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5월 262021 Tagged with , , 0 Responses

[The PR 기고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위기는 사라진다

[The PR 기고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위기는 사라진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발생된 위기는 사라진다. 언젠가는 우리 기억에서도 잊혀진다. 위기를 모든 사람이나 기업이 필히 관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위기관리가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다. 우선 그 위기로 자신이 잃을 것이 많아야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반대로 그 위기로 잃을 것이 없거나, 무시할 만하다면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도 된다.

실행해서 얻을 것이 있다면 그 대응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 보아 특정 위기관리를 하더라도 얻을 것이 변변하지 않다면 그 대응은 가능한 하지 않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잃을 것이 없는 개인이나 사람이 억지로 위기관리를 하려 할 때 발생된다. 별로 크게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인데도 오버해 대응하다 보니 문제가 커지기도 한다. 실행해도 얻을 것이 뻔한데, 막무가내로 힘들게 실행 해 망신을 당하고 결과를 망친다. 왜 그런 전략적이지 못한 대응을 했는가 물으면 그런 경우 대부분은 ‘마음이라도 편하고 싶어서’ 또는 ‘본 때를 보여주려고’ 등의 답변이 돌아온다. 아쉬운 경우다.

이번에는 위기 발생 시 대응을 해야 하는 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사결정에 필요한 쟁점들을 살펴보겠다. 위기관리에서도 그렇고 인생에서도 가장 위험한 단어는 ‘무조건’이라는 말이다. 이 다음 글을 읽기 위해서는 위기가 발생되었을 때 무조건 대응해야 한다는 상식을 먼저 버리자. 위기가 발생하면 대응해야 할 때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는 새로운 상식을 가지고 글을 읽어 보자.

대부분의 위기는 스스로 사라진다

이건 진리다. 몇 년간 수십년간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개인이나 기업의 위기는 없다. 며칠이나 몇 개월 고생을 해도 결국 위기는 사라져 버린다. 엄청나게 활활 타오르는 산림의 화재도 언젠가는 꺼져 버리게 마련이다. 한없이 밀려오는 강물도 언젠가는 줄어든다. 어떤 위기 건 끝이 있다.

그에 비해 위기관리 주체인 자신이나 자사는 대부분 그 끝을 기다리지 못하는 성급함을 보인다. 금세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폭발적인 억울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대적하고 싶은 본능으로 고통받는다. 전문가들이 좀 더 미래를 보자 하더라도 그 조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엇이든, 어떻게 든 대응해야 이 상황이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다.

위기가 발생되면 그 위기를 검증된 의사결정자 스스로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이 대응의 첫걸음이 된다. 금세 사라질 성격인지, 장기간 소란을 피울 성격의 것인지 먼저 판정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간 소란이 이어질수록 우리에게 점점 더 큰 데미지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지를 살펴보자. 일단 이미 받은 데미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데미지가 계속 추가되어 우리의 맷집 한도를 뛰어 넘게 될 상황인지 여부다. 대응은 그 후에 결정하는 것이 전략적이다.

무언가 얻을 것이 있을 때만 대응하자

특정 대응을 실행해서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건 실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경우 그 대응을 실행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무능한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예측해 볼 때 실행을 하더라도 크게 얻을 것이 없거나, 전혀 목적과 동떨어진 결과만 얻을 수 있다면 그런 실행은 자제하는 것이 낫다.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홧김에 하는 대응은 위험하다. 기분전환용 대응도 그렇다. 억울함이나 분노를 어떻게 든 풀어보려 하는 대응도 종종 큰 논란을 만든다. 그걸 “왜 실행하는가?”라는 질문에 즉각적으로 “왜냐하면”이라는 답변이 궁하다면 그 실행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 이유가 있더라도 들어보아 위기관리를 위한 핵심 목적이 아니라면 조금 참아 보는 것이 낫다.

조금이라도 얻는 것이 있다면 이것 저것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질문하는 개인이나 기업도 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산속에서 타오르는 불이나 밀려오는 강물도 언젠가는 줄어든다. 사소하게 실행한 여러 대응이 그 결과를 만들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대응은 그냥 소모적인 것일 뿐, 진정한 위기관리는 되지 못한다.

