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위기관리에 대한 여러 변수들과 주체 그리고 객체들에 대한 역학들을 살펴보자.
1. 위기는 밖에서 먼저 아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나 정부 그리고 업계에서 먼저 알고 나중에 우리회사가 제일 나중에 아는 위기들도 많다. 소비자가 클레임을 하면서 위기가 전개된다거나, NGO의 전화를 받으면서 사건이 악화된다. 아침에 출근해 보니 공정위에서 파견한 조사관들이 내 PC의 하드를 뜯어내고 있다거나, 갑자기 회사를 상대로 한 고소장이 날아온다.
2. 출입기자 이외의 기자들이 들이닥친다.
평소에 그렇게 친하던 우리 출입들은 어딜갔나? 사회부 기자 선수들이 날아다닌다. 평소에 시경캡이랑도 좀 친해 놓을 걸. 법조출입 기자들은 어떻게 뚫지…도와줘 출입들. 아니 불만제로 PD랑 극작가는 왜 자꾸 번갈아 전화를 거나 이거.
3. 길다 길어 의사결정
사장님은 부산 지점에 내려가셨고, 임원들은 다 자리에 없다. 홍보팀장인 내가 전체 집합을 시킬수도 없고, 사장님 전화는 10번을 걸었는데 묵묵부답이시다. 회의중이니까 나중에 걸라는 데 이걸 어쩌나. 일이 터졌다고 소리를 지르고, 강제로 전화를 연결했는데도…일단 서울 올라가서 보잔다. 기자들 전화가 1분에 10통씩 오버랩된다.
4. 다들 팔짱을 낀다
법무팀장 잠깐만요…네 왜요? 이게 문제가 터진 것 같은데…엥? 그런거에 왜 기자들이 관심을 두죠? 별거 아닌데? 그리구 우린 할말도 없는데? 아니 그래도 뭔가 우리의 입장이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아니요. 홍보팀장님. 그거 이야기 하지 마세요. 기자들 전화 받지말아요. 그냥 별거아니라고 해서 넘어 가시던가.
5. 나만 흥분했나?
사장님, 부사장님들, 아무래도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내일조간부터 해명광고를 실어야 하겠습니다. 이거봐 홍보팀장, 예산있나? 올해 홍보예산 남은거 있어? 네? 아뇨. 아무래도 이건 특별예산을 끌어와야 하겠는데요. 그럼 어디서 그돈이 나지? 이것봐 마케팅 부사장, 돈 좀 있어? 쩝…이번 분기에 예산 이미 프리징했는데요. 그럼 영업 부사장, 한 5억 어디서 땡길 때 없나? 네? 5억이요? 지금 이번 분기 예산이 이미 5억 초과라서요…흠…그럼 홍보팀장 조중동만 가자. 있는 돈으로 어때?
6. 본사가 더 괴롭혀
헬로..디스이스힘 스피킹. 하이..앨리스. 하와유두잉.. 왔? 오케이…오케이…바이 투나잇. 라잇나우? 오케이…두잉마이베스트. 본사에서 퇴근도 안하면서 official statement를 만들어 보내란다. 일단 만들었다. 기자들의 전화는 빗발치는데…홍보팀장인 나는 영문으로 내부보고용(?) statement를 만든다. 고치고 또 고치고…실제 기자들과의 전화통화는 이 statement를 훨씬 넘어선 고차원적인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데…홍보팀장은 기본적이고 아주 드라인 한 문장을 꾸미고 있다. 영어로 보낸 official statement…새빨간 수정본이 온다. 또 고친다. 다시 컨펌. 또 반은 빨갛다. 또 수정. 결국 영문 다섯문장짜리 official statement가 완성됬다. 한국말로 옮겨 놓으니…이건 바보문장이다. 이걸 어따 쓰나?
7. 직원들이 무서워
아침이 밝았고, 어제 하루종일 받아쳐냈던 기자들의 통화 내용들이 여러 매체에서 기사화 되었다. 홍보팀장인 내말을 제대로 알아먹은 기자들이 거의 없다. 각자 자기가 이해한 대로 기사를 꾸며 올렸다. 이것봐라…MBC에서는 내가 뒷부분에 한말을 꼭지를 발라 방영한다. 우물쭈물..하는 목소리다. 아침 사내 이메일에서는 마구 항의가 온다. ‘우리회사 홍보팀은 뭘하는겁니까?’ ‘오늘자 부산일보는 보셨나요?’ ‘여기 광주 지역신문 기자가 인터뷰를 하자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런 기사를 빼야지 가만히 놔둬도 되는겁니까?’ 죽을라고…이 피끓는 대리 녀석들.
8. 조금만 기다려 볼까?
홍보팀장 오늘 그건으로 기사 몇개나 났나? 예 TV3사 포함해서 전체 다 났습니다. 아주 분위기가 안 좋습니다. 언제까지 갈 것 같아? 흠…오늘도 기자들이 우리 처리 방침에 대해서 계속 물어오는 걸 보니 며칠 더 갈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 아무래도 조금씩 잦아 들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사실… 홍보팀장. 조금만 기다려보자. 기자들 그동안 조금 잘 다스리고. 거 해명광고 한번 나가면 돈이 너무 많이들어. 광고대행사에서도 조금만 기다리자더라구. 네??? 돈좀 아끼자. 네…
9. 니가해라 인터뷰
홍보팀장님이시죠? 저는 KBS OOO인데요. 요즘 이 건 때문에 많이 바쁘시죠? 그래서 그런데 사장님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사장님 인터뷰요? 그게 좀…혹시 그냥 제가 하면 안될까요? 아뇨…이 사안이 조금 중대한 거라서 될수 있으면 고위 임원급 이상이 해주셔야 하는데요. 잠깐만요. 누가할까??? 임원 그룹이 20명인데…아무도 없다. 맘 놓을만 한 분이. 그리고 이 위기를 잘 알고 있는 분도 거의 없다. 사장님이 안 나서시면 아무도 없다. 회사는 있는데 사람은 없다. 죽겠네…
10. 거 블로그에 뜬 것 좀 끌어내리지?
