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위기 매니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그들 생각들 상호간에 공통적인 면들이 많다. 그 중 하나의 공통점이 기업 위기 매니저들이 주로 ‘밖을 먼저 본다’는 부분이다. 위로부터 “위기관리 체계를 세우라” 지시 받은 분들도 계시고, 반복되는 위기로 인해 회사에 위기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스스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앞으로 조만간 다가올 위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급히 궁금해 하시는 분도 계시다. 또 어떻게 더 나은 위기관리가 가능할 것인지 진지하게 문의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분들의 공통점이 주로 위기와 관련해서 ‘밖을 먼저 보신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한번 자신이 관리한 또는 관리하려 했었던 ‘위기’에 관해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면에서 좌절하거나 한계에 부딪혔는가? 어떤 것 때문에 성공했으며, 실패했는가? 몇 십 분만 그 때 함께 위기를 관리했었던 동료들과 기억을 나누어 보면 좀더 명확한 답이 나온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회사의 위기관리 체계가 좀 더 성공적이 될지에 대해 이미 스스로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계속 기억하거나, 고민하거나, 좀 더 심각히 생각해 개선 발전시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겠다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위기관리 체계는 어떻게 갖추어야 하는 거야?’하는 기업 임원 선배나 동료들의 ‘백지’ 질문이 참 불편하다. 그 만큼 그 분들은 ‘위기’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들리기 때문이다.
기업 위기 매니저들이라면 먼저 ‘속안을 보는 것‘이 맞다. 우리 회사의 내부를 들여다 보는 것이 먼저다. 위기요소진단 측면에서도 위기의 발아점들은 대부분 내부에 있다. 위기를 센서링 하거나 모니터링하고, 발생직전이나 직후에 전조나 상황을 내부 보고 공유하는 체계도 내부 체계다. 상황분석을 종합적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것도 내부 구성원들의 임무다. 위기 발생시 그렇게 우리 위기 매니저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빠른 의사결정’도 내부의 역량이다.
기업 위기관리 실행은 이 모든 것들이 선행되어야 구현될 수 있는 하나의 결과물이다. 이 단계에서도 실제 실행을 하는 주체들은 내부 구성원들인 경우들이 많다. 이들이 바깥의 상황과 이해관계자들을 관리(management)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위기관리를 위한 대부분의 프로세스들은 ‘내부를 보는 데’에서 시작한다.
일부 위기 매니저들은 ‘밖을 보고 밖을 움직이는 것’이 ‘자사의 내부를 보고 움직이는 것’보다 쉽다 생각하기도 한다. 일종의 패배의식이다. 일개 스텝 부문 임원인 내가 어떻게 전사적 변화와 체계 구축을 시도하느냐 묻기도 한다.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가 단순(!) 위기관리 이기 때문에 그냥 맡겨진 데로 위기 시 충실히 외부 이해관계자들을 관리하는 데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려 시도하기도 한다. 또 일부는 수십 년간 밖을 보면서 일했기 때문에 임원이 된 지금 위기관리 체계를 위해 ‘안을 먼저 들여다 보라’는 주문에 낯설고 불편해 하기도 한다.
“그걸 내가 왜 해야 하지?” – 모든 기업 프로젝트의 시작에서 이런 기초적 질문이 스스로에게 생기면 해당 프로젝트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익숙했던 ‘위기’와 ‘위기관리’ 그리고 ‘그를 위한 체계’라는 이슈에 있어 고개를 180도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야 위 질문에 대해 경험했던 예전의 답들이 기억난다. 답은 대부분 내부에 있다. 이 또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외부
교수님들…미디어 트레이닝으로 해결이 될까?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 학교 ‘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교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경우 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하지만 학교측은 조사위원회를 전혀 열지 않았다. 그 역시 무용과 교수인 이 학교 교무처장은”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는지 몰랐다”고만 해명했다. [한국일보]
여러 번 포스팅을 했었지만 교육관련 기관이나 학교 선생들과 관련된 위기들 그리고 그 위기들을 관리해 나가는 그들의 포지션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사회에서 가장 존경과 신뢰를 받는 그룹들이어야 하는 그들이 어떻게 이렇게 사회에서 가장 위기관리를 못하는 그룹으로 비추어 지는지 안타깝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단체들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위의 사례도 전형적으로 타겟 오디언스들과 신발을 바꾸어 신어 보려 하지 않는 사례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타겟들은 다음과 같다.
폭행을 당한 학생들과 그 가족들
같은 과에 다니는 학생들과 그 가족들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그 가족들
그 학교에 입학을 원하는 많은 고등학생들과 그 가족들
사실 교육청이라던가 경찰 등은 핵심 타겟은 아니다. 어차피 이는 범법행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위의 학생들과 그 가족들의 입장에서 메시지를 구성했다면 상당히 무책임하게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는지 몰랐다”라는 비상식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언론을 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위 기사에서 해당 문제 강사를 관리하던 교수의 메시지는 더욱 황당하다.
D교수는 사건축소 및 은폐의혹에 대해 “강사 일을 학교에서 일일이 신경 쓸 수가 있느냐”며 “문제 강사가 학교를 떠났으면 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국일보]
이 교수가 전체 교수사회를 대변하지는 않겠지만…이런 포지션들이 많아 질 수록 교수사회 전체가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기는 점점 어려워 지게 마련이다.
이 교수에게 물은 것은 ‘학교가 강사 일을 세부적으로 신경 쓰라’는 게 아니었다. 강사가 학생들에게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신경을 쓰라는 말이었다. 또한 문제 강사가 학교를 떠나면 모든 학생들과 가족들의 상처는 치유되는 거라 생각하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았나 하는 거다.
이렇게 위기시에는 자신에 대한 보호본능이 도를 넘게 된다. 절대 신발을 바꾸어 신지 않으려 하고, 자신만 빠져 나오고 싶어 한다. 그것이 외부로 어떻게 보여지고 해석되는 가에 대해서는 생각한 겨를이나 의지가 없어진다.
그래서 위기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