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2월 172009 Tagged with , , , 4 Responses

항상 같은 조언들이다

소비자가 분노하는 것은 고장 자체가 아니라 고장 이후 제작사의 태도에 있습니다.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김씨도 “벤츠가 처음부터
결함 원인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해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 보여줬어도 공개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벤츠가 국내시장에서 계속 성공하려면, 고급차 이미지에 맞는 서비스에 좀더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요?
[조선일보]



이슈나 위기에 대해 여러 이해관계자들이나 전문가들은 항상 같은 조언들을 반복하고 있는데…이러한 반복에도 정작 기업들은 배움이 없다. 이렇게 배움이나 변화가 없는 이유는 실무자들이 깨닫지 못해서라기 보다는…회사의 철학과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 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일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위기로 키우는 주범은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몇천만원짜리 디젤엔진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는 커뮤니케이션이 문제라는 거다.

항상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시간을 끌어 포크레인까지 끌어들이고 나서야 위기라 인식 한다. 어떻게 보면 조직적인 메조키즘 현상이라고 하겠다.  

1월 232009 Tagged with , , , , , 0 Responses

Crisis Communication은 민감하다

그런데 비자카드코리아 측은 경영진 교체가 이미 2주 전에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고 있어 이번 사태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김 사장이 비자카드코리아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라는 점에서 카드업계 충격은 더욱 크다. 비자카드코리아 측은 “경영진과 일부 인사가 회사를 떠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관련해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카드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비자카드 본사의 감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비자카드 본사 감사가 시작된 후 경영진이 사표를 내고 떠났고, 아직도 본사 감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비자카드가 지난해 주식회사로 바뀌면서 비용 규정이 엄격해졌는데 비자카드코리아 측이 과거 관행대로 비용 처리를 하면서 본사와 갈등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최근 비자카드코리아를 떠난 한 임원은 “모두 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사를 떠났을 뿐 감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매일경제]



매일경제가 모 카드사의 임원 대거 사퇴 소식을 1면에 실었다. CEO를 비롯한 최고위 임원이 무더기로 사표를 낸 뒤 수리가 되었다는 소식이다. 이에 대해 매경은 카드사측이 공식 발표를 2주간 미루고 있다는 지적을 한다.

기사를 보면 임원들의 사퇴에 대해 해당 카드사가 사퇴 사실 확인은 해주었는데, Quotation을 두고 보면 포지션과 핵심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사퇴한 전직 임원이 회사의 포지션과 핵심 메시지를 더 잘 말해주고 있다는 거다.

오늘 아침 일찍 이 카드사는 신임 사장 취임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에는 ‘전 사장이 일신상의 사유로 퇴사함에 따라 새 대표를 선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 거다. 어제 매경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물론 이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겠지만, 기사에서는 그 핵심 메시지가 반영되지 못했다.

하지만, Quotation이 정확하게 카드사 홍보담당자의 말을 받은 것이라도 일부 사족은 있다. “…이지만 그와 관련해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  이 부분은 분명 위험한 표현이었다. 그 깟 몇개의 단어일 뿐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기사의 의도와 야마가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Crisis Communication은 이렇게 민감하다.

1. 처음부터 확고한 포지션과 핵심 메시지를 갖기
2. 안전하게 커뮤니케이션 하기
3. 사족이나 위험한 표현 없애기
4. 빠르기

Insight다.


10월 252008 Tagged with , , , , , 2 Responses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빅 원(Big one)이 존재할까?

인하우스 시절 회사에 연이은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홍보실무자와 고위 임원들간에는 큰 갭이 존재했다. 실무자들이 “악…이건 위기다!”하는 것도 CEO를 비롯한 고위임원들은 “쩝. 뭐 두고 보자구…”하는 반응이 돌아오곤 할 때가 많았다.

가끔이지만 반대로 실무자들 차원에서 “사실…이런 건 뭐 그리 큰 이슈는 아니잖나?”하는 사건도 일부 고위임원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위기를 빨리 수습해!”하곤 해서 당황스러운 시츄에이션을 조성하곤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에게 ‘한방(Big One)’이 되는 위기는 사실 그리 흔하지가 않다. 오너회장이 폭력으로 구속이 되어도, 회장이 경영승계 관련 문제로 특검에 소환되어도, 또는 탈세로 감방을 가고 사회봉사를 다니더라도 별로 큰 문제(Big One)가 되질 않는다.

