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이나 시뮬레이션을 준비하면서 위기 시나리오를 개발하다 보면 줄 곳 하나의 공통된 장벽에 부딪히곤 한다. (위기 시나리오라는 것은 특정 위기 발생을 예상해보고, 그 위기가 실제 어떤 전개 파장을 일으킬 것인가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한 스토리 전개 라인) 시나리오가 과연 실제 위기 발생 시 정확하게 그 파장의 방향과 소스를 예측해 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위기란 혼돈(chaos)인데 어떻게 수천 수백의 변수들을 예측해 정확한 시나리오를 개발할 수 있나 하는 부분이 한계다. 그러나 많은 기업 커뮤니케이터들은 위기를 ‘살아 움직이는 생물’로 보지 않는 경우들이 많다. 위기를 하나의 정형화 된 무생물 조각 덩어리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는 실제로 위기관리를 많이 해 보지 않은 실무자들이 종종 이런 시각들을 견지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위기는 절대로 정형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종종 이런 비유를 들곤 한다.
“끓고 있는 기름에 갑자기 찬 물 컵을 부었다고 생각해 봐. 기름방울들과 물방울 수천 수만 개가 사방으로 튀겠지. 위기가 발생한 이후 확산이 바로 그 모습이다”
사실 위기가 관리의 대상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변수들 대부분을 전혀 예측 통제할 수 없는데 관리라는 의미가 존재하기는 할까?
위기 시나리오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위기 시나리오는 실제 위기 발생과 그 이후의 전개 방식을 ‘일부’ 경험해 보기 위한 하나의 샘플 (맛보기)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는 이야기다. 아주 일부를 실제 환경에서 한번 시뮬레이션(모의실험) 해 본다는 의미다.
매뉴얼에 제시된 위기 예상 시나리오들은 하나의 큰 그림일 뿐이다. 확률상 그대로 전개되는 위기도 없고, 그대로 관리되는 위기도 없다.
이렇게 예측이 불가능한 위기 확산 형태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자산들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위기를 일부라도 관리할 수 있다.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자산들은 우리의 포지션, 조직, 역할과 책임, 그리고 메시지다. 시나리오는 하나의 그러한 자산들을 관리하는 경험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