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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후지산과 아타미 온천 그리고 범퍼카

2000년 11월 후지산과 아타미 온천 그리고 범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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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토요타 프레스 투어 두번째날.

아침에 동경에서 후지산 밑에 위치한 히가시후지에 있는 토요타 시승장으로 떠난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누가 아침식사를 하는지 않하는지 살펴본다. 그래도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발을 옮기는 기자들이 꽤 있다. 예상보다는 어제밤이 건전했던 것 같다.

아침을 마치고 히가시후지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기자들 앞으로 어디서 많이 본 노 부부와 일단의 노인들이 상반된 복장으로 떼를 지어 로비를 지나간다. 맨앞의 노인은 츄리닝 바람에 수건을 목에 둘렀다. 뒤에 쫗아가는 여자 노인은 한복차림이다. 뒤에 쫗아가는 노인들은 벗겨진 대머리들에 양복차림이다. 이게 뭐지?

前대통령 김영삼씨 부부였다. 뒤에는 일단의 수행원들. 당시 2000년말 김 전대통령은 전립선 수술차 일본에 요양중이었다. 기자들이 가만히 보고 있을리 없다. “안녕하세요.” 한 방송기자가 말을 건넸다. 뛰어가던 김영삼씨. “어? 한국인이신가?” 그냥 지난간다. 근데 왜 특급 호텔에서 뛰어 다닐까? 궁금하다.

수행원중 한명이 이들이 기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KBS 카메라가 땅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호텔 로비에서 차가 오기를 기다리던 츄리닝 김영삼씨. 다시 돌아온다. “어..한국 기자들이시라구?” 표정이 환해지고 그렇게 다정해 보일 수가 없다. 엄청난 변화다. 기자들이 마치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담회라도 하듯이 줄을 섰다. 악수를 하면서 관등성명을 댄다. “조선일보 누굽니다.” “동아일보 누굽니다.” 바라보면서 웃었다. 기자들이란. 정치가들이란.

한 기자가 손여사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지요?”…..손여사 “(미소지으며)…”  

참 기자라는 사람이 시사에 어둡다. 남편 전립선 여행이 부인에게 무슨 좋은 말꺼리라구.

버스에 다 올랐다. 히가시 후지로 향한다. 정말 멀다. 기자들은 존다. 나는 깨있다. 이거 곤욕이다.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버스가 멈추어 서고, 토요타의 멋진 벨로드롬이 보인다. 자동차만을 위한 시승장. 백자 항아리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가끔씩 시범주행 차량이 그 항아리속을 돌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벨로드롬의 크기는 아마 잠실운동장 만한 듯 하다.

기자들이 간단하게 현지 기술인력들에게 브리핑을 받고 시승장소로 이동한다. 26명을 2개조로 나누어 한조는 오전에 VSC (Vehicle Stability Control) 경험주행을 하고 한조는 벨로드롬 시승을 한다. 오후에는 두조가 임무를 교대한다.

VSC는 자동차가 빗길이나 얼음길에서 차체의 중심을 빼았기지 않게 하기 위해 자동으로 차체를 보정해주는 신기술이다. 빗길이나 빙판길 운전에 서툰 여성 오너 드라이버들에게 인기를 끌 것 같다는 어떤 기자의 평이다.

실제로 빗물과 빙판길을 재현해 놓은 특수 도로위를 렉서스 LS430이 시속 100km정도로 달린다. 물론 시범운전은 프로 드라이버가 한다. 기자들? 헬멧을 쓰고 뒷자리에 두명씩 앉는다. 조수석에는 한국토요타 손창규 부장이 앉았다.

빙판길에서 스핀하는 렉서스 그안에서 하얀 헬멧들이 좌우로 움직인다. VSC를 작동시킨후 다시한번 트라이. 차체가 몇번 흔들릴뿐 스핀하지 않는다. 기자들의 헬멧도 그자리에 있다.

자동차가 돌아왔다. 모두 십년 감수한 표정이다. “어이 장난아닌데..” 이때 장가간 기자들은 “죽을뻔 했네..”하는 표정이고 장가 못간 기자들은 “아, 재밌네..”한다. 처차식이 뭔지. KBS 풀이 VSC 시범 장면을 연신 카메라에 담는다. 후지산을 배경으로 달리는 렉서스를 잡느냐고 이리저리 뛴다.

오후에 벨로드롬 시승이다. 렉서스 4개 모델이 정렬되어 있다. 2001년 1월부로 한국시장에 출시될 라인이다. 기자들에게 안전운전 요령을 브리핑하는 토요타직원. 아무도 안듣는다. 기자들은 아마 학교때 리스닝 점수는 제로였을 것 같다. 언제나 기자들은 중요한 이야기는 흘려버린다.

몇몇 운전면허가 취소된 기자들이 시승을 하려는 요량으로 헬멧을 쓴다. “어..”    괜찮다는 눈짓이다. 그래 해라…다 팔자다.

분명히 기자들에게 시속 100km를 넘기지 말라고 토요타 담당 직원이 신신당부를 했다. 기자들은 그말을 200km는 넘기지 말라는 소리로 들었는 듯 하다. 모두 최고속력 자랑이다. 4개의 렉서스 차량이 마치 놀이공원 범퍼카 처럼 잘나간다. 기자들은 줄 서 있는 어린애들 같다. 신이난 표정이다. 어디가서 이런 고급차를 200km까지 몰아 보겠나.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오후 5시. 이동이다. 아타미 온천으로 향한다. 기자들과 온천이라. 일본답다. 차가 엄청 막힌다.

저녁이 다되서 아타미에 도착했다. 호텔안에는 모두 유카다 차림의 가족들이다. 참고로 일본 유카다는 약식 기모노로 잠옷류다. 남녀가 공용으로 입는다. 여자들은 둘둘말아서 허리를 묶고, 남자는 둘둘말아 엉덩이를 둘러 묶는다. 이유는 알사람은 다안다.

기자들이 한명씩 유카다를 입고 나선다. “속옷은 입어라”는 통역의 당부는 그나름데로 잘 따른 듯하다. 기자들은 이런말은 잘 듣는다.

한시간 정도 여유시간을 주고 저녁식사에 모이라고 했는데도 빠른 기자들은 온천에 들어가 씻고 나온다. 군대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웃었다.

저녁 식사자리. 다다미가 깔리고 금색병풍이 둘러싼 커다란 방이다. 조선호텔 1층의 컨벤션홀 1/3 크기랄까. 1인용 작은 탁자들이 4열 종대로 길게 늘어서 있다. 방석도 같이.

기자들이 모두 자리를 잡으니 마치 조폭들을 연상시킨다. 4열이 2열씩 서로 마주보면서 식사를 한다. 열과 열사이에는 서빙을 위한 폭 1m 정도의 통로가 있다.

일단의 토요타 임원들의 축사가 끝나고 회정식류의 저녁식사와 함께 기자들과 술자리가 벌어 졌다. 사께와 맥주들로 몇몇 기자들의 얼굴이 붉어진다.

이때, 네명의 게이샤(기생)들이 정문앞에 정렬을 한다. 일본특유의 무릎을 꿇어 머리를 조아리는 절을 한 후 4명의 게이샤들은 한줄씩 맡아 술을 돌린다. 복장은 꼭 어린왕자 같은 옷을 입었다. 생김새는 아마 러시안과 일본인의 혼혈 스타일이다. 기자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곧 작업에 들어갔다. “이찌방!” “오케이?” 등등 만국어를 섞어가면서 애교 또는 주접을 떤다. 그녀들은 웃기만 할뿐 도대체 커뮤니케이션은 안되는 표정이다.

일본기업 특유의 배려라는 측면에서 게이샤들의 출현은 독특했다. 흠 일본이라…

2시간이 훨씬 넘는 저녁식사가 끝나고 가라오케로 전체 자리를 옮겼다. 온천장에 있는 일본식 가라오케가 오죽할까. 우리나라 지방 노래방 수준이다. 거의 30여명이 술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일본 토요타 사람들이 더 줄거워 한다. 손창규 부장은 나에게 사회를 보라는 표정이다. 야…PR인이 무슨 레크리에이션 강사냐? 대충 사회를 보는데 흥에 겨운 손부장이 마이크를 넘겨 받는다. 웬 개다리춤?

참 인하우스 생활하기 힘든 것 같다. 개다리 춤이라…

기자들이 한명씩 불려나와 또는 자청해서 한곡조를 한다.

그 와중에 테이블 한편에는 경제지 기자들이 둘러 앉아 위험한 장난을 한다. “폭탄”을 돌리기 시작한거다. 매일경제 기자의 분수쇼를 관람(?)한 후 돌아가는 폭탄들. 거기까지 동행한 게이샤 한명을 불러 시음회를 한다. “디스 이스 코리안 칵테일”…..한국망신이다. 폭탄잔의 냄새를 맡은 게이샤의 얼굴이 찡그러진다. 한잔 하더니 다른 테이블로 꽁지를 뺀다. 기자들은 좋단다.

기자들과 함께 폭탄을 주고 받다가 가라오케의 타임은 끝이 났다. 밤12시가 넘었다. 한국토요타 일본인 사장이 해장을 하잔다. 호텔내 라면집에 20여명이 자리를 잡았다. 일본에 와서 먹는 라면이라. 기대가 많았는데 기자들이 많이 남긴다. 느끼하단다. 술먹고 느끼한 것 먹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덕분에 돈내야 가져다 주는 특별메뉴 김치의 매상고가 업청 올랐다.

각자 객실에 들어갔다. 몇몇 젊은 기자들은 이미 폭탄에 산화하여 영혼끼리 한 객실에 뭉친다고 한다. 그래 뭉쳐라. 나는 피곤하다. 이틀째 밤이다. 어떻게 기사는 나왔나? 내일 아침에 한국에 전화를 걸어봐야지.    

by 우마미 | 2006/12/05 16:01 | 렉서스 PR 이야기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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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뉴오타니의 데판야끼 (계속)

2000년 11월 뉴 오타니의 데판야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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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 공항에 내려 점심을 먹는 기자들.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기소야 정도의 수준의 음식점에 기자 26명 그리고 동행한 한국토요타임직원 6명 그리고 달랑 대행사 인력 나혼자. 비싸보이는 세트 메뉴들이 척척 나온다. 기자들이 맛있게 먹는다.

한 전문월간지 여자 기자가 식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옆 테이블의 모 방송국 기자 왈 “저 XX년, 싸가지 없게시리..저거 어디 애야?”하고 네게 묻는다. 나는 그녀가 들었을까봐 억지로 소리를 줄이며 그냥 웃었다. “XX기자에요…” 살벌한 분위기다.

어딜가보면 알겠지만 기자들은 끼리끼리 논다. 일간지는 일간지들끼리. 월간지는 월간지끼리. 또 TV는 TV끼리. 잘논다.

식후 기자들이 화장실을 간다고 한다. 이미 비행기 연착때문에 시간이 없다. 다음 스케쥴은 동경 토요타 본사에서 오쿠다 히로시 회장과의 그룹 인터뷰. 급하신 분들은 빨리 다녀오시고 볼일 없으신 분들은 나리타 공항 1층 정문 출입구에 세워놓은 대형 관광버스에 오르시라고 고지를 했다. 완전히 관광 가이드다.

