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11월 042013 Tagged with , , , , , 0 Responses

[이코노믹리뷰 기고문 34] 지시한대로 실행되리라 상상 말라

 

 

[이코노믹리뷰 기고문]

 

 

지시한대로 실행되리라 상상 말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 시 대응 의사결정을 하는 워룸(war room)은 항상 현장과는 격리 되어 있다.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상황과는 격차가 있다. 실행 전문성이나 현실감도 현장과는 다르다. 현장으로부터 완전한 분석 보고가 공유돼도 의사결정 순간 그 현장은 다르게 변해있다. 이에 더해 지시한 대로 실제 실행 또한 이루어지지 않는다.

위기가 발생 해 위기관리위원회가 소집되면 얼마 후 이런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그게 아직도 실행 안됐어요?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는 이유가 뭔가요?” 긴급하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도 실제 위기 대응을 위해 지시한 사항들이 적시에 이루어지는 비율은 일반적으로 20%도 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일부 위기관리위원회에서는 몇 시까지 이런 이런 대응을 완료하도록 하세요라는 시간관리 조차 생략하거나 챙기지 않곤 한다.

컨설턴트들이 외부 중립적 시각으로 기업 내부 위기관리위원회에 참석 해 있으면 이렇게 데드라인 설정이나 시간관리를 하지 않는 내부 대응 패턴에 처음에는 적잖이 놀라곤 한다. 지시 사항이 대부분 보도자료를 내야 하겠어요” “법무팀에서는 로펌과 상의 해 이 부분 확인 해 주세요” “영업에서는 대리점주들 접촉해서 부화뇌동하지 않게 하세요이런 지시 형식들이 대부분이다. 몇 시까지 완료하라는 내용이 빠져있는 것이다.

일선에서는 지시사항들을 받으면 또 이런 반응들을 보인다. “이미 늦었는데 이런 활동들을 해 무슨 소용이 있죠?” “이건 이미 했습니다. 아직 보고 못해서 그런데 일단 일선에서 진행했어요” “이 지시는 좀 위 분들이 모르셔서 그러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상황이 더 악화돼요상황 발생 직 후 오전 7시에 상황 보고를 했는데 대응 지시 사항이 일선에 내려온 시간은 오전 11시가량이라 그렇다. 일선의 반응이나 피드백이 다시 본사에 있는 위기관리위원회에 재 보고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또 그로부터 몇 시간 후다. 상황이 시속 100km로 변해 간다면 내부 의사결정과 지시 그리고 피드백이 따라서 대응하는 시간은 시속 10km인 셈이다. ‘실시간으로 상황을 관리한다는 표현은 그냥 수사적인 것일 뿐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지시는 적시에 이루어졌다고 해도 평소 준비가 없어 실제 실행은 그로부터 상당시간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도 문제다. CEO께서 빨리 우리의 입장을 정리 해 홈페이지 팝업으로 올려 대응합시다. 가만히 있으면 안돼요하고 지시 하셨다 치자. 홍보팀이 대응문 초안을 만들고 내부적으로 보고를 통해 확정하는 데 1-2시간 이상을 소비한다이 시간 동안 초안을 쓰고, 이를 법무팀에게 리뷰를 요청하고, 임원들에게 돌려가면서 컨펌과 의견을 받아 재수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완성된 대응문 초안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데 또 1-2시간 이상이 소요가 된다. 팝업 디자인을 새로 잡고, 팝업창 위치를 내부 논의해 확정하고, 이를 업로드 하는데 드는 여러 절차들을 관련 부서들끼리 통화하면서 수정과 재수정을 거치는데 몇 시간이 소비되는 것이다. 결국 CEO가 오전 8시 적시에 지시를 하셨는데, 실제 홈페이지 팝업 대응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정오가 된다. 왜 이렇게 늦었냐 물으면 이런 답변들을 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정신 없이 빨리 움직였습니다. 위기관리 참 어렵습니다.”

CEO는 지시와 함께 그 시점에 이미 실행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하시게 마련이다. 스스로 위기대응을 빨리 했다고 자평 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외부 이해관계자들은 오전 내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회사를 바라보고만 있게 된다. 내부와 외부가 각자 서로 다른 생각과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외부의 생각과 평가는 위기관리 성공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된다. 위기관리에 실패했다면 모든 위기대응을 외부 이해관계자 관점에서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위기대응을 위한 위기관리위원회의 의사결정은 빠를수록 좋다. 물리적, 시간적 거리를 가능한 단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빨리 지시하는 데서 위기대응이 끝났다 생각하기 보다실행 데드라인을 설정해 지시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실행관련 시간관리를 해야 한다. 외부 이해관계자 관점에서 이 회사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대응할 수 있을까?”라는 찬사가 나올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놓고 실행 시점을 기다리는 대응 체계도 필요하다. 경계해야 할 것은 언제나 CEO 자신이 지시한 사항이 적시에 정확히 실행될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과 믿음이다. 위기 시 더욱 더 CEO의 관리(management)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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