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기업이나 조직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가장 곤욕을 치르는 부서는 홍보부서다. 일단 홍보부서의 기본 업무가 관계관리이기 때문에 평소 관계 맺고 있던 거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일단은 1차적으로 홍보부서에게 화살을 쏟아 붇게 마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위기시 가장 고통 받는 홍보담당자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대부분 이미 인지를 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홍보부서가 모르는 위기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황당한 위기는 간혹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어떤 유형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고, 지금까지 종종 발생해 왔었는지 알고 있다. 이런 기억들은 일정기간 근무한 홍보담당자라면 아픈 상처로 남아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포텐셜 클라이언트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다 보면 필히 위기요소진단을 실시하지 않아도 자신들 스스로 많은 부분의 위기들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 저희는 일선 매장에서의 고객불만처리 사고가 제일 많아요. 일선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원들이 고객 컴플레인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일들이 커지곤 하지요.
- 저희는 사실 어디에다 이야기는 못하지만 품질이 제일 근본적 문제예요. 그 부분을 개선해 보려고 하는데, 이미 판매된 제품들에 대해서는 잠재적으로 위기요소가 존재하죠.
- 저희는 너무 고객들이 많은게 위기라면 위기입니다. 저희 영업이나 AS직원들이 커버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항상 개선해야겠다고는 생각하는데 엄두가 안 나고 걱정만 합니다.
- 저희는 매번 비슷한 이물질로 고생을 하곤 하죠. 이게 어떻게 막아보려고 해도 막을 수가 없어요. 해외사례들을 알아봐도 딱히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네요. 이게 항상 위기라면 위기죠.
- 저희는 일선에 너무 민감성이 없어요. 고객관리도 그렇지만, 지역 언론에서도 부정적 의도를 가지고 취재를 오면 일단 일선에서 다 문제를 만들어 버리죠. 그 후 본사 홍보실에 보고를 하지도 않아요. 그렇게 신신당부 했는데도 그게 개선들이 안 되요.
- 저희는 너무 생산쪽 파워가 강해요. 저희 홍보실에서는 생산쪽에 위기가 많이 발생하니 전반적으로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겠다 해도, 생산관련 임원들이 도통 움직이질 않아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그게 여의치 않으니 그 부분이 문제죠. 언제 터질지 몰라요.
- 저희에게 가장 큰 위기요소는 아마 제품 위해성 이슈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건 대외비인데…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 그래서 이게 이슈화되면 회사에게는 아주 큰 재앙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듯 기업내부 홍보담당자들은 위기와 관련된 문제를 알고 있다. 발생가능성과 위해도가 일정 수준 이상인 고위험군의 위기요소들을 경험에 의해 감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위기는 관리 되지 않을까?
시속 100km로 달리는 나의 자동차 오른쪽 앞 바퀴가 잘 제어 되지 않고, 삐그덕 거리는 소음을 들으면서도 왜 속력을 줄이거나, 차를 세워 그 오른쪽 바퀴를 고치지 않을까? 왜 같이 탄 동승자들에게 이렇게 달리다가는 우리 모두가 죽을 수도 있다 소리치지 못할까?
모르면서 위기를 맞는 게 아니라 왜 항상 ‘올 것이 왔구나’하면서 위기를 대해야만 할까?
그 가장 큰 이유는 크게 현실적인 이유와 정치적인 이유로 나눌 수 있겠다.
먼저 현실적 이유는 이미 인지되고 내부 공유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전혀 ‘개선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해당 위기요소를 개선하려면 상당 수준 이상의 예산이 들게 되거나, 일정 인력들을 늘이거나 잘라내거나 책임을 밝혀 변화시켜야 하는 경우다. 해당 위기요소를 완화시키거나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거나 이익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는 어쩌면 회사가 파산할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적 이유에 의한 위기요소의 지속은 가장 흔한 현실이다.
두 번째 정치적 이유는 위기관리를 리드하고 책임지는 해당부서 또는 담당자가 위기요소에 대한 개선 작업을 이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거나, 이끌 정치적 역량이 없는 경우다. 흔히 홍보실이 기업이나 조직 내에서 가지는 정치적 위치에 근거한다. CEO를 설득하거나 그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주체라면 아무리 가시적 위기요소라 할지라도 어떻게 개선을 입에 올릴 수 있겠나.
만약 위기관리를 기업이나 조직 내 홍보부문이 이끌고 있다면, 홍보부문에 대한 조직 내 정치적 임파워먼트는 항상 전제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정치적 역량 없이 위기관리를 리드하는 홍보부분은 항상 수박 겉만을 핥게 된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 현실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는 닭과 달걀의 관계이기도 하다. 기업이 몰라서 위기관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기업이 멍청해서 위기관리를 못하는 게 아니다. 기업이 관심이 없어서 또는 기업이 해 본적이 없어 위기관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알지만 어쩔 수가 없어 못하거나, 진정으로 원하지 않아서 위기관리를 안 한다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인사이트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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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sponses to 위기를 알아도 왜 관리가 안될까? : 홍보실무자들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