전략을 기술이나 트릭과 혼동하지 말자

위기관리에서는 순리를 따라야 그나마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해서는 안되는 대응을 두고 스스로 기술적인 것이라 부르면 안된다. 신기한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대응도 매번 바람직할 수는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과 트릭을 총동원해서 하는 희한한 대응은 자칫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우선 자신 또는 자사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을 경계해야 한다. 평시가 아니라 특정 위기시에 위기관리 주체인 자신 또는 자사의 의지대로 여론이 움직여진다 믿는 근거는 무엇일까? 근거 없는 자신감일 뿐이다.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도 그렇다. 규제기관이나 시민단체 또는 내부고발자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는 충격적 방법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존재한다.

위기관리에서 가장 훌륭한 전략은 견디는 것이다. 자신이나 자사의 맷집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꼭 해야 하는 대응에 효과적으로 집중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다. 그 기간 동안 입은 데미지는 사후에 어떻게 든 노력해서 복구하면 된다. 한 겨울 덫에 걸린 산토끼처럼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뭐든 다 해 보자 해서는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질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무능이 아니다

해야 할 것만 하는 것이 전략적인 것이다. 어떤 것을 해서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대응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비전략적이고, 무능한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버리자. 때때로 그렇게 보여도 그 이유를 계속 상기해보자.

막무가내 침묵과 전략적 침묵은 다르다. 무대응과 전략적 대응 자제도 또 서로 다르다. 그리고 침묵하지 않는 것이 침묵보다 차라리 쉽다. 무조건적 대응이 전략적 대응자제보다 훨씬 쉽다. 그래서 기업이나 개인은 쉬운 것을 좋아하고 선택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전략은 없어 보인다.

일부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전략적으로 대응을 자제하는 것을 누가 못할까 생각한다.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실행해 보면 안다. 전략적 침묵처럼 어려운 실행이 없다. 전략적 대응자제처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 위기 시에는 내부와 외부 자극에 위기관리 주체가 끊임없이 들썩들썩 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략적 침묵이나 대응자제를 잘 못 생각하는 사람은 그 대응을 두고 상황을 외면하고 외부 변화에 눈과 귀를 닫고 있는 것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정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외부 변화를 입체적으로 파악해 업데이트 받고 있어야 전략적 침묵이나 대응자제는 가능해진다. 강력한 위기관리 리더십이 내부에 존재해야 겨우 유지 가능한 어려운 전략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대응보다 해야 하는 대응을 하자

내가 온라인을 잘 알고 잘 하고 있으니 온라인으로만 대응 해 야지 하는 생각도 이해는 간다. 우리가 출입기자들을 잘 관리하고 있으니 위기 원점보다 먼저 출입기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겠다 하는 생각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그 실행이 하고 싶은 것이냐 꼭 해야만 하는 것이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가장 좋은 대응 방식은 자신이 하고 싶은 동시에 그 실행이 현 상황에서 꼭 해야만 하는 것일 경우다. 그 결과는 당연히 좋게 나올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고, 그나마 자신이 잘하기 때문에만 선택한 대응은 위험하다. 최대한 상황을 분석해 자신이 원하는 대응 방식이 그를 관리하기 위해 최선인가는 가려 보자는 이야기다.

위기관리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대상과 채널 그리고 메시지의 우선순위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 우선순위와 비중 할당에 있어 하고 싶은 방향 보다는 꼭 해야만 하는 방향을 잘 찾아 정리해야 성공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순리를 따르는 위기대응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순리를 따르는 것이 위기관리 보다 중요할 때도 있다

해당 위기가 우리의 실수 때문에 발생된 것이라면 그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순리다. 해당 위기가 우리의 불법적 관행 때문에 발생된 것이라면 스스로 법적 책임을 감수하며 반성하는 것이 맞다. 재발방지는 이 경우에도 기본이다. 말도 안되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논란이라면 사실관계를 해명하면서 대응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그런 순리를 자신의 사정 때문에 외면하고 역행하는 경우에 발생된다. 자신들의 실수였음에도 그 실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업이 있다. 법적 책임을 지기 싫어하고 어떻게 든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기업은 어떤가? 스스로도 힘겹다. 어마 어마한 예산을 써가면서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순리라 보기는 어렵다.