일부 해명광고비를 지출하고, 단기간 동안의 의사 결정 지연이 있거나, 아주 단기간 매출하락이나 주가변동이 있고 나면 끝이다. 홍보팀이 과로사 지경에 이르더라도 어떻게해서든 일은 마무리된다. 그 기간도 그리 길지 않다.

폭력으로 구속된 기업 회장에 대한 반감으로 그 회사 금융기관에서 돈을 인출하거나, 유리창호를 다른 회사것으로 선택하는 소비자들은 적다. 경영승계 과정의 문제로 벌금을 받는 그런 기업이 싫어 다른 회사의 PDP TV를 사거나, 생명보험을 해지해 다른 회사로 옮기는 소비자들도 보기 힘들다. 탈세한 기업이 미워 자동차를 수입차로 바꾸지도 못한다.

기업들에게는 그리 대수가 아니다. 그냥 한번 지나가는 골칫거리다. 괴롭기는 해도 못참을 만큼은 아니고, 또 기업 존재 자체에 위협을 주는 것도 아니다. 흔히 위기를 잘못 관리해서 망한 기업으로 일본의 유키지루시를 꼽는데 이 또한 복합적인 요인에 의한 도산이었지, 우유 식중독과 생산지를 속인 쇠고기 유통으로 두방을 맞아 쓰러진 것은 아니다. Exxon 발데즈 케이스의 경우에도 그렇고…Enron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많은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위기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기업의 생존이 위협 받을 수 있다”고 상당히 일반화를 하곤 하지만…사실 우리나라 기업측면에서는 이런 주장들은 ‘괜한 위협’일 뿐이다. 몇년전에도 이와 비슷한 글을 정리한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에 진정한 위기(Big One)가 존재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겠다.

1. 거의 대부분의 시장들이 독과점 또는 사실상 과점체제이기 때문에 위기로 부도덕한 기업 낙인이 찍혀도 소비자들이 마땅히 대체할 다른 기업의 제품이 부족하다.

2. 소비자들이 역시나 냄비성향이라 길게 가지 못하고, 대부분 빨리 잊는다. 더욱 특이한 것은 미국이나 유렵국민들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말만하고 글만 쓴다.


3. NGO도 왠만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하고만 싸우려 할 뿐 대기업들에게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 기업의 경영시스템과 같은 정치적 분야에 관심이 많다. 행동하고픈 소비자들도 어디 하소연 할 때가 없다.


4. 소비자들의 관점에서 ‘뿌리를 뽑는’ 권위언론이 부족하다. 위기시 가장 기업을 괴롭히는 언론은 대부분 외곽언론뿐이다.


5. 정부도 기업의 위기에 일부 책임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강력하게 기업의 불법이나 비윤리를 단죄하지 못한다.


6. 많은 기업들에게 mantra가 강력하게 존재하지 않거나,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따라서 실제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다.

어제 중국산 다진 양념을 수입해 고추가루라고 표시했다는 지적을 받은 두개의 고추장 브랜드들. 수년동안 우리 와이프는 그 중 하나의 브랜드 고추장을 사왔었다. 어제 그 찜찜한 (사실 그 다진양념이 건강에 끼치는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차치하고…) 마음으로 인해 다른 고추장을 찾아봤지만…대체품이 없다. 그 보다 엉터리 같은 마이너 브랜드 제품을 살 용기도 없다. (대기업이 그러니 이런 소기업들은 오죽하랴…하는거다)

소비자로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입으로 욕을하고, 글로 욕을 하고, 매장에서 눈이나 한번 흘기는 것 밖에는 말이다. 우리나라 기업에게는 진정한 위기란 없다.  

10월 242008 Tagged with , , , , , , , , , , , , 3 Responses

의사와 위기관리

양깡님께서 의사분들이 경험하시는 위기 상황과 대응방식에 대해 아주 멋진 insight들을 정리해 주셨다. 조직이 대응하는 종합병원은 일단 제외하고 개인병원 의사분들을 위한 위기관리 방식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를 해 보자.

1. 의료사고에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Litigation Communication.

