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참 흥미롭다 생각하는 많은 부분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기업 위기관리 시스템에 관련해 그 것을 자신의 직무로 받아들이는 부서나 담당자들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기업들 중 그래도 홍보관련 부서들이 이런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그
원인이 매일 그리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외적 자극에 대응하기 위한 상당히 말초적이자 현실적인 니즈 때문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위기관리 자체를 기업의 전사적 시스템으로 보지 않는 관점도 안타깝다. 위기관리를 어느 한두 부서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일종의 task로 보는 시각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오늘 한 클라이언트와 점심을 함께 하면서 대화 중 몇 가지 비유가 떠올랐다.
모순(矛盾)에 대한 이야기다. 모순(矛盾)이란 중국의 고사에서 나온 의미다.
초나라에 서 무기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그 상인은 자신의 창을 들어 보이며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이라고 선전했고, 또 자신의 방패를 들어 보이며 그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라고 선전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명나라 왕 신하 중 한 명이 상인에게 “당신이 그 어떤 방패도 다 뚫을 수 있다고 선전하는 창으로 그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다고 선전하는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하고 질문을 던지자 상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처럼 모순은 ‘모든 방패를 뚫는 창’과 ‘모든 창을 막는 방패’처럼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위키백과]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해 모순의 고사와 같이 기업 인하우스들이 생각하고 있는 몇 가지 유형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 자체를 여기에서의 순(방패)으로 비유해 보자.
1. 자신들의 방패(위기관리 시스템)가 어떤 창(위기)도 막아 낼 수 있다 자부하는 기업
2. 애초부터 어떤 방패(위기관리 시스템)도 창(위기)을 완벽히 막아낼 수는 없다 체념하는 기업
3. 어떤 창(위기)이라도 최대한 우리의 방패(위기관리 시스템)로 막아내야 한다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기업
4. 강한 방패(위기관리 시스템)를 만드는 게 너무 힘들고 어려우니, 그냥 웬만한 창(위기)은 예전 같이 그렇게 막아내자 합리화하는 기업
4. 방패(위기관리 시스템)는 준비하지 않은 채, 상대방 창(위기)의 양날을 잡아채려 하는 기업 (특히 홍보부문만 녹아나는 유형)
5. 아무리 창(위기)이 여러 번 공격 해오고, 방패가 뚫리더라도 우리는 영원하지 않겠느냐 생각하는 기업 (공공기관 또는 정부부처들의 위기관리 개념 기저)
이 다섯 가지 유형의 위기관리 시스템 관점들 중 세 번째 유형 빼고는 모두 심각한 유형들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의뢰로 세 번째 유형의 기업들이 수적으로는 가장 적다. (놀랍게도)
앞서 이야기한대로 이는 실무자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이지, 기업 조직 자체가 그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안타깝다. 어느 실무자들이고 위기관리 시스템에 솔깃해 하지 않는 기업들은 없다. 하지만, 그 솔깃한 이야기를 실제 내부에 공론화 시키고, 실행 플랜을 제안하고, 예산을 확보하고, 실제 방아쇠를 당기는 실무자들이 매우 적다는 현실을 이야기 하는 거다.
개인적으로도 인하우스 시절을 되돌아보면 회사 전체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그러한 적극적인 시도와 리더십을 스스로 제한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었다. 홍보부문에게 그 만큼의 임파워먼트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매일의 일상이 힘들어 그런 중장기적인 별도의 실행을 부담스러워 했던 경우들도 있다. 당장 조직 내에서 나와 내 부서의 생존이 더 큰 위기였던 케이스들도 있다. 모든 게 현실에 대한 이야기들이라 어렵다.
우리 회사는 어떤 방패를 손에 들고 있을까? 다만 한번쯤 식사를 하면서라도 주의 깊게 상상해 보는 정도의 수고는 좀 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자…과연 지금 어떤 종류의 방패를 들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