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 삭제 |
나리타 공항에 내려 점심을 먹는 기자들.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기소야 정도의 수준의 음식점에 기자 26명 그리고 동행한 한국토요타임직원 6명 그리고 달랑 대행사 인력 나혼자. 비싸보이는 세트 메뉴들이 척척 나온다. 기자들이 맛있게 먹는다.
한 전문월간지 여자 기자가 식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옆 테이블의 모 방송국 기자 왈 “저 XX년, 싸가지 없게시리..저거 어디 애야?”하고 네게 묻는다. 나는 그녀가 들었을까봐 억지로 소리를 줄이며 그냥 웃었다. “XX기자에요…” 살벌한 분위기다.
어딜가보면 알겠지만 기자들은 끼리끼리 논다. 일간지는 일간지들끼리. 월간지는 월간지끼리. 또 TV는 TV끼리. 잘논다.
식후 기자들이 화장실을 간다고 한다. 이미 비행기 연착때문에 시간이 없다. 다음 스케쥴은 동경 토요타 본사에서 오쿠다 히로시 회장과의 그룹 인터뷰. 급하신 분들은 빨리 다녀오시고 볼일 없으신 분들은 나리타 공항 1층 정문 출입구에 세워놓은 대형 관광버스에 오르시라고 고지를 했다. 완전히 관광 가이드다.
20여분 후 기자들이 하나 둘씩 나타난다. 버스에 올라 있는 기자들을 세본다. 3명이 없다. 한명이 보인다. 버스에서 한명이 또 내린다. 올라가시라고 해도 말 안듣는다. 한명이 또 어슬렁 걸어 온다. 마지막 한명이 없다. 10분이 더 지났다. 이거 어디갔지?
누군지 알아봤다. 모방송국 기자다. 이번에 방송때문에 큰일이겠구나 생각이 스친다. 나리타 공항 안내 데스크에 가서 구내 방송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사기업명 (토요타)가 들어가는 멘트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며 방송을 사양한다. 이름이라도 부탁한다고 했더니….”깡꼬꾸…에수비에수노 고처루조구상 고처루조구상…”한다. 내가 부탁했는데 내가 들어도 모르겠다. 씨.
양복차림에 구두를 신고 갖가지 일정표와 프레스 킷이 가득들어 있는 가방을 십자로 매고 나는 그 기자를 찾으러 뛰어 다녀야 했다. 지하부터 3층까지 에스컬레이터위에서도 뛰었다. 없다. 이거 처음부터 끝장인가? 이거 핸드폰이라도 있었으면…
20여분후에 그 기자는 아까 그 안내 데스크에서 여자들과 노닥거리고 있다 발견되었다. 대한매일 기자가 찾았다. 기자가 기자를 찾다니. 그 방송기자는 웃는다. ‘나 그냥 한국으로 갈려구 했는데…” 사실은 화장실 다녀오니 아무도 없더란다. 무심코 거기가 2층이라고 생각하고 밑에 층으로 내려가 지하 정문 앞에 서있었단다. 아무도 없고 관광버스가 하나 오길래 물어보니 아니더란다.
자기도 섬뜻하고 해서 이거 한국으로 자시 가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단다. 심난하다.
암튼 1시간정도 늦은 스케쥴로 동경으로 향했다. 한국토요타 일본사장은 계속 갈군다. 자기 목이 날아 가느냐 마느냐 하는 일정지연이라나…
나리타에서 동경까지는 2시간 남짓. 엄청 밀린다. 나는 26명이 모두 탓는지 맨 뒤에 앉아 머릿수를 세고 또 센다.
일본 토요타 동경 본사. 회의실로 올라갔다. 내가 보았던 회의 케이블 중에 가장 큰 테이블이 놓여 있고 360도 워룸을 연상하게 하는 시청각 시스템이 구비된 회의실이다. 26명의 기자들이 쭉둘러 앉고, 오쿠다 히로시 회장을 호위하는 임원들 10여명이 앉아도 넉넉하다. 꼭 커다란 쟁반막국수 그릇같다.
TV카메라가 정면에 세워지고, 기자들이 노트북을 꺼내 기자회견 분위기를 잡았다. 노트북 안가져온 기자는 그냥 종이 한장을 앞에 놓고 연신 농담까먹기다. 그 친구 기자랑. 쯧.
주어진 시간 40분. 내가 질문하는 기자 하나 하나를 오쿠다 회장에게 알려준다. 물론 영어루.
일본어 통역을 통해 질의와 응답이 계속 진행된다. 시간이 지났다. 빨리 끊으라는 사인을 일본 토요타 홍보이사가 나에게 보낸다. 오케이. “이게 마지막 질문입니다. 하나만 더 받습니다.” 아직도 손드는 기자들이 5명이 넘는다. 회장이 한명을 지명하니 다른 기자들 나를 본다. 압력이다.
다행히 답변에 신이난 회장이 몇개 더하란다. 기자들의 표정이 풀린다. 몇개 질문과 답변이 오간뒤 행사가 끝났다.
