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증적 치료

4월 032008 Tagged with , , , , , , , 1 Response

위기관리의 경제학

언론을 포함한 일반 국민들은 식품회사나 다른 여타 회사들의 ‘안전 불감증’이나 ‘저급한 품질 관리’ ‘불결한 생산 프로세스’ ‘건강하지 못한 재료 및 함유물’ 등에 대한 자세(attitude)에 대해 비판을 한다.

이번 새우깡, 참치캔, 빵, 떡복기떡, 소시지…사례에서도 반복적으로 거론 되는 것이 “왜 우리나라 회사들은 소비자들에 대한 기본 예의가 안되있나?”하는 것이다.

특히 언론에서는 “왜 소비자가 이물질을 발견했다는 신고를 했는데, 바로 리콜을 선언하지 않았느냐?” “지금까지 쉬쉬하고 있었던 것은 문제를 숨기려 했던 것 아니냐?” “왜 참치캔 한 세트를 소비자에게 주었느냐? 입 막음용이냐?” “왜 지렁이를 발견한 소비자가 말을 번복하느냐?”등등 의도를 깔고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다.

소비자 단체들에서는 “소비자 안전을 등한시 하는 기업은 불매운동을 해서라도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한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이나 홍보 임원분들은 ‘이번 사례가 큰 깨달음의 기회가 되어서 어서 우리 회사들도 위기관리 시스템을 확충하고, 그와 함께 더더욱 품질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 좋다.

단, 이런 논의는 우리 기업들이 ‘훌륭한 위기관리’의 선제조건인 ‘훌륭한 경영 철학’이 전제되었다는 가정하에서 실현성이 있는 비판이며 논의다.

기업의 진화 프로세스에 있어 우리 기업들은 아직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윤창출’이라는 수십년전 기업관에서 그리 멀리 성장해 있지 않다. ‘사회 시민으로서 당연히 맡겨진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윤은 창출되며, 그 이윤은 훌륭한 사회 시민으로서 지속적인 활동을 해 나감에 따라 더더욱 극대화 된다”는 철학이 아직 뿌리깊게 공유되지 않아 있는게 현실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나이브한 생각이군…’할수도 있겠다. 나 스스로도 인하우스 시절 이런 철학적인 벽으로 기업의 한계를 피부로 느꼈었다. (사실, 이 부분은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간의 차이가 그리 많다고 볼수도 없다. 외국 기업이라고 다 훌륭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훌륭한 철학과 함께 그들에게는 ‘한국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 부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제품 ‘전복죽’에서 개구리 뒷다리가 나왔다고 치자. 화난 소비자의 마음을 가라 앉히고, 12종 죽세트를 선물하니 소비자가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하면서 없던 일로 처리해 준다.  조금 떠드는(?) 소비자에게는 한 50만원을 건네준다. 그래도 못 참겠다고 하는 소비자가 있으면 ‘얼마를 원하느냐?’해서 적절하게 무마 한다.

자신의 신체가 이 제품으로 위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제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겠다는 적극적인 소비자도 있다. 이럴때 회사는 머리를 굴린다. (철학을 일깨우는 대신) ‘우리 회사가 사용 중인 로펌에 소송 대응을 맡기면 얼마나 들까?’ 따라서 그렇게 크게 일을 법정으로 까지 끌고 가기 싫으면 로펌의 소송 준비 서류 개발 비용 만큼의 돈을 그냥 소비자에게 합의금조로 줘버리면 위기관리는 어느정도 오케이다. (나름 신속하고, 비용효율적인 대응이겠다…)

이렇게 대증적인 활동을 가지고 위기관리를 잘했다 못했다 거론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근본적인 원인 해결과 재발 방지에 대한 실제 활동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런 대증적 치료가 근본적인 체질 개선 보다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철학이 없는 기업에게 가장 큰 자극은 지금까지 실행했던 ‘대증적 위기관리의 경제성’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자 디지털 타임즈에 안병한 법무법인 장백 변호사가 올린 기고문에 동감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

대증적 위기관리의 경제성을 박탈하기 위한 소비자 집단 소송제도의 도입은 ‘훌륭한 철학이 존재 하지 않는 기업’들에게는 전혀 다른 위기관리 패러다임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훌륭한 위기관리는 그 다음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