이거봐 홍보팀장. 우리 아들이 어제 그러던데…뭐 온라인상에서 난리가 났다던데? 그거 알아? 네…블로거들과 각종 카페들을 모니터링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걸 그냥 놔두는거야? 그거 끌어 못내려? 거 들어보니 애들이 거의 장난치는 거더만, 제 정신 아닌 애들도 많고…그거 그냥 놔두기야? 네? 저…블로그는 잘 못 건드리면 아니 건드린 만 못하게 되서요…모니터링하면서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전부입니다. 거…참…홍보팀이 문제가 있어. 자기일 처럼 처리를 안하네…당신 이름이 온라인에서 막 욕먹구 있다고 생각해봐. 거 가만히 놔두겠어? 확 그새끼들 모가지를…
11. 대행사는 뭐한데?
아니 홍보팀장 잠깐 들어와봐. 우리 대행사에 매달 얼마줘? 천만원? 아니 근데 그렇게 주는 데 왜 기사를 못막아? 그돈 가지구 걔네들 다 뭐해? 어제같이 그런 MBC뉴스 정도 빼줘야 하는거 아니냐? 홍보팀장이 너무 대행사 싸구 도는거 아니야? 대행사는 굴려야 해. 어제 그 MBC 뉴스 사이트에서 못 내리면 일 관두라고 그래. 아니다. 그 대행사 사장 당장 들어오라구 그래. 내가 한마디 해야 겠어. 못하면 관두라구. 한달에 천만원이 누집 강아지 이름이야?
12. 기자들 술 좀 사줘
홍보팀장, 거 기자애들 술 좀 사줘. 그냥 소주 한두잔 먹고 털자그래. 홍보팀장이 되가지고 그런거 정도는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경쟁사는 아무말 없는데 왜 우리만 이래…당장 오늘 저녁부터 기자들 몇몇 만나서 잘 봐 달라고 하면서 술한잔 사. 네…회사카드 가지고 나가겠습니다. 어…근데 거 예산 잘 한도있게 써라. 50만원 이상은 안된다. 그냥 진동횟집에서 세꼬시 시켜서 한판 먹구…소주 댓 병 까 보내. 괜히 좋은 술집가지 말고. 돈 없어.
13. 아니 꼭 그런 애들한테 돈 써야 해?
홍보팀장. 아니 거 뭐야…그 이름도 모르는 찌라시에 광고를 줘야 해? 아무리 200만원이라도 좀 그렇다. 거 그냥 쓰라 그러지? 흠…그게요. 그 친구들이 온라인 사이트를 가지고 있어서 요즘에는 파괴력이 좀 있습니다. 가뜩이나 요즘 네티즌들 반응이 안좋아서 같이 쓸려 넘어갈 수 가 있어서요. 그래도 그렇지…만약에 다른 애들도 달겨들면 어떡해 그때 다 줄꺼야? 지하철에 수십개두 넘던데…어쩔꺼야 그때는? 그래서 그냥 회식비 지원이나 구독료 등으로 풀라고 합니다. 다른데 눈에 안띄게요. 쩝…그러면 200은 너무 많아. 홍보팀장이 가서 한 100이하로 쇼부좀 봐라. 쩝…
14. 내년도 PR플랜 다됬어?
홍보팀장. 왜 전화가 이렇게 힘드냐? 아무리 일이 터졌다고 해도…사장님 보고는 들어가야지. 내년도 PR플랜 빨리 완결해. 그거 이번에 마케팅 플랜 하면서 같이 보고해야 해. 듣고있어?
15. 우리 회사 홍보팀에 실망이야
인트라넷을 보면 글들이 줄을 잇는다. 홍보팀은 무얼하고 있나요? 기자X들을 왜 관리를 못하나요? 우리 그 많은 광고비는 어디다 쓰나요? 이 OO일보의 O기자는 왜 유독 우리를 더 부정적으로 공격하나요? 혹시 우리 회사라 무슨 억하 심정이 있는건 아닌가요? 나는 우리 회사에 왜 홍보팀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니네들이 와서 해봐라. 결과적으로 위기 이후에 잘 했다 칭찬 받는 홍보팀은 거의 없다. 긍정적인 기사가 매일 나와도 부정적인 기사 한번은 꼭 인트라넷에서 회자가 된다. 그리고 곧 만만한 홍보팀은 밥이 된다. 안동 지점의 신입사원 까지 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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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팀장들은 이런 위기상황에서 몇가지 부류로 나뉜다.
1. 복지부동형. 욕먹을 짓은 절대 안한다. 전화도 피하면서…그냥 태풍이 지나가길 빈다.
2. 적극개입형.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한다. 모든 언론 인맥을 동원하고 24시간 뛰어 다닌다.
3. 허둥지둥형. 뭘 어떻게 할 찌 모른다. 회의만 하고, 사장님 보고만 들어간다.
4. 선무당형. 본사와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본사가 시키는데로 선무당 칼을 흔들어댄다. 조중동 선별 해명 광고에, 기자회견 한다면서 조중동은 챙기면서 연합뉴스를 안부른다.
5. 막무가내형. 배째라고 한다. 우리는 떳떳하고 피해자라고 항변한다. 정치권에 줄을 대서 해결하려고 까지 한다.
결론은 모두다 위기가 끝나고 나면 욕을 먹는다. 그게 홍보팀장들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