저녁 먹으로 가잔다. 오쿠다 회장이 나가고 모두 통솔해서 저녁 식사를 위해 호텔로 향한다. 뉴오타니 호텔. 동경 최고급 호텔이다. 우리나라 신라호텔 분위기가 난다. 정원이 마치 여의도 같다.
각자 방 하나씩 키를 배분 받았다. 한국에서 온 26명의 기자들이 각자 방으로 흩어진다. “20분 후에 정원에 있는 데판야키(철판요리) 식당으로 모이세요~!” 우이독경이다. 쌩까는게 직업병인 사람들 아닌가.
20분 후 각자 룸번호와 직통 전화번호를 두드린다. 로비로 하나 둘씩 기자들이 나타난다. 양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어디야?” “이쪽으로 쭉 가세요..” 똑 같은 설명을 20여명에게 한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면 뭐하나..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기자들이 다모였다. 일본 토요타 홍보실에서는 술잘하는 선수들이 대여섯 포진을 했다. 그와 짝을 이루어 부장급들이 쭈르르 나와 한 데판에 한명씩 배치되고 기자들이 명함을 건내며 모여 든다. 데판만 6개. 그 큰 식당을 우리가 샀다.
태어나서 그리 긴 데판코스는 처음이다. 2시간 30분동안 데판 요리 모든 셀렉션을 먹어 치웠다. 기자들도 평생 처음이란다. 일제 진로 소주와 갖가지 맥주 브랜드들이 신기하다. 야채, 해물, 고기, 면, 밥등이 계속이다. 누가 일본애들이 조금 먹는다고 했나.
일본 홍보실 사람들은 쉴새없이 술잔을 채운다. 이른바 첨잔. 한겨레 기자가 싫은 내색이다. “왜 첨잔을 하구 그러지..” 그러나 며칠 후 그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자들이 서로 첨잔을 하면서 술을 마셔댄다. 습관은 금새 바뀐다.
항상 높은 사람들에게는 기자들이 꼬인다. 메이저 기자들이 모여있는 데판에 토요타 대빵 임원이 있다. 임원은 연신 술을 따르고 받고 하면서 인터뷰를 한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서로 대충 알아 듣는 모양이다. 그래도 표정이 정겹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기자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뜬다. 물론 토요타 대빵의 마지막 건배를 끝으로 헤어졌다. 토요타 홍보실 사람들과 임원들이 식당 입구에 도열해서 일본인 특유의 90도 인사를 기자 한명당 10번씩은 해댄다. 허리 아프겠다.
기자들에게 전했다. “이 뉴오타니 호텔내에서는 여러분들 방 키만 보여주시면 뭐든지 공짜입니다. 룸에서 사용하시는 국제전화비도 공짜입니다.” 기자들은 당연하다는 눈빛이다. 쓰…
기자들이 그룹을 이루어 호텔내 카페로, 바(bar)로, 일부는 호텔방으로 향한다. 나는 꼭 호주목장에서 양을 모는 세퍼트 처럼 양복바람에 여기저기 기자들의 그룹들을 챙기고 다닌다. 요주의 선수들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룹을 지어서 들어갔지만 별 다른 문제는 없겠지.
몇명의 기자들이 럭셔리한 칵테일바에서 발견되었다. 다들 반가운 눈빛이다. “에라 모르겠다” 거기 퍼질러 앉았다. 더이상 뛰어다닐 정력도 없다. 함께 태어나서 처음본 카테일들을 무조건 시켜 마셨다. 일본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끼리 한국말로 농담까먹기 하는 맛이 꽤 쏠쏠하다. 여기자도 있으니 더 좋다. 근데 애 엄마다. 아까 공항에서 담배피던 그 엄마.
모기자의 호텔방으로 2차를 간다. 아니 3차지. 그 기자방은 동경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훌륭한 경관의 방이다.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보니 아마 좀 취했나 보다. 방에 냉장고가 있고 냉장고 위에 기다란 서랍이 보인다. 뭐야? 열어보니 가로 6줄 세로 4줄 바둑판 모양의 공단 포켓들이 보인다. 그 조그마한 각각의 포켓들에는 갖가지 양주 미니어처들이 들어있다. 총 24병.
양주를 골라 호텔방의 5명이 한병씩 까서 들었다. 양주파티다. 냉장고 위에 짭짜름한 일본산 안주들이 많다. 먹어도 안취한다. 기자들은 이거 술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한다. 아니다 술이다.
새벽 2시. 내방으로 돌아왔다. 내일이 두렵다. 그러나 재미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일간지 기자들은 각자 방에 들어가 기사를 송고하고 있었다. 물론 몇몇 기자들은 술을 먹고 있었지만….자정이 가까운 그때 기사를 송고하는 모습. 괜히 “여기 놀러온게 아님”하고 본사에다 보고하는 것 같다. 더 심한 몇개 주요 일간지는 아까 데판야끼집에도 늦게 나타났었다. 그때 기사를 보냈다나. 암튼 기사는 동일한 날에 동일하게 났다. 그들의 오버는 내부용이었다.
나는 호텔방내에 ‘매실’향이 나는 이상한 치약으로 이를 닦고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피곤하게 잠이 들었다. 불꺼진 호텔방 유리창 밖으로 동경시내가 반짝거린다.
Communications as Ikor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