수년이 흘러 법적 책임에서 벗어난 기업이나 개인도 물론 존재한다. 일부는 그를 보고 위기관리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위기관리의 완전한 성공을 의미하지는 못한다. 그런 기업이나 개인은 다시 다른 법적 문제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똑같은 위기관리(?)에 만족하면서 반복되는 실행을 할 것이다.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 위기관리라 생각할 것이다. 순리를 따르자. 순리를 떠올리며 평소에 위기를 관리하자. 그것이 더 낫다.

위기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나 위기가 발생한 직후 위기관리 주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룬다. 일부에서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하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대응’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일부는 아이디어를 달라고도 한다.

그만큼 대응 방식이나 그와 관련된 전략은 위기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간과하는 것은 대응하지 않는 것도 대응이라는 생각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최초 경영진이 결정한 대응 자제에 대한 기조를 유지하는 도중에도 실무진들은 계속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의문을 품는다. 이래서는 안돼는 데, 무언가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계속 몸이 달아오른다. 이런 경우 경영진은 왜 대응을 자제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반복적으로 실무진들에게 설명하고 확인시켜야 한다. 위기 시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이야기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야 완전한 대응이 된다.

이 글에서는 위기는 이내 사라지니 대응하지 말아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침묵이나 대응 자제가 항상 유효한 전략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위기 시 무조건적 대응이나 상황에 대한 ‘반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하는 것이다.  전략적인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앉아 있는 상대는 강하다. 보이지 않는 적이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모든 대응 준비를 마치고 상황을 면밀하게 바라보는 역량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경지의 것이 아니다.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고, 대응을 자제하며 필요한 때를 기다릴 수 있는 역량을 키우자. 꼭 대응해야 할 때와 꼭 커뮤니케이션 해야 할 때를 잘 가려 대응하자. 무조건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상황에 따라 라는 기준을 세우자. 전략이 있으면 대부분의 위기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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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2009 Tagged with , , , , , , , , 4 Responses

세계에서 PR을 제일 잘하는 사람…

참 유치한 생각인 것 같지만…한번 곰곰하게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만약 현재 PR실무를 하고 있는 일선 선수가 “내가 아마 이쪽 업종에서는 세계에서 PR을 제일 잘하는 사람일 꺼야!”하는 자신이 있다면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근거없는 잘난척이나 허풍을 떨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번 자신이 하고 있는 PR 프로세스와 퍼포먼스 그리고 자신이 수립해 놓은 시스템들을 하나 하나 돌아보면서 스스로 ‘자신’이 있는지 점검을 해 볼만하다는 거다.

미국이나 영국 선수들이 일을 잘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들도 하나 하나 들여다보면 그런 선입견이 하나의 타민족 컴플렉스에 기인한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우리가 그들이 쓰는 영어의 native가 아니기에 가지는 불리함도 한 작용을 한다.

전 직장에서 미국 플로리다에서 전세계 홍보매니저들과 임원들이 다 모아 컨퍼런스를 할 때가 있었다. 수십개국 지사에서 각각 PR을 담당하는 선수들이 모여 각 나라별로 자신들이 자랑하고 싶은 ‘Best Practice’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당시 기억으로 미국지사의 PR 매니저인 한 여자 선수가 생각한다. 유명한 유럽 맥주 브랜드 하나를 미국시장 론칭하면서 자신들이 실행했었던 publicity 퍼포먼스를 약 20여분간 소개 한다. 여러 신문과 잡지 기사들을 슬라이드에 꽉 채워 보여주면서 “대단한 media exposure를 얻어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당시 우리 한국지사에서는 ‘맥주 가격 인상 반대 여론에 대한 이슈관리’를 발표주제로 삼았었기 때문에, 미국측에서 발표하는 Publicity Performance를 그냥 감상해야 하는 (비교가 안되니) 처지였다. 당시 나와 같이 컨퍼런스에 참가했던 한국 지사의 HR 부사장은 캐나다 여자였는데 그 부사장은 미국의 publicity performance PT를 보면서 고개를 저으면서 놀라와 했다. 믿을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당시 실무담당인 나는 그 정도의 퍼포먼스는 그리 훌륭한게 아니라 생각했다. 미디어 앵글을 잡는 방식도 아주 클래식했고, 크리에이티브도 부족했다. Wall Street Journal에 실린 기획기사 한 꼭지를 보여 주면서 침을 튀기면서 자랑스러워 하는데…실무차원에서 한국에서 조선일보에 한 꼭지 만든것이 WSJ 한꼭지와 다를 게 무언가.

