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의 위기 커뮤니케이션 117)
위기관리, 민감성에 대한 이야기
“정 대표도 알겠지만, 이쪽 업계가 생각보다 위기에 대한 민감성이 그렇게 크지 않아요. 상당히 많은 일반 소비자들과 접점에 닿아 있는데 비해 민감성은 떨어지는 게 현실이지…” 모 대형유통기업의 고위임원께서 이런 하소연을 하셨다.
외부에서만 보면 정말 멋진 회사들과 위대하고 거대한 회사들의 위용.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위기가 발생하면 ‘그런
대기업이 어떻게 이런 황당한 위기대응을 할 수 있나?’하고 불평한다. ‘이렇게 위험한 사건을 어떻게 내부에 보고하지도 않고 해결조차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끌고 있나?’ 놀라곤 한다.
사실 기업이나 조직에게 어떤 하나의 큰 위기가 발생되려면 그 이전에 300여개 이상의 전조들과 소규모 위기들이 선행한다. (하인리히의 법칙) 이런 자잘한 전조들과 소형 위기들에 대해 해당 기업이나 조직들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침묵’하는 듯이 보이는 것이 문제다.
위기시 어떤 기업이 그 위기를 모른 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수 있을까? 그런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비춰지는 기업들은 많이 존재한다. 그것이 문제다. 내부에서는 수많은 의사결정자들이 모여 앉아 힘들게 대응안을 마련하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볼 때는 해당 기업이 아직까지 전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게 되는 상황이 문제다.
심지어 특정위기가 발생하고 나서 그에 대해 기업이나 조직의 공식대응문이 배포되는 속도도 예전의 일간지 마감 일정에 맞추어져 있는 곳들이 흔하다. 3-4시간을 훌쩍 넘겨도 예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극단적으로는 오늘 8시나 9시 뉴스에 관련 위기가 보도되기 전에만 우리 입장을 정리하던가 아니면 내일자로 입장을 정리해도 별 문제가 없다 평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블로그와 트위터, 미투데이가 존재하는 시대다. 각종 포털들과 인터넷 뉴스들을 사이트는 물론 SMS과 푸쉬 기능을 통해 뉴스 소비자들 손에 ‘실시간’ 전달한다. 심지어 일부는 이런 뉴스 전파 상황을 ‘휘발성’ 환경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과 같은 민감하지 못한 기업/조직들의 반응과 대응속력은 위기관리 실패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환경이 휘발성으로 변해감에 따라 기업이나 조직의 대응도 그에 버금가는 속력과 정확성 그리고 전파 역량을 보유해야 살아남게 된 것이다.
따라서 위기에 조직이 민감성을 극대화 하는 것은 성공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의 첫 단추다. 위기에 대한 조직의 민감성은 우선 보고체계와 프로세스로서 1차로 검증이 가능하다. 일선에서의 위기요소 감지가 얼마나 정확하게,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얼마나 적절한 의사결정자들에게 공유되는가 하는 부분이다. 최근 들어 스마트폰과 온라인 모니터링 시스템의 발달로 특정한 문제가 발생되면 위기관리팀 전원이 경고 SMS 또는 Alert를 받게 되어 있는 기업들도 있다. 이런 시스템이 조직의 위기 민감성을 한층 높여주는 자산이다.
내부 문화에 있어서는 일단 적절하게 보고된 위기요소에 대해서는 그 발생의 책임이나 평가를 최소화하거나 일정기간 유예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일선에서의 위기 민감성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이유들 중 하나는 ‘이 사태를 상부에 보고하면 나와 우리 부서에 강한 질책이 떨어질 것이 틀림없어’하는 생각이다. 일선 인력들이 자신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회사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현실을 항상 경계하자.
의사결정그룹들간에는 위로는 CEO부터 실무팀장급에 이르기까지 정기적인 위기요소 검토 및 대응 회의 등을 통해 항상 역동적으로 민감성을 업데이트 해야 하겠다. 반복적인 위기요소 검토와 모니터링은 결국 의사결정자들로 하여금 위기에 대한 민감성을 극대화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일종의 정기적인 위기관리 훈련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평상시 업무에 있어서도 ‘What if?(만약에?)’라는 마인드를 제고하자. 만약 내가 하고 있는 지금 이 업무분야에 이런 문제나 논란이 불거진다면? 그러면 나는 그리고 우리 부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고안하는 것이 좋다.
CEO의 역할에 있어서도 주목 해야 한다. 여러 내부 미팅시에 CEO가 반복적으로 위기에 대한 민감성을 표출하는 것도 조직 전체를 위해 아주 중요한 활동이다. 단, CEO가 위기요소에 대한 민감성을 강조할 때에는 그에 대해 부정적인 책임소재파악과 비판은 절대 피해야 한다. 그 대신 해당 위기요소를 발견하고 정확하게 보고하고, 빠르게 대응했던 핵심 관계자들을 치하하고 지원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사내적으로 CEO는 ‘위기’라는 단어를 말하기 조차 두려워하는 문화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자. 누구든지 문제가 있으면 말하게 하고, 그에 대해 개선점을 제안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그런 ‘위기’를 숨기거나 우습게 보고 그냥 지나쳐 간 직원들을 경계하자. 그들이 초래한 심각한 위기들을 돌아보고 그에 대해 이야기 하자.
CEO부터 일선의 일용직 직원들까지 사소한 위기에더라도 상당한 민감성을 가지고 움직일 때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살아 움직일 수 있다. 그런 민감성을 지닌 조직이 실제 큰 위기가 발생하면 그렇지 못한 기업들 보다 더 침착하고, 빠르게 대응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조직이 위기에 대한 민감성을 극대화해 유지하다 보면, 조직 내 그 누구도 놀라지 않으며, 외부 이해관계자들 그 누구도 놀라지 않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위기관리의 모습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