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매뉴얼

5월 192008 Tagged with , , , , , , , , , 0 Responses

[정용민의 미디어 트레이닝] 지휘관의 의도를 살리자

지휘관의 의도를 살리자
[정용민의 미디어 트레이닝]

기업&미디어 web@biznmedia.com

군대에서는 각 병사마다 전쟁 발발 시 자신이 가장 먼저 맡아 해야 할 일을 카드로 만들어 평시에 외우도록 한다. 보통 그 조그마한 카드에는 ‘최초 군장을 챙겨 OO지점에 있는 탄약고로 이동하여 탄약 OOO발과 수류탄 OOO발을 수령, OOO 지점으로 신속히 이동하여 OOO한다’ 이런 식의 최초 행동 프로세스가 자세히 명기되어 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수 많은 병사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빨리 기억해서 전체적인 상호간 혼란을 줄이고, 효과적인 방어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런 개인임무카드에 대한 학습과 암기 훈련은 정기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는 분명 연습상황에서만 유효하다. 수많은 병사들이 각자 개인임무카드에 명시된 행동 프로세스들을 완전 암기해 숙지해 놓았다 하더라도 실제 전쟁이 발발하면 그 행동 프로세스를 100%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 자신은 탄약고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동하려는 순간 그 탄약고가 폭격을 받아 불기둥에 휩싸였다고 치자. 그러면 이 병사는 그 다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탄약이나 수류탄 수령 없이 그냥 정해진 장소로 이동 매복하고 있으면 될까? 아니면 탄약이 보충 되어 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마냥 기다려야 하나?

위기는 매뉴얼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에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다. 많은 기업들이 자사의 위기관리 매뉴얼에 자세하게 위기를 관리하는 절차와 프로세스들을 명기해 놓았다. 그러나 그 프로세스는 매뉴얼을 위한 것이지 실제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경험상 그렇지 않은 적이 더 많다.

일부 매뉴얼에서는 대응 시간대까지 정해서 신속한 행동 프로세스를 요구하고 있는데, ‘위기 발생이 감지된 후 3시간 내에 CEO가 주재하는 위기대책 회의를 소집해 회사의 공식적인 결정을 도출하고 즉각 발표한다’는 프로세스가 있다고 치자. 실제 위기가 터졌다. 사장님은 브라질로 출장을 가 있다. 그 다음 전권을 이양 받아야 할 기획 부사장은 어젯밤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있다. 지금은 새벽 2시라서 위기관리팀 구성원인 최고 경영진들 중 3분의 2가 연락이 안 된다. 이 때 실무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보통 날이 새기까지 기다린다. 브라질로 계속 전화를 해 사장님을 찾는다. 새벽 술에 취한 경영진들의 휴대폰에 수 십 개의 문자메시지를 넣어 놓는다. 이것이 위기관리에 있어서 매뉴얼과 프로세스 중심 사고의 병폐다. 실제 위기를 일선에서 관리하는 실무자들에게 영혼을 뺏고, 자기결정에 따른 적절한 최초 조치를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계획 되로만 전개되는 전쟁은 없다. 매뉴얼대로만 움직여주는 위기도 없다. 사람에게는 본능이라는 것이 있고, 조직인에게는 조직을 위한 본능이 존재한다. 이 본능을 십분 활용할 때 전쟁이나 위기관리는 성공한다.

조직의 ‘본능’을 십분 활용하라
좁다란 인도를 따라 길을 걸을 때,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미리 고민을 하고 상대방이 이렇게 피하면 나는 이렇게 피한다는 식의 수많은 시나리오들을 머릿속에서 돌리나? 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그냥 상대와 부딪치지 않고 잘 걸어간다. 마주 오는 상대방의 발걸음과 눈빛으로 0.5초도 되지 않아 자신의 포지션을 정하고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된다. 여기에서 보행자의 마음에는 ‘부딪히지 말자’는 간단한 개념만이 존재한다.

   

위기관리에서는 이 개념을 ‘지휘관의 의도 (CI : Commander’s Intent)라고 부른다. 이 CI는 보통 간단한 한 문장 정도의 명령문 형식으로 존재하고 공유된다. 지역 전투시에 지휘관의 의도는 ‘교전 발발 이후 OO시간 동안 이 지역을 사수한다’가 되겠다. 기업의 특정 위기 시에는 ‘소비자의 안전이 최우선이다’가 될 수 있겠다. 불타는 남대문을 바라보는 소방수의 머릿속에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조기 진화하라’는 CI가 새겨 있어야 한다.

일선과 저 멀리 있는 의사결정자들간에는 항상 물리적 거리가 존재한다. 상당량의 시간차도 있다. 멀리서 지나간 상황을 보고받아 내리는 결정은 거의 효과를 상실한다. 일단 공유된 CI가 있다면 그냥 일선은 일관되게 그것에만 따르면 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위기관리 시스템이다. 사후에 CI에 충실했다고 벌하면 안 된다. CI에 근거한 모든 위기관리 활동들은 옳은 것이라는 믿음이 조직 내에 있어야 한다.

