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2월 142009 Tagged with , , , , , , 2 Responses

더 큰 위기는 해석의 오류에서 온다

기업의 경우에도 보통 위기가 발생하면 가장 바쁜인력들 중하나가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인하우스 인원들이 충분하면 쥬니어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각종 언론등을 모니터링 하면서 정기적으로 윗사람들에게 보고를 한다.

위기시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많이 그리고 자주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보고 받기를 반복할까? 위기관리 주체인 CEO 및 임원들이 제대로 된 상황분석을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인풋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상황분석이 있어야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위기시 소셜미디어상에서도 어떤 대화(conversation)가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대화분석 또는 대화형 청취(conversational listening)을 진행한다. 많은 사람들이 해당 위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읽기 위함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적으로 360도로 입수되고 분석된 사람들의 생각들 (반응들)을 해석(decoding)하는데에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 순간이 동그라미를 세모로 해석하는 순간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위기관리 주체가 (장님이 아닌 이상) 이런 동그라미를 제대로 보고 있겠지 한다. 그러나 실제 위기관리 주체가 관리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전혀 이상한 세모를 그려 놓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것도 사람들의 생각에 맞추어 제시한 활동이라 믿으면서.

이론적으로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라고 하면 위기관리 주체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도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컨설턴트는 외부의 모니터링 결과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를 앞으로의 상황예측과 함께 위기관리 주체에게 제시하는 것이 이 단계에서 전부다. (이 단계에서는 일단 대응 전략 제안등도 아직은 불필요하다)

제시된 상황분석 보고를 기업의 CEO나 임원들이 고유한 사내 맥락에서 여러가지 자의적으로 해석(decoding)을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 컨설턴트가 진입해 보았자 소득은 없다. (물론 컨설턴트가 클라이언트에게 받을 fee를 포기(!)하고 challenge할 수는 있다. 하지만…승산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위기관리 및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상황분석이 중요하고, 완전한 상황분석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위기관리를 위한 정확한 포지션이 정해진다고 말하곤 하지만…사실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순서대로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현재도 청와대 이메일 파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의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부분도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뭐 그러면 할 수 없다. fee도 없는데 포기할 것도 없다…)  분명히 위기관리주체인 청와대의 의사결정그룹에게도 이러한 목소리들이 전체적으로 분석되어 보고 될 것이다.

그 분석과 보고 내용에 왜곡이 없다 가정하면 의사결정권자 및 그룹의 의사결정이 국민 전반의 목소리에 함께 정열(align)되는 것이 옳겠다. 하지만 그와 반대라면 분명히 어디인가에 문제가 있는 거다. 과정이 문제거나 의사결정자들이 문제다.

게다가 국민들의 목소리에 문제가 있다 하거나, 이를 나르는 메신저들을 죽이려 하거나 하면 위기는 관리가 되질 않는다. 

   

9월 072008 Tagged with , , , , , , , , 2 Responses

맥락이 다르다

이 대통령은 촛불시위 때 두 번 사과했다. 그때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자신의 경험조차 꺼내지 못했다.
레이건-루스벨트 식이면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을 것이다. “만약에 광우병에 걸린다면 내가 먼저 걸린다. 나는 미국 대학에 연수
가서 미국산 쇠고기를 오래 먹었다. 그러나 PD수첩은 왜곡·조작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없다.
괴담을 앞세운 불법시위는 인정할 수 없다.” 소통의 민심은 이중적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고개 숙이길 바라면서도 법 질서 수호의
단호함을 원한다. 의연함을 기대하면서 겸손함을 요구하다
. [중앙일보, 박보균의 세상 탐사, 이명박, 소통에 능숙한 대통령 되려면]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께서 미국 레이건과 루즈벨트 대통령의 소통(communication) 방식을 벤치마킹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좀더 나은 소통 능력을 제안하셨다. 커뮤니케이션학적으로 보아도 예로 든 두명의 대통령들은 위대한 커뮤니케이터였던 것에는 틀림없다. 박기자께서도 이들의 ‘일관성과 낙관주의’를 성공전략으로 꼽았는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박기자께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위와 같은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제안을 우회적으로 하셨는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국민들의 정서에 위의 메시지를 대입하는데는 무리라는 게 걸린다. 위의 메시지가 국민 대다수에게 아주 흡수력있는 메시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들에서 흠결이 없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성적인 국민들 중 누가 봐도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의 과정이 투명 했었어야 했고, 수입 조건들 하나 하나에 국민을 위한 당당한 주권이 피부로 느껴졌어야 한다.

국민들 대다수가 ‘일부 국민들의 괴담에 의한 부화뇌동’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야 하며, 이들을 향하는 정부의 설득과 소통의 노력들에 대해 고개를 끄떡이는 분위기였어야 한다. 더더구나, 국민들 대다수가 국민들편에 서있는 커뮤니케이터 이명박 대통령에게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가지고 있었어야 위의 메시지가 great message to communicate가 될 수 있다.

모든 예와 벤치마킹에는 항상 맥락(context)이 중요하다. 마이클 잭슨의 춤이 멋지다고 그 춤을 조용필이 따라하다가는 웃음꺼리만 된다. 박수를 쳐야 할 국민들을 어이 없게 할 수도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