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부서의 업무기술서에는 공통적으로 ‘위기관리’가 들어가 있다. 여기에서 이 ‘위기관리’라는 의미는 각 기업마다 천차만별의 다름이 있지만, 어쨌든 ‘위기관리’라는 딱지를 붙이고 일을 시작하는 부서가 홍보부서다.
홍보임원들이나 십여 년을 훌쩍 넘겨 홍보일을 하는 홍보팀장들의 일상을 보면 대부분 연차가 올라갈 수록 ‘위기관리’의 업무 포션이 다른 잡 업무 보다 많아 지곤 한다. 마치 5분 대기조 같이 평소에는 대기(?)하다 출입기자들이나 기타 이해관계자들과의 문제가 발생하면 출동하는 역할을 맡는다.
우리 기업 주변의 전반적 환경을 보면 기업에게 딱히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시비(?)를 거는 이해관계자들은 정해져 있다. 보통 언론이 가장 자주 그리고 심하게 시비를 건다. 그 다음이 정부규제기관, NGO, 고객 등이 되겠다. 일부 기업에서는 노조나 이슈단체도 강력한 이해관계자고, 투자자나 주변 커뮤니티도 문제가 되겠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온라인상 공중들이 또 하나의 유의미한 이해관계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의 거의 모든 비즈니스 프로세스 하나 하나에 영향을 미치려 시도 한다. 이 많은 위기요소들을 기존처럼 홍보부서 몇 명이, 더욱 정확하게는 홍보부서 시니어 한 두 명이 관리(management)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인 시대가 되었다. 홍보부서 시니어들은 항상 ‘바쁘다. 바쁘다’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웬만해서 기자 이외에는 전화통화도 힘들다. 하루에 20시간을 일한다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다.
문제는 바쁘기만 할 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위기관리를 하는 방식은 유사하고,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항상 잘되면 회사가 전체적으로 잘 해 위기를 관리한 것이다. 어쩔 때는 위기를 잘 막아내고(?) 나면 ‘사실 그게 무슨 큰 위기였었냐?’하고 퍼포먼스를 폄하 받을 때도 있다. 주기적으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위기에 대해 항상 힘든 방어에 밤을 새고 나면 ‘홍보부문은 무얼 하길래 이런 것도 막지 못하나?’ 비판 받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안팎으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홍보부서는 ‘항상 질 수 밖에 없는 게임’에 참가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수십 년간 별로 변화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스스로 조직 내에서의 입지를 좁혀간다. 일부 홍보부서 시니어들은 오너분이나 CEO의 ‘급변 사태’를 맞아 위기(재앙)를 관리 한 공로를 일부 인정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그분들 개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기업에게 발전적인 위기관리 공로라고는 볼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홍보부서는 빨리 위기관리의 실행책임을 놓아버려야 한다. 이제까지 자기 부서에게만 대부분 씌워졌던 이 올무를 벗어 전사적 시스템에 씌우는 전략적 노력을 해야 맞다. 이슈들과 이해관계자들을 바라보라. 그리고 사내 부서들을 어떻게 코디네이션 해 그들과의 이슈 그리고 위기를 사전 방지 관리 대응 할 수 있을지를 경영진과 부서장들과 고민하라. 이를 통해 전사적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라.
빨리 위기관리 일선에서 일정부분 벗어나 조직을 움직이고 조율하는 홍보부서 시니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만 바빠하고 남는 시간에 최고경영자들에게 더 중요한 전략을 조언하고, 발전적 의미의 사내 정치에도 좀 더 힘을 쓰길 바란다. 내부에서 비전 있는 홍보 시니어를 트레이닝하고 키우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그래서 좀 더 오래가고 높이 가는 홍보출신 임원들이 많아 지면 좋겠다. 밖에서 영입된 전직 기자들에게 고스란히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는 낡은 실무자들의 모습을 후배들이 그만 보았으면 한다는 거다. 제발 빨리 위기관리를 손에서 놓으시길 바란다.
홍보부서
위기를 알아도 왜 관리가 안될까? : 홍보실무자들에 대한 이야기
사실 기업이나 조직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가장 곤욕을 치르는 부서는 홍보부서다. 일단 홍보부서의 기본 업무가 관계관리이기 때문에 평소 관계 맺고 있던 거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일단은 1차적으로 홍보부서에게 화살을 쏟아 붇게 마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위기시 가장 고통 받는 홍보담당자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대부분 이미 인지를 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홍보부서가 모르는 위기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황당한 위기는 간혹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어떤 유형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고, 지금까지 종종 발생해 왔었는지 알고 있다. 이런 기억들은 일정기간 근무한 홍보담당자라면 아픈 상처로 남아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포텐셜 클라이언트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다 보면 필히 위기요소진단을 실시하지 않아도 자신들 스스로 많은 부분의 위기들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 저희는 일선 매장에서의 고객불만처리 사고가 제일 많아요. 일선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원들이 고객 컴플레인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일들이 커지곤 하지요.
