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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12010 Tagged with , , , , , , , 2 Responses

너무 자세하면 더 안좋다: 위기관리 매뉴얼

본보가 31일 해군에서 입수한 A4 2쪽 분량의 ‘비상이함 절차’에 따르면, 비상 탈출 절차는 명령→준비→구명벌(천막 형태의 구명 장비) 투하→탈출의 4단계이고 ‘명령은 오직 함장만 내린다’고 돼 있다. 천안함 사고 직후 함장이 함장실에 5분 이상 갇혀 있었고, 전력 공급이 차단돼 함정 내부에서 명령을 전파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던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생존자도, 실종자도 모두 지휘 계통이 끊겨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다.[한국일보]

 

 

한국일보에서는 해군의 비상이함 매뉴얼이 너무 상식적이고 개략적이라서 실제 위기시에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위기관리 매뉴얼을 제작하면서 목격하는 현상을 보면 이런 지적과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매뉴얼이 너무 자세하면 (실제로 매뉴얼을 깊이 연구 공부해야 하는 수준) 위기시 작동 가능성은 더욱 더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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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의 비상이함 절차 매뉴얼 일부한국일보 제공]

일반적으로 볼 때 해군이 가지고 있는 비상이함 매뉴얼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너무 자세하지도 않은 평이한 수준이다. 비상이함의 명령자를 함장으로 제한해서 직접적인 오너십을 부여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다. 매뉴얼상 프로세스에 있어 주어가 되는 부분이다.

한국일보에서는 함장이 부재하거나 유고시에는 그럼 어떡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 실제 매뉴얼에서 오너십을 부여한 원칙을 상기해 보면 함장의 부재나 유고 확실시 누가 그 역할을 먼저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올 수 밖에 없다. (반대로 명령권자의 차차순위에 대한 리스트를 쭉 열거해 놓는 것도 매뉴얼상에서는 우습다)

위의 매뉴얼을 보면, 비상이함 명령권자에 대한 명시 (오너십), 인원보고와 안전수칙에 대한 원칙, 비상이함시 유의사항 (안전 중시), 비상이함 준비 불가시 약식행동요령, 기타 급격한 침몰시 대처 요령이 간단하지만 강력하게 제시되어 있다.

세부적으로 이동거리, 지참 물품 목록, 승선 순서, 파기물 유형 및 순서, 비상이함의 실제 사례와 동선 등등이 수십 페이지에 이르러 자세하면….작동 가능성은 그에 반비례 하게 된다.

많은 기업들이나 조직들이 일종의심리적 안정감을 찾기 위해 기존 위기 관리 매뉴얼들을 극도로 세분화하고 그 절차를 자세하게 설명하려 애쓴다. 하지만,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열에 아홉은 그런 복잡한 매뉴얼을 기억하지 못한다.

실제 위기를 관리하는 주체들이 단순하게 암기할 수 있는 깊이와 분량. 그 수준이 효과적인 위기관리 매뉴얼의 모습니다. 새로 장만한 홈씨어터 시스템의 설치 매뉴얼 보다는 최소한 쉬워야 한다는 거다.

 

7월 072009 Tagged with , , , , , , , , , , , , , , , , , , , 0 Responses

[정용민의 위기 커뮤니케이션] 위기시 기업이 침묵하는 이유

[정용민의 위기 커뮤니케이션]

기업&미디어 web@biznmedia.com

수많은 소비자들이 위기라고 생각하는 사건에 대해 막상 사건 당사자인 기업은 침묵할 때가 많다. 침묵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아무런 커뮤니케이션도 하지 않는 ‘단절’을 의미한다. 자사 제품에서 해괴한 이물질이 나왔는데도 침묵하며 몰래 리콜을 한다거나, 자사의 매장에서 치명적인 인사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아무런 설명 없이 당사자와의 합의에만 몰두하는 경우들이 다 그렇다.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되면 밖으로는 가능한 떠들지 않는 우리네 정서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지만, 기업이 평소 사랑한다 외쳐왔던 소비자들이나 이해관계자들의 시각에서는 영 못 견딜 것 같은 안타까움이다.