20여분 후 기자들이 하나 둘씩 나타난다. 버스에 올라 있는 기자들을 세본다. 3명이 없다. 한명이 보인다. 버스에서 한명이 또 내린다. 올라가시라고 해도 말 안듣는다. 한명이 또 어슬렁 걸어 온다. 마지막 한명이 없다. 10분이 더 지났다. 이거 어디갔지?

누군지 알아봤다. 모방송국 기자다. 이번에 방송때문에 큰일이겠구나 생각이 스친다. 나리타 공항 안내 데스크에 가서 구내 방송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사기업명 (토요타)가 들어가는 멘트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며 방송을 사양한다. 이름이라도 부탁한다고 했더니….”깡꼬꾸…에수비에수노 고처루조구상 고처루조구상…”한다. 내가 부탁했는데 내가 들어도 모르겠다. 씨.

양복차림에 구두를 신고 갖가지 일정표와 프레스 킷이 가득들어 있는 가방을 십자로 매고 나는 그 기자를 찾으러 뛰어 다녀야 했다. 지하부터 3층까지 에스컬레이터위에서도 뛰었다. 없다. 이거 처음부터 끝장인가? 이거 핸드폰이라도 있었으면…

20여분후에 그 기자는 아까 그 안내 데스크에서 여자들과 노닥거리고 있다 발견되었다. 대한매일 기자가 찾았다. 기자가 기자를 찾다니. 그 방송기자는 웃는다. ‘나 그냥 한국으로 갈려구 했는데…” 사실은 화장실 다녀오니 아무도 없더란다. 무심코 거기가 2층이라고 생각하고 밑에 층으로 내려가 지하 정문 앞에 서있었단다. 아무도 없고 관광버스가 하나 오길래 물어보니 아니더란다.

자기도 섬뜻하고 해서 이거 한국으로 자시 가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단다. 심난하다.

암튼 1시간정도 늦은 스케쥴로 동경으로 향했다. 한국토요타 일본사장은 계속 갈군다. 자기 목이 날아 가느냐 마느냐 하는 일정지연이라나…

나리타에서 동경까지는 2시간 남짓. 엄청 밀린다. 나는 26명이 모두 탓는지 맨 뒤에 앉아 머릿수를 세고 또 센다.

일본 토요타 동경 본사. 회의실로 올라갔다. 내가 보았던 회의 케이블 중에 가장 큰 테이블이 놓여 있고 360도 워룸을 연상하게 하는 시청각 시스템이 구비된 회의실이다. 26명의 기자들이 쭉둘러 앉고, 오쿠다 히로시 회장을 호위하는 임원들 10여명이 앉아도 넉넉하다. 꼭 커다란 쟁반막국수 그릇같다.

TV카메라가 정면에 세워지고, 기자들이 노트북을 꺼내 기자회견 분위기를 잡았다. 노트북 안가져온 기자는 그냥 종이 한장을 앞에 놓고 연신 농담까먹기다. 그 친구 기자랑. 쯧.

주어진 시간 40분. 내가 질문하는 기자 하나 하나를 오쿠다 회장에게 알려준다. 물론 영어루.

일본어 통역을 통해 질의와 응답이 계속 진행된다. 시간이 지났다. 빨리 끊으라는 사인을 일본 토요타 홍보이사가 나에게 보낸다. 오케이. “이게 마지막 질문입니다. 하나만 더 받습니다.” 아직도 손드는 기자들이 5명이 넘는다. 회장이 한명을 지명하니 다른 기자들 나를 본다. 압력이다.

다행히 답변에 신이난 회장이 몇개 더하란다. 기자들의 표정이 풀린다. 몇개 질문과 답변이 오간뒤 행사가 끝났다.

저녁 먹으로 가잔다. 오쿠다 회장이 나가고 모두 통솔해서 저녁 식사를 위해 호텔로 향한다. 뉴오타니 호텔. 동경 최고급 호텔이다. 우리나라 신라호텔 분위기가 난다. 정원이 마치 여의도 같다.

각자 방 하나씩 키를 배분 받았다. 한국에서 온 26명의 기자들이 각자 방으로 흩어진다. “20분 후에 정원에 있는 데판야키(철판요리) 식당으로 모이세요~!” 우이독경이다. 쌩까는게 직업병인 사람들 아닌가.

20분 후 각자 룸번호와 직통 전화번호를 두드린다. 로비로 하나 둘씩 기자들이 나타난다. 양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어디야?” “이쪽으로 쭉 가세요..” 똑 같은 설명을 20여명에게 한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면 뭐하나..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기자들이 다모였다. 일본 토요타 홍보실에서는 술잘하는 선수들이 대여섯 포진을 했다. 그와 짝을 이루어 부장급들이 쭈르르 나와 한 데판에 한명씩 배치되고 기자들이 명함을 건내며 모여 든다. 데판만 6개. 그 큰 식당을 우리가 샀다.

태어나서 그리 긴 데판코스는 처음이다. 2시간 30분동안 데판 요리 모든 셀렉션을 먹어 치웠다. 기자들도 평생 처음이란다. 일제 진로 소주와 갖가지 맥주 브랜드들이 신기하다. 야채, 해물, 고기, 면, 밥등이 계속이다. 누가 일본애들이 조금 먹는다고 했나.

일본 홍보실 사람들은 쉴새없이 술잔을 채운다. 이른바 첨잔. 한겨레 기자가 싫은 내색이다. “왜 첨잔을 하구 그러지..” 그러나 며칠 후 그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자들이 서로 첨잔을 하면서 술을 마셔댄다. 습관은 금새 바뀐다.

항상 높은 사람들에게는 기자들이 꼬인다. 메이저 기자들이 모여있는 데판에 토요타 대빵 임원이 있다. 임원은 연신 술을 따르고 받고 하면서 인터뷰를 한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서로 대충 알아 듣는 모양이다. 그래도 표정이 정겹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기자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뜬다. 물론 토요타 대빵의 마지막 건배를 끝으로 헤어졌다. 토요타 홍보실 사람들과 임원들이 식당 입구에 도열해서 일본인 특유의 90도 인사를 기자 한명당 10번씩은 해댄다. 허리 아프겠다.

기자들에게 전했다. “이 뉴오타니 호텔내에서는 여러분들 방 키만 보여주시면 뭐든지 공짜입니다. 룸에서 사용하시는 국제전화비도 공짜입니다.” 기자들은 당연하다는 눈빛이다. 쓰…

기자들이 그룹을 이루어 호텔내 카페로, 바(bar)로, 일부는 호텔방으로 향한다. 나는 꼭 호주목장에서 양을 모는 세퍼트 처럼 양복바람에 여기저기 기자들의 그룹들을 챙기고 다닌다.  요주의 선수들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룹을 지어서 들어갔지만 별 다른 문제는 없겠지.

몇명의 기자들이 럭셔리한 칵테일바에서 발견되었다. 다들 반가운 눈빛이다. “에라 모르겠다” 거기 퍼질러 앉았다. 더이상 뛰어다닐 정력도 없다. 함께 태어나서 처음본 카테일들을 무조건 시켜 마셨다. 일본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끼리 한국말로 농담까먹기 하는 맛이 꽤 쏠쏠하다. 여기자도 있으니 더 좋다. 근데 애 엄마다. 아까 공항에서 담배피던 그 엄마.

모기자의 호텔방으로 2차를 간다. 아니 3차지. 그 기자방은 동경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훌륭한 경관의 방이다.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보니 아마 좀 취했나 보다. 방에 냉장고가 있고 냉장고 위에 기다란 서랍이 보인다. 뭐야? 열어보니 가로 6줄 세로 4줄 바둑판 모양의 공단 포켓들이 보인다. 그 조그마한 각각의 포켓들에는 갖가지 양주 미니어처들이 들어있다. 총 24병.

양주를 골라 호텔방의 5명이 한병씩 까서 들었다. 양주파티다. 냉장고 위에 짭짜름한 일본산 안주들이 많다. 먹어도 안취한다. 기자들은 이거 술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한다. 아니다 술이다.

새벽 2시. 내방으로 돌아왔다. 내일이 두렵다. 그러나 재미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일간지 기자들은 각자 방에 들어가 기사를 송고하고 있었다. 물론 몇몇 기자들은 술을 먹고 있었지만….자정이 가까운 그때 기사를 송고하는 모습. 괜히 “여기 놀러온게 아님”하고 본사에다 보고하는 것 같다. 더 심한 몇개 주요 일간지는 아까 데판야끼집에도 늦게 나타났었다. 그때 기사를 보냈다나. 암튼 기사는 동일한 날에 동일하게 났다. 그들의 오버는 내부용이었다.   

나는 호텔방내에 ‘매실’향이 나는 이상한 치약으로 이를 닦고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피곤하게 잠이 들었다. 불꺼진 호텔방 유리창 밖으로 동경시내가 반짝거린다.     

by 우마미 | 2006/12/05 15:59 | 렉서스 PR 이야기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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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기자따라 일본간다! (준비편)

2000년 11월 기자따라 일본간다! (준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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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오쿠다 회장의 방한이후 한국토요타는 PR꺼리가 없다. 뭐 실제 모델이 한국에 와 있는 것도 아니고, 시장에서 살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티징을 할 것도 없고…고민이었다.

그 꺼리를 만들기 위해 “자동차 기자 일본 프레스 투어”를 만들었다. 일본 토요타 본사 홍보실과의 협조로 한국 기자들을 데리고 최초로 일본 토요타 방문길에 나섰다.

프레스 투어를 해본 PR인이라면 다 알겠지만, 해외 투어는 더더욱 잔손이 많이가고 스트레스를 받는 업무다. 물론 다녀와서의 결과를 보면 해피하지만, 엄청 늙어있는 내 자신을 볼정도다.

당시 토요타의 미디어 리스트에는 총 100여명의 담당기자들이 있었다. 그 중 몇명을 일본으로 데리고 가는가가 문제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PR인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선별적 투어가 가져오는 후유증이다. 누구는 빼고 누구는 넣고하는 것 자체가 곤욕이다.

메이저 마이너…기자들은 스스로 알지만 남이 아는척을 하면 죽기살기다. 어떻게 하나?

일간지 + 연합 + TV + 메이저 자동차 전문지로 한정했다. 그래도 많다. 연락해 보니 다 해피다. 큰일이다. 한국토요타에서는 20여명 이하로 줄이란다. 어떻게 줄이나..간다는 기자들을 암살할 수도 없고.

다행히도 일정상 또는 개인업무상 못가게 된 기자들이 생기고 최종 방문기자단은 24개 매체 26명으로 확정됬다. 일본 토요타측에서도 많이 양보를 한것 같다. 당시 조금 겁을 주었다. 일본기업으로 언론에 적을 만들지 말라고…

TV가 문제다. 카메라, 조명(지원)까지 따라가게 되면 3배수로 인원이 는다. 이럴때는 보통 pool을 한다. 당시 KBS가 풀을 한다고 나섰다. KBS, SBS, YTN, MBN이 따라 나섰다. MBC는 담당기자가 뺀질대더니 미안하단다. 땡큐. KBS만 제작인원 2명이 붙고 다른 방송사에서는 기자 한명씩 나섰다.