Litigation communication에 있어서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다. “(판결이 나오기 까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단, 소송상대방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the allegations are absolutely false)” 더 알기쉽게 설명하자면 “판결로 내가 잘 못했는지 아닌지 밝혀질 때가지 나는 무죄야. 그러니까 당신도 괜히 떠들지 마!”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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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에 관련된 주체들은 서로 만나거나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도 위험하다. 보통 대리인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한다. 미국의 경우 이 Litigation Communication 방식이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와 판결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인데, 미국식은 court 내부와 외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외부 커뮤니케이션(일반공중, 소비자, 미디어, 정부, NGO…)이 매우 강조된다.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어 배심원들에게 간접적인 영향을 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자사의 명성보호 차원에서도 외부 공중에 대한 강력하고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소송과정에서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비전략적으로 이해된다. 최대한 메시지를 제한함으로 판사단의 chemistry 관리가 필요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에 대한 소송이 시작되고 그 사실이 알려지면 일반공중의 약 40%가량이 ‘해당 기업에게 모종의 죄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고 주장한다. 해당 기업이 언론에게 노코멘트를 남발하면 그 퍼센테이지가 50~60%이상으로 오른다고도 한다.

일단 소송전에 여론의 법정에서 유죄를 받고 법정에 입장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미국처럼 이런 연관성이 그렇게 유의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법적으로 정확한 의견은 아닐 수 있으므로 법률적 전문성을 지니신 분이 계시면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그러나 위기시 point of connection 관리가 매우 중요. (Litigation Communication 방식을 100% 적용하는데는 무리)

일단 병원에서 의사분이 책임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POC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2차 위기확산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 앞서말한 Litigation Communication 방식을 정확하게 고수하다보면 커뮤니케이션에 인간미가 없어지고, 공감이 끼어들 구석이 없다.

위기관리의 중요한 원칙인 “그 누구도 화나게 하지 말라”라는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게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환자에게는 의사와 정보의 불균형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이 존재한다. 따라서 의사들이 1차로 성난 환자들을 한층 더 자극하지 않으려면 다른 주체들 보다 더욱 더 최대한 인간미와 공감을 커뮤니케이션해야 유효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대기업들에서도 이러한 부담이 있는데 이 또한 이유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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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Litigation Communication의 가장 첫번째 목표는 ‘소송을 피하는 것’이다. 일단 소송이 시작되면 ‘소송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가 되고, 소송이 끝나고 나면 그 승패에 관계없이 ‘명성을 보호하고 회복하는 것’이 되겠다. 따라서 POC를 적절하게 관리하면 첫번째 목표가 달성되는 의미이고, 그 자체가 위기관리겠다.  

3. 균형을 통해 borderline을 넘지 않는 것이 핵심

그러나 섣부른 인간미와 공감이 “내가 잘 못했다. 내 죄다(I’m guilty)”로 상대에게 해석되면 안된다. 기존 의사분들이 우려하는 바가 이 부분이고, 이 때문에 인간미를 기반으로 한 공감 이전에 사무적이고 무죄를 주장하는 방어적 커뮤니케이션을 하고있다. 일종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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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감은 죄를 스스로 인정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이 부분이 매우 이해하기 힘든데, 일단 환자와 환자가족의 감정을 100% 공감해 보면 그 다음엔 적절한 메시지가 떠오른다. 아예 커뮤니케이션시 ‘공감표현’을 맨앞에다가 놓도록 습관을 평소에 들이는 것도 좋겠다.

위기 원인에 대해 포지션상 서로 대립각을 세우지 말고 같은 포지션을 품는 것이 전략적이다. “함께 원인을 찾아보자”는 포지션이다. 사실 정확하게 원인이 제3자에 의해 가려지기 전에는 의사나 환자나 누구도 맞는 주장이 아니다. 따라서 “정확한 원인을 ‘함께’ 찾아보자.” “우리는 같은 포지션이다”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전략적이다. 

4. 매뉴얼은 필요하지만 암기할 수 있는 분량이 넘으면 무용지물

대부분의 위기관리 매뉴얼은 무용지물이다. 회사 책상위나 책장에 버려진 장식품이다. 매뉴얼은 두꺼울 수록 효과가 없다. 가장 좋은 매뉴얼의 분량은 위기관리 주체가 그 첫장부터 맨 뒷장까지를 다 외울 수 있는 정도다. 물론 체크리스트와 기타 필요 정보들은 attachment로 필요하겠지만, Things to do는 모두 암기할 수 있는 분량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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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매뉴얼을 두껍게 만들어 위기가 발생하면 “OOO관련 위기라면…189페이지를 읽어 봐”하는 데…말이 그럴 듯 하지 현실성이 없다. 예를들어 매뉴얼내에 총 수십에서 수백개의 위기 유형이 있다고 해도 중 그 분류기준에 딱맞게 떨어지는 위기가 실제 존재하기도 힘들뿐더러, 하나의 위기가 하나의 유형을 갖지도 않기 때문에 실무자들은 각 챕터들을 넘기는 독서 삼매경에 빠지다가 실기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실무자들은 위기발생시 사실 매뉴얼을 볼 시간 조차 없다)

