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섬

12월 052008 Tagged with , , , , , , , , 2 Responses

이해, 익숙하지 않음, 낯설음, 두려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나 회사의 직원들에게 PR 제안서(proposal)을 써 오라고 하면 청첩장이나 브로슈어를 만들어 가져오곤 한다. 브로슈어 타입의 제안서인 경우에도 이 제안서가 여러명에 의해 공장 생산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팔다리 머리 다리가 따로 놀곤 한다.

아주 흉칙한 브로슈어다.

일단 제대로 된 제안서에는 제안서를 꾸민 사람의 ‘생각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스토리텔링 플로우를 따르라고 하는거다.

옛날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놀부와 흥부라는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놀부라는 형은 아주 마음씨가 고약했죠. 반면에 동생 흥부는 너무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놀부는 이것 저것 욕심을 부려 부자가 되었고, 흥부는 마음이 착한 나머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결국 이 놀부는 욕심을 부리다 하늘의 미움을 사서 가족과 재물을 잃고 패가망신을 했고. 흥부는 착한 마음씨 때문에 가족과 재산이 풍성해 져서 아주 아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런 제안서 플로우가 있다고 치자. 전체적으로 생각의 흐름이 있고, 다음 장면에 예상되는 장면들이 있다. 그리고 결론이 있고, 스토리를 듣고 난 뒤에는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학생들이나 일부 직원들이 만드는 제안서는 이런 꼴이다.

옛날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놀부와 흥부라는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놀부는 욕심을 부리다 하늘의 미움을 사서 가족과 재물을 잃고 패가망신을 했고. 놀부는 이것 저것 욕심을 부려 부자가 되었고, 흥부는 마음이
착한 나머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반면에 동생 흥부는 너무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 놀부라는 형은 아주 마음씨가 고약했죠. 흥부는
착한 마음씨 때문에 가족과 재산이 풍성해 져서 아주 아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런 제안서 플로우를 듣고 있으면 무언가는 말하고 있는데 일단 이해가 잘 안된다. 그리고 앞의 부분과 뒷 부분이 연결이 안되니 다음을 예상할 수도 없다. 정상적인 시청자라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더구나 끝나고 나면…기억에 남는 것은 황당함 뿐이다.

1. 플로우, 플로우, 플로우
2. 제안서 만드는 순서를 거꾸로 말 것. (ex. 프로그램 먼저 아이디에이션 하고 전략을 우겨 만들기)
3. 제안서를 잘라 각자 만들어 합체 말기. (ex. 죽은 사람들 시체를 부분 부분 잘라 합친 프랑켄슈타인?)
4. Key Message를 잘 만들기 위해 공 들이기. (–> 현재 이 것이 가장 priority 적게 가져가는 부분)
5. 만들고 나면 같이 읽어보고 읽어보고 읽어보고 해서 껄끄러운 매듭이나 곁가지들을 갈아내기.

물론 자신이 미처 안해 본일은 이해는 가도, 익숙하지 않다. 낯설고 두렵다. 그러다 보면 그런 낯섬과 두려움을 피하고 싶어진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피해서는 일이 안된다. 그리고 두려움도 없어지지가 않는다. 한번 두번 익숙해지고 친해지고 두려움을 날리는 버릇을 들이면 그것이 더 익숙해 진다. 그 때부터 일을 제대로 하는 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9월 162008 Tagged with , , , , , , , , , , , , , , 2 Responses

한국적 커뮤니케이션 vs. 서구적 커뮤니케이션

여러 위기관리 프로젝트를 하면서 국내기업과 외국기업 간에 커뮤니케이션 태도(attitude)에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위기 시에 일반적으로 국내 기업들은 여러 가지 수사들을 사용해서 자신들의 포지션을 강화하려고 하는 사례들이 많다. 많은 부분에서 정서적인 접근에 익숙하고, 또 그에 대한 결과 및 반응이 좋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에 외국기업들은 상당히 dry 한 태도를 종종 보여준다. 어구 하나하나에 법적인 책임 여부를 꼼꼼히 다지다 보니. 결과물인 official statement를 한국인이 직접 접했을 때는 상당 부분 ‘쌀쌀맞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외국기업에서 인하우스 생황을 해보면서 느낀 바로는 국내기업들과 외국기업들 간의 태도의 차이는 그 근본적인 문제가 언어의 차이에 있는 것 같다. 그다음 원인은 아마 커뮤니케이션 환경 및 문화가 아닐까 한다.

아무리 화려한 그들의 언어도 한국말로 번역을 해 놓으면 별 것 아닌 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반대도 종종있다. 외국에 위치한 본사측에서는 가능한 자신들의 의중이 정확하게 저멀리 한국이라는 나라에 전달되었으면 한다. 따라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들을 정제하고 정제해서 정확히 구성 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한국에 넘어와 한국말로 변환되 전달 될 때에는 ‘아주 낯선’ 메시징이 되버린다. 언어간의 이질감이다.

그러나 많은 인하우스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이 언어의 이질감을 다양한 방식으로 완화하여 기자들에게 전달한다. 문장자체를 바꿀수는 없지만, 배경을 부드럽게 설명하거나, 적절한 표현의 애드립을 통해 기자들에게 가능한 수용성있는 메시지로 전달하려 애쓴다.

반면 일부 인하우스들은 그냥 그대로 외국발 메시지를 기자들에게 전달한다. 그게 원칙이라고 믿는다. 대체적으로 finance 및 banking 기업들이 이런 커뮤니케이션 플로우를 준수한다. 이쪽 영역에서는 기자들도 그런 dry한 메시지에 워낙 적응이 되어 있어서 그리 큰 문제는 없다. (처음 출입을 시작한 기자들에게는 당황스러운 메시지임에는 틀림없다)

국내기업들은 official statement가 세워졌다고 해도 보통 그대로를 문어적인 방식으로 전달하지는 않는다. 거기에 뼈와 살을 붙여서 아주 먹기 좋은 메시지로 포장을 한다. 누가 뭐래도 국내 기업 인하우스들의 말기술은 경험을 기반으로 하고 태생적인 입심에 의지하기 때문에 모방할 수 없는 능력이다.

국내기업이 잘한다 외국기업이 잘한다 하는 유치한 비교보다는 특성에 그런 다름이 있다는 비교는 재미있다. 중요한 것은 PR 담당자들이 상대하는 1차 오디언스가 기자이고, 그들의 대부분이 토종 한국인인 관계로 그들에게 인간적인 면을 보이지 못하면 적절한 위기관리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파란눈 노랑머리의 인간적인 면을 보이느냐 검은 눈 검은 머리 얼굴을 보이느냐는 기업의 자유다. 단, 낯설지 않음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