기자들이 말하기를 “서울에서 부산까지 벼룩 3,000마리 몰고 가는 것보다 기자 3마리 몰고 가는게 더 힘들다더라”한다. 맞는말이다. 정말 말도 안듣는다.

렉서스 시승행사가 방문일정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운전면허증을 다 준비하라고 했다. 음주운전으로 면허 취소된 선수가 몇명이다. “당신은 일본가서 시승 못합니다…” 해도 배째라다. 괜찮단다. 뭐가 괜찮나.

일본비자도 26명치를 나 혼자 다 내준다. 물론 여행사를 끼지만 비자만 3주 진행했다. 왜냐구? 기자들이 하루에 한명꼴로 관련서류를 보내오기 때문이다. 이건 장난도 아니고…설상가상…이기자가 간다고 비자 받아 놓았는데 아니란다 고기자가 가기로 한단다. 나중엔 심기자가 간다고 서로 싸우고 난리다. 이런 매체가 여럿이다. 심난하지만 웃으며 일한다. 히히히…

비자 완결, 운전면허증 완결, 비행기표 완결..모두 비지니스 클래스다. 일정 완결. TV풀 점검 오케이.

떠나기 며칠전 조선호텔에서 종식을 하면서 오리엔테이션 했다. 모두다 참석이다. 엄청 가고픈가 보다.

항상 프레스 투어에는 “엄청나게 의미있는 야마”를 삽입해야 한다. 그냥 공장이나 둘러보고 오는 식이면 기자들이 안가거나 못간다. 한국토요타는 다시 오쿠다 히로시 회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본 최고의 경영자로 우리나라 식으로 보면 현대자동차 회장식이니 기자들의 관심은 항상 많다.

요즘도 가끔 연말이면 일본 취재 간다고 나서는 기자들이 있는데 오쿠다 회장 인터뷰나 후지오 조 사장 인터뷰는 필수라고 어랜지를 부탁한다. 그런 기자들에게 항상 하는말이 있다. “오쿠다 회장이나 조 후지오 사장 인터뷰는 최소 6개월전에 하셔야 합니다. 일정이 나질 않습니다.” 무척 바쁜사람들이다.

어쨋든 오쿠다 회장 인터뷰를 큰 야마로 잡아주었다. 기자들은 해피다. 3박 4일 일정에 맨 앞날 잡았다. 기자들이 좋아한다. 얼른 일 끝내고 나머지는 놀수 있단다. 그래 놀자.    

아침 8시까지 김포공항 모 여행사 부스 앞으로 집합해라. 열번도 더 말했다.

당일 아침 또 몇명의 벼룩들이 안보인다. 어디갔지… 미리와서 밥먹고 온다고 떠난 모 기자가 안보인다. 한국토요타 사장이 영어로 나한테 불평이다. 이 사람은 진짜 기분 나쁘면 일본어로 중얼거린다. 그럼 진짜 기분나쁘다. 우리 증조부께서 독립운동가가 되신 이유를 알 것 같다. 빠가!

26명의 부대를 이끌고 또 방송자재들을 짊어지고 비행기는 떠났다.

비지니스석에 앉아서 스테이크를 먹는다. 모래같다. 방금나온 보졸레 누보를 한잔씩 따라준다. 모기자 여기 프렌치 와이말고 이탈리아 와인없나? 난 XXX 만 먹는데…웃긴다. 생깟다. 스튜어디스들도 안다. “기자군..”

비지니스석에서도 PR담당은 안절부절이다. 입국신고서도 대신쓰고 말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볼펜달라고 불러댄다. 기자들이 볼펜도 안가지고 다니다. 씨. 어떤 기자는 기사쓰고 보낼 노트북도 없이 청바지만 입고 왔다.

“최기자님은 어떻게 기사 쓰실려고요?” “내외꺼 빌릴려구..” 그래라…그래.

동경 나리타에 도착했다. 짐을 찾는다. 무슨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입국심사도 각자 받느냐 힘들다. 26명이 어디서 어떻게 나올찌. 짐을 찾는데 문제가 벌어졌다.

조선기자의 옷기자를 넣은 가방이 아무래도 안나온다. 다른 기자들은 불평을 시작하려는 태세다. 조선기자의 말에 의하면 분명히 김포공항내 모이는 장소에서 여행사직원에게 맡겼다는 거다. 김포에다 전화를 해서 찾아 보라고 했다. 없단다 거기도.

“뭐가 들었어요? 거기?”  “아니 뭐 별건 아닌데..양말과 속옷 조금” “그 외에는요?” “그게 다야, 조그만한 가방이야”

일단 짐찾는 공간에서 나왔다. 점심을 공항에서 해결할 예정이다. 나리타 공항내 음식점들은 찬 깔끔하고 좋다.

26명의 기자들이 식사를 하는동안 일본제 “양말과 속옷’들을 사왔다. 조선기자에게 주면서 “자 이걸로 3박 4일 때우시죠” 기분이 별로라는 표정이다. 어쩔수 없지.

<계속>

by 우마미 | 2006/12/05 15:58 | 렉서스 PR 이야기 | 덧글(0)
11월 112007 0 Responses

2000년 5월 하지메마시데, 오쿠다!

2000년 5월 하지메마시데, 오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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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중순, 서울 모토쇼의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한국토요타에서 또 연락이 왔다. 일본 토요타자동차 본사의 오쿠다 히로시 회장이 한국읅 방문한다는 이야기다.

손창규 부장말로는 내년(2001년)에 렉서스를 한국에 들여 온다는 사실을 알렸으니 자기네 오쿠다 회장이 방한하는 것도 뉴스가 되지 않겠는냐는 것이다. 맞다.

사실 오투다 회장은 경협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정말 잠시 한국에 들린 것이다. 세계적인 경영자 답게 오쿠다 회장은 엄청난 카리스마를 뿌리고 있었다. 그 뒤에는 “나는 지금 아부를 떨고 있소. 그것도 오버해가며 말이오”하는 구절이 얼굴에 적혀 있는 수많은 일본 측근들이 졸졸 따라 다니고 있었다.  

한국토요타사장인 일본인 야스노 히데아키 사장은 본사에서는 차장급정도의 인물이다. 당연히 서열에 끼지 못하지만 지사장이기 때문에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손부장은 또 장소를 핑계로 기자들을 조금만 부르라고 했다. 조중동만 부르자는 개념없는 명령에 항거했다. 누구 죽는 꼴 보시렵니까?

일간지들만 부르기로 했다 스포츠? 빼라고 한다. 몇개의 마이너 경제지가 초청자 명단에서 날아갔다. 다른 기업들을 기자들을 한명이라도 더 불르려 하는데 토요타는 참 웃기다.

서강대 근처의 경총빌딩 회의실에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불른 기자들은 다왔다. 보통 자동차 출입 중 수입차 담당은 2진인 경우가 많은데 몇몇 기자들은 부른 2진이 아니라 1진들이 왔다. 외국기업담당이 직접 온 경제지도 있다. 대신 TV는 않왔다. 왜? 초청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인하우스의 명령에 항상 “예”해야 한다. 그것도 전략이겠거니 하고…

40분만 기자간담회를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는 오쿠다 회장의 스케쥴이 마구 헝클어 졌다. 기자들이 여러가지 복습질문들과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져댔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김종호 차장 (당시 일반 기자)이 “이전 69년 신진자동차와의 결별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한국소비자들에게 사과를 할 용의는 없느냐?”고 다그쳤다. 오쿠다 회장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신진자동차 건은 사실이 아니다. 잘 못한 부분이 있으면 당연히 사과를 하겠지만, 그건 그게 아니다”라고 받았다.

한국토요타의 박건우 회장은 오쿠다 회장의 다른편 옆에 앉아 있었고 신진자동차 이야기에 약간 거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신진자동차로 입사해 GM, 대우를 거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신진 과장이었다고 하면서 “토요타가 신진을 버린 것이 아니고 경영진간의 계약이 틀어졌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증언(?)을 했다.

기사는 어떻게 나갔을까? 김영수기자의 의도대로 나갔다. 물론. 이후에도 김영수-김종호라인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자동차 라인은 시시때때로 ‘신진’건을 들러 토요타를 공격했다. 즐기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손부장과 나도 즐기게 됬다. 역시 기자들은 애국자 “같다”.

그건 그렇구..초청받지 않은 기자들의 전화가 내 휴대폰을 울리기 시작했다. 여러명에게 똑같은 욕을 동시에 먹어대니 그날 점심이 지나도 배고프지가 않았다. 살 빠지는데 좋을 것 같다.

그 다음날 기사가 나가고 현대자동차 홍보실에서 한국토요타에 전화를 걸어 불평을 해 댔다. 몇몇 신문들이 오쿠다 기자간담회의 야마를 “연간 생산능력 500만대 이상 브랜드만 살아 남는다”고 뽑았기 때문이다.

사실 오투가 회장이 그런말은 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기자들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썻다. 욕은 우리가 먹었다. 현대측에서는 “그럼 현대, 대우, 기아는 앞으로 다 망할 꺼라는 이야기냐?”고 했다. 그럴찌도 모르지 솔직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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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0-05-23 (경제) 기획.연재 13면 45판 1023자 
 日경연 이끌고 방한 오쿠다 도요타 회장  
 “한국 차산업의 약점은 엔진·미션등 주요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오쿠다 회장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약점은 엔진과 오토 트랜스미션 같은 중요하고 정교한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일경련(일경련) 회장 자격으로 방한 중인 오쿠다 회장은 22일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21세기에는 연간 생산능력 400만-500만대의 자동차 회사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그러나 BMW, 혼다, 폴크스바겐 등 독자적인 기술을 가진 회사는 생산 규모가 적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도요타는 내년에 한국 시장에 약 1000대의 고급차(렉서스)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쿠다 회장은 지난해 6월 도요타 오너 가문 출신이 아니면서도 처음으로 회장직을 맡았으며, 현재 일본 일경련 회장과 일본 자동차공업협회장, 총리 경제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다음은 오쿠다 회장과 일문일답.
―한국자동차 산업의 강점과 단점은.
“한국 자동차 메이커는 경영자가 노력하고 직원도 열심히 일한다.
또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약점은 엔진과 미션 등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이다.
머리좋고 기술 좋은 한국 사람이 왜 그런 부품을 만들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재편이 한창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재편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은 대우차 문제를 해결한 뒤 3사 체제로 갈 것이다.
우리는 한국 메이커와 제휴를 맺을 계획은 없다.
다만 자동차 부품을 한국에서 수입할 의사는 있다.
―한국차의 미국 시장 수출이 잘되고 있는데 조언을 한다면.
“우리도 1959년 미국시장에 처음 진출할 때 엔진 가속력이 좋지 않아 몇 차례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한국차는 과거 미국에서 철판이 빨리 부식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점을 개선해 성공을 거두리라고 생각한다.
―오너의 자동차 회사 경영 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도요타 이사회 임원 56명 중 도요타 가문 사람은 1명뿐이다.
우리는 도요타 가문을 존경하지만 인사문제는 불편부당 평등하게 하고 있다.
/김영수기자 yskim2@chosun.com
 

