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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CEO의 위기관리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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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정전 사고 … 삼성 CEO의 위기관리法

조민근 | 제22호 | 20070812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3일 사상 초유의 반도체 기흥공장 정전사고를 접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윤종용 부회장,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 등 삼성전자 수뇌부의 급박한 움직임이 시시각각 보도됐지만 이 회장의 발언이나 움직임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첫 반응은 ‘얼마나 빨리 회복할 수 있겠느냐?’ 는 물음이었다”고 전했다. 핵심을 찔러 말하는 그의 어법상 무엇보다 ‘빠른 회복’에 무게중심을 두라는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 최고경영자의 말 한마디는 매우 중요하다. 이건희 회장은 불필요한 말이 시장에 흘러나오지 않게 단속하면서 사태해결의 우선순위를 전문경영인들에 제시한 셈이다. 이런 ‘지침’의 영향인지 기흥공장의 복구 과정은 가위 ‘속도전’을 방불케 했다. 복구 일정은 당초 발표보다 앞당겨졌고 예상 피해액도 줄었다. 뒤이어 반도체 라인 공개와 ‘완전 정상화’를 선언했다. 초기 혼란에 빠졌던 시장도 안정을 찾아갔다.

처음 “긴장이 풀린 것 아니냐”던 업계에서도 “관리의 삼성답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고는 최악이지만 이를 수습해가는 위기관리 시스템은 평가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유심히 지켜봤다는 한 업계 관계자는 “위기관리 측면에서 삼성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분석해볼 만한 사례”라고 말했다.

기업은 언제나 돌발사태를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터졌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CEO)의 수습 역할이다. ‘관리의 삼성’을 대표하는 CEO들은 초유의 사고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윤종용 ‘휴가 퍼포먼스’= 윤 부회장은 삼성전자 사업 전반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다. 사고발생 뒤 ‘컨트롤 타워’가 서울 태평로 본사에서 기흥공장으로 이동하는 데에는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윤 부회장은 황 사장과 함께 현장을 확인한 뒤 곧바로 임원진·엔지니어들로 구성된 비상회의를 주재했다. 즉각 ‘피해액 500억원, 늦어도 이틀 내 복구’라는 발표가 나왔다.

경영컨설턴트들은 위기관리의 성패는 ‘24시간 이내 대응’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원인이 뭔지, 피해는 얼마인지, 언제 복구될지를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로 엮어 발 빠르게 알리는 게 핵심이다. 시간을 끌수록 주변의 불신은 커지고 위기는 증폭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발표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윤 부회장은 이날 밤 “반도체 라인을 언론에 공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례적인 조치이자 고육책이었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장쩌민 중국 주석이 왔을 때도 공개하지 않을 정도였다”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사태가 길게는 한 달간 지속되고 피해도 수천 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 자존심은 그 다음 문제였다.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은 윤 부회장의 휴가였다. 사고 다음날인 4일 ‘전 라인 정상가동’이라는 마지막 보고를 받자마자 그는 바로 현장을 떠났다. “복구가 끝났으니 예정됐던 휴가를 가겠다”는 말이었다. 그의 휴가는 “이제 안심해도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로 시장은 해석했다. 그는 어디로 휴가를 떠났을까. 삼성의 한 관계자는 “서울에 머물렀다”고 귀띔했다. 몸만 기흥을 떠났을 뿐 사실상 현장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윤 부회장은 실제로 ‘휴가’ 중인 7일 오전 기흥을 다시 찾았다. 이유가 있었다. 하루 전날인 6일 기흥에는 50여 명의 취재진이 방문해 라인 가동상황을 눈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예전만큼 생산성(수율)이 당장 나오겠느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윤 부회장은 이날 “수율도 정상화됐다”고 선언하며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황창규 ‘매뉴얼 기자회견’ =현장을 챙기고 거래업체를 안심시키는 역할은 황 사장이 도맡았다. 노키아·델·애플 등은 삼성의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당장 제품 생산에 타격을 받게 된다. 황 사장은 안절부절못하는 대형 거래선을 상대로 직접 복구상황을 메일로 작성해 알렸다.

6일 기흥 현장에서 열린 기자단과의 즉석 간담회도 눈길을 끌었다. 작업복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 “3분기 실적으로 입증하겠다”는 짧지만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펴낸 ‘기업 위기관리 매뉴얼’에는 비상시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에서 유의할 사항을 적시하고 있다.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어라 ▶가능한 한 현장복을 착용해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라 ▶결론부터 간결하게 말하라 등이다. 이날 황 사장의 기자회견은 매뉴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준비된 회견’이었던 셈이다.

■투명한 공개가 관건=위기관리법은 ‘실상을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라’로 요약된다. 당장 괴롭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정공법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교과서적인 사례가 ‘타이레놀 독극물 투입사건’이다. 1982년 미국에서 타이레놀을 복용한 사람들이 잇따라 사망하는 사건이 터졌다. 제조사인 존슨&존슨의 경영진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타이레놀의 제조과정을 언론에 공개하고 시중에 유통된 제품을 모두 거둬들여 폐기한 것이다. 이 비용만 2억4000만 달러가 들었다. 하지만 사고가 유통 과정에서 누군가 독극물을 투입해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타이레놀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는 이전보다 더 두터워졌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막상 사고가 터지면 대응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당황한 나머지 경영진의 상황 판단력이 떨어지고 의사결정이 혼선을 빚으면서 결국 위기를 키우기 일쑤라는 것이다. 얼마 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사태가 대표적이다.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의 정관용 팀장은 “평상시 기업 경영진의 위기관리에 대한 인식과 준비 정도가 결국 성패를 가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연기가 나자 한 직원이 가동을 중지시킨 일이 있었다”면서 “점검 결과 라인을 세울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고 손해도 막심했지만 경영진은 매뉴얼대로 했다며 그 직원에게 포상휴가를 줬다”고 소개했다. 세계경영연구원 신철균 부원장은 “이번 사례의 경우 CEO가 전면에 나서 ‘기업의 입’을 단일화하고 일관된 목소리를 낸 게 시장의 불안을 가라앉히는 데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숙제가 남았다. 위기관리는 사고원인을 규명하고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또 “실적으로 입증하겠다”는 황 사장의 공언이 지켜져야 시장은 최종적으로 신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by 우마미 | 2007/08/18 13:13 | Crisis & Com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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