왜 기업은 위기시에 침묵할까?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
CEO나 오너께서 해당 사건을 하나의 해프닝이나 그냥 자잘한 논란이라 치부하는 경우다. 아무리 일선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토로해도 윗분들께서 ‘그 까짓 것’하시면 어쩔 길이 없다. 도리어 바쁘신 윗분들로 부터 ‘아니 그렇게 사소한 일 하나 처리 못해서 이 난리냐?’하는 호통까지 나 올 정도면 더욱 심각하다. 위기라고 보지는 않지만 빨리 해결해야 하니 밖으로는 침묵하고 안으로만 닥달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거다.

위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소셜미디어상의 위기가 그렇다. 위기가 발생해서 성장하고 있을 때까지 기업이 소셜미디어상에서 그 위기를 모니터링하지 못한다. 당연히 소셜미디어내의 공중들은 ‘왜 이 기업은 지금 우리의 대화에 대해 침묵하는가?’하는 궁금증과 증오를 가지게 된다. 많은 기업들이 소셜미디어상의 위기에 대해서는 모니터링도 부족하고 관여방식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 당연히 알게 되도 침묵할 수 밖에 없다.

위기 대처 시스템이 없는 경우
위기를 위기라 생각하면서도 대응하는 데 절대적인 시간이 소요되는 기업들의 경우다. CEO에게 상황을 보고하는 데도 수시간이 걸리고, 그 이슈를 해당 임원들에게 브리핑하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데도 한나절이 걸린다. 수백개의 기업 소비자 접점에 대한 파악이나 개개의 처리방식에도 정해진 룰이나 담당자가 부재하다. 당연히 여러 명이 끙끙대고 논쟁에 논쟁을 거듭하지만 외부에서 볼 때는 해당 기업이 침묵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시끄러운 침묵이다.

지켜보는 경우
위기라는 심각성은 이해하면서도 더 이상 이 상황이 번져갈지 어떨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그냥 지켜만 보는 경우다. 보통 우리나라의 경우 위기 이슈가 생겨도 여기저기에서 반복적인 회자만 없으면 2-3일을 넘기지 않는 특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기업의 경우다. 항상 반복적으로 이런 유사한 이슈들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연 소멸되리라 일부 확신은 가지고 있는 유형이다.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경우
너무 일이 커져서 이미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경우다. 가능하면 그 논란과 공격에서 생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입을 다물고 ‘죽여주세요’하는 제스츄어를 견지하는 경우다. 일부 전략적인 판단이 가미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자칫 ‘무성의한 침묵’으로 비추어지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다. 조직 전체가 절대 패닉에 빠져있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하겠다.

위기시 침묵하는 것은 개인이나 조직의 본능이다. 문제는 평소에 진행해왔던 커뮤니케이션의 분량과 주제에 있다. 소비자를 사랑한다 쉴새 없이 외치던 대기업이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일을 저질렀을 때 어떻게 갑자기 침묵할 수 있냐 하는 거다. 소비자의 안전을 파괴한 후에 어떻게 소비자의 안전이 우리의 최고 우선가치라고 계속 말할 수 있나. 소비자의 건강을 최고의 신념으로 알고 있었다는 회사가 소비자를 사망케 하고서 입을 다물면 어쩔 건가.

많은 기업들이나 조직들이 위기시 침묵한다. 극도로 부정적인 비판을 받고 있는 기업들의 홈페이지는 그 와중에서도 반짝 반짝 빛을 낸다.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서 CEO는 웃고 있고, 직원들은 행복해 하고 있다. 소비자들만 불행해 보인다. 소비자들이 우리 회사로 인해 슬퍼하고 있는데 TV에서는 예쁜 모델들이 “우리회사는 너희를 위해 존재한다!” 외치고 있다.

위기시 침묵은 절대 금(金)이 아니다. 위기시 침묵은 절대 금(禁)해야 할 행동이며 포지션이다

 정 용 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스트래티지 샐러드(www.strategysalad.com) 대표 파트너
前 PR컨설팅그룹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사장
前 오비맥주 홍보팀장
前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EDS, JTI, KTF, 제일은행, Agribrand Purina Korea, Cargill, L’Oreal, 교원그룹, Lafarge, Honeywell 등 다수 국내외 기업 경영진 대상 미디어 트레이닝 및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코칭
Hill & Knowlton, Crisis Management Training Course 이수
영국 Isherwood Communications, Media Training and Crisis Simulation Session 이수
네덜란드 위기관리 컨설팅회사 CRG의 Media training/crisis simulation session 이수
위기관리커뮤니케이션 전문 블로그 Communications as Ikor (www.jameschung.kr)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