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 기고문
정용민의 Crisis Talk
정용민 대표 컨설턴트
스트래티지샐러드
달리는 말에 올라타는 카우보이 기업들
기업들의 경우 다가오는 위기를 사전 감지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대기업들에서 중소기업들에 이르기 까지 웬만한 기업이라면 정기적으로 시장과 사회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그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움직임을 보고하는 업무 조직을 보유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의 경우 경찰이나 국정원 수준의 정보력을 가지고 다가오는 이슈나 위기를 감지한다. 시장에 떠도는 정보지나 증권가 루머들도 기업들에게는 큰 예보자의 가치를 가진다.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언론 기사들만 충실히 분석 해도 앞으로 어떤 이슈나 위기가 우리 회사에게 다가올 수 있을지를 가늠하기엔 충분하다. 소셜미디어를 다각적으로 들여다보면 최소한 ‘언제’는 아니더라도 ‘어떤’ 이슈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감을 잡을 수 있다. 더 깊이 분석해 보면 이슈나 위기관리 관점에서 그 ‘어떤’이슈가 ‘어떤 논리와 방향성을 가지고 다가 오고 있다’는 질적 근거들을 손쉽게 사전 감지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기업들이 이런 조직과 체계를 갖추고 있음에도 마치 ‘너무 갑작스럽고 전혀 예상치도 않은 듯’ 이슈나 위기를 맞는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다시 표현하면 ‘그런 이슈나 위기를 맞는 것’이 아니라 ‘맞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보일까? 그런 대부분의 케이스들을 분석 해 보면 해당 위기관리에 실패한 기업들의 경우들이 많다. 자신들의 관리 실패에 조금이라도 정상참작을 받기 위해 ‘너무 당황스럽고 놀랐다’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업이 모르면서 당하는 위기란 극히 소수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분히 예측 가능한 위기들에 대해 기업들은 평소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인지하고서도 별다른 실질적 대비나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는다. 왜 이럴까? 예상되는 부정적 이슈나 위기가 실제로 발생하게 되면 자사에게 큰 타격이 올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무시하는 것일까? 그 대표적 원인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감지한 예상 이슈나 위기를 중대한 위기로 정의하지 않는 최고경영자
기업마다 위기에 대한 유목화와 정의는 모두 다르다. 같은 업종에 있는 기업간에도 특정 상황을 위기로 보는 기업이 있는 반면, 다른 경쟁사는 위기로 까지 정의하진 않는 경우도 있다. 기업마다 기준과 상황이 달라 그런 정의의 다름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문제는 동일 기업 내에서 위기에 대한 정의가 구성원 각자에게 다르게 규정되는 경우다. 일선 직원들과 업무팀 수준에서 ‘위기’로 정의되는 상황이 본사 임원들과 CEO에게 보고되면 ‘위기’로 정의되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반대로 윗분 들이 심각하다 생각하시는 상황이 일선 실무자들에게는 ‘별 것 아닌 해프닝’으로 받아 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마케팅 부서에서는 심각하다는 상황을 영업에서는 우습게 바라보거나 생산에서 빨간 불을 켰는데, 구매나 기획에서는 녹색 불을 켜 의견을 달리하기도 한다.
결국 기업 위기에 대한 최종 정의는 CEO에 의해 내려지는 법이다. 다가오는 이슈와 위기를 감지하더라도 최고의사결정권 그룹에 보고되고 그들의 의사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해당 감지 내용은 종종 왜곡이나 가감 된다. 결국 CEO는 적절하게 해당 상황을 사전 대비가 필요한 ‘위기’로 정의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CEO들이 그렇지만 일정 부정적 상황이 예측되더라도 그것을 위기로 부르거나 위기로 정의해 조직을 긴장하게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성향이 있다. 이 때문에 감지된 이슈와 위기가 대비 없이 발생 시까지 그대로 사장(死藏)되는 것이다.
둘째, 위기라 정의하긴 하지만 대비의 리더십을 정해주지 않는 최고경영자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모두 신경 써 대비를 합시다.” 그리고는 끝나버리는 경우다. 특정 부서나 임원에게 대비 상황을 챙기는 리더십을 공식적으로 부여하지 않는 기업들이 많다. 일단 CEO께서 대비 하라고는 하셨는데, 정확하게 누가 리드해 대비 업무들을 완결 지으라는 ‘역할’을 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부서들은 각기 다른 지엽적 대비들을 하며 제자리 걸음을 한다.
