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시 로드맵을 먼저 관리하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낯선 길을 갈 때는 지도가 필요하다. 기업 위기도 마찬가지다. 지도 없이 길을 가면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스스로 힘을 배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낯선 길을 따라 뛰다 이내 포기하게 된다. 기업 위기 시 CEO는 해당 위기에 대한 상황변화 시나리오를 구해야 한다. 로드맵이 있어야 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
인간의 질병과도 비슷하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로부터 어떤 질환을 발견하면 “보통 이 질환은 평생을 지속 관리해 나가야 하는 유형”이라 이야기할 때가 있다. 또는 “지금이라도 당장 수술을 하거나 조치를 받으면 정상 생활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는 유형도 있다.
기업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위기가 발생하면 무조건 해당 위기를 빨리 관리해 마무리 지어야만 하는 경우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 나가면서 해당 위기를 통제하에 머무르게 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다. 물론 이 경우 절대 그냥 내버려 두면서 해당 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어디까지 이를 것인지 지켜보라는 의미는 아니다. 위기관리란 위기를 관리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위기관리 지속 시간을 관리한다는 의미도 가진다.
기업이 일반적으로 위기를 빠른 시간 내 관리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매우 많은 자산과 역량의 집중 투입이 필요하다. 가시적 또는 비가시적으로 해당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모아 쏟아 붓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항상 지속력이 담보되어야 한다. 특정 위기를 조기에 종결시킬 수 있는 충분한 지속력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이렇게 긴 안목과 긴 호흡을 가지고 위기를 관리하는 데에는 그리 깊은 고민을 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일단 가용한 자산과 역량을 때려 부으면 어느 정도 위기가 관리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함과 긴급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운 좋게 위기가 관리되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운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기업 위기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해당 위기 (환자로 보면 질환)가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한 실행 플랜의 보유다. 자칫 하나의 해프닝으로 마무리 될 수도 있는 사건을 기업이 초기부터 최대 역량을 투입 해 맞서게 되면 이 또한 다른 위기를 추가적으로 조성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막연하게 지켜만 보면서 역량을 아끼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이런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는 상황별 시나리오들을 위기 발생 직전이나 직후 가능한 신속히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나의 로드맵(roadmap)을 보면서 해당 위기가 어떤 길을 가고 있고, 어떤 교차로에서 어떤 길들로 갈아 탈 수 있을 것인지를 미리 내다보며 각 상황에 맞춘 대응책들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업 자산과 역량의 효율적인 배분과 투입이 가능해 진다는 의미다.
일부 기업들은 이런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로드맵을 이야기하면 이내 ‘해당 위기 발발 이후 발생 가능한 모든 (하나도 빠짐 없는) 아주 복잡한 지도를 만들자’하는 의견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경험상 이런 생각은 과욕이다. 일반 지도의 경우에도 가장 큰 도로 순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의 도로들을 충분하게 담는 데에만 만족한다.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로드맵이란 크고 중요한 상황변화들에 대응하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지 그 이상이나 그 이하도 아니다.
너무 디테일하고 너무 많은 변수들을 설정해서 해석하기 복잡한 위기관리 로드맵을 만드는 것보다는, 이해하기 쉽고 가장 중요한 상황변화에 따른 보기 좋은 로드맵을 만들고 이에 따라 위기 지속 시간을 관리하자. 성공적 위기관리를 원하는 CEO라면 위기 시 이렇게 이야기하자. “이 건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갈 것인지, 그리고 그 시나리오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이해관계자들과 변수들은 대략 어떤 것들이 있을지를 먼저 구조화 해 내게 보여달라” 주문해 보자.
처음부터 완벽한 시나리오들을 모두 만들어 공유하는 것까지 바라지는 말자. 단, 고려해야 할 중요한 변수들과 상황들은 충분하게 담겨 있는지는 확인하자. 지도를 가지고 길을 가는 사람은 서두르거나 당황해 하지 않는다. 지도가 없고 길이 낯설기 때문에 사람이나 기업은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길은 잘 못 들면 다시 돌아 제 길을 찾아 갈 수 있지만, 위기관리에 대한 의사결정은 다시 되돌리기 힘들다. 초기에만 집중했다 지속력을 잃거나, 긴 호흡을 가지지 못해 계속 방황하는 모습을 CEO들은 위기 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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