위기관리 교과서에서 성공한 위기관리로 회자되는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 케이스. 여기에는 존슨앤존슨이 전사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CI가 있었다. 신조(credo)라고 불리는 이 존슨앤존슨의 CI는 위기 시에 바로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 존슨앤존슨의 신조에는 분명히 ‘We believe our first responsibility is to the doctors, nurses and patients, to mothers and fathers and all others who use our products and services’ 라고 쓰여져 있고 수십년 동안 반복해서 공유되어 왔었던 것이다.

자사의 제품에 독극물이 투입되어 소비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 나자 존슨앤존슨은 그냥 이 CI에 충실했다. 소비자들을 위해 모든 제품을 다 수거해 말끔하게 다 없애버렸다. CI에 충실한 결정이었고, 이 결정에 대해 나중에 비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이 공유된 CI의 소중함이다.

정 용 민

   

PR컨설팅그룹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사장
前 오비맥주 홍보팀장
前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ICO Global Communication, LG-EDS, JTI Korea, KTF, 제일은행, Agribrand Purina Korea, Cargill, L’Oreal 등 다수 국내외 기업 경영진들 대상 Media Training
Hill & Knowlton, Crisis Management Training Course 이수
영국 Isherwood Communications, Media Training and Crisis Simulation Session 이수
영국 Isherwood Communications, 두번째 Media Training and Crisis Simulation Training 기법 사사
네덜란드 위기관리 컨설팅회사 CRG의 Media training/crisis simulation session 이수

입력 : 2008년 05월 19일 13:39:02 / 수정 : 2008년 05월 19일 13:41:46
5월 142008 Tagged with , , , , , , 3 Responses

어떤게 진짜 위기관리 매뉴얼인가?

방금 전까지 담당 컨설턴트들과 클라이언트측에서 전달 해 온 위기관리 매뉴얼 검토 의견을 가지고 토론을 벌였다.

토론의 핵심 이슈는 “어떤 것이 진정한 위기관리 매뉴얼”이냐 하는 것이다.

1. 실제 위기시에 활용이 가능한 것
2. 보기 좋고 만족스러운 것
3. 또는 실제 위기시에 활용이 가능하면서 보기 좋아 만족스러운 것

당연히 답변은 3번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동가홍상…당연한 답변이다. 그러나 문제는 ‘보기 좋고 만족스러운 위기관리 매뉴얼’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시각의 차이다.

이 시각의 차이에 따른 컨설턴트들의 의견을 한번 정리 해 본다.

1. 분량은 적어야 한다 vs. 분량은 충분히 많아야 한다
2. 세부적인 대응 프로세스들 보다는 큰 기본방침과 업무분장이 핵심이다 vs. 세부대응 프로세스가 자세히 나와 있어야 제대로 된 매뉴얼이다
3. 대표적인 위기관리 요소들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 체계를 확정하는게 좋다 vs. 가능한 모든 세부적인 요소들에 대한 각각의 대응 체계들이 짜임새 있게 구축되는게 좋다
4. 너무 복잡해서는 안된다 vs. 가능한 최대로 자세 해야 한다

# # #

여기서 질문.

1. 전화번호부를 다 읽어 본 사람이 있나? 

미쳤나?

2. 그럼 그 두꺼운 전화번호부에서 유용한 정보는 무언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는지, 이름과 번호와 주소는 정확하게 들어있는지를 확인한다. 가끔 필요시에 찾고 싶은 사람의 이름과 주소 또는 전화번호를 찾아 사용한다. 따라서 전화번호부의 99.999%는 사용자에게 쓸모없거나 사용할 가능성이 없는 정보들이다.

3. 그러면 전화번호부에는 각자의 수많은 모든 정보들이 세세하게 들어있나?

제임스 정씨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제임스 정을 찾아서 전화 걸어 자신인지 확인을 하고 물어보면 된다. 몇년생이고, 어디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결혼은 했는지, 자식은 몇명이고 몇살인지 물어보면 된다. 이 내용들을 다 적을 필요나 완벽하게 적을 가능성은 없다.

4.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사람이나 가게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나?

전화번호부에는 알파벳 또는 가나다순으로 정렬이 되어있고, 각각의 chapter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사용자가 빨리 해당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배려만 하고 있다.

5.  그건 그렇고 전화번호부를 전화 걸 때나 사람을 찾을 때 마다 항상 소지하고 다니면서 열람을 해야 하나?

불가능하고 이 또한 바보같은 짓이다. 자주 전화를 걸어야 하는 사람의 번호는 머릿속에 기억을 하거나 자신의 개인폰에 번호를 저장해서 한번에 익숙하게 건다. 점점 번화번호부를 찾는 횟수나 시간은 적어진다.

6. 제기랄, 그럼 대체 전화번호부는 어디다 두고 쓰나?

책상위 구석에 처박혀 있다. 그리고 잘 안본다. 아…가끔 낮잠을 자거나 장롱위에 손이 닿지 않을 때 받침으로 사용한다.

# # #

사용자 삽입 이미지위기가 발생하면 가장 어려운 것이 상황파악이다. 그다음이 대응 포지션을 정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그 포지션에 따라 위기관리팀 구성원들이 맡겨진 역할과 임무를 성실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이게 다다. 매뉴얼은 한 장으로도 만들 수 있다.

수천가지의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게 좋은 위기관리 매뉴얼과 덜 좋은 위기관리 매뉴얼간의 차이다. 마치 핸드폰의 번호 저장 리스트와 전화번호부의 리스트간의 차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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