한국일보] 2000-05-24 (국제/외신) 뉴스 12면 30판 1647자 
 도요타 생존비결 “사람중시 경영”  
 거품붕괴의 후유증에 ‘일본주식회사’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이 일본 재계의 화두가 된지 오래다.
그러나 도요타자동차의 ‘사람을 지키고(人守), 사람을 살리는(人活)경영’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회장은 “고용을 지키지 못하는 경영자는 할복하라”고 외친다.
도쿄(東京)증시의 폭락 장세 속에서도 도요타자동차의 액면가 50엔짜리 주식은 5,000엔대의 안정세를 유지하며 시가총액은 19조엔을 넘어섰다.
1999년도(3월말 기준) 순익은 1998년도보다 14.2% 늘어 사상 최고인 4,068억엔에 이르렀고 기간중 자동차 판매 대수도 500만대를 넘어 세계 최고였다.
도요타는 자동차업계의 세계적 재편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다. 3월말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三菱)자동차의 자본 제휴 합의로 일본의 자동차메이커 11개사 가운데 7개사가 외국업체와 제휴했다. 혼다(本田)기연공업과 도요타그룹 3개사만이 남았다.
오쿠다회장은 22일 서울에서 가진 회견에서도 “아직 준비중인 외자 제휴는 없다”고 확인하면서 “독자 기술개발에 힘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본 제휴를 통한 덩치키우기보다는 독자 기술에 승부를 건다는 점은 혼다와 닮았다. 차세대 자동차인 연료전지차(전기자동차) 개발이나 그 과도형인 ‘하이브리드카’, 자동주행시스템 개발 등에서 도요타가 세계 정상의 기술을 확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쓰비시자동차는 세계 최초로 직분사 엔진을 상용화하고도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적 과잉생산 국면인 자동차시장의 생존경쟁이 그만큼 치열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도요타를 지탱하고 있는가. 최근 일본 언론의 잇단 분석에서는 인간 중시 경영과 함께 ‘혈연공동체’‘위기의식’등이 공통적으로 꼽혔다.
인간 중시 경영은 ‘도요타 생산방식(TPS)’의 핵심이다. 생산성 향상에 따른 여유 인력을 그대로 남겨 자기 노력을 통한 품질·생산성 향상으로 다시 연결하는 방식이다. 핵심 작업을 로봇 대신 사람이 맡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족적 분위기의 중심에 창업 가문의 화목이 존재하는 것도 특이하다. ‘중시조(中始祖)’격인 도요다 에이지(豊田英二)최고고문과 쇼이치로(章一郞)명예회장, 다쓰로(達郞)전사장 등은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룹의 정책결정에 관여한다.
에이지의 2남으로 고급차 ‘렉서스’를 탄생시킨 데쓰로(鐵郞)는 도요타자동직기 전무로, 3남으로 소형차 ‘비츠’를 개발한 슈헤이(周平)는 이사로, 쇼이치로의 장남인 다케오(章男)는 인터넷전략을 지휘하는 ‘Gazoo’의 부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역대 사장은 늘 위기의식을 강조해 왔다. 숙명의 라이벌 닛산과의 대결, 금융기관의 대출 경색 등 위기의식의 내용은 그때마다 달랐지만 그룹 전체의 분발을 불렀다.
금융경제 시대에 2조5,000억엔의 사내 잉여금을 예치하고 있는 ‘바보같은’ 관행도 항상적 위기의식에서 비롯했다. 지금은 ‘혼다 위협론’은 물론 ‘현대 위협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고 도요타가 변화에 둔감한 것도 아니다. 외자와의 제휴 대신 히노(日野)자동차(트럭), 다이하쓰(소형차)에 대한 출자를 늘려 자체 종합생산망을 갖추었다.
한편으로 통신인프라는 물론 휴대폰 제조, 주택 건설, 신용카드 등 다양한 업종으로 사업을 넓혀 ‘24시간 소비자가 도요타와 함께 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내외경제] 2000-05-22 687자 
 “자동차 年500만대 생산해야 생존”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연간 400만~500만대 규모 의 생산능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21세기 세계자동차시장에서 살아남지 못 할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한국 ILO(국제노동기구) 초청으로 방한 중인 오쿠다 회장은 22일 경총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히고 “세계시장에서의 생존 전략은 독자적인 기술확보에 있는 만큼 한국도 엔진이나 미션 등 정밀부품을 독 자개발할 경우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연간 400만대 이상 생산능력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곳은 기술력을 가진 BMW나 폴크스바겐, 혼다 등일 것”이라며 독자기술 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쿠다 회장은 세계자동차업계의 인수·합병 바람에 대해 “도요타의 경우 아직 준비된 것이 없으며 독자기술 개발에 주력할 것”이라며 “그 러나 좋은 부품이 있다면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시장 진출 전략에 대해 “현 단계에서는 완성차를 수입해 판 매하는 것이지만 연간 1000대를 팔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라고 전망했 다.
또 국내 자동차업계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경영자와 노동자가 모두 노력하고 해외진출에 강하다는 게 장점인 반면 엔진과 미션 등 주요 부 품의 자체 생산 능력이 약하다는 것을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 다. 오쿠다 회장은 지난해 도요타 회장직에 올랐으며 현재 닛케이렌(日經連 ) 회장도 맡고 있다.

[서울경제] 2000-05-22 733자 
 “연간 400만대 양산능력이 세게車시장 생산기준”-도요타회장 
 오쿠다 히로시(奧田 碩·사진)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연간 400만∼500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21세기 세계자동차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한국 ILO(국제노동기구) 초청으로 방한중인 오쿠다 회장은 22일 경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계시장에서의 생존전략은 독자적인 기술확보에 있는 만큼 한국도 엔진이나 미션 등 정밀부품을 독자개발할 경우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연간 400만대 이상 생산능력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곳은 기술력을 가진 BMW나 폴크스바겐, 혼다 등일 것』이라며 독자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내시장 진출 전략에 대해 『현 단계에서는 완성차를 수입, 판매하는 것이지만 연 1,000대를 팔수 있으면 다행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국내 자동차업계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가 노력하고 해외진출에 강하다는 게 장점인 반면 엔진과 미션 등 주요 부품의 자체생산 능력이 약한 것이 단점』이라고 말했다.
오쿠다 회장은 굴뚝산업의 생존전략과 관련, 『정보기술(IT)을 접목할 경우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한 뒤 국내 자동차업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일단 경영만 잘하면 다른 회사와의 자본제휴 없이도 현재의 3사체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쿠다 회장은 지난해 도요타 회장직에 올랐으며 현재 닛케이렌(日經連) 회장을 맡고 있다.
임석훈기자SHIM@SED.CO.KR

한국경제] 2000-05-23 1265자 
 오쿠다 도요타회장, “연4-5백만대 생산력 갖춰야 생존” 
 “혼다 BMW 폴크스바겐 등과 같이 독자적 기술력을 갖춘 업체를 제외하고는 연간 4백만~5백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21세기 생존이 불투명하다”
한국 ILO(국제노동기구)협회 초청으로 방한중인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은 22일 서울 경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자동차업체도 엔진이나 미션 등 정밀부품을 독자개발할 능력을 갖춘다면 미국 등 선진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쿠다회장의 진단은 독자기술력을 갖출 역량을 갖추거나 그렇지않으면 규모의 경제(4-5백만대 생산체제)를 확보하기위해 전략제휴나 인수합병의 대열에 참여하지않을 수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회견에서 오쿠다 회장은 “도요타도 미국시장에 진출하면서 몇차례 실패를 경험했다”며 “한국업체들도 기술력을 확보하면 중대형차도 미국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독자기술력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했다.
오쿠다 회장은 한국자동차 업체들의 해외제휴문제에 대해 “대우자동차가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한국자동차 업체들은 경영만 잘하면 해외업체와의 자본제휴 없이도 3사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지만 경영기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않았다.
그는 이어 “70년대 한국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경영진간의 견해차로 철수해 한국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내년부터 한국에서 매년 1천대 정도의 자동차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쿠다 회장은 도요타의 앞날에 대해선 “세계적인 자동차업계의 합종연횡흐름에 상관없이 독자노선을 추구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도요타는 세계 차업계의 인수합병 바람을 외면한채 독자해외공장 확대와 자체기술개발을 고집스럽게 추구하고 있어 “도요타의 마이웨이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심이 모아지고있는 상황이다.
도요타는 내년 봄 프랑스 북부 발랑시엔에 현지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며 2003년에는 연료전지 기술이 적용된 차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도요타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들은 도요타가 “이미 4백만대 체제를 구축했으며 특히 해외공장을 통해 글로벌 경쟁에 필요한 성장엔진을 확보해 놓았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라인업에서도 일본내 트럭제조 업체인 히노와 소형차 업체인 다이하츠와의 제휴를 강화함으로써 부족한 것이 없다는 분석이다.
오쿠다 회장이 이날 한국기자들에게 들려준 한국차업계진단도 결국 “도요타수준이 아니면 합종연횡의 대열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로 요약된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한국경제] 2000-05-23 1265자 
 [인터뷰]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 
 “혼다 BMW 폴크스바겐 등과 같이 독자적 기술력을 갖춘 업체를 제외하고는 연간 4백만~5백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21세기 생존이 불투명하다”
한국 ILO(국제노동기구)협회 초청으로 방한중인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은 22일 서울 경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자동차업체도 엔진이나 미션 등 정밀부품을 독자개발할 능력을 갖춘다면 미국 등 선진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쿠다회장의 진단은 독자기술력을 갖출 역량을 갖추거나 그렇지않으면 규모의 경제(4-5백만대 생산체제)를 확보하기위해 전략제휴나 인수합병의 대열에 참여하지않을 수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회견에서 오쿠다 회장은 “도요타도 미국시장에 진출하면서 몇차례 실패를 경험했다”며 “한국업체들도 기술력을 확보하면 중대형차도 미국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독자기술력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했다.
오쿠다 회장은 한국자동차 업체들의 해외제휴문제에 대해 “대우자동차가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한국자동차 업체들은 경영만 잘하면 해외업체와의 자본제휴 없이도 3사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지만 경영기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않았다.
그는 이어 “70년대 한국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경영진간의 견해차로 철수해 한국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내년부터 한국에서 매년 1천대 정도의 자동차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쿠다 회장은 도요타의 앞날에 대해선 “세계적인 자동차업계의 합종연횡흐름에 상관없이 독자노선을 추구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도요타는 세계 차업계의 인수합병 바람을 외면한채 독자해외공장 확대와 자체기술개발을 고집스럽게 추구하고 있어 “도요타의 마이웨이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심이 모아지고있는 상황이다.
도요타는 내년 봄 프랑스 북부 발랑시엔에 현지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며 2003년에는 연료전지 기술이 적용된 차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도요타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들은 도요타가 “이미 4백만대 체제를 구축했으며 특히 해외공장을 통해 글로벌 경쟁에 필요한 성장엔진을 확보해 놓았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라인업에서도 일본내 트럭제조 업체인 히노와 소형차 업체인 다이하츠와의 제휴를 강화함으로써 부족한 것이 없다는 분석이다.
오쿠다 회장이 이날 한국기자들에게 들려준 한국차업계진단도 결국 “도요타수준이 아니면 합종연횡의 대열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로 요약된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매일경제] 2000-05-23 820자 
 도요타 회장, “연산 400만대 능력이 생존 기준” 
 오쿠다 히로시(奧田 碩) 도요타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연간 400만∼500 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21세기 세계자동차시장에서살 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한국 ILO(국제노동기구) 초청으로 방한중인 오쿠다 회장은 22일 경총 회관에서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히고 “세계시장에서의 생존전략은 독자적인 기술확보에있는 만큼 한국도 엔진이나 미션 등 정밀부품을 독 자개발할 경우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연간 400만대 이상 생산능력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곳 은 기술력을 가진 BMW나 폴크스바겐, 혼다 등일 것”이라며 독자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쿠다 회장은 세계자동차업계의 인수.합병 바람에 대해 “도요타의 경 우 아직준비된 것이 없으며 독자기술 개발에 주력할 것”이라며 “그러나 좋은 부품이 있다면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시장 진출 전략에 대해 “현 단계에서는 완성차를 수입, 판매 하는 것이지만 연 1천대를 팔수 있으면 다행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국내 자동차업계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가 노력하고해외진출에 강하다는 게 장점인 반면 약점으로는 엔진과 미션 등 주요 부품의 자체생산 능력이 약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고 말했 다.
오쿠다 회장은 굴뚝산업의 생존전략과 관련, “정보기술(IT)을 접목할 경우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한 뒤 국내 자동차업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 일단 경영만 잘하면다른 회사와의 자본제휴 없이도 현재의 3사체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쿠다 회장은 지난해 도요타 회장직에 올랐으며 현재 닛케이렌(日經連 ) 회장도맡고 있다.