- 저희는 사실 어디에다 이야기는 못하지만 품질이 제일 근본적 문제예요. 그 부분을 개선해 보려고 하는데, 이미 판매된 제품들에 대해서는 잠재적으로 위기요소가 존재하죠.
- 저희는 너무 고객들이 많은게 위기라면 위기입니다. 저희 영업이나 AS직원들이 커버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항상 개선해야겠다고는 생각하는데 엄두가 안 나고 걱정만 합니다.
- 저희는 매번 비슷한 이물질로 고생을 하곤 하죠. 이게 어떻게 막아보려고 해도 막을 수가 없어요. 해외사례들을 알아봐도 딱히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네요. 이게 항상 위기라면 위기죠.
- 저희는 일선에 너무 민감성이 없어요. 고객관리도 그렇지만, 지역 언론에서도 부정적 의도를 가지고 취재를 오면 일단 일선에서 다 문제를 만들어 버리죠. 그 후 본사 홍보실에 보고를 하지도 않아요. 그렇게 신신당부 했는데도 그게 개선들이 안 되요.
- 저희는 너무 생산쪽 파워가 강해요. 저희 홍보실에서는 생산쪽에 위기가 많이 발생하니 전반적으로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겠다 해도, 생산관련 임원들이 도통 움직이질 않아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그게 여의치 않으니 그 부분이 문제죠. 언제 터질지 몰라요.
- 저희에게 가장 큰 위기요소는 아마 제품 위해성 이슈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건 대외비인데…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 그래서 이게 이슈화되면 회사에게는 아주 큰 재앙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듯 기업내부 홍보담당자들은 위기와 관련된 문제를 알고 있다. 발생가능성과 위해도가 일정 수준 이상인 고위험군의 위기요소들을 경험에 의해 감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위기는 관리 되지 않을까?
시속 100km로 달리는 나의 자동차 오른쪽 앞 바퀴가 잘 제어 되지 않고, 삐그덕 거리는 소음을 들으면서도 왜 속력을 줄이거나, 차를 세워 그 오른쪽 바퀴를 고치지 않을까? 왜 같이 탄 동승자들에게 이렇게 달리다가는 우리 모두가 죽을 수도 있다 소리치지 못할까?
모르면서 위기를 맞는 게 아니라 왜 항상 ‘올 것이 왔구나’하면서 위기를 대해야만 할까?
그 가장 큰 이유는 크게 현실적인 이유와 정치적인 이유로 나눌 수 있겠다.
먼저 현실적 이유는 이미 인지되고 내부 공유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전혀 ‘개선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해당 위기요소를 개선하려면 상당 수준 이상의 예산이 들게 되거나, 일정 인력들을 늘이거나 잘라내거나 책임을 밝혀 변화시켜야 하는 경우다. 해당 위기요소를 완화시키거나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거나 이익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는 어쩌면 회사가 파산할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적 이유에 의한 위기요소의 지속은 가장 흔한 현실이다.
두 번째 정치적 이유는 위기관리를 리드하고 책임지는 해당부서 또는 담당자가 위기요소에 대한 개선 작업을 이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거나, 이끌 정치적 역량이 없는 경우다. 흔히 홍보실이 기업이나 조직 내에서 가지는 정치적 위치에 근거한다. CEO를 설득하거나 그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주체라면 아무리 가시적 위기요소라 할지라도 어떻게 개선을 입에 올릴 수 있겠나.
만약 위기관리를 기업이나 조직 내 홍보부문이 이끌고 있다면, 홍보부문에 대한 조직 내 정치적 임파워먼트는 항상 전제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정치적 역량 없이 위기관리를 리드하는 홍보부분은 항상 수박 겉만을 핥게 된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 현실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는 닭과 달걀의 관계이기도 하다. 기업이 몰라서 위기관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기업이 멍청해서 위기관리를 못하는 게 아니다. 기업이 관심이 없어서 또는 기업이 해 본적이 없어 위기관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알지만 어쩔 수가 없어 못하거나, 진정으로 원하지 않아서 위기관리를 안 한다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인사이트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