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대표이사는 아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다. 더구나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대표이사에게는 여기저기에서 도움을 주겠다 또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제안이 온다. 평시에도 온통 그랬던 주변 상황이 위기 시에는 과연 어떻게 변할까?
말 그대로 여기저기 위기관리 주술사들이 튀어나오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누구는 자신이 연줄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누구는 자신이 어떻게 던 막아 볼 수 있다 한다. 어떤 분은 대표이사가 이럴 때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훈수를 둔다. 대응 미팅을 하자 찾아오거나 연락해 오는 지인들까지 많아 진다. 이런 사람들이 곧 비선이 된다.
일부 기업에서는 아예 비선 라인에만 위기관리를 의지하는 경우도 있다. 평시 장기적으로 위기관리 조직을 내부에 꾸리기에는 부담이 된다는 이유다. 여기 저기 내공을 발휘한다는 분들을 꾸려 팀을 짜 위기에 대응한다. 심지어 자신들은 숨고 홍보대행사를 앞에 내세워 위기 시 언론 창구 역할을 전담시켜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언론을 비롯한 주요 이해관계자나 영향력자들과의 관계를 위기 시 구입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로펌이나 대행사에게 연락해 “누구를 아는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등을 질문한다. 위기가 매일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 때 그 때 관계나 호의를 구입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비용 대비 효과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주로 외부 비선에만 의지하는 기업의 위기관리는 중장기적 시각에 대한 이야기 전에, 이미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선이 주도하는 위기는 그때 그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일종의 반응이 중심이지, 정상적 대응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니 문제다.
비선에 의한 위기 반응이(대응이 아니다!) 반복되다 보면, 대표이사와 기업에서는 그 때 그 때마다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요법에만 관심을 두게 되고, 실제 그 안에 있는 문제들은 나날이 커가 개선이나 재발방지가 어렵게 된다.
비선에 의한 위기관리는 득보다 실이 많다. 비선의 전화 한 통에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것 같아 놀라며 안심하지만, 그건 순간적 증상완화 일 뿐이다. 병원에서는 증상완화 치료는 제한적으로 활용될 뿐 그것이 주가 되면 결국에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이야기한다. 위기관리도 마찬가지다.
비선들은 절대 정보를 기업 내 공식 위기관리 조직과 공유하지 않는다. 공유하지 않으려 한다. 당연히 공식 위기관리 조직은 비선의 존재를 모르거나, 비선이 현재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일선 위기 대응에서는 중복, 상충, 혼선이 생겨난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은 사실 위기관리에 있어 금기다.
비선은 자신의 위기대응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여러 이유를 들어 문제 시 책임을 피해 나간다. 대신 기업은 그대로 무리한 책임까지 져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비선의 위기관리는 기록으로 남길 수도 없다. 기업 내부 역량으로 연결되지 않을 뿐 아니라, 개선 작업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비선에 의한 위기관리는 종종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공식 위기관리 조직이라면 실행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았을 사적 대응에 비선이 몰두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법적 문제가 생겨 난다. 돈이 왔다 갔다 한다. 청탁이 진행된다. 적절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이 노출된다. 그 비선과 기업간 커넥션에 대한 논란이 발생된다. 대표이사 배임이나 횡령 같은 논란은 그 다음이다.
비선에 의한 위기관리가 가장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은 중장기적으로 기업 내부 공식 위기관리 조직을 점차 고사(枯死) 시킨다는 것이다. 비선이 주로 뛰어다니는 기업에서는 절대 훌륭한 위기관리 조직을 기대할 수 없다. 위기관리 조직은 단순 행정 지원 조직으로 전락한다. 구성원 간 대책 회의는 점점 유명무실하게 되고, 대신 서로 간의 귓속말로 위기관리 과정이 점철된다.
비선에 의한 위기관리를 금지할 수 있는 사람은 기업의 오너 또는 대표이사 뿐이다. 우선 비선을 통해 처리할 수밖에 없는 위기는 스스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위기는 발생되는 것이 차리라 낫다. 위기는 만들면 안된다. 위기가 발생했다면, 그에 대한 위기관리는 내부 정규 위기관리 조직을 통해 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럼에도 비선에 대한 갈증이 있다면, 그 비선은 최소화되는 것이 좋다. 또한 해당 비선을 공식 위기관리 조직과 통합해 조언이나 자문 체계로 관리해 나가는 것이 좋다. 대표이사 스스로 공적 위기관리 조직을 통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려 애쓰자. 귓속말 보다는 공개적으로 올라오는 대응 전략과 방안에 힘을 실어 주자. 위기관리는 대표이사의 핵심 업무다. 대표이사가 리드하고 결정해야 한다. 힘 있는 일부 비선에 휘둘리지 말자. 대표이사 자신이 위기관리호 선장이라 믿고 강하게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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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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