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인수인계

1월 192009 Tagged with , , , , , 11 Responses

PR을 어떻게 했는지…

PR 에이전시들간에 아주 공식적이고 엄숙한(!) 의식이 하나 있는데…바로 에이전시간 클라이언트 업무 인수인계 의식이다. 클라이언트가 에이전시를 새로 선정하게 되면 종전의 에이전시는 새로운 에이전시에게 지금까지 관리해 왔던 여러가지 정보 DB자료들과 업무 아웃라인들을 전달하고 브리핑하곤 한다.

이 과정은 사실 상당히 민감하고, 중요한 과정이라 양쪽의 에이전시 담당자들이 가능한 성심 성의껏 준비하고 상호존중의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양쪽이 다 선수들이라 더 자세한 가이드라인은 필요하지 않겠다)

10년전… 당시 AE로서 그간 성심껏 서비스 해 오던 나의 클라이언트가 우리와 seperate하면서 새로운 에이전시 사장님에게 업무인수인계를 하라는 요청을 해왔다. 그 새 에이전시의 사장님은 예전부터 잘 알던 선배님이라 전화를 드려 축하인사를 하고 관련 자료전달 일정과 팩에 들어가는 여러가지 항목들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당시 워낙 바쁜 사장님이라 “알았어. 알아서 보내. 땡큐”하셨다. 나는 수년간 서비스해왔던 클라이언트의 여러 자료들을 하나 하나 모으면서 리스트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기자들에게 하드카피로 거의 모든 정보를 보냈던 때이기 때문에 실로 어마어마한 분량의 하드카피들이 모아졌다. 슬라이드팩과 각종 프레스킷, 회사 giveaway들과 여러가지 브랜드 킷등이 사과 상자로 몇박스가 됬다.

나는 첫번째 클라이언트와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그 박스에다 리스트를 붙이고, 그 안에 자세하게 편지를 써서 넣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써서 새로 담당할 그 에이전시의 AE가 정보를 빨리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던거다. 퀵서비스 아저씨를 통해 박스들을 들려 보내니, 마치 동생을 시집보내는 듯 한 느낌(?)에 적적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한 5-6년이 지났던가. 업계 술자리에서 그 에이전시 사장님인 선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때 그 박스 이야기를 꺼냈다. “형님, 그 때 그 박스 조금 도움이 됬어요? 그거 진짜 시간 많이 들여서 정리했었던 건데…어땠어요?” 그 선배가 이런다. “야…그거 열어보지도 않았어. 바쁜데 뭘. 암튼 고맙드라…” “………………(이럴수가. 제길….)’

당시 정말 그 선배가 얄미웠다. 나의 정성을 몰라주다니…

요즘들어 클라이언트를 보내고, 다시 맞아들이고 하면서 AE들의 업무인수인계 과정을 바라본다.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섭섭함이 교차하는 하나의 Ritual이라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인하우스 시절 깨달은 하나의 법칙이 있다. 해당 에이전시가 PR을 잘해왔는지 그냥 그럭저럭 이어왔는지 알수 있는 아주 핵심적인 리트머스가 있다. 그건 바로 클라이언트를 위해 관리해온 미디어 리스트다. 미디어 리스트를 관리해 온 모습을 보면 그 에이전시가 해당 클라이언트를 위해 일을 제대로 했는지 아닌지를 아주 확실히 알 수 있다.

미디어 리스트가 바로 PR 에이전시 업무의 진단체계 MRI인 셈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동의하는 선수들이 많을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