매일경제] 2000-05-23 880자 
 [인터뷰]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 
 = “한국 부품업체와의 협력 적극 추진”<황인혁>”내년 초 한국 자동차 시장 진출을 앞두고 한국 부품업체 와의 협력을 통한 부품조달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진출 첫 해에 1000대만 팔려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노동기구(ILO) 초청으로 21일한국을 찾은 오쿠다 히로시 도 요타자동차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내에 좋은 부품업체가 있으 면 언제든 협력할 용의가 있으며 점진적인 한국시장 진출을 꾀하겠다 고 밝혔다.
오크다 회장은 “앞으로는 연간 400만∼500만대 이상 생산업체 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지만 혼다, BMW, 폭스바겐 등 독자 기술을 확 보한 자동차업체도 시장에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에 대해 “경영자와 직원들의 근무의욕이 높은 데다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엔진·미션 등 핵심 부품에 대한 국산화율이 여전히 떨어지 는 것은 개선할 부분”이라며 “한·일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엔진·핵심부품의 국산화는 절실한 과제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월드카 개발은 자동차에 대한 각국별 선호도가 다른 만큼 추진 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라며 “현재 경차 모델인 `비츠’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유럽에서는 `야리츠’, 미국에서는 `에코’로 판매되고 있는 게 도 요타의 월드카로 불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월드카 개발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한 편 차세대 자동차로 불리는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에 대해 “지금까지 약 3만대가 판매됐으며 올해 중순경 유럽과 미국 등에 수출할 계획”이 라고 말했다.
오크다 회장은 현재 일본경영자연맹 회장, 일본자동차공업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일본 재계를 주도하고 있으며 지난해 6월 사장에서 회장 으로 전격 승진했다.

by 우마미 | 2006/12/05 15:57 | 렉서스 PR 이야기 | 덧글(0)
11월 112007 0 Responses

2000년 5월 서울모토쇼

2000년 5월 서울모토쇼에 출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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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매년 5월경은 자동차 홍보 마케팅 담당자들에게는 바쁜 시즌이다. 년간 세계적으로 모터쇼가 안열리는 달이 별로 없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5월이나 11월경인 것 같다.

2000년 5월 당시 한국토요타는 렉서스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온다고만 밝혔지 한번도 도입할 렉서스 모델들을 한국인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

나는 미국에서 운좋게도 당시 렉서스 최고 모델인 렉서스 LS400으로 운전면허 시험을 보았던 경험이 있다. 따라서 렉서스의 특징이나 명성을 이미 미리 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기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PR은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당시 주로 렉서스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체류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통 렉서스는 “미국에서 유행하는 고급차” “토요타가 만든 럭셔리 브랜드 라인”등으로 알려져 있었다. 맞는 표현이지만 이 표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너무 적었다.

한국토요타에서 서울모터쇼에 렉서스 모델들을 출시할 예정이라면서 모터쇼를 준비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모터쇼 준비는 LGAD에서 담당한다고 한다. CK는 기자간담회 준비를 부탁받았다.

모터쇼에는 우리나라 자동차 기자들이 다 모인다. 특별히 초청작업을 하지 않아도 별반 문제가 없다. 그러나 모터쇼 이전 그리고 현장에서 각 브랜드별 홍보담당자들의 전쟁은 시작된다. 기자 끌어가기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편한 마음으로 모토쇼에 들른다. 각 브랜드별 사장들이나 만나고 컨셉카 정도가 있으면 유심히 볼까..별반 기사에는 관심이 없다. 왜냐면 기사는 이미 개막식 이전에 몇번에 걸쳐 다루어 지기 때문이다.

행사당일 수많은 기자들이 토요타 부스에 몰려들었다. 언제나 따분하게 진행되는 토요타의 기자행사. 아무리 건의를 해서 분위기와 형식을 바꾸어 보려고 해도 먹히질 않는다.

당시 일본관계자에게 들었던 말이있다. “토요타는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건너지 않는다. 쇠망치로 부셔가면서 건넌다.”는 말이다. 이말은 추후 기자들에게도 많이 써먹었다. 기자들의 반응? 재수없다는 반응이다.

모터쇼나 신차발표회에서 정대로 도우미들의 노출을 배려(?)하지 않는다. 차와 함께 있는 도우미의 3대 요건은 도발, 요염, 노출이다. 토요타는 이 중 하나도 배려하지 않는다.

이 행사당일날도 도우미들은 여염집 아가씨들이 나들이 할때 입을만한 검정색 원피스와 실루엣을 걸쳤다. 치마길이? 무릅위 5cm정도다. 이래선 안먹힌다.

차분한 장례식 분위기였지만 기자들은 관심을 가졌다. 모터쇼에서 취재의사를 밝히는 미친 기자는 처음이다. 인터뷰를 하려 하는 기자도 있고 재미있었다.

기자간담회는 20분정도. 별로 할말도, 한말도 없고, 질의 응답도 복습정도 수준이다.

기자들에게 답례품을 주는 순간. 엄청나게 밀리는 기자들의 줄. 이때 일간지 주요 신문 기자들과 TC기자들은 먼 발치에 서있다. 이를 놓치면 PR담당자들은 선수가 아니다. 재빨리 다른 기자들의 줄을 헤치고 역행을 해 가서 직접 답례품을 손에 쥐어 준다. “에이 됐어” “어…그래” 보통 그들의 답변이다.

TV기자들은 필히 카메라, 조명, 운전수까지 답례품을 챙겨줘야 체면이 선다. 답례품 백을 4개씩 들고 달려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TV기자에게 답례품을 전달하고 있는 PR인이다.

기자들이 쓸고간 휑한 행사장. 렉서스 4개모델만 덩그란히 남아 있다. 성공적이라는 자평으로 쉴곳을 찾아 헤멧다. 행사를 준비한 LGAD의 이준경 부장과도 즐겁게 인사 나누었다.

토요타 본사의 홍보이사와 담당과장급들과 함께 이 행사 직전 약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략이 어떻고 메시지가 어떻고 마치 미식축구 작전회의를 방불케한다. 토요타는 항상 사전준비 및 검토를 하라고 하면서 막상 사전활동은 모든 브랜드들 중에 가장 적고 볼품없다. 왜냐구? 남들이 사전실행을 할때도 사전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 실행할 시간이.

암튼 기자들은 성실하게 취재를 했고 기사를 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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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0-04-29 (특집) 뉴스 45면 05판 881자 
일본 車업계 상륙 탐색적 “부릉 부릉”  
일본차 업체들의 국내 진출이 올해초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국내 수입차 시장규모가 작고 딜러 선정, 애프터서비스망 구축 등이 늦어져 도요타를 제외하고는 아직 뚜렷한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도요타 혼다 미쓰비시 등 메이저업체들이 모두 이번 모터쇼에 주력 차종을 대거 선보일 예정이어서 하반기부터는 어느 정도 움직임이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은 우선 3000㏄급 이상의 고급 세단과 고급 RV로 한국 시장을 노크해본 뒤 점차 중형, 소형쪽으로 라인업을 다양화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
이달초 국내 법인을 설립한 도요타는 렉서스 시리즈인 LS430, GS300 등을 먼저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준중형 IS200과 대형 SUV인 RX300도 수입이 유력시되는 차종. 한국에도 잘 알려진 캠리와 아발론은 판매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돼 본격적인 시판 시기를 다소 뒤로 미룰 것으로 보인다.
혼다는 주력인 4륜구동 CRV와 미국 밴 시장에서 선전한 오디세이 등을 주력 차종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레전드 어코드 아큐라 등 세단도 미국 시장에서의 명성을 등에 업고 언제든지 한국 시장에 들어올 채비를 갖추고 있다. 미쓰비시는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파제로, 그랜드샤리오, 챌린저 등 4륜구동을 앞세울 계획. 스포츠카인 이클립스도 미쓰비시의 라인업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닛산을 인수한 프랑스의 르노가 삼성차를 인수함에 따라 닛산의 움직임이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다. 르노는 국내 시장에서 낯설은 프랑스제보다 닛산 차종들을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닛산의 투입차종은 미국에서 렉서스와 비슷한 평가를 받았던 고급차 인피니티가 주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매일경제] 2000-05-03 861자 

[일본차] ‘한국도요타’ 출범…직판 채비 
일본차는 그 동안 우리나라의 수입 다변화지역 정책에 묶여 직판 형 태의 현지법인이 없이 미국에서 생산된 일본차를 수입해 판매하는 수 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난달 출범한 한국토요타자동차가 곧 직판 사업에 들어갈 예 정이어서 일본차의 국내시장 공략도 거세질 전망이다.
도요타는 이번 모터쇼에서 한국토요타자동차의 공식 출범을 알리고 본격 활동에 들어간다는 전략. 한국토요타자동차가 전시할 차종은 고 급 브랜드 개념을 도입한 LS430과 GS300, 차세대 스포츠 세단인 IS2000, 스포츠 다기능 자동차인 RX300등 렉서스 시리즈. 렉서스는 전시장과 마케팅망 구축이 완료되는 오는 9월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갈 계획이다.
도요타자동차는 지금까지 도요타통상의 현지법인인 TT코리아를 통해 한국 자동차시장 진출을 모색해 왔으며 본격적인 한국시장 공략을 위 해 지난 3월말 자본금 9억엔(약 90억원)으로 현지법인 한국토요타자동 차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를 계기로 도요타는 서울에 2개업체, 지방에 1개 업체 등 3개의 판 매업체를 선정해 본격적인 국내 자동차시장 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국 내 판매업체로는 동양고속건설과 SK에너지 맥킨코퍼레이션 등이 확정 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에 이어 일본 미쓰비시와 혼다자동차도 한국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올해 국내에 판매망과 애프터서비스망을 구축하 는데 열중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시장에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아직 현지법인 설립 단계는 아니며 도요타의 진출 추이를 봐가며 한 국시장에 상륙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닛산과 마쓰다 등은 아직 완성차 진출을 모색하는 단계는 아니나 제휴선인 한국 자동차메이커와 모델의 교류 생산 등을 고려해볼 수 있 다는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2000-05-04 (경제) 뉴스 11면 45판 529자 