5. 결과적으로 위기관리는 기술(skill)이 아니라 철학(Philosophy)

인간미. 공감. 전략적 마인드. 커뮤니케이션 태도…모두 ‘기술’이 아니다. 기술이라고 이해하는 순간부터 위기관리는 실패한다. 평시에 모든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그 자체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익숙해져야 한다. 진정성이라는 것은 연습으로 되거나 설정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위기관리는 기업의 철학을 시험하는 기회다. 의사분들에게 위기는 각자의 평소 환자관, 의료 철학이 시험받는 기회겠다. 기술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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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2008 Tagged with , , , , , , 2 Responses

진정성은 어디에 존재하나?

위기 시 커뮤니케이션에서 기업의 화자들에게는 ‘진정성’이라는 큰 가치가 요구된다. 진정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위기관리의 성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정확히 표현을 하자면 기업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진정성이 있게 ‘느껴지는가’, 없게 ‘느껴지는가’가 핵심이겠다.

어제 모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데 내 뒤편의 테이블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젊은 엄마의 생일을 맞아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전체가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중으로 보였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 할머니가 4-5살짜리 손녀딸에게 말한다.

할머니: “OO아. 오늘이 무슨 날이지? 엄마 생일이지? 엄마~생일 축하드려요 해. 엄마~ 생.일. 축.하.드.려.요.”

아기 손녀딸: “엄.마. 생.일.축.하.드.려.요~”

할머니: “이제 엄마 말 잘 듣고…건강하게 잘 자랄께요. OO아…따라해…이제 엄마말 잘 듣고…건강하게 자랄게요…”

아기 손녀딸: “엄.마…엄마 말 잘듣고…’겅’강하게 자랄게요…”

이 대화를 등 뒤로 들으면서 느낀 몇 가지. 화자는 분명 할머니다. 4살짜리 손녀딸은 대변인이다. 청자는 엄마다. 4살짜리 아기가 오늘이 엄마 생일인 것을 어떻게 알겠으며, 생일이면 생일 축하한다는 형식적인 말을 해야 한다는 관습을 어떻게 기억했겠나. 거기에다 앞으로 말 잘 듣고, 건강하겠다는 다짐까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어떻게 보면 ‘불합리’한 커뮤니케이션에 청자인 엄마는 감격해 한다. 그 메시지가 시어머니의 조종(?)을 통해 나온 말인 줄 알면서도 아이를 보고 그 메시지에 기뻐하고 눈물을 글썽인다. 이게 진정성의 힘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진정성이란 청자의 마음에 있다는 증거다. 화자의 태도나 화자의 메시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깊이 청자의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입장으로 돌아와서는 평소에 명성을 잘 관리하고 신뢰(Trust) 기업으로 스스로를 잘 관리해야 위기 시에 청자 마음속의 진정성을 보험금처럼 되찾아 먹을 수 있다는 거다. 기업은 스스로 아기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9월 262008 Tagged with , , , , 0 Responses

멜라민 케이스를 바라보며

이번 국내 멜라민 위기 케이스는 여타 다른 케이스들과는 다른 점들이 좀 많다.

일단 위기의 소스가 국내가 아닌 중국이다.

이전 SK-II 케이스도 당시 중국발 위기였지만, 국내에서는 그로 인해 중금속 함유 논란이 지속된 것일 뿐이었다. 결국 한국의 제품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기간 한국의 해당 회사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실체가 없는 인바운드 위기) – 한국 기업이 억울

농심의 경우 초반에 speculation을 통해 국내 해당 제품의 이물질에 대해 중국 공장 내 유입설이 떠올랐지만, 조사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실체가 없는 아웃바운드 위기) – 중국 국민들이 억울

이번 멜라민 케이스는 미국 마텔의 케이스와 비슷하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마텔 장난감에 도장 된 페인트에서 과도한 납성분이 검출되어 중국은 물론 미국 내 해당 제품에 리콜이 선언된 케이스와 흡사하다. (중국에서도 리콜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멜라닌 케이스에서 가장 스폿라이트를 받고 있는 모 과자회사의 경우에는 최초 멜라닌 성분의 포함 가능성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근거를 들어 주장했다.