한국 언론 시장도 미국 처럼 로컬지들이 강력한 포지션을 하고 있으면 우리도 저정도의 퍼포먼스는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퍼포먼스를 종합해서 수치화하는 단계가 그들에게는 빠져있었다. 흔히 쓰는 AEV(Advertising Equivalent Value) 같은 트릭도 없이 그냥 “자…우리 잘했지?” 수준이다.

당시 우리회사에서는 4 dimension performance track을 daily basis로 진행 중이었다. 매일 매일 회사 그리고 각 브랜드별로 퍼블리시티 퍼포먼스가 비교 측정되고 있었고, 경쟁사들의 기업 및 브랜드들의 퍼포먼스도 일간 단위로 트랙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미국측의 PT를 보고는 “피…별것도 아닌 것이…”하는 느낌이 들게 마련이었다.

문제는 우리 HR 부사장이 우리회사에 그런 시스템과 월등한 퍼포먼스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거다. 분명히 그녀는 매일 아침 자신의 이메일로 들어가는 PR팀의 퍼포먼스 이메일을 읽지 않고 있었던 거다. 한국 언론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일도 아니고, 읽지도 못하는 기사의 이미지들과 시놉시스가 귀찮았던 거다.

하지만…실무자들은 자신이 있었다. 최소한 미국 선수들 보다는 시스템을 가지고 더욱 더 훌륭한 퍼포먼스를 내고 있다는 그런 자신말이다. “우리 업계에서는 전 세계에서 우리가 제일 PR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오늘 문득 우리 회사 직원들이 상하이, 홍콩 등의 파트너들과 교신하는 수두룩한 이메일들을 하나 하나 읽어 보면서…우리 선수들이 홍콩이나 상하이 선수들 보다 일을 더 잘하면 잘했지 못하진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품질관리에 있어서는 경쟁력이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예전 기억을 한번 되살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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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62008 Tagged with , , , , , 0 Responses

기억하기 어려움

현 대통령께서 취임하면서 부처들을 통폐합하고 각 부처들의 이름을 매우 생소하게 바꾸어 놓았다. 당신 조차도 방미당시 쇠고기 수입 개방 협상을 성공적으로 처리했다는 속보를 기자들에게 밝히면서…농림부…아니 농수산부…아니 농림수산식품부…여러가지 헷갈리는 명칭으로 지명을 했었다.

대통령이 서울 시장이던 시절 서울시 교통 체계를 바꾸면서 기존의 77번버스, 81번버스, 155번버스들과 같이 2-3자리 수의 버스번호들을 4412, 4312, 4212등의 기억하기 어려운 4개 숫자들의 조합으로 개선(?)했었다.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오늘자 연이은 광우병 해명 광고 하단에 있는 부처들의 이름 또한 참으로 난망하다. 농림수산식품부, 보건복지가족부…이는 분명 사용자 중심의 명칭이 아니라, 정책 편의에 의한 자기 중심의 명칭이다. 공무원들이나 관련 사업을 하는 회사들 빼고 누가 이 새롭고 복잡한 이름들을 정확히 기억할까.

며느리 집에 가고 싶은 할머니들이 어떻게 4412번과 4421번을 헷갈리지 않게 기억하고 제대로 잡아 탈 수가 있을까?  전철도 2호선이 아니라 2245호선…3호선을 3347호선으로 만들지 않으리라는 약속은 누가 할 수 있을까?

세상을 기억하기 쉽게 만드는 것도 커뮤니케이션의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패러다임이 조금은 바뀌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