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 기자와 함께 저녁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기자의 후배기자가 어떤 기업의 부실한 매출과 최근 분위기에 대한 기사를 썼다. 그러자, 바로 해당 기업의 홍보담당자가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전화를
해왔단다.
홍보담당자: “O기자님, 저 OOO인데요. 방금 그 기사요. 사실
해석상의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좋아지고 있는 데 그렇게 표현을 하시면 저희가 좀 곤란해
지거든요…(여러 가지 설명) …좀 기사를 빼주시면
안될까요? 부탁 좀 드릴께요…네?”
기사를 쓴 기자: “이해는 하겠는데요. 저는 사실 있는 대로 썼습니다. 그리고 기사 빼는 거는 제가 하는
게 아니라 데스크하고 두루 두루 상의해야 하는 문제예요. 저는 힘 없습니다.”
홍보담당자가 계속 전화와 사정을 하고 항의를 하자…그 기자는 팀장인
어제 그 기자에게 전화를 해왔다고 한다.
기사를 쓴 기자: “선배,
OO쪽에서 이번 기사보고 난리인데요? 이렇구 저렇구 해서 기사가 정확하지 않고, 문제가 있으니 빼 줄 수 있냐고 물어와서요…”
선배 기자: “야, OO 홍보담당자 OOO이 나에게 전화 하라 그래.”
바로 홍보담당자가 전화를 해 왔단다.
홍보담당자: “O팀장님, 저
다름이 아니고요…”
선배 기자: “O선수. 기사가
틀렸으면 어디가 틀렸다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 고쳐줄게. 틀린
부분이 있어?”
홍보담당자: “아뇨…그게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
선배 기자: “O선수. 해석은
우리가 하는 거야. 그리고 전반적으로 기사에서 이야기하는 게 당신네 회사의 현재 사정이랑 완전 달라?”
홍보담당자: “그렇지는 않은데…그게 그런 기사가 나가면 조금 문제가….”
선배 기자: “사실이 아닌 내용들로 쓴 것도 아니고. 그 기사가 현실과 다르지도 않는데 기사를 빼달라고 하는 건 당신 회사 좋을라고 하는 이야기 아니야? 우리 취재 내용이 사실과 다르고, 그로 인해서 당신네 회사가 피해를
입게 된다면 소송을 해. 소송을 해서 우리 기사가 틀렸다는 걸 입증하란 말이야.”
홍보담당자: “아휴….O팀장님. 제발…”
많은 홍보담당자들이 자사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면 바로 본능적으로 전화를 돌린다. 또 어려서부터 그러라고 훈련을 받았다.
기자들과 같이 앉아 저녁 식사를 하거나 소주 한잔 하다 보면…여러
홍보담당자들이 내일자 기사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피드백을 보내오는 내용들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 중 대부분은 별반 대응 논리나 사실관계 확인에 따른 정확한 대안 제시가 없다. 대부분이 인간적 사정들과 자사의 입장만을 토로할 뿐이다. 당연히
기자들은 그런 피드백에 대해 감정적인 대응을 할 수 밖에 없다.
홍보담당자들이 “핵심 메시지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핵심 메시지 없이 인간적인 관계만을 내세우는 선수들이
더 많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도 현직에서는 많은 부분 그랬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그 기자에 의하면 그 기사는 빠졌다고 한다. 어떻게 빠졌을까?
그 홍보담당자가 자신의 최고위 상사이자 그룹 홍보실 임원에게 SOS를
친 덕분이었다. 그 홍보실 임원이 그 팀장 기자와 형제 같은 사이였고,
그 홍보임원이 “계열사 홍보담당인 OOO이를
내가 혼 낼 테니…내 얼굴 봐서라도 좀 어떻게 해 줘“했단다.
결국…
핵심 메시지나 논리보다 인간관계가 중요한 것도 현실이다. 바람 직
하거나 발전적이지는 않지만 그것도 또 하나의 현실이다.
재미있는 세상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