물론 함께 모여 상의도 한다. 일부 협업부서들끼리 대비책들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부서별 대비책들이 실제 위기 발생 시 통합적으로 운영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또한 부서별로 최선을 다해 대비책을 만들더라도 그 사이 사이에 이음새와 구멍들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아무도 모른다.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언제까지 모두가 어떤 수준까지의 대비책을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 해야 하는지 모른다.
이런 기업들의 경우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협업이 힘들고 일사불란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통합적 전략 하에서 부서들이 움직여 전사적 위기관리 목적을 쟁취한다기 보다는 각자의 생존전략들을 쟁취하고 위기관리를 마무리한다. CEO께서는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기업이 있다면 이런 카테고리에 해당한다. “제가 분명히 대비를 철저히 하라고 했을 텐데요? 왜 부서들이 따로 다로 움직이고 준비 안된 부분들이 이렇게 많이 드러납니까? 대체 지금까지 무엇들을 한 겁니까?”
셋째, 예측되는 위기에 대한 대비 리더십을 감당하지 못하는 위기관리 매니저
다음달에 가시화 될 것으로 보이는 극도로 부정적인 이슈에 대비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에 대해 각 부서들을 조율하고 통합적으로 체계를 잡아 보고하라는 역할까지 맡겨졌다. 문제는 스스로 이 걸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자신이 없는 경우다. 전사적 위기관리 매니저로 임명된 자신이 평소 전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이슈도 아닌데다, 이에 대비하려면 어디에서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하는지 감이 없다. 자신이 홍보임원이라면 일단 기자들에 대한 대응안 몇 장은 만들 수 있는데, 이게 생산 이슈와 물류 이슈와 기술 안전 이슈까지 섞여 있는 이유라면 문제다. 마케팅과 영업과 기획에 인사까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홍보관점에서 혼자 뚝딱 플랜을 만들어 던져주기만 해서는 반감만 살게 뻔하다.
전문가들 이야기를 들으니 해당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해 발전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먼저 충분하게 도출 구성하라 하는데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도 잘 모르겠다. 10년전 만들어 놓은 위기관리 매뉴얼을 좀 들쳐 보는데 이것도 이젠 업데이트가 안되어 별 쓸모가 없다. 고민을 하며 이 사람 저 사람 찾아 다니며 귀동냥을 하다 보니 시간이 간다. 리더십을 가져 큰 부담만 되고, 실질적으로 만들어 지는 것은 없고, 여러 부서들이 수근대기 시작한다. 그러다 예상되던 그날을 맞는다.
마지막, 대비책을 세우긴 했는데 실행 하지 않는 실무그룹
CEO께 보고 된 대비 플랜들이 실행 되지 않는 경우다. 해당 플랜이 존재하는 것도 실제 여러 부서에서는 모르고 있었던 거다. “그걸 누가 만든 거죠?”라는 질문들이 나온다. 이미 몇 달 동안 대비 플랜을 만들며 고민한 부서들이 있는 반면에, 초기 몇 번 미팅에서 들었던 단편적 대비 논의들이 전부인줄 아는 부서장들이 더 많다.
일방적으로 이렇게 해 놓고 우리보고 실행하라면 어떡하냐는 소리가 나온다. 예산은 대체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대비 시간이 없어 이 부분 저 부분은 도저히 못하겠다 이야기가 들린다. “대표님에게 이미 보고되고 그대로 실행하라 이야기 된 플랜입니다. 협조 좀 해주세요”하는 사정이 오고 간다. 삐걱 삐걱 플랜이 일부 실행되기는 하는데 통합적이고 집중적인 실행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 이슈가 발생 하니 대응은 이루어지는 것은 같은데, 외부에서 들리는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많은 기업들이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이슈나 위기가 발생하면 마치 ‘갑작스러움에 놀라 자신들의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사실은 알고 있던 상황인데 그렇다. 정확하게 발생 시점도 최근 확인되었던 위기인데도 그렇다. 여러 조직 내부 원인들로 대비의 시간을 허비하고 “올 것이 왔다”는 심정으로 위험한 상황과 맞닥뜨리는 셈이다. 그래서 위와 같은 원인들을 극복하고 위기가 오기 전 완벽히 준비하라 한다. 위기가 발생하고 나서 플랜을 세우는 것은 ‘달리는 말에 뛰어 오르는 카우보이’로 비유된다. 웨스턴 무비에만 존재할 뿐 실제에선 성공하기 극히 어려운 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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