  • 해당 과자 제품에 분유가 매우 적게 사용 됨
  • 해당 과자 제품에 사용된 분유는 중국에서 리콜명령이 떨어진 유해 분유 브랜드가 아님

상당히 논리적이고 근거 있는 주장이었다. (일부 언론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톤으로 보도하지만, 위의 두 주장은 당시 사실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과자회사가 고민하는 문제의 핵심은 “왜 (중국에서 리콜명령을 받지 않은) 안전한 분유 재료를 사용했는 데도 불구하고 멜라닌이 검출되었느냐?’하는 것이겠다. 이에 대해 의문을 몇몇 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에서는 중국당국이 발표한 22개의 멜라민 분유 이외에도 멜라민 분유 브랜드들이 더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해당 과자회사에서는 현재 포지션을 적극 사과/리콜 쪽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과를 했고, 적극적으로 리콜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중국 생산공장과의 계약을 파기했다. 비교적 빠른 대응이다. CEO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리콜 프로세스는 비교적 빠르게 진행중이다.

이 회사 차원의 상황관리는 어느 정도 마무리 돼가고 있는 느낌인데 (다른 커피프림이나 다른 수입과자들로 확산 중), 이제 이 회사에게 남은 것은 어떻게 놀란 자사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고, 그들의 실망을 그 이전 애정으로 회복하는가 하는 것이라고 본다.

지금 가장 필요한 실무적인 단계는 ‘소비자의 마음’을 한번 깊이 공감해보고..그들의 이야기들을 겸허히 들어보는 것이다. 댓글들을 분석해 보고, 온라인 상에서 여론을 수렴해 보는 게 좋겠다. 그 분석결과를 토대로 그다음 단계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물론 억울하겠다. 운이 없다고도 생각하겠다. 자사가 피해자라고도 생각하겠다. 하지만…빨리 그런 과거 이슈에서 벗어나서 앞으로 ‘실망한 소비자들 수천만명’과 어떻게 무엇을 커뮤니케이션해야 할까를 고민해야겠다. 역시나 시간은 없다.

 

 

9월 242008 Tagged with , , , 10 Responses

농심의 이심전심 블로그 론칭을 축하합니다.

위기(crisis)의 가치는 기업이나 조직 또는 개인이 위기를 겪으면서 ‘개선(kaizen)하는 기회’를 갖는다는 데 있습니다. 위기가 없다면 그냥 지금 이대로가 가장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져 kaizen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실제 위기를 겪지 않고 항상 위기의식을 가지고 kaizen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로 그 긴장의 강도를 쭉 가져가긴 힘듭니다.

농심이 며칠전 이심전심이라는 기업 블로그를 론칭했습니다. 농심이야말로 올 한해 창사 이래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위기를 ‘개선의 기회’로 삼느냐 아니냐 하는 것인데 농심은 분명 kaizen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기회를 잘 살리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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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대화라고들 하는데 일단 대화의 창구를 열었다는 데 첫 의미가 있겠습니다. 다음 기회는 이 대화의 창구를 잘 키워나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심전심을 방문하는 방문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평생토록 가져가는 성공한 기업 블로그가 되었으면 합니다.

몇 가지 제안이라면,

  • 댓글을 관리자 승인 이후에 게시하는 것 같은데 그냥 오픈하면 어떨까 합니다. 부정적인 댓글도 긍정적인 댓글도 블로거들이 스스로 판단합니다. 친구를 사귀면서 누구는 가리고 누구는 챙기는 그런 느낌이 들면 친구들이 많아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 포스팅을 담당하시는 분들께서 좋은 이야기들을 올리시지만, 가끔은 소비자들이 농심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들도 올려주었으면 합니다. 회사 내의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소비자들은 농심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인간적인 관점에서 알고 싶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렵죠)
  • 손 회장님께서도 가능한 exposure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회장님께서 개인 블로그를 만드시거나 하시지 마시고, 이심전심에 직접 글도 올리시고 댓글로 대화도 하셨으면 합니다. 진정한 kaizen이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 편한 블로그가 되었으면 합니다. 위기 시에 다운이 되더라도 직원들이 울면서라도 블로깅을 하는 농심 블로그가 되었으면 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기업 블로그가 아니라 인간 블로그가 되었으면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파워 블로그가 되길 바랍니다.

농심의 멋진 Kaizen을 행복한 마음으로 구경하겠습니다.

9월 182008 Tagged with , , , 2 Responses

진짜 있다. 이런 대응.

