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가 발생하면 해당 회사의 임직원들은 자사에게 향한 공중의 여론을 읽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읽기 시작한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평시에는 그 만큼 여론에 대한 생각이나 관심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임직원은 위기 시 여론을 읽기 위해 네이버 같은 포털을 찾는다. 일부에서는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채널을 통해 여론을 읽는 방법이다. 네이버나 모니터링 시스템에 키워드를 쳐 넣는다. 자기 회사명, 이슈나 위기와 관련된 키워드를 쳐 넣고, 그와 관련된 기사, 대화, 게시물, 댓글을 읽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그렇게 찾아 얻은 키워드 여론(?)을 읽는다. 당연히 위기가 발생하면 그런 키워드 여론은 분량이나 심도에 있어 상당한 수준을 기록하게 마련이다. 일부에서는 그 키워드 여론 결과가 너무 많은 나머지 그 각각을 차근차근 읽고 해석하기 보다는, 숫자로 그 키워드 여론을 대신 해석한다. 부정기사 1200개. 중립기사 200개. 긍정기사 10개. 이런 식이다.
어떤 기업은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그렇게 읽는 반면, 다른 기업은 오프라인에서 주변인들의 조언을 주로 듣고 이를 여론으로 해석한다. 지인인 전직 고위관료나 정치인 또는 지인 여론지도층 인사의 의견을 들고 여론을 유추한다.
다른 기업은 신문이나 TV에서 보도되는 내용을 꼼꼼하게 분석한다. 언론이 곧 여론이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기사나 보도 표현 한두개에 몰입한다. 불만족스러운 기사나 보도 내용에 관해서는 기자나 데스크에게 연락하고, 수정을 요청한다. 적극적 해명을 통해 여론을 순화시켜 보려 노력한다.
또 어떤 기업은 투자자나 멘토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다. 경영이 주요 투자자들과 멘토에 의지해 결정되는 곳일 경우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진다. 투자자들이 여럿 모여 여론에 대한 자신들의 시각을 이야기한다. 멘토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여론을 기반으로 대표이사를 설득한다.
기업의 최고의사결정자 입장에서는 위기 시 여론을 읽는 것처럼 낯설고, 찜찜한 것이 없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언론, 지인, 투자자, 멘토, 직원들, 심지어 주변 가족의 반응까지도 각자 다양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부정적으로 여론이 흘러가고 있는 것은 같은데, 그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형태와 수준의 관리 활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감을 잡기는 더 어려워진다.
간단해 보이는 대응 시점을 결정하는 것에도 혼란스러움은 마찬가지다. 언제 준비된 사과문이나 해명문을 배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내부에서는 상당한 토론이 진행된다. 지금 상황이 사과문을 배포해서 관리될 수준인지, 아니면 좀더 강한 사과의 표시로 기자회견을 해서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실한 답을 찾기 어려워한다.
더구나, 특정 방식으로 여론을 읽고, 그에 대해 대응을 결정한 뒤라 해도 내부 논란은 많다. 그렇게 까지 적극 사과를 하지 않아도 풀릴 수 있던 위기 아니었을까 하는 사후평이 나오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해석된 여론을 읽고 사과를 해서 불필요하게 배상의 책임까지 떠안게 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당시에는 꼭 그래야만 될 것 같아 위기관리를 실행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위기관리 방식이 당시 상황에 적절했던 것인지 의문이 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반대로 당시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사과로 해결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는 자성이 나오기도 한다.
정리해 보면 정확한 사실은 딱 하나다. 여론은 하나가 아니다 라는 점. 여론은 원래 다양하고 또 그 속에서도 다채롭다. 채널별로도 그 수준과 깊이가 다르고, 여론을 해석하는 주체에 따라서도 변수는 더해진다. 기업이 위기 시 여론을 읽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절대 안된다면, 여론을 어떻게 해석해야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답은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다양한 여론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사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대부분 여론을 다양하게 읽고서도 의사결정에 좌고우면 하는 이유는, 자사에 정확한 위기관리 원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칙이 위기를 관리한다는 말은 곧 그 때문이다.
현재 상황이 우리가 가장 큰 우선순위로 놓는 고객에 대한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고객 보호 원칙을 따라야 하는가? 고객의 여론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에게 어떤 원칙과 위기관리를 기대하고 있는가? 그런 기대 충족을 위해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 고객 관련 원칙을 입증해야 하는가? 회사의 원칙만 정확하게 존재한다면 여론은 방향성과 솔루션을 제안하는 가치일 수 있다. 의사결정은 원칙만 있으면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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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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