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의 위기가 발생했다 치자. 당시 해당 사실은 홍보팀도 몰랐고 CEO도 모르셨던 이슈. 갑자기 지하철 주간지 기자가 홍보팀으로 전화해 해당 이슈를 홍보팀이 최초 인지. 홍보팀에서 해당 이슈 관련 해 법무팀에게 문의하니, 법무팀에서만 오랫동안 끌고 왔던 해묵은 이슈로 판명.
그러나 이슈의 자극적 성격과 제3자들이 보았을 때 회사의 유죄부분이 상당부분 존재. 홍보팀에서는 잔뜩 긴장하면서 법무팀과 CEO면담을 통해 해결책과 대응책을 동시에 고민. 잘 해결하지 못하면 정부 규제기관이나 다른 유사 거래처들, 그리고 소비자단체에 이르기 까지 이해관계자들의 부정적 반응이 예측됨.
이 ‘실제’ 위기에 대해 (가상) 녹취록을 한번 적어본다. (실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속어를 포함했다.)
[ 회의 시 녹취 ]
모 임원 : 아이고…아이고. 그걸 기자가 알아버렸군. 골치 아프게 생겼네.
A 팀장 : 우리가 그 기자에게 뭐라 코멘트 할 필요가 있겠어요. 이 XXX는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대) 한마디로 미친년이라니까. 말이 안 통해요. 그리고 그 뒷면에 우리 회사 OOO이랑 OOOOOO했었어요. 그게 원인이죠. 둘이 좋아 그런 건데 나중에 이것 저것 안되니 우리에게 겐찌 붙는 건데 우리가 말려들어가면 안될 것 같은데.
B팀장 : 기자한테는 모른다고 하죠.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하는 이야기니까 신뢰할 수 없다고. 뭐요? 그쪽에서 증거를 다 깠데? 이것 저것 모두?? 그걸 기자가 다 가지고 있다고? 아이구…죽겠네. 그 미친년 하나 때문에…
CEO: 이전 사장 때 있던 일을 왜 나까지 책임져야 해? 그건 법무팀에서 깨끗하게 처리했었어야지. 나한테 이런 거 보고하지도 말아. 골치 아픈 일들도 많아 죽겠어. 홍보하고 법무에서 알아서 책임지고 해결 해. 해결책을 가지고 들어와.
[회의 후 맥주집으로 옮겨 실무자들끼리 대응안 고민시 녹취]
A 팀장: 문제의 그 아줌마 말이야. 내가 보니 여자가 색기가 흘러. 남자 호리게 생겼더라고..그 문제의 OOO이가 그걸 노리고 접근한 거지 뭐. 일차적으로는 개인적 문제예요. 우리가 안건 4-5년 전이고. 그래서 그 OOO이 잘랐잖아. 근데 그 OOO이가 변제할 돈이 없는 거야. 모두 다 집사람 명의로 해 놓고 배째라 하는 거지.
B팀장: 일단 우리는 개인문제로 포지션 잡고 밀어 부쳐야 해요. 우리가 말리면 안 된다니까. 그 퇴사한 OOO이를 나쁜 놈으로 만드는 게 어떨까 하는 거지.
홍보팀장: 만약 기자가 그 OOO이를 인터뷰 하게 되면 더 큰일이 벌어질걸요. 회사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고 있잖아요?
B팀장: 이…그렇구나. 안되지 그럼. 그럼 진짜 큰일난다…
A팀장: 사장도 그렇지 지가 배째라 하면 되나? 그 때 자기도 그 라인에 있었는데, 그 자료보면 그때 자기가 싸인 까지 했었어. 그게 우리 변호사한테도 가 있다니까. 모른 척 하니 우리가 더 황당 한 거지.
홍보팀장: ……………………….
하루 8시간 이상의 연속 미팅과 연이은 맥주회의. 포지션은 계속 갈팡질팡하고, 해결책은 각기 다르지만 딱히 굵직한 것이 없다. 다음날 아침 CEO보고할 때 또 무지하게 깨질 각오들을 한다.
이 이야기는 2000년대 초 이야기. 이런 모든 민감한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장소는 회사의 비밀 회의실과 밀실화 된 고급 술집이었다. 외부 이해관계자들은 물론 내부 다른 직원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내부 의사결정자들의 생각이나 언급들을 트위터, 블로그, 페이스북 등등에서 종종 목격 가능하다는 게 문제다. 위기가 발생한 회사의 CEO가 그 바쁜 중에도 페이스북에 황당한 개인적 의견을 올린다. 트위터를 통해 임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외부로 주장한다. 직원들이 그 내용을 RT하거나 댓글에 좋아요를 클릭하고 화이팅을 서로 외친다.
공식적으로 홈페이지 팝업창과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전달한 메시지와는 180도 다른 이야기를 개인 SNS를 통해 공개하는 거다. 많은 이해관계자들은 이 둘 중 어떤 것이 이 기업의 진짜 메시지인지 혼란스럽다.
위기 시 비밀스러운 이야기나 개인적인 감정 그리고 공개해서 적절하지 않은 메시지들은 계속 가두어 두는 게 좋다. 아무리 세상이 SNS 세상이라고 해도 사내의 비밀 회의실이나 밀폐된 고급술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메시지들은 있는 법이다.
말조심은 물론 손조심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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