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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불 전략
간단하게 핵심부터 이야기 하자면, 부정적인 특정 이슈에 대해 노이즈를 인위적으로 극대화해 오디언스의 감각과 관심을 무디게 하고 이를 통해 결국 해당 이슈를 소멸시키는 전략입니다. 이슈관리의 효력은 ‘어떻게 오디언스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가’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은 수십년간의 ‘동물적’인 반복경험과 활동으로 이러한 이슈관리 전략들을 익숙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략과 실행적 측면에서는 부럽습니다. 마치 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으면서도 집한 두채는 뚝딱 지어 분양하는 집장사 같은 내공이랄까요…
일단 오디언스측에서는 최초 단순 이슈가 적절한 노이즈를 일으킬때에는 각별한 관심을 투여합니다.
“A당 가나다씨 강남 도곡동에 땅 OOO억원어치 보유” – 아주 단순하고 강력한 이슈입니다.
이런 단순한 이슈를 접했을 때, 오디언스들의 태도는 그나마 대부분 ‘그럴수도 있지’ 또는 ‘뭐야 이거 나쁜…’ 이런식으로라도 간단하게 나뉘게 마련입니다. (오디언스들에게는 관여도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이야기죠. 하나의 가쉽수준으로…)
그러나 이런것이 대선과 같은 목적에 연관된 이슈라면 상황은 틀려집니다. A당에게는 맞불전략이 필요해지는 상황이지요.
따라서 A당은 “B당 라마바후보는 xx지역에 총 ooo평 토지 편법 매각”이라는 관련된 별도 이슈로 대응을 합니다. 맞불전략의 백미(?)는 ‘노이즈의 극대화’입니다. 당연히 B당에서도 해명을 포함해 다른 이슈로 맞받아 치게되니까요.
매일 매일 끊임없이 별도의 이슈를 상호간에 escalating하게 소개하면서 상대방을 공격하고 맞받아치면서…이슈를 벌려만 갑니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이런…이런…’하던 오디언스들이 견딜수 없는 수준의 ‘막대한 노이즈(massive noise)’에 접하게 됩니다.
결국 오디언스들은 그 이슈의 핵심이라던가 요약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게 마련이지요. “아휴 모르겠다. 다들 도둑놈들이야. 니네들끼리 계속 싸워라. 난 이제 신경 끌란다.” 대부분에게 이런 반응을 얻게 되지요. 이것은 오디언스의 자기방어기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A당과 B당은 어느정도 시간적으로 휴식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모든 이슈들을 수면하로 가라 앉게 만듭니다. 그러고 나면 오디언스들에게 남는 것들은…
1. 상당히 시끄러웠었다는 기억 (사실 무엇이 어떻게 왜 시끄러웠는지도 모르면서)
2. 맞불로 싸운 양측 ‘모두’ 별로라는 기억 (누가 정의다 아니다 하는 판별력을 무력화)
3. 더이상 관심을 투여하기 싫다는 싫증 (정치에 대한 환멸을 이끌어 냈다면 성공!)
이 정도입니다. 이슈가 짧은 시간에 반복적으로, 여러개 도입되어, 강력하게 노이즈를 일으키다, 노이즈의 전체량과 업데이트의 속력이 오디언스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면 이 맞불 작전은 성공한 것입니다.
아들 둘이 시끄럽게 싸울 때 엄마가 누구의 잘 잘못을 가리지 않으시고 “너희 둘다 잘 못이야. 둘이 서로 사과해. 이젠 됬어…” 하시는 형국을 조성하는 것이지요.
흠이 없는 후보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슈를 잘 관리하는 후보는 많습니다. 그래서 정치란…동물적인 실전의 장입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1편에서 예전 처럼 존댓말투를 써보았더니 누굴 가르치려는 것 같아보여…그냥 종전 처럼 할랍니다. 독백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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