日 도요타 “내년 한국 상륙”;혼다·미쓰비시도 본격진출  
일본차 업체들의 한국 진출 전략이 수입차 모터쇼를 계기로 구체화하고 있다.
야스노 한국도요타 사장은 3일 ‘2000 수입차 모터쇼’ 보도발표회에서 “내년 수입차 시장은 8000대 수준이 될 전망인데, 도요타는 내년 1월부터 판매에 들어가 첫 해에 800대를 판매, 수입차 시장의 10%를 차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돈을 많이 벌고 있는 벤처기업가들을 대상으로 판매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도요타는 고급차 렉서스 브랜드의 LS430 등 4개 차종을 들여올 계획이다.
도요타는 특히 국내에서 직접 부품을 조달키로 하고 현재 부품업체 선정작업에 들어간 상태.
사토시 도시다 혼다 아시아법인 사장은 “현재 한국시장에 대한 조사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이르면 내년 중반기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시장은 경쟁이 매우 심해 진입이 어렵다”며 “혼다만의 고유한 차를 들여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쓰히코 가와조에 미쓰비시 사장은 “내년 초 4륜구동 파제로와 스포츠 쿠페 이클립스를 한국에 들여와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종호기자

   

by 우마미 | 2006/12/05 15:55 | 렉서스 PR 이야기 | 덧글(0)
11월 112007 0 Responses

2000년 3월 한국토요타자동차(주) 런칭

2000년 3월 한국토요타자동차(주) 런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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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한국토요타자동차(주)의 국내법인 설립 기자간담회를 조선호텔에서 가졌다. 새롭게 설립된 한국토요타자동차는 삼성동 옥산빌딩 4층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영업부 손창규 부장에게 PR을 담당하게 했다.

서울대 조선공학도 출신인 손창규 부장은 PR과는 거리가 먼 공학도였다. 기아자동차 미주본사에서 90년대 중후반을 지냈다. 나와는 몇년간 뉴욕 뉴저지 생활이 오버랩되는 인연이 있었다.

손 부장은 예산에 항상 민감했다. 초청인원을 4-50명선으로 제한하라고 했다. 오는 기자들을 제한하라는 것 참으로 난감한 주문이다.

한국토요타자동차 초대 사장은 야스노 히데아키라는 분으로 임명되었다.  미주 토요타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꼼꼼한 일본형 그대로의 인간.

기자간담회는 무난히 진행되었다. 많은 기자들이 관심을 가졌다. ‘일본차’라는 게 그들의 야마였다. 이 토요타의 이미지 – ‘일본차’는 나중에도 일정기간 PR적인 짐이 되어 내 어깨를 눌러대고 있었다.

TV들까지 한국토요타의 국내 법인 설립에 관심을 나타냈다. 앞으로 갈길이 멀다는 느낌이 머리를 스쳤다.

토요타는 기자들의 질문을 미리 에상이라도 한 듯 판매예상대수와 판매 계획이 있는 렉서스 모델 4개릐 리스트를 발표했다.

토요타 브랜드가 아니라 토요타의 최고급 브랜드를 국내 시장에 들여 오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렉서스 같은 고급 브랜드만이 국내에서는 수입차 시장 경쟁력이 있다는 토요타의 판단에서 였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1%도 안되는 수입차 시장에서 일반 브랜드를 들여 오면 타산이 맞지도 않고 현대나 대우같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도 없다는 계산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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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0-03-15 (경제) 뉴스 47면 05판 433자 
도요타 한국법인 개설…회장에 朴建宇씨  

일본 최대 자동차업체인 도요타자동차가 한국 현지법인을 만들어 본격적인 한국시장 진출에 나섰다.
14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도요타는 작년 7월 한국의 수입선 다변화조치 해제로 일본산 자동차의 대한(對韓) 직접수출이 가능해짐에 따라 최근 자본금 90억원 규모의 한국도요타자동차를 설립했다. 도요타는 지금까지 한국내 판매대리점인 티티코리아를 통해 미국 공장에서 생산된 도요타 차량을 판매해왔다.
한국토요타 회장은 대우자동차 전무와 ㈜대우 부사장을 지낸 박건우(朴建宇)씨가, 사장은 일본본사에서 파견된 야스노 히데아키(安野秀昭)가 각각 맡았다.
한국도요타는 내년 1월 국내판매를 시작, 첫해인 내년에는 일본에서 생산된 차량인 렉서스 800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도요타는 이를 위해 서울과 부산에 판매 딜러회사 3곳을 선정했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한 겨 레] 2000-03-15 (경제) 뉴스 21면 04판 508자 

도요타, 한국상륙 채비 / 판매주식회사 설립.내년 목표 800대  

지난해 7월 수입다변화조처 해제 이후 한국 자동차시장 장세를 관망해오던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한국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본격적인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도요타 자동차는 14일 한국의 도요타 자동차 총수입판매대리점으로 서울에 ‘한국 도요타자동차 주식회사'(도요타 모터 코리아.TMKR)를 새로 설립했다고 발표했다. 자본금 90억원 전액을 도요타가 출자했다.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하며 내년 판매목표대수는 약 800대로 잡고 있다. 판매 차종은 도요타가 자랑하는 고급차 렉서스 브랜드로 배기량 3000cc급 LS430, GS300, 2000cc급 IS200, 4륜구동 RX300(3000cc) 등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옥산빌딩 안에 있는 이 회사 사장에는 도요타 아시아부 야스노 히데아키 주임(제너럴 매니저)이 취임했으며, 회장에는 박건우씨, 비상근 이사는 하세가와 고지 도요타 상무, 비상근 감사역도 오자키 히데토 도요타 이사가 맡고 있다.
sdhan@hani.co.kr

서울경제] 2000-03-24 620자 

토요타車, 내년부터 한국시장 공략강화 
토요타가 내년부터 본격적인 한국시장 공략에 나선다.
야스노 히데아키(安野秀昭) 토요타 모터 코리아 사장은 24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내년에 렉서스 LS 430시리즈를 중심으로 800대를 판매할 목표』라며『향후 5년 내에 한국 수입자동차 시장에서 25~30%의 점유율을 차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야스노 사장은 한국시장에는 고급·대형 세단인 LS430(4,300㏄), 중형 스포츠세단 GS300(3,000㏄), 스포츠세단 IS300 (2,000㏄), 고급 지프 RX300(3,000㏄)를 시판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건우(朴建宇) 토요타 모터 코리아 회장은『지난 96년부터 한국시장 진출 조사에 들어가 면밀한 검토를 거쳤다』며『완벽에 가까운 토요타자동차의 품질에 국내 소비자들도 높은 만족을 느낄 것』이라며 한국시장에서의 선전을 자신했다.
토요타자동차는 지난 14일 「한국토요타자동차」를 설립하고 국내 공식딜러로 SK에너지판매· 동양고속· 부산맥도널드코리아를 선정했다.
수입자동차 판매의 노른자위인 서울 강남지역은 동양고속이, 강남구를 제외한 지역과 경기도는 SK에너지판매가, 부산지역은 부산맥도널드코리아가 맡는다.
최인철기자MICHEL@SED.CO.KR

조선일보] 2000-04-03 (생활/여성) 인터뷰 55면 45판 1021자 
한국도요타 사장 야스노 히데아키 인터뷰  
 “품질과 서비스로 민족감정의 벽 넘을 것”;고급차 ‘렉서스’로 승부 2004년까지 2000대 목표
최근 설립된 한국도요타자동차 대표로 야스노 히데아키(안야수소) 사장이 부임했다.
야스노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한국 소비자들이 일본과 일본 상품에 대해 갖고 있는 민족감정의 벽을 훌륭한 제품과 서비스로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야스노 사장은 지난 70년 도요타에 입사해 정보시스템 사업부와 미국 판매법인 부사장, 아시아 프로젝트 본부장을 거친 정통 도요타맨이다.
-진출시기를 내년 1월로 늦춘 이유는.
“판매업체 선정이 늦었다. 서비스 센터를 완공기 위해서는 6-7개월이나 걸리기 때문에 본격적인 판매시점을 내년 1월로 연기했다. 서비스 센터는 판매업체로 선정된 SK에너지판매와 동양고속건설, 부산맥도날드 등 3개사가 각각 설립할 예정이다.
-한국시장 조사는 했나.
“지난 96년부터 미국산 토요타 아발론과 캠리 모델을 들여와 시험판매를 했으나 기대만큼 성과가 없었다. 벤츠와 BMW 등 비싼차가 많이 판매되는 것을 보고 도요타도 럭셔리카 렉서스 시리즈를 들여오기로 했다.
-렉서스의 경쟁모델은.
“벤츠S클래스와 BMW7시리즈다.
-한국 자동차시장이 폐쇄적이라고 보는가.
“미국과 유럽업체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시장 관세가 8%인데 이는 유럽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다. 다만 일본차 업체로서는 몇 가지 제약이 있다. 호몰로게이션(신차인증) 절차는 유럽기준으로, 또 안전은 미국기준으로 돼 있어 여기에 맞추기가 어렵다.
-한국에서의 판매전망은.
“2004년에는 2000대를 판매할 계획이다. 그러면 손익분기점을 통과하게 된다.
-합작 부품업체 설립계획은.
“도요타 본사차원에서는 없다. 다만 도요타의 계열 부품회사인 덴소가 한국에 이미 합작업체를 설립해 운영중이다.
-지난 72년 신진자동차와 합작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합작을 중단하고 한국에서 철수했었는데 왜 그랬나.
“그것은 오해다. 신진이 제너럴모터스(GM)와 자본합작을 추진해 우리(도요타)가 철수하게 된 것이다.
도요타가 중국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한국에서 철수했다는 항간의 소문은 정확하지 않다.”
/김종호기자

by 우마미 | 2006/12/05 15:54 | 렉서스 PR 이야기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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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월 토요타와의 첫만남

2000년 2월 토요타와의 첫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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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월 토요타에서 비딩 의뢰 연락이 왔다. 당시 나의 사수였던 박현 부장(현 한국화이자 기업홍보 부장)과 함께 강남 안세병원 사거리의 진세무역 (당시 토요타자동차의 국내 수입 딜러) 사무실을 방문했다.

당시 손창규 부장(현재 재규어 & 랜드로버 브랜드 책임 상무)은 한문과 영어로 된 토요타 명함을 우리에게 건네 주었다. 직함은 그냥 컨설턴트. 비딩은 CK,인컴 등 몇개를 불러 실시한다고 했다.

