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많은 기업들이 실제로 사내에 위기관리 시스템을 나름 구축하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상당히 많은 예산을 들여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에게 맞는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런 위기관리 시스템이 실제 위기 발생시 허무하게도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그렇게 많은 노력과 예산을 들여 만들어 놓은 위기관리 시스템. 왜 위기시에는 실제로 작동하지 않을까? 왜 위기 이후에는 항상 시스템 무용론이 고개를 들까? 무엇이 문제이길래 실제 써먹기가 그렇게 힘들까? 그 이유들을 12가지로 정리해 본다.
- 시스템이 엉터리인 경우
매뉴얼이나 여러 가지 위기관리를 위한 시스템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일부 기업들은 시스템들이 너무 다양해 위기관리 시스템이 상호겹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위기가 실제 발생하면 각 시스템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빈 공간들이 튀어 오른다. 심지어 누가 이 이슈를 관리하는데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지도 찾기가 힘들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시스템은 시스템이 아니다. - 시스템이 너무 오래돼 적용 불가능한 경우
기업을 둘러싼 환경들과 이해관계자들은 하루가 멀다 변화하고 성장과 확장을 반복한다. 일부 기업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는커녕 대응시스템을 정지시켜 놓은지 오래다. 온라인상 위기가 발생했을 때 먼지 묻은 시스템을 끌어내 보니 대응 방법이 없다. 3년전 매뉴얼도 실제 환경에서는 환갑이 지나버린 셈이다. - 기업철학의 적용이 평소와 위기시 상반되는 경우
평소 기업이 그렇게 외치던 이야기들이 위기시에는 싹 사라져버린다. 아주 잊혀지는 경우다. 고객을 왕으로 모시겠다고 하면서, 위기시에는 왕을 우습게 여기고 적으로 간주한다. 이해관계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대하는 태도가 평소시와 위기시가 정반대인 경우다. 아주 멋진 시스템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 평소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하거나 비효율적인 경우
부서와 부서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진행이 완료되는데 최소 2~3일 이상이 걸린다. 일선에서의 심각한 고객불만 접수가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사라지거나, 무마된다. 분명히 빨리 보고와 공유만 됐어도 해결방안을 만들었을 텐데…하는 모든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미 트로이의 목마는 우리 안방에 들어와 서 있다. 시스템을 작동시키기에 너무 늦은 거다. - 기업 내부에 각 부서간 Silo Thinking이 너무 강한 경우
영업은 바쁜데 왜 우리가 위기를 관리해야 하느냐 불평한다. 마케팅은 홍보팀의 존재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손가락질한다. 기획이나 인사팀은 위기가 발생했는데도 일찍 퇴근한다. 왜 우리 부서가 왜 내가 위기관리에 나서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한다. 책임은 물론 위기 대응실행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손가락질만 한다. 시스템이 작동 할 수가 없다. - 문서로서의 시스템은 존재하나 실행형 시스템이 아닌 경우
위기관리매뉴얼이 곧 시스템인 줄 아는 경우다. 매뉴얼이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모른다. 일부 기업에서는 매뉴얼에 먼지가 수북하다. 오랜만에 매뉴얼을 펼치려면 ‘쩍’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매뉴얼이 완성된 이후로 한번도 들여다 보지 않았다. 심지어 사내에 매뉴얼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나? - 기업 내부에 위기 및 관리 의식이 부족한 경우
회사 내에서 ‘위기’라는 단어나 표현 자체를 쓰는 것 조차 재수 없다는 분위기인 경우다. 좋은 이야기만 해도 힘들고 어려운 시장인데 왜 자꾸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하느냐 하는 거다. 당연히 위기관리 시스템은 어느 한 담당부서가 만들어 놓은 업무실적일 뿐 그 이하나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 위기관리 시스템을 리드하는 부서가 힘이 없는 경우
기업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 관리하는 부서가 사내에서 아무 힘이 없는 경우다. 특히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이나 관리 담당자가 쥬니어급 직원이면 더더욱 해당 시스템은 작동하기 힘들다. 일개 회사가 대리나 주임급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닌가? - 최고경영자가 시스템보다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
시스템이라는것은 구 구성원이 누가 되든, 어떤 상황이 되든 적정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고경영자가 부재중이라 해도 시스템은 운용 가능해야 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게 시스템이다. 위기를 그냥 방관하고 있다가 최고경영자가 ‘버럭’ 화를 낼 때마다 후다닥 해치우는 시스템은 적절한 운용 방식이 아니다. - 위기에 대한 정의가 달라 시스템 가동 기준도 다른 경우
CEO의 위기관이 있는데, 홍보팀의 위기관이 다르고, 기획이나 생산의 위기관 또한 다른 경우다. 어느 하나 정확하게 ‘위기’라 공통적으로 정의 하기가 힘들고, 그에 따라 정해진 시스템을 가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즉각적인 판단이 서질 않거나, 유보된다. 실제 위기가 발생했는데 토론으로 시스템의 적절한 가동 시기를 놓치고 만다. - 임파워먼트가 일선조직에 전혀 주어지지 않는 경우
기업의 모든 위기와 컴플레인이 최고경영자가 나서야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선 매장에서 소비자 또는 고객들이 항상 외치는 ‘매니저 나오라 그래’ ‘사장 나오라 그래’하는 말들이 이런 시스템의 문제들이다. 일선에 문제해결의 임파워먼트가 주어지지 않아 적절한 시스템 구현이 되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 일선조직에 까지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
본사나 임원들이 일선조직을 너무 과대평가하거나, 그들의 역량을 그냥 추측하는 경우다. 당연히 ‘위기시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개념적인 원칙들이 실제 일선에서는 전혀 생소한 주문이 되곤 한다. 이 경우 시스템이 잘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사실 일선조직들이 그 시스템을 이해하거나 학습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12가지 경우들과 원인들이 기업의 소중한 위기관리 시스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부는 알면서도, 일부는 몰라서 그런 부분들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업마다 내부 사정이 있고, 오너 또는 경영진의 생각이 있고, 부서들간의 정치력들이 얽혀 있어 이런 고질적인 원인들이 말끔하게 해결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위기관리를 담당한 실무자라면 자사의 개선 가능 요인들이 무엇일까에 대한 확실한 통찰력은 가지고 있는 게 옳다. 그것 자체가 회사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