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31일 해군에서 입수한 A4 2쪽 분량의 ‘비상이함 절차’에 따르면, 비상 탈출 절차는 명령→준비→구명벌(천막 형태의 구명 장비) 투하→탈출의 4단계이고 ‘명령은 오직 함장만 내린다’고 돼 있다. 천안함 사고 직후 함장이 함장실에 5분 이상 갇혀 있었고, 전력 공급이 차단돼 함정 내부에서 명령을 전파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던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생존자도, 실종자도 모두 지휘 계통이 끊겨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다.[한국일보]
한국일보에서는 해군의 비상이함 매뉴얼이 너무 상식적이고 개략적이라서 실제 위기시에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위기관리 매뉴얼을 제작하면서 목격하는 현상을 보면 이런 지적과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매뉴얼이 너무 자세하면 (실제로 매뉴얼을 깊이 연구 공부해야 하는 수준) 위기시 작동 가능성은 더욱 더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볼 때 해군이 가지고 있는 비상이함 매뉴얼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너무 자세하지도 않은 평이한 수준이다. 비상이함의 명령자를 함장으로 제한해서 직접적인 오너십을 부여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다. 매뉴얼상 프로세스에 있어 주어가 되는 부분이다.
한국일보에서는 함장이 부재하거나 유고시에는 그럼 어떡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 실제 매뉴얼에서 오너십을 부여한 원칙을 상기해 보면 함장의 부재나 유고 확실시 누가 그 역할을 먼저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올 수 밖에 없다. (반대로 명령권자의 차차순위에 대한 리스트를 쭉 열거해 놓는 것도 매뉴얼상에서는 우습다)
위의 매뉴얼을 보면, 비상이함 명령권자에 대한 명시 (오너십), 인원보고와 안전수칙에 대한 원칙, 비상이함시 유의사항 (안전 중시), 비상이함 준비 불가시 약식행동요령, 기타 급격한 침몰시 대처 요령이 간단하지만 강력하게 제시되어 있다.
세부적으로 이동거리, 지참 물품 목록, 승선 순서, 파기물 유형 및 순서, 비상이함의 실제 사례와 동선 등등이 수십 페이지에 이르러 자세하면….작동 가능성은 그에 반비례 하게 된다.
많은 기업들이나 조직들이 일종의 ‘심리적 안정감‘을 찾기 위해 기존 위기 관리 매뉴얼들을 극도로 세분화하고 그 절차를 자세하게 설명하려 애쓴다. 하지만,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열에 아홉은 그런 복잡한 매뉴얼을 기억하지 못한다.
실제 위기를 관리하는 주체들이 단순하게 암기할 수 있는 깊이와 분량. 그 수준이 효과적인 위기관리 매뉴얼의 모습니다. 새로 장만한 홈씨어터 시스템의 설치 매뉴얼 보다는 최소한 쉬워야 한다는 거다.
Communications as Ikor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2 Responses to 너무 자세하면 더 안좋다: 위기관리 매뉴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