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한국에서는 ‘전문가의 충고’를 신뢰하지도, 존경하지도, 높이 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중략)…그 결과 전문가의 자문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정부나 기업이나 내부 목소리만 신뢰한다. 외부의 자문은 큰 그림을 그릴 때 정말 필요한데, 실제로는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나 활용한다. 그러니까 외부 전문가들 쪽에서도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주는 대신 고객의 요구에 단순 반응하고 말아 버린다. 내 친구의 이혼을 맡은 변호사처럼 말이다. 혹은 홍보회사 하는 내 친구처럼, 고객의 ‘브레인’이 아니라 시시한 손발 노릇을 해주는 데 그치고 만다. [조선일보]
앤드류 새먼 더타임즈 서울 특파원의 평가다. 외국인이 본 한국인들의 모습이 정확하다.
경험상으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던 모든 프로젝트들은 클라이언트의 해당 프로젝트 담당자가 CEO 또는 조직상부와의 완벽한 지원을 받는 경우들이었다.
클라이언트사에서 비록 해당 프로젝트가 매우 중요하다며 예산을 할애하더라도…그 담당자가 사원, 주임, 대리, 과장 정도가 핸들링 하는 경우에는 일을 해도 너무 힘들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앤드류가 지적했던 ‘코골며 자는’ 정치인 이야기다. 여기에 본질이 있다. 정치인들에게는 자문이나 그 내용 자체는 사실 핵심이 아니다. 그런 자문들을 동원하는 그 과정과 겉 모습이 전부다. 당연히 자문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
나도 여러 정치인이나 정부관료들 앞에서 아주 중요할 것 같은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그때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아…이 자체가 정말 중요한 것은 아니구나!’하는 인사이트만 얻고 돌아섰다. 일부 교수들이나
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그들의 눈높이에 익숙해져 아주 가벼운 자문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마구 찍어대는 모습까지 보게 된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위해…다들 고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