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최근에는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미디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었다. 함께 일하는 직원도 미디어가 되었고, 회사에서 도움을 주는 기사나 비서도 이미 미디어다.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미디어고, 회식을 위해 들른 식당의 주인도 미디어다. 누군가가 어디에 서든 나를 지켜보고, 여러 개인 장비를 통해 나 또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기록은 상당한 위험성을 지닌 위기 요소라 볼 수 있다. 물론 기존 회사가 자랑스러워하는 사규나 원칙, 미션, 비전, 밸류 같은 종류의 기록들은 위기관리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 기록이다. 하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그 외 사적 내부적으로 간간히 공유되어 왔던 문제 소지가 있는 기록이다. 최근에는 그에 더해 제3자들에 의해 진행되는 기록도 큰 위기 요소가 되어 버렸다.
최근 가장 빈번하게 위기요소화 되는 기록은 위기 시 내부 보고 내용, 지시 사항 기록, 위기 대응을 위한 부서별 메신저 기록, 위기 대응 회의 회의록, 회의 당시 개인적 녹취 내용, 민감한 지시 사항이 담긴 문건, 문자, 통화 기록, 이메일, 내부 게시 내용들이다. 이에 더해 직원들의 블라인드 게시 내용과 같은 비공식적인 기록도 위기요소가 되었다.
그로 인해 다양한 추가 위기가 발생되고 있는 데도, 많은 기업은 위기관리 체계 설계나 실제 대응을 하는 기간 동안 기록에 대한 주의를 크게 기울이지 않는다. 평시 같은 보고 체계와 방식을 고수한다. 각종 문서를 양산하고, 다양한 문자와 메신저를 주고받는다. 지시 사항을 신속하게 내부로 공유하기 위해 다시 취약한 채널과 기록을 이용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구두로 내리는 지시사항까지 녹취 당한다.
일부 기업에서는 이런 환경을 접하고, 기록이 남는 커뮤니케이션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려 한다. 위기대응 회의 시나 VIP 면담시에는 참석자의 휴대폰을 외부에 비치하게 한다. 위기관련 보고나 대응 회의 기록을 일체 남기지 않는다. 사후 기록이 남지 않는 특별한 메신저로 대응 지시하고, 일정 기간 후에는 기록 정리를 한다. 이런 세부 조치들로 최대한 기록으로 인한 추가적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다.
물론 그런 고민과 체계의 적용은 그 자체로는 의미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투명성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그런 형식의 대증 치료나 예방 노력은 큰 효과를 거두기 까지는 어렵다. 기록은 아무리 통제해도 만들어 져 남는다. 그리고 사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기록은 어떤 방식으로 든 문제가 된다. 기업 차원에서 기록을 통제할 수 없고, 그 기록의 위해성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면, 좀 더 근본적인 위기관리 체계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일부 기업에서는 또 이렇게 답한다. 기록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위기 대응 의사결정이나 실행 조직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내부에서라 도 광범위하게 기록이 남는 것을 예방한다 한다. 최소 인력 몇 명만 제한적으로 공유하는 수준에서 위기를 관리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실제 위기가 발생되고, 위기관리를 진행하다 보면 여러 문제를 만든다. 그런 최소 인력을 통한 위기대응 체계가 위기 시 부서별 사일로를 만들고, 대응을 위한 정보와 여러 자산 활용에 걸림돌이 된다. 누군가 무엇을 하는 것은 같은데, 확실하게 누가 무엇을 하는지 서로 알지 못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대응 방식은 기록을 해도 문제없을 내용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또한 원칙에 대한 주제다. 외부로 기록이 공개되더라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시에 고민해 구성한 의사결정 원칙을 위기 시 해당 상황에 제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 외 사적이거나, 비공식적인 위기관리 기법들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다.
말 그대로 위기 시 자사가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찾아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위기관리 방식이다. 위기 시 자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볼 수 없는 일을 주로 하니 사후에 문제가 된다. 법을 지키는 것은 그 중 기본 중 기본이다. 비윤리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위기대응 방식은 사전에 거르는 체계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스스로 투명 해 져야만 최근 같은 투명한 사회에서 제대로 된 위기관리를 할 수 있다. 스스로 불투명하기 때문에, 투명한 사회 속에서 튀며 문제가 된다. 스스로 불투명한 상태에서 겉모습이나 드러나는 방식만 바꾸어 보아도 자사의 불투명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록에 주의하라는 말은 기록 자체를 없애라는 의미라 기 보다는, 기록되어 문제될 일은 하지 말라는 의미다. 모든 것은 기록을 남기니까.
# # #
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 # #
Communications as Ikor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