복해서 공유되어 왔었던 것이다.
자사의 제품에 독극물이 투입되어 소비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 나자 존슨앤존슨은 그냥 이 CI에 충실했다. 소비자들을 위해 모든 제품을 다 수거해 말끔하게 다 없애버렸다. CI에 충실한 결정이었고, 이 결정에 대해 나중에 비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이 공유된 CI의 소중함이다.
High? or 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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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관리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는 최단 말미에 두 가지 옵션이 있다. 하이 프로파일(high profile)이냐, 로우 프로파일(low profile)이냐 하는 거다. 하이 프로파일 전술은 해당 위기가 전적으로 자사의 책임일 때나 전혀 책임이 아닐 때 공히 채택 가능하다.
자사의 책임일 때 하이 프로파일 전술은 ‘자사의 개선 의지’를 강조해서 소비자들로부터 그 의지에 대한 인정을 받기 위한 적극적 행동들을 실행하는 것이다. 반면, 해당 위기가 자사의 책임일 때 로우 프로파일 전술을 택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자칫 ‘복지부동’ ‘침묵’으로 비추어져서 여론을 자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단, 이 로우 프로파일은 위기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영향 받는 이해관계자가 극소수에 머무를 때 한정적으로 상호 이해에 기반해 채택할 수 있는 전술이다.
자사의 책임이 아닐 때 하이 프로파일은 한마디로 ‘자사의 억울함’을 대대적으로 호소하는 전술이다. 소비자들로부터 동정과 이해를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자사의 책임이 아니면서 로우 프로파일을 선택하는 것은 앞서서와 마찬가지로 위기의 규모와 이해관계자의 규모가 크거나 많지 않을 때 ‘없었던 일’로 하자는 망각 유도 방식이다.
고민은 하이 프로파일에 있다. 특히 자사의 책임을 인정하고 나서 하이 프로파일 전술을 구사하려고 한다면 과연 어떤 것들이 하이 프로파일 활동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실무자들의 고민이다. 이 하이 프로파일 활동들을 해야 하는 핵심 목적은 무엇인가? 자사의 개선 및 재발 방지 의지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려 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시각에서 위기가 목격되었으면 가장 먼저 그 책임자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할 겁니까?” “앞으로 또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무엇을 할 겁니까?” “믿어도 됩니까?” 이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주고 더 한발자국 나아가서 그 질문을 상회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하이 프로파일 전술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80년대 초 미국 타이레놀 사건과 2007년 미국 완구 회사 마텔 사건을 들 수 있다. 소비자 일반의 기대수준을 상회하는 대응방식이어야 효과가 있는 타입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이 프로파일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서도 각종 미디어들을 통해 하이 프로파일 커뮤니케이션을 동시에 진행해야 시너지가 있다.
수많은 실패 사례들은 거의 로우 프로파일 전술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부분적인 리콜이라던지, 지역적인 리콜이 그 사례들이다. 이러한 로우 프로파일 전술에는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 또한 기대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한정적인 활동과 커뮤니케이션이 그 효력을 발휘하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와중에 또 다른 변수가 작용하거나, 다른 사건이 더해지면 그 다음은 더욱 통제 불능이 된다.
이는 곧 늦장대응으로 비춰지며, ‘쉬 쉬’가 된다. ‘안이한 대응’이 되며 ‘복지부동’으로 공감대를 이룬다. 따라서 위기시의 로우 프로파일 전술은 어느 정도 폭탄을 안고 가는 형국이 되므로 그렇게 권장을 하지는 않는다.
물론 우리가 이야기하는 하이 프로파일이 한 명의 기자가 호기심으로 물어온 잠재적 이슈에 대해 출입기자 전체에게 대대적으로 사전 경고 또는 설명을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기자들이 모르고 있던 우리회사의 부정적인 이슈들을 끌어 내서 떠들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이 프로파일이냐 아니냐 하는 판단의 핵심은 오디언스의 부정적인 반향의 수준, 그리고 이해관계자의 크기와 수에 따라 그에 적절하거나 그들을 ‘압도’하는 대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야 이것이 진정한 ‘위기 대응’이나 ‘위기 관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