1999년 말까지 나는 GM 어카운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기섭 상무 (현 릴리 코리아 이사)가 인하우스 파트너였다. 깐깐하시고 자기통제가 엄격하신 분. 배울점이 있는 분이다. 솔직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당시엔. 대우 이슈가 GM 이슈와 어우러지면서 GM은 무언가 힘을 얻기 위해 LGAD로 떠났다. LGAD에서는 GM을 이준경 부장 (현 리앤에이치 사장)이 맡았다. 내가 보내준 두박스 분량의 GM 자료들을 한장도 보지 않았다고 나중 술자리에서 내게 말했다. 섭섭했다.

CK 김경해 사장은 평소 메이저 PR대행사는 자동차 브랜드를 하나 이상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토요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당연히 우리는 열심히 제안서를 작성했다.

PT하는 날 또 한분의 토요타 컨설턴트가 손창규 부장과 함께 자리를 했다. 나중에 그는 박건우 회장이 되었다. 당시엔 그도 하나의 컨설턴트였다. GM의 경력에 대해 자세히 물어 보았다.

며칠 후 CK로 대행사를 정하려 한다는 연락이 토요타로부터 왔다. 빨리 일을 시작하잔다.  국내법인인 한국토요타자동차를 설립하는 기자 간담회를 한단다.

플랜을 짜고 한국토요타 설립등에 관한 프레스 킷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소개되는 최초의 한국토요타 관련 정보였다.

미디어 리스트를 만들었다. 기존의 GM 리스트를 다시 갈아 엎었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거다.  

by 우마미 | 2006/12/05 15:53 | 렉서스 PR 이야기 | 덧글(0)
11월 112007 4 Responses

M&A comm-12(final)

M&A Communication-12 (F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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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마당에서는 이겼는데 왜 본 게임에서는 졌을까?

경험상 M&A Communication의 핵심은 이렇다고 생각한다.
 
1. 처음부터 마지막 까지 존재하는 chaos를 communication 활동으로 어떻게 관리하는가?
2. 다른 M&A 전문가들(컨소시엄멤버들, 자금라인들, 법률자문들, 회계자문들, 경영자문들, 정부 로비스트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딩에 참석한 기업들의 owner들) 과 어떻게 message와 strategy를 align하는가?
3. 게임이 진행중일 때는 어떻게 극단적인 performance를 보여주고, 게임이 끝났을 때는 얼마나 완벽하게 평상으로 돌아가는가?

특히, 3번의 경우 ‘게임시의 커뮤니케이션 활동들로 인한 후유증(!)을 얼마나 깨끗하게 남기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마치, 최근 한라당 경선 과정에서 이후보와 박후보간의 설전이 후보선출 후 후유증을 남기지 말아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사실 이것 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어떻게 보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발을 뺄 장소를 돌아보면서 싸우면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말이다. (스파르타!^^)

왜 이 핵심들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하는가 하면…우리는 경쟁사에 대한 이런 negative campaign을 끝내고 나서 일정 기간 동안 아주 호된(!) 반격들을 당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본사 중국 오피스 PR VP가 한국에 와서 내게 한 말…”Now I understand why they are doing like that…Huh Huh… James, You need to understand them too. Right?”

결국 경쟁사는 J 소주 인수에 대한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을 받아 냈다. 심사 위원 9명중 과반수 이상의 조건부 승인 의사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의 패배원인을 분석해 보면;

1. 경쟁사 대비 로비력의 열세 (전략, owner의 의지, 투자, 기존 네트워크…)
2. 중반 이후 유럽 본사의 관심 소멸 (우리는 중반 이후에 별동대 처럼 싸워야 했다)
3. 사내 정치적으로 본 프로젝트에 많은 힘이 되어준 AP 사장이 사내적으로 정치적 약화
4. 우리 회사 사내에 만연한 패배의식
5. 우리 회사 구성원들의 특수성
6. 정부차원의 암묵적 관여

각각의 원인들에 대해 간단하게 부연하면;

1. 경쟁사 대비 로비력의 열세 (전략, owner의 의지, 투자, 기존 네트워크…)

우리는 이미 경쟁사와 공정위를 사이에 둔 경쟁에서 무참하게 패배한 전력이 있었다. 경쟁사가 천연 암반수를 강조하는 광고를 개시 했던 90년대 초반, 시장 우위에 있던 우리는 공정위에 경쟁사가 맥주 용수로 강조하는 천연 암반수의 현실에 대해 증거를 제시하면서 과장/허위광고 건으로 공정위에 제소한 적이있다. 분명한 과학적 조사결과에 따른 제소건에 대해 무참하게 어떻게 보면 어이없이 우리는 패배했다. 그 만큼 경쟁사의 공정위 네트워크를 비롯한 대정부 로비력은 강력하다. 한국적인 오너기업이라는 특수성도 존재한다. 일부기자들의 말을 빌리면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봐. 3조 4500억원을 써내고, 3천 450억원을 인수 보증금으로 넣어 논 기업의 오너가 만약 공정위가 승인 불가 결정을 내리면 그 보증금을 날리게 된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야. 눈이 뒤집히는데 막말로 300-400억원이 아깝겠나? 나 같아도 그렇겠지…”  동의한다. 반면에 우리는 중반 이후로 넘어가는 시점에 겨우 재경위 국회의원 명단을 얻어 각개 전투를 시작했다. 아무리 로비스트가 있어도 로비는 기업에서 하는 것이다. 로비스트는 거간꾼 일 뿐이다. 막판까지 누가 공정위의 해당 건 심사위원단으로 구성될런지…아무도 몰랐다. 극단적으로 우리 회사에서 골프를 치는 최고 경영진은 한명밖에 없었다. 은퇴를 내일모레 남겨둔 임원 분…

2. 중반 이후 유럽 본사의 관심 소멸 (우리는 중반 이후에 별동대 처럼 싸워야 했다)

2005년은 벨기에 본사와 브라질 본사간에 한찬 이사진 구성을 통해 파워게임이 진행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현재는 브라질 그룹이 승리를 해서 전세계 경영권을 장악했다. 이 시절에 한국이라는 변방에서 일어나는 소모적(?)인 프로젝트는 당연히 관심 밖이 었다. 또한 본사 차원에서는 경쟁사가 더욱(?) 강력해 진다고 해도 어짜피 2개 회사의 과점 체제하에서 생존(!)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던 것이다. 본사적인 시각에서는 단편적으로 수억명 인구의 남미 전체 맥주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는 초 국경적회사 A사를 인수(합병)하는 금액이 약 9조원 가량이었다. 반면에 세계적으로 성장가능성이 없는 지역주인 소주회사 하나를 인수하기 위해 겨우 인구 4000만명의 변방에 3조 4500억원을 투입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처음에는 한국 지사 차원에서 이것은 ‘위기’라는 신호를 보내서 주목했었지만… 결국 본사에서는 ‘so what…don’t care…not a big deal…’하는 반응이 오고 있었다.

3. 사내 정치적으로 본 프로젝트에 많은 힘이 되어준 AP 사장이 사내적으로 정치적 약화

본사와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고, 우리들의 프로젝트 성과에 매주 박수를 보내주었던 AP 사장도 사내 정치적인 입장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유러피언이었던 그는 결국 브라질 경영진에게 큰그림을 보지 못하는 인사로 간주되었고…이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을 이끌어 내는데 실패했다. 결국 그는 2005년말경에 회사를 떠났다. 현재 세계적인 모 콜라 회사의 유럽사장을 하고 있다. (이 분을 추종하는 유러피언들과 미국인들은 지금 다 그와 함께 일한다…)

4. 우리 회사 사내에 만연한 패배의식

시잠점유율을 반전 당한 90년대 중반이후 10년간 반복되어진 시장에서의 실패들은 우리 회사 임직원들에게 뿌리 깊은 패배의식을 만연하게 했다. 이 프로젝트 당시에도…”우린 이제 가망이 없다. 도매상들의 반응을 봐. 이제 우린 진짜 마이너가 되가고 있어…”라는 의식이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뛰어 다니는 우리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마치 암말기 환자가 그를 위해 신약을 구하러 뛰어 다니는 자식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할까…되면 좋지만…하는 그런…

5. 우리 회사 구성원들의 특수성

우리회사는 98년 당시 벨기에 회사가 최초 회사를 인수했고, 99년에 현재 J소주가 만들던 맥주회사 C사를 추가 인수해 만든 컴비네이션 회사다. 따라서 주된 사내 구성원들을 분류해 보면 전통적인 D그룹의 O맥주회사 출신들 + J소주에 입사해 C맥주를 만들던 J소주회사 출신들 + 외국회사화 된 이후에 들어온 외국계 기업 출신의 외인부대들이다. 그러나 해당 프로젝트는 J소주 회사의 성공적인 회생을 어떻게 보면 방해하는 프로젝트였다. 물론 경쟁사 인수를 방해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J소주사에서 볼 때는 훼방꾼이었다. 당연 친정이 J사인 우리회사의 내부 인력들 일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거…그렇게 극단적이게까지 우리가 대응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 사실 우리측의 정보에 대한 leaking도 일부 존재했다.

6. 정부차원의 암묵적 관여

환경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유효하게 경쟁사의 J소주 인수를 가능하게 한 요소라고 본다. 여론과 정치권의 인식은 확연히 다르다. 명분이라는 측면에서 국민경제와 연결이 되어있는 J소주사를 다시 유찰 시키는 것은 곧 정치적인 부담이었다. 또한 외국자본과 민족자본의 논리로 맞서는 구도설정 자체가 정치권에는 명분을 주었다. 참으로 비참한 이야기지만, 아직도 정치권의 명분인식에는 문제가 있다. 항상 그렇지만…우리에게 유리하면 글로벌이고, 불리하면 민족자존이다. 이 ‘암묵적 관여’라는 것이 얼마나 PA부분에서 힘을 발휘하는지…정확히는 겪어 보는 사람만 안다.

패자는 말이 많다. 그러나 왜 패배했는지에 대한 learning이 없으면 그 다음의 승리는 없다. 패배에 대한 변명이라기 보다는 분석이라고 보면 된다. 이 분석요소들을 뒤짚어 보면 얼마나 경쟁사가 우수했는지를 알수 있다. 승리자는 항상 존경받아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PR이라는 것, Communication이라는 것, 그리고 여론이라는 것. 이런 것들이 홀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환경적인 요소들과 부문들이 함께 어우러질 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고 빈약한 진실을 그렇게 오랬동안 고생하면서 깨달았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바보다. 경험해야 똑바로 아는 동물이기 때문에…

 

by 우마미 | 2007/08/25 17:34 | M&A PR 스토리 | 트랙백 | 덧글(4)
11월 112007 0 Responses

M&A comm-11

M&A Communicatio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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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 그대로 투쟁의 3개월여가 지났다. 공정위가 H사의 J사 인수를 ‘공정위’적인 시각에서 검토하여 승인, 불승인을 가리는 운명의 날이 왔다. 2005년 7월 20일.