김호 사장님 블로그에 소개된 하버드비지니스리뷰의 위기관리 서적 ‘지속가능 경영의 절대조건: 위기관리‘ 발간 소식을 접했다. 그 이전부터 많이 회자되던 시리즈라서 반갑다. 그 책을 구입하려고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 목록을 읽다가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방금전 모 방송국에서 ‘서울 유명 음식점에서 만든 음식에 바퀴벌레, 쥐, 곰팡이, 이물질이 발견된 사례들을 취재’한다는 프로그램 설명 기사를 접했었다. 여러가지 insight들이 있지만, 우선 가정으로 이 음식점의 주인이 이 책을 소중(?)하게 읽고 실행에 옮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번 그려본다. 

아래 검정 부분은 원래 책의 목록 vs. 빨간 부분은 그 음식점 주인의 insights

책 머리에 – 성공하는 조직은 언제나 위기상황을 경계한다

“성공하는 음식점은 언제나 방송사를 경계해야 하지”

1장 잠재적 위험요소에 대한 고찰 – 앞으로 어떤 위기가 발생할 수 있을까 
“또 어떤 벌레가 음식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생쥐나 그런 것 처럼 큰 건 좀 가능성이 휘박하니 일단 빼자”

잠재적 위기의 주요인들
“아니 벌레들이 조리한 음식에 들어가는 걸 어떻게 통제를 해. 내가 벌레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천장에서 소나기 처럼 떨어지는 바퀴벌레들을 어떻게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찌…”

잠재적 위기의 인식
“벌레들이 들어가는 건 자기네 마음이고, 손님의 운이라고 봄”

잠재적 위기의 우선순위 책정
“벌레가 가장 우선 가능성, 그다음이 생쥐, 그 다음이 아마 머리카락이나 비닐장갑류…”

2장 피할 수 있는 일은 피하라 – 시의적절한 예방 방법
“맞아. 방송국 사람들만 안나오면 뭐가 문제야. 손님들이야 안오면 그만이지…소문 안나게 하는게 최고라고 봐”
위기를 피할 수 있는 체계적 프로그램의 구성
“정문에서 방송국 사람들 처럼 보이면 완전 방어하라고 지시해야겠어. 일단 방송국이 뜨면 주방도 접어 문걸고 퇴근들 하라구”
임박한 위기의 조짐에 주목하라
“아니, 벌레들이 하루 이틀 나타나는 게 아닌데…”

뛰기 전에 살펴라 
“????? 벌레를?”

위기를 피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 “뻔해…위생 점검 관리 해라 뭐 이런 얘기겠지…쩝”

보험을 잊지 말라
“그런거 부을 돈 있으면 내 차를 좀더 큰 걸로 바꿔 리스로 내겠어”

3장 돌발적 위기관리 – 내일의 문제를 오늘 대비하는 법
“하루 하루 먹고 살기 바쁜데 팔자 좋은 소리네…”
1단계 : 관리팀 조직 
“정문에 어깨 몇명 주차요원으로 박아 놓으면 된다고”

2단계 : 위기의 규모 가늠
“손님만 나쁜 성질머리 안만나면 그게 어디야”

3단계 : 관리 전략 개발
“일단 막아라 이게 대 전략이야”

4단계 : 개발된 계획의 효율성 측정
“어짜피 월급주는 어깨들인데 뭐 위기관리 까지 하라고 하는거 잖아. 오케이”
5단계 : 관리 계획 수정,보안
“일단 막아봐. 문제가 생기면 그 때 봐”
당신은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무슨 준비? 난 우리 가게 음식 안먹어. 미쳤어?”
유수 항공사의 위기 대응 전략
“뭐 다 공자님 말씀이지 뭐…”

4장 위기 인지 – 연기가 나는 곳에 화재 있다
“우리 바퀴벌레는 음식 연기도 좋아해서 큰일이야”
다양한 위기 조짐
“바퀴야 자주보니 주방식구들도 친근해져서 뭐 위기 조짐이라고 까지는…”
위기의 조짐이 자주 간과되는 이유
“친근감?”
해결 방안
“돈들면 안되…말해봐…”

5장 위기 제어 – 문제가 악화되는 상황을 방지하라
“아니 뭐 바퀴 말고 또 뭐 다른 벌레들이 들어가겠어? 잠자리? 여치?”
제1법칙 : 신속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라
“방송국 애들 오면 한방에 해결 해”
제2법칙 : 사람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라
“사람은 다치지 않게 해. 혹시 안돼겠으면 멍 안들게 치고.”

제3법칙 : 현장에 나가라 
“니네들 항상 거기 있어. 잘 살펴”
제4법칙 :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개방하라 
“말 안통해. 방송국 애들이랑은 댓구 하지말고 그냥 막어”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훈련과 가치관,그리고 본능에 따라라 
“맞어. 방송국 애들인지 아닌지 확신이 안서면 먼저 막고 봐. 장사 안한다 그래”

6장 위기 해결 – 회복으로 가는 길
“손님이 바퀴벌레 먹고 죽지는 않지 뭐. 무슨 회복이야…회복은?”
신속하게 움직여라
“빨리 빨리 자식들아…”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기술을 활용하라 
“주차장이랑 현관 정문 팀별로 각자 구역을 정해…”
위기상황에서 부각되는 리더십
“방송국 애들이 다시 오면 이제 내가 앞장서서 막을꺼니까 두고 봐”

위기상황의 종결을 선포하라
“상황끝. 더 이상 거론하지 말어”

7장 언론 다루기 – 위기상황시 언론 매체를 다루는 방법들
“일단 막자 아냐?”
언론 매체는 신중히 접근하라
“일단 신중하게 하다가 말로 안되면…”
언론 매체를 신중히 선택해 발표 내용을 정리하라
“일단 KBS는 한번 찍어 갔고…MBC 불만제로가 오면 확실히 본때를 보여주자구”
위기 대처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들
“어떻게 하면 없던 것 처럼 조용해 질 수 있나?”

8장 경험을 통한 교훈 –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그래서 어깨들을 배치했어. 큰 교훈이라서 감사해”
위기의 종결을 명확히 공지하라
“상황끝. 끝. 끝”
위기관리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라
“야 애들아 경비 일지 오늘부터 작성해. 놀면 뭐하냐”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어라
“이번에 크게 배웠어. 말로하면 안된다. 무조건 막아라. 오케이”

Appendix – 부록

유용한 업무 자료 양식들
“경비 일지는 몇 페이진가?”

보도자료 작성 요령 “꼭 이말을 넣어야 할 것 같아….받아 적어 봐…

“내가 돈을 걸고 말한다. 우리는 깨끗하다. 우리 집은 제일 깨끗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약간은 억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믿고 싶지는 않지만…일부 이런 진짜 대응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진짜 있다.

9월 122008 Tagged with , , , , , , , , , , , , , , , , , 2 Responses

왜 조직은 위기시 비이성적인가?

(참고: 상당히 긴글입니다)

지평의 mu님께서 위기관리와 평판에 대한 아주 과학적이고 또한 현실적인 멋진 포스팅을 해 주셨습니다. 제 이전글과 mu님의 글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하나 드는 추가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왜 삼성 같이 이성적인 조직이 위기시에는 비이성적으로 행동할까?”

좋습니다. 삼성을 빼고 다시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이 굳이 삼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왜 이성적인 조직들이 위기시에는 비이성적으로 행동할까?”

mu님께서는 그 원인을 인간의 뇌구조별 역할에 촛점을 맞추셔서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참 insightful한 설명이십니다. (항상 멋진 정보들을 주셔서 아주 고맙습니다.)

저는 조직적인 원인에 대해 한번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위기가 발생되면 보통 CEO에게 보고가 됩니다. 특히 회사 내외부의 큰 문제는 CEO 보고가 최우선 대응 절차가 되겠습니다. CEO는 보고를 받고나면 일단 기분이 나쁩니다. 가뜩이나 처리할 많은 문제들이 많은데 이렇게 중대한 사안들이 자꾸 보고 되니 마음도 불편하고, 짜증도 나겠지요.

특히 오너 그룹사들의 CEO들이 전문경영인일 경우에는 자신의 프로파일하고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민감합니다. 자칫 노조문제나 산재처리 문제로 자신의 사내 입지가 불투명해지면 향후 커리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CEO들이 위기에 접했을 때 본능적으로 떠올리는 생각은 ‘조용한 무마’가 일반적입니다. 그룹 오너에게 소리가 안들어가게, 사내외로 안알려지게…조용히 사건 당사자들과 실무선에서 적당히 처리하는 것 만큼 이상적인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위기가 그렇게 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일 때 CEO가 다음 선택으로 하는 포지션이 무엇일까요? 조용한 무마가 힘들다면, 그 다음은 ‘회사의 이익을 대변한 강력한 대응’으로 대상을 무력화 시키는 것입니다. 이왕 벌어진 위기를 자연 소멸시킬 수 없다고 판단되면, 아주 강력한 리더십(?)으로 해당 위기를 인위적으로 소멸시켜야 사후에 어느정도 정상 참작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

이런사례들은 예전 70-80년대 그룹사 리더들이 보여준 대노조정책, 대직원정책, 대정부정책, 대언론정책에서 많은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위기대응 포지션에서 재미있는 점은 그러한 대응이 성공하면 사내외적으로 강력한 리더로 재포지셔닝이 되고, 여러가지 무리를 일으켜 실패하게 되면 아주 악독한 깡패가 된다는 것입니다.