그 동안의 우리 내부적 변화라면, 전체적으로 장기전에 지치기 시작했다. 법률자문팀은 공정위에게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료들을 제공하면서 우리의 논리를 전달했고, 경제학 자문팀은 왜 H사의 J사 인수가 문제가 예상되는지에 대해 꼼꼼하게 문서를 꾸며 법률자문단을 지원했다.

법률자문팀은 때때로 여론에서 제시한 (사실은 우리가 개발한) 기사자료들을 직접들고 공정위에 제시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그들의 판단에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일단 진행하고 변화를 기다렸다.

최초 본사에서 내려온 방침은 ‘불승인’을 이끌어 내라하는 것이었다. 후반기에 들어가니 법률자문과 경제학 자문팀의 피드백을 받아가면서 점차 ‘조건부 승인’쪽으로 감이 기울어 가고 있었다. (겉으로 말은 안하지만 담당자들과 자문단들이 그냥 공유하는 감이란게 있다…)

공정위측의 반응은 지속적으로 ‘불승인’이 옳다는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어느 상황을 따라야 할찌, 용기를 갖어야 할찌, 포기해야 할찌…아무도 결정을 못했다.

7월 20일. 공정위의 심사평가단이 회의를 시작했다. 총 9명으로 구성된 정부 및 민간전문가 그룹이 H사의 J사 인수가 과연 반시장적 반소비자적인지 아닌지를 그 자리에서 판단을 해 결정을 내리는 수순이다.

아침부터 기자들에게 돌아가면서 전화가 온다. 한 기자마다 한 30분에서 한시간 단위로 계속…

하루종일..”우리는 불승인을 간절히 원합니다. 시장과 소비자들을 위해 현명한 결정을 기대합니다.”라는 멘트를 수백번 반복했다.

오후가 또 지났다. 점심을 먹지도 않고 시시각각 현장에서 보고되는 그리고 나의 핸드폰 문자로 찍히는 우리 정보통들의 업데이트를 받으면서 마음을 졸였다.

우리 정보통들의 현장 반응 스케치들도 시시각각 또는 소스별로 달라 어떤게 정확한 것인지 알길이 없다. 맨처음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M&A Communications의 가장 큰 특성은 Chaos다.

퇴근시간이 지났다. 현장에서 “결심이 아마 저녁에나 날 것 같다”는 소식이 들린다. 8시가 되니 모두가 지쳤다. 같이 자리에서 맘을 졸이던 상무 두분이 나에게 저녁이나 먹으면서 기다리자는 제안을 한다.

회사앞 밥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서로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맥주에 소주를 섞어 돌리고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최선을 다했으면 된거야. 결과는 그 다음이지. 결과가 좋으면 좋은거고, 아니면 그건 네가 부족해서 그런게 아니니까…너무 마음 졸이지 마라” 

상무님의 위로를 받지만…아직도 기대는 지지 않는다.

9시경이 되니…내 휴대폰에 문자가 갑자기 폭증 한다. 약간 취한 술김에 문자들을 연속적으로 확인했다.

‘조건부 승인 될 듯…’ ‘조건부 승인 분위기…’ ‘조건부…’

암울했다. 조건부라니…승인이면 승인이고 불승이면 불승인이지…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도 아니고…뭐 이딴…바로 사장님에게 휴대폰으로 보고를 드렸다. “예, 정팀장 알겠습니다. 수고했어요”

그후로 부터 10여분후…마치 댐이 터진듯 출입기자들의 전화가 밀려왔다. 상무님들과 시끄러운 밥집에서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바로 옮겨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이미 승인, 조건부승인, 불승인에 맞추어 official statement가 정해져 있었다…)

답변은 “공정위의 판결에 유감이다. 조만간 가능한 대응 조치를 강구하겠다” 이상이다. 하지만 기자들이 누군데 이런 판에 밖힌 ‘버터’ 답변에 만족하고 전화를 끊을까…여러가지 물어 본다. 거의 급히 소설들을 만들 기세다.

친한 몇몇 기자들은 질문 말미에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던진다…또 같이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말도 안된다는 반응으로 나의 우울함을 같이 해주었다.

“수고했어. 고생두 했고…이젠 좀 쉬어라” “당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쫌 쉬어 이젠…” “왜 울어? 정신을 차리고 그냥 집에가…괜히 화난다고 술 푸지 말고…”

내가 울고 있었나보다…지금까지 반년간 고생했던 날들을 생각하면서…만났던 기자들의 얼굴들을 하나둘씩 떠올리다 보니…눈물이 난 거 같다. 또 모두 쉬라는 말을 한마디씩 공히 해주는 걸 보니…혼자 뛰어 다녀야 했던 내가 그동안 안쓰럽기도 했나보다.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고, 성장했던 기간이었다. 원 없이 최선을 다했다.

밤 11시경…기자들의 문의가 잦아들면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두분의 상무님들과 그동안 우리에게 호의적인 입장을 견지해준 기자들 여러명이 나를 둘러 보고 앉아 있었다.

그래 내일도 해는 뜰꺼야…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그날…모두 필름이 끊기도록 ‘뒷풀이’를 했다. 쓸쓸한 뒷풀이를 함께해 준…고마운 보쓰들..고마운 기자들…

(다음편은 마지막편으로 왜 우리가 결과적으로 패배했는지에 대한 정리를 하겠습니다)

by 우마미 | 2007/08/01 17:36 | M&A PR 스토리 | 트랙백 | 덧글(5)
11월 112007 2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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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Plan B라고 불렀다. Plan B팀은 공정위가 H사의 J사 인수를 승인하는 것을 막아내라는 것이 미션이었다. Plan B팀은 크게 로비스트 및 법률 자문 그룹, 경제학 자문 그룹 그리고 PR자문그룹으로 구성되었다.

공정위에 대상으로 우리와 시장의 입장을 개진하고, 커뮤니케이션 라인을 구성하는 것이 법률자문 그룹이 하던 일이었다. 전직 공정위 간부 출신의 법률 자문 그룹단이 지원을 개시했다.

경제학 자문 그룹은 국내 최고학부의 fair trade 관련 교수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왜 H사의 J사 인수가 반시장적이고 반 소비자적인지 어떻게 공정한 경쟁을 해할 것인지를 학문적으로 규명하여 공정위측에 전달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물론 법률자문단을 통한 의견 전달이었다.

우리 PR그룹은 수면하에서 움직이는 것을 전제로 하여, 끊임없이 우리의 주장을 지면과 화면으로 끌어 올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여론을 움직여 공정위에게 영향을 주겠다는 의지였다.

모두 상당한 시간들과 열정을 투자하면서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오전 9시부터 3-4시간씩 weekly review meeting을 몇달간 계속했다. 이 자리에는 아시아태평양 사장과 아태지역 법률, 경영 및 PA자문 담당임원들을 포함해 우리 로컬의 Plan B팀까지 약 20여명이 함께하는 대규모 전략회의였다.

이 회의에서는 지난 한주 동안 각 팀들이 진행한 활동들과 그 결과 보고, 그리고 향후 활동 계획들과 예상 결과등을 순서대로 발표했다. 또한 공정위의 심사 과정에 대한 변화들에 대해 업데이트 받는 시간들이었다. 영어와 한국어가 섞여 열리는 회의였고, 몇명의 통역 비서들이 배석했었다.

PR팀에서 4개월간 진행했던 600여개 이상의 기사들이 이 자리에서 하나 하나 리뷰되었고, 그 방향성에 대해 공유가 되었다. 가끔씩은 법률자문이나 경제학 자문팀에서 “너무 과한것 같다…”할 정도로 PR팀은 공격적이었고, 적극적이었다. 그 만큼 PR팀은 절실했다. 열정이 많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PR팀 퍼포먼스의 백미는 두가지였다. 그 첫째가 S방송사 아침뉴스 시간에 약 10여분 이상 동안 H사의 J사 인수 이슈들을 우리의 시각을 중심으로 이슈 추적형식의 보도를 따냈던 것이다. 마침 그날이 금요일이었고, 시간대도 우리가 weekly review meeting을 진행하는 바로 그 시간이었다.

우리팀은 회의를 진행하면서 회의실 벽면의 대형 TV를 켜놓고 있었다. 마침내 보도가 시작되었고, 20여명의 우리 회사 내외국인들이 그 보도를 한참동안 감상(?)했다. 한국인 사장과 임원들은 그 보도를 지켜보면서 가끔씩 “와~” “어휴~”하면서 너무 심하게 우리편을 들어주는 뉴스제작팀을 놀라와했다. (당시 호 선배 회사의 한 클라이언트도 이 보도 때문에 S방송사에 강력하게 컴플레인 한 것으로 안다…죄송…어쩔수 없었어요~)

보도가 끝나고 아태지역 사장인 P사장이 말문을 열었다. “Great. excellent job, guys” 그는 해당 보도가 우리가 말하고 싶은 모든 키메시지들을 훌륭하게 담아내었다는 것을 치하했다. 이 보도이후에 공정위측의 반응에 대해 보고해달라고 법률자문팀에 주문했다. 한국인 사장께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수고했다” 웃어주었다. 사실 직장생활은 이 맛에 한다. 새벽까지 힘들어 혼자 울기도 했었는데…사장의 이런 웃음이 다시 전의를 불타게 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로부터 얼마후 K방송사 보도를 하나 더 추가했다.

두번째 백미는 모 메이저 리서치 회사를 통해 주류도매상들의 반응을 조사해서 발표하게 작업을 한 것이다. 시장 당사자인 우리가 진행하는 도매상 반응조사는 언론에서 공정성을 평가 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리서치 회사가 단독으로 이슈를 조사해 발표하는 형식으로 지원을 했다.

기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출입기자들이 궁금해 하는 바로 그 점에 착안한 것이다. 기자들은 우리에게 “너희들이야 경쟁사이니까 경쟁사가 인수하는 것을 싫어하겠지만, 도매상들은 어떤 반응이냐? 만약 도매상들이 반대한다면 그것이 시장의 여론 아니겠느냐?” 그렇다 항상 이슈관리에서 답은 기자들에게서 나오곤 한다. 기자들이 논리적으로 궁금해 하는 것을 채우기만 하면 이슈관리는 반은 성공한다고 본다.

조사결과가 여러 매체에 언급이 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반 H사 정서로 굳어지고 있었다. H사에서는 이 리서치의 배후가 누구냐에 촛점을 맞추어 우리를 매도했지만 그 증거는 없었다. 몇몇 기자들도 이 자료 자체에 대해 신뢰를 두지 않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개념정립에는 도움이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법률자문이나 경제학 자문팀에 속한 변호사들과 교수들도 PR이 얼마나 이슈관리에 있어서 강력한 포스를 발휘하는 지 직접 목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2005년 당시의 회사생활은 “우리가 우리 회사를 살릴 힘이다”라는 생각에 너무나 행복했다. 우리회사를 사랑하고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어금니를 깨물고 다녔다. 그 만큼 당시 경쟁상황은 비장했었다…

((P.S.)) 보통 오전에 인터뷰들을 했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다. 하긴 바로 몇시간전까지 술을 마셔대고 있었을 때니까…이젠 쉬고 싶다. 진짜…

by 우마미 | 2007/07/31 22:14 | M&A PR 스토리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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