CEO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위기관리 과정에서 더욱 더 냉철하고, 압도적이며, 안전한 방법들을 강화하게 합니다. 이를 위해 법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지원을 받습니다. 또한 각종 stakeholder들로 부터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실무진들을 움직입니다. 그 예가 홍보팀과 대관업무팀, 그리고 HR의 노무팀들이 되겠지요.

여기서 또 재미있는 부분은 CEO의 위기대응 포지션을 좀더 강화하기 위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협조한다는 것이지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항상 조직을 뒤로 하고 (멀리 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디언스 즉, 공중들을 바라보고 살펴야 하는 사람들인데, 반대로 CEO를 바라보고 공중을 등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게 재미있는 부분이라는 겁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렇죠. 일종의 타협이라고 하는데…글쎄요.

정확하게 말해서 해당 CEO의 그러한 포지션이 위기를 성공적으로 관리하는데 있어서 옳은 포지션이다 하면 그보다 더 좋은 카운슬링 환경은 없겠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CEO의 경직되고, 인간미없고, 오만한 포지션이 절대 해당 위기를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 판단되면 전문가들은 CEO를 설득해야 합니다. 조직이 성공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런 설득의 결과는 항상 뻔합니다.

왜냐하면 CEO는 해당 위기가 ‘회사의 위기’ 이전에 자신의 인생이 걸린 ‘개인적 위기’이기 때문에 조직적인 차원의 중장기적 접근이 별로 강력한 소구점을 찾지 못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죠. 일종의 방어기재이기도 합니다.

담배를 피다 걸려 당장 학교에서 짤릴 것 같은 학생에게
방과후 자율학습을 해야 대학을 가니 같이 공부하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학생에게 제일 시급한 건 일단 정학이나 퇴학은 면하고 봐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그 다음에 대학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거죠. 절대 소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CEO의 강력한 포지션은 당연히 아래 모든 실무자들에게 정확하게 투영 됩니다. 특히나 시스템이 갖춰진 조직들은 그 파급력과 alignment가 더욱 강하죠. 사실 실무자들에게는 공중관, 즉 공중을 바라 볼 수 있는 시각이 부족합니다. 회사의 중차대한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내외부 공중에 대한 시각을 반영해 interactive한 자율성을 발휘한 경험이 부족하고, 그런 시스템도 없기 때문이죠. (그나마 외부 공중을 interactive하게 모니터링하는 곳은 마케팅과 홍보쪽이 아닌가 합니다)

한마디로 실무자들은 시키는데로 하면 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상당히 내부적인 시각이지만 그게 실무자에게 맡겨진 역할이자 임무죠. 외부공중과의 접점에 있는 이 실무자들이 내부시각을 100% 반영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외부 공중들은 그 실무자들의 대응을 보면서- 인간미-를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기계로 보는거죠.

위기관리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분들이 ‘사과를 진정성을 가지고 해라’ ‘오디언스의 편에 서라’ ‘공감을 표하고 care하고 있다는 인상을 줘라’ ‘단어 선택을 잘해라’ ‘그들의 마음을 읽어라’ ‘충분히 배상하고 용서를 빌어라’ ‘앞으로 나와라. 숨지마라’ ‘인간적인 얼굴을 보여줘라’ ‘빨리 대응해라’… 이런 이야기들을 자주하는데 사실 이 모든 조언들은 ‘기업을 사람으로 간주할 때 주문할 수 있는 원칙’이라는 겁니다.

조직은 절대 사람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인간적 주문이 먹힐리 없습니다. CEO는 개인적인 방어가 가장 큰 니즈이며, 실무자들은 CEO의 의중에 부합하게 잘 움직여야 한다는 개인적 니즈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개인적인 니즈들이 조직의 포지션을 구성하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죠.

개인적 니즈 + 개인적 니즈 = 기계적 실행

그래서, 위기관